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편의 배경인 11년도에 여주와 백현이는 중3이었음을 알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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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년의 초겨울 쯤이었다. 덧붙이자면, 늦은 가을.
아직 완전한 겨울이 아님에도 얼굴을 감싸안는 찬 바람에 지퍼를 턱 근처까지 올렸다. 내가 그 때 야상을 입었었나, 아니다,.패딩?
사실 무엇을 입었는지까지는 정확히 생각이 나질 않는다. 여튼 내 옷은 다 검은색이니까 그 옷도 검은색일 것이라고 추측한다.
그 날따라 왜이리 길이 모조리 예뻐보였는지 모른다. 자꾸 깜빡 거린다고 싫어했던 가로등조차 그 날은 낭만적이었다.
주머니의 손가락에서 느껴지는 얇은 종이의 감촉에 입가에는 호선이 그려졌다. 그 순간부터 종종걸음으로 집 앞까지 걸었다. 기분이 좋았다.
소소함 속 온기 - - - W ri, 사미
- 오늘 성적 나온대.
아침부터 백현이가 캔커피 두 개를 들고 내 자리에 앉아있었다. 기분은 영 좋지 않았다. 변백현은 반 1등을 할 것이 분명했고, 나를 놀리려고 온 것 또한 분명했다.
(사실 지금 다시 생각 해보니, 백현이는 그런 찌질한 놈이 아닌 것 같다.) 대충 가운데 손가락을 들어올렸다. 그 이후에도 수많은 욕들을 내뱉었다.
그렇게 잡다한 욕만 먹고 돌아간 변백현은 웃기만 했다.
덕분에 내 얼굴은 더욱이 일그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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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성적이 나온다는 게 사실이었는지 선생님이 하나씩 번호를 불렀다. 3번, 김ㅇㅇ - 축 쳐진 걸음으로 의자를 뒤로 빼고 교탁으로 걸어갔다. 아까 백현이의 웃음을 질리도록
본 후로 내내 불안했다. 아, 이번에 2등도 못하면 어떡하지. 불안감에 왼쪽 눈을 찡그리고 하나씩 펴 보았다. 점수,는, 다 그대로고..
다 펴본 후에는 아무 말이 나오지 않았다. 이 악물고 공부를 하긴 했지만 꽤나 실수를 많이 한 것 같았는데, 반 석차가 프린팅 되는 부분엔 당당히 '1'이 적혀있었다.
아침에 소나기가 내려 땅이 축축하지만 운동장 한 바퀴를 질척하게 뛰고 싶었다. 내 체력은 거지 같다. 아 그냥 뛰고 싶었다는 이야기다.
죽을 것 같았다. 너무 좋았다. 중3 1학기 기말고사. 나는 그렇게 반에서 1등을 했다. 눈에 뵈는 건 없었다. 그냥 우월감에 푹 젖었다.
자연스럽게 백현이 등짝에 시선이 갔다. 아마도 우울한 표정을 짓고 있음에 틀림없었다. 항상 나보다 높은 석차에서 날 위로했었다. 이제 내가 백현이를 위로 해 주라는 하늘의 계시가 분명했다. 물론 등을 토닥이거나 다음에 잘 해라든지의 구질구질한 멘트는 날리지 않았다. 그냥 속으로 생각할 뿐이었다.봐, 넌 내 아래라니까. 라고.
비록 전체 등수는 떨어졌지만, 반 등수는 올랐으니까 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