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왕의 매력 Episode 1 - S
(Spring time)
(재생 필수!)
어렸을 때 나는 미움받길 두려워 하는 아이였다.
내 자신보다 주변의 눈초리가 더 무서웠고, 내 생각보다 주변의 생각이 더 중요했다.
그랬기에 밖에 나가 축구하는 아이들을 부러워하면서도 부모님을 떠올리며 잡은 연필을 더 꽉 쥐었고,
어릴 적 풋사랑을 떠들어 대는 아이들을 보면서도 꽉 깨문 이 사이로 수학 공식을 달달 외웠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렸던 나에게 부모님은 너무나도 큰 존재였다.
부모님의 강압적인 요구가 당연한줄 알았고, 내 감정을 억누르는 데 이미 도가 터있었다.
그렇게 부모님의 말에 감히 거역할 생각조차 하지 못한 채 내 유년 시절이 흘러갔다.
항상 같은 패턴의 반복이었다. 부모님의 지시를 듣고 움직이고, 또 듣고 움직이고.
그런 내 삶에서 오직 내 마음대로 움직이는 일이 하나 있다면 그건 너에 관한 일이었다.
나는 부모님의 지시 없이도 너를 눈에 담았고, 심지어 너를 만나는 그 순간에는 바보처럼 너 이외의 것은 아무 것도 생각하지 못했다.
그러니까 내 말은, 내 유일한 숨 구멍이 너였다는거다.
너는 아주 당연하게도 어느순간부터 내 마음 한 구석에 둥지를 내렸다.
그렇게 순종적이었던 내가 부모님과 반대 방향을 걷기 시작한건,
내 마지막 숨 구멍인 너조차 부모님이 막아버린 후였다.
너를 처음 본 건 14살 봄, 네가 12살일 때였다.
'윤기야, 네 동생이야' 어머니의 말과 함께 들어온 너는 참 예뻤다.
이복동생이라는 너를 보며 어머니는 인상을 찡그렸지만
나는 작은 손을 꼼지락 거리는 조그마한 아이가 그저 신기했던 것 같다.
내 주변에 발을 들인건 부모님을 제외하고 네가 처음이었으니까.
처음엔 그저 신기했고, 점점 너와의 시간을 보내며 나중엔 네가 그냥 좋았다.
학교를 마치면 무작정 네게 달려갔으며, 점점 부모님께 거짓말을 하는 횟수가 늘었다.
하지만 아무렴 상관없었다. 그 때의 나는 정말 행복했으니까.
"민윤기, 너 이리 안와?!!!"
그리고 그 행복은 한 순간에 깨져버렸다. 18살의 봄.
벌벌 떠는 너의 손을 꽉 붙든 나를 본 어머니가 역정을 내셨다.
무의식적으로 나는 너를 내 등 뒤로 숨겼다.
내가 겪는 아픔을 너에게까지 느끼게 하고 싶지 않았다.
너를 미워하는 어머니가 나처럼, 어쩌면 나보다 더 심한 짓을 너에게 저지른다 생각하니 피가 거꾸로 솓는 것 같았다.
내 옷자락을 꽉 붙든 네가 내 허리츰 사이로 고개를 돌려 어머니의 얼굴을 바라봤다.
어머니의 날카로운 눈빛에 하얀 네 피부가 금세 눈물로 얼룩졌고,
나는 생각했다.
너를 지켜줘야겠다고. 이 더러운 곳에서 연약한 너를 지켜낼 수 있는 건 오직 나 하나 뿐이겠다고.
그래서 처음으로 부모님께 반항을 했다. 단지 내 이복동생일뿐인 너를 위해서.
"윤기야, 제발. 엄마가 부탁할게.
우리 윤기 착하잖아, 그 손 놓고 이리와. 응?"
"..."
"이 집에서 너까지 엄마 외면하면..., 그러면, 엄마는 어떻게 살라구.윤기야, 응?
제발 윤기야 이리와. 응?"
어머니의 얼굴 위로 뚝뚝 떨어지는 눈물 방울들을 보면서도 네 앞에 선 나는 강건했다.
어머니의 애절한 목소리에 나는 너의 손을 더 꽉 붙들었다.
겁을 먹은 너를 뒤에 두고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나는 너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다음 봄도, 그 다음 봄도.
내가 원하는 건 그저 너였다.
그리고 그 다음 해 봄.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위독해져가는 병세로 별세하셨다는 기사의 내용과는 다르게
어머니의 병명은 단순히 자살이었다.
절대 슬프지 않을거라던 내 예상과는 다르게 나는 몇날 며칠을 눈물로 보냈다.
너를 만날 시간이 줄어들었다.
나를 괴롭혔던 그 여자가 뭐라고, 너를 지켜냈음에도 불구하고 마음 한켠 어두운 곳에 쳐진 거미줄이
내 살을 파고들어 미친듯이 쓰라리고 또 쓰라렸다.
그러다 문득 이래서는 안된다는 생각을했다. 나와 마찬가지로 괴로움에 발버둥칠 너를 달래줘야한다고 생각했다.
며칠만에 살이 다 빠져버린 얼굴에 괜히 물만 몇 번 묻히고 너를 찾아 나섰다.
그리고 너의 아름다운 얼굴을 다시 마주쳤을 때,
나는 또 절망을 맛봐야 했다.
