316 - 다시, 첫 눈
사랑과 우정사이의 경계선 10
W. 너와의 경계선
어느새 난 거실바닥에 완전히 눕혀졌고, 경수는 그런 내 위에 올라타 가쁜 숨을 내쉬며 입 맞추는데 열중하였다.
얼굴에 경수의 콧바람이 스치는데 여간 간지러운 게 아니었다.
이대로 가다간 진짜 일 날 것 같은데...
갑자기 들이닥친 상황에 솔직히 조금 무서워졌다.
하지만 이제 와서 밀어내기도 애매해 밑에서 경수를 온전히 받아들이고 있었다.
한참을 그렇게 내 입을 파고들던 경수는 갑자기 뚝 입을 떼어냈다.
눈을 떠 경수를 올려다보니 입을 꽉 다물고 풀린 눈으로 날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러다 내 몸을 일으켜 한번 꼭 안아주고는 나와 조금 멀리 떨어져 앉아 한숨을 푹 내쉰다.
경수는 애써 자신을 진정시키려 하는 듯 보였다.
그렇게 몇 번이나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내쉬더니 갑자기 벌떡 일어나버린다.
“잠깐... 산책 다녀올게.”
“...어...그래...”
경수는 두 주먹을 불끈 쥐고 도망치듯 밖으로 나가버렸다.
슬그머니 창문으로 훔쳐보니 경수는 마당에서 PT체조를 하고 있었다.
웃음이 터져 나왔다. 아 도경수 진짜 귀여워...ㅋㅋㅋ
1분전만해도 거칠게 밀어붙여서 무서웠는데, 지금은 참는답시고 저렇게 나가서 열심히 PT체조를 하는 경수가 모순적으로 귀엽게 느껴졌다.
내가 보고 있다는 사실은 모른 체 PT체조를 하다가, 국민체조를 하다가, 자기 양 뺨을 때리기도 하고 별 짓을 다 하는 경수다.
나는 큭큭 웃으며 내 핸드폰에 그 광경을 담았다.
우울할 때마다 봐야지!
한 10분쯤 지나고 경수는 언제 그랬냐는 듯 평온한 얼굴을 하고 들어왔다.
“산책 잘 했어?”
“응.”
아무렇지 않은 척 하길래 좀 놀려줄까 하다가 아직 빨개져있는 귀가 눈에 띄어 그냥 혼자 속으로 웃음을 삼켰다.
아까의 부끄러운 장면은 뒤로하고 우리 둘은 다시 공부에 열중하기 시작했다.
서로 모르는 게 있으면 알려주기도 하고, 잠깐씩 장난도 쳐가며 즐겁게 공부했다.
어제까지, 아니 오늘 아침만 해도 수능이 얼마 안 남았다는 사실에 공부를 하면서도 불안함이 계속 들었는데 그 불안함, 걱정들이 우습게도 도경수와 함께 라는 사실 하나로 모두 수그러들었다.
도경수가 이제 나한테 이만큼이나 의미있는 사람이 되었구나... 하고 느껴졌다.
계속 공부를 하다 슬슬 손가락 뼈 마디까지 아파올 때쯤 푸르스름한 저녁이 찾아왔다.
경수와 대충 밥을 챙겨먹고 나니 어느새 창밖은 어두워져있었다.
“오늘 자고 가. 집에 아줌마 아저씨 안 계시잖아.”
“... 그거 위험한 발언인건 알아?”
“아니! 무슨 생각해!! 그냥 잠! 슬리핑!! 그리고 나 말고 오빠랑 자야지 너는!!”
깜짝 놀라서 흥분하며 얘기했다.
그러자 경수는 빵 터져버렸다.
끅끅 거리며 웃으며 “장난이야. 뭘 그렇게 겁을 먹어.” 한다.
겁 안 먹게 생겼냐... 야시꾸리한 상황이 있던지 불과 5시간도 안 지났는데...
괜히 큼큼 거리며 목을 가다듬었다.
“공부 더 하다 잘거야?”
“몰라... 생각중이야.”
“갑자기 열심히 하네.”
“...”
“불안해졌어?”
“... 응. 넌 안 불안해?”
“불안하진 않아. 그냥 빨리 끝났으면 좋겠어.”
“...”
갑작스레 진지해진 분위기에 나도 경수도 아무런 말도 않고 생각에 잠겼다.
그것도 잠시, “어디 가고 싶은데?” 경수의 물음이 들려왔다.
“... S대.”
“형네 학교?”
“... 응.”
“왜?”
“... 그냥... 친척들이 비교하는 거 지겨워서 이제.”
“...”
어릴 적부터 오빠는 총명했다.
초등학교도, 중학교도, 고등학교도 다 명문만 다녔다.
그에비해 평범한 나는 항상 친척들이 모이면 심심찮게 안주거리가 되곤 했다.
솔직히 나도 오빠에 비해서 떨어지는 거지, 공부를 못 하는 편은 아니다.
하지만 항상 오빠와 비교대상이 되어서 이제 진절머리가 날 정도였다.
정작 우리 부모님은 아무말씀 안 하시는데, 왜 본인들이 나서서 그러는지 항상 짜증이 났다.
자기 자식들한테나 신경쓰지 어찌나 오지랖들이 넓은지...
그런 친척들 입을 싹 닫게 하려면 오빠보다 더 좋은 대학을 가는 것이 더 확실한 방법이겠지만, 솔직히 S대도 좀 무리다...
하지만 시도는 해봐야지...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러한 내 사정을 다 아는 도경수는 내 말을 듣고는 옆으로 가까이 와 앉아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우리 김여주 똑똑하니까.”
“...”
“할 수 있어.”
“... 응.”
경수다운 담담한 위로지만 ‘할 수 있어’ 이 네 마디에 기운이 났다.
경수의 눈을 마주하며 고맙다는 표시로 싱긋 웃어보였다.
"별 떴다."
경수의 말에 창밖을 바라보니 몇 개의 별이 반짝반짝 빛을 내고 있었다.
하나 둘 떠오르는 창밖의 별을 보며 우린 서로 다짐했다.
좋은 대학가서 지금만큼만 지내자 우리.
오늘따라 유난히 별이 더 반짝거린다.
***
시간은 참 빠르게 흘렀다.
무더운 여름이 지나고, 서늘한 가을의 끝에서 겨울의 향기가 느껴졌다.
어느새 수능은 하루 코앞으로 다가왔다.
반 아이들은 대부분 복습을 하거나 해탈한 상태로 나눠졌다.
나는 전자쪽 이었고, 백현이는... “수능 전 날에는 원래 쉬는 거야.” 하고 아침부터 퍼질러 자다가 방금 일어났다.
“아 뭐야. 점심시간 아직이네...”
“밥 먹으러 왔냐.”
“전국의 고등학생들이 학교에 오는 이유 중 50프로는 밥 때문 일거다.”
“어휴...”
고개를 절레절레하며 보던 학습지로 다시 눈을 돌렸다.
옆에서 놀아달라며 쿡쿡 찌르는 똥강아지에 딱밤을 날려주려는데 담임선생님이 들어오셨다.
반 아이들이 의아한 듯 쳐다보니 선생님께서는 “오늘 오전수업만 하고 끝내기로 했어. 밥 먹을 사람들은 먹고 가고, 청소는 안하기로 했다. 내일 다들 긴장하지 말고, 좋은 결과 있길 바란다.” 말씀 하셨다.
평소였다면 교실은 환호성으로 가득 찼겠지만, 날이 날인만큼 다들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선생님의 짧은 종례를 마친 후 나와 백현이는 가방을 싸고 경수네 반으로 향했다.
곧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나왔고, 그 사이에 있던 경수는 우리를 발견하고 다가왔다.
“밥 먹고 갈 거야?”
“난 상관없어. 똥강아지 너는?”
잠시 고민하던 백현이는 “먹고 가자. 수능 끝나면 점심 전에 나갈 텐데.” 한다.
나와 경수도 그 말에 동의하고 셋이 함께 급식실로 향했다.
수능 전날이라고 평소와 다를 건 없었다.
하지만 우리 셋의 분위기는 묘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다같이 묵묵히 밥을 먹고 나와 교문을 지났다.
집이 우리랑 정 반대쪽인 백현이는 인사를 하다가 아쉬운지 나와 경수를 끌어 작은 원을 만들고 가운데로 손을 뻗어 내밀었다.
“화이팅 한번 해야지.”
“쪽팔려.”
“왜! 하자. 화이팅!”
교문 앞이라 하교하는 애들이 좀 있어서 인지, 경수는 창피하다고 빼려했다.
나와 똥강아지가 합세해 징징대니 한숨을 한번 푹 쉬고는 그제서야 백현이 손에 제 손을 올려 보인다.
그런 경수의 손에 내 손도 얹고 우리는 동시에 “화이팅!!” 하고 외쳤다.
막상 하고 나니까 창피하긴 한데, 뭔가 좋은 기를 받은 기분이었다.
우리 셋은 누가 먼저라 할 것도 없이 서로를 보며 웃음을 터뜨렸다.
한참을 웃다가 먼저 정신을 차린 경수의 “길바닥에서 창피하게 뭐하는 짓이야. 이제 가자.” 하는 말에 다시 한 번 서로를 응원하고 경수와 함께 집으로 향했다.
쌀쌀해진 날씨에 몸이 으스스 떨렸다.
춥냐고 물어오며 제 옷을 벗어주려는 경수에 “어차피 금방 가잖아. 괜찮아.” 하며 극구 사양했다.
그럼에도 자꾸 옷을 벗어주려는 경수탓에 발걸음을 일부러 빨리해 평소보다 훨씬 일찍 도착했다.
“추우니까, 얼른 들어가.”
“알겠어. 오늘 푹 자고.”
“응. 너도.”
가벼운 포옹을 나누고 들어가려는데 “잠깐만.” 하며 날 불러 세우는 경수였다.
의아한 표정으로 쳐다보니 경수는 제 가방에서 뭔가를 주섬주섬 꺼내더니 나에게 내밀었다.
“이게 뭐야?”
“선물. 들어가 이제.”
내가 바로 쇼핑백을 열어보려하니 얼른 들어가라며 집으로 내 등을 떠민다.
알겠다고 잘 가라고 다시 한 번 인사를 한 뒤 집으로 들어왔다.
방에 들어와 쇼핑백을 열어보니 찹쌀떡, 엿, 초콜릿과 같은 먹을 것들이 한 아름 들어있었다.
고마우면서도 난 해준 게 없어서 동시에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하나하나 꺼내 살펴보다가, 맨 밑에 깔려있는 쪽지가 눈에 띄어 얼른 꺼내어 펼쳐보았다.
[하던 대로만 해. 잘 할 거야, 김여주니까. 내일 웃으면서 보자. 그동안 수고했어.]
수고했다는 말이 이렇게나 마음을 울리는 말인지 몰랐다.
그동안 억눌려있던 무언가가 녹아버리는 느낌이었다.
경수는 항상 말하지 않아도, 날 위해 준다.
새삼 그 사실이 다시 한 번 느껴져 한참을 짧은 쪽지의 내용을 되새겼다.
-너도 수고했어. 고마워 항상.
핸드폰을 들어 짧은 답을 보냈다.
더 이상 내일의 압박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오늘 꿈에 경수가 나왔으면 좋겠다.
아주 좋은 꿈을 꾸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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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우정사이의 경계선 10편이 왔습니다!
다음편이 마지막편이 될거에요ㅠㅠㅠ
텍파는 번외 한 편을 포함해 암호닉분들에게만 메일링 할 예정입니다.
사랑과 우정사이의 경계선 암호닉은 11편이 나오기 전까지 10편에 신청해 주시기 바랍니다!
아 오늘편은 제가봐도 넘 재미없네요ㅠㅠㅠㅠㅠ
표현하고 싶었던게 서로에게 점점 더 없어선 안될 부분이 되어가는? 점점 더 좋아지는? 그런걸 표현하고 싶었는데 표현력의 한계가 있네여...
재미없는 글 재밌다고 읽어주시는 독자분들 항상 감사드려요ㅠㅠㅠㅠ
다음편은 주말 전에 올라올거에요!
다들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