내 어머니의 죽음을 비웃는 네 모습엔
내가 사랑했던 네가 없었다.
나는 그렇게 너를 잃었다.
첫 스타트의 주인공은 두 말 할 것도 없이 민윤기였다.
처음부터 머리 아프게 순진한 애들 꼬여 낼 생각도 없었고,
이번 판은 나도 오랜만에 유흥이나 즐겨볼 겸 멀리서 민윤기의 노는 타입을 지켜볼 계획이었다.
어느 타입의 여자를 주로 만나는지, 언제부터 언제 가장 많이 활동하는지 뭐 그런 사소한 것들이 오늘의 목표라고나 할까.
그러니까 어쨋든 내가 민윤기 앞에 당돌하게 나설 계획은 전혀 없었다는 말이다.
화려하게 돌아가는 불빛들을 바라보며 저릿한 발목을 만지작거렸다.
아까 민윤기가 발로 찬 책상 파편에 어쩌다 발목이 부딫힌 모양이었다.
재수없는 놈은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진다더니, 지금 내가 딱 그 꼴이었다.
신이 나서 헐레벌떡 룸 안으로 들어선 나와 다르게 오늘의 민윤기는 극도로 가라앉아있었다.
룸 안의 여자들을 내려다보는 민윤기의 눈은, 분위기 메이커니 뭐니 하는 소리들을 지껄인 김남준은 잡아다 때리고싶을 정도로 날카로웠다.
쇼파에 앉은 민윤기 앞에 일자로 무릎꿇은 여자들 사이에 껴서 입술만 잘근잘근 깨물었다.
"어..그러니까, 내가 어제..."
"야"
"..응?"
"..재미가 없잖아, 시발. 여기 술집 애들은 왜 하나같이 다 머릿속이 구닥다리야, 응?
네 어제 한 일에 내가 웃어줘야 돼? 왜? 넌 그게 웃겨?
아 진짜 시발...희진아, 지금 재미가 없다고 내가"
아무렇지 않게 벌벌 떠는 여자의 머리 위로 와인을 들이붓는 민윤기의 모습에
곳곳에서 비명이 튀어나왔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저러는거야 진짜.
헝크러진 와이셔츠의 단추를 몇 개 더 풀어낸 민윤기가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자신의 목을 감싸고 있던 넥타이를 끌러내며 세 번째 와인을 집어 들었다.
샤또 디껨.
그의 낮은 목소리가 룸 안을 울려퍼졌다.
장난스레 웃어보이는 모습에 어쩌면 그가 지금 힌트를 주고있는건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자신의 관심사를 뚫어 자신의 흥미를 끌라는.
저번에도 말했다시피 관심사가 통하는 여자는 언제나 매력적일 수밖에 없으니까.
첫 잔은 돔 폐리뇽 빈티지로 식욕 증진용 아페리티프.
두번 째 잔은 오퍼스 원으로로 식사용 테이블와인.
이번 잔은 샤또 디껨으로 디저트 와인.
그렇다면 마지막 잔은 분명 소화용 와인 브랜디. 그러니까 민윤기의 오른쪽에 자리잡은 저 붉디 붉은 와인.
그냥 타락한 도련님들 흉내만 내고 다니는 줄 알았더니,
와인도 마실 줄 알고 제법 놀줄도 아는 것 같고.
귀엽다.
가지고 노는 데 질리지는 않겠다.
"다음은 누구?"
민윤기의 말에 여자들이 서로의 눈치를 보며 고개를 숙였다.
처음이었더라면 눈치없이 끼 한 번 떨어보겠다고 달려드는 여자들이 몇몇 있었겠지만,
이미 민윤기의 행패를 여러 번 본 자들로서 먼저 나설 수 없는 게 당연하긴 했다.
우리를 둘러보는 민윤기의 눈과 마주치자 마자 자리에서 일어났다.
꿇고있는 다리가 아프기도 했고, 먼저 맞는 매가 차라리 나은 편이니까.
최대한 오른쪽 발목을 쓰지 않은 채 민윤기 쪽을 향해 걸었다.
어두운 조명 속 퉁퉁 부었을 발목이 눈물날 정도로 아파왔다.
나를 그저 술집여자로 알고 있을 민윤기의 눈길이
그의 옆으로 다가가는 내 발걸음을 끈적이게 따라붙었다.
"너, 처음 보는 얼굴인데?"
민윤기의 말에 발걸음이 멈춰섰다.
날카로운 시선이 내 얼굴이 박혔다.
"걸음걸이하며 고객대하는 눈빛까지.
영 엉망이잖아"
"..."
"설마 vip 고객인 나한테 미치지않고서야 생초짜를 보냈을리는 없고,
"..."
"너 뭐야?"
그의 말에 두 주먹을 꽉 쥐었다. 시발, 들키면 끝장인데.
시원한 에어컨 바람 안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요즘 별로 잘 활동을 안해서 모를거야.
그리고 보다시피 아까 발목을 다쳐서 기분이 영 꽝이라."
"..."
"이상하게 보였다면 사과할게, 미안."
내 말에 나를 지긋이 내려다 보던 민윤기가
자신의 머리를 쓸어넘기며 피식 웃어보였다.
"..그래?"
"..응"
"뭐, 그렇게 말하니까 들어본 적 있는 것 같기도 하고."
"..."
"일단 앉아"
민윤기의 말에 발걸음을 옮겨 그의 옆에 자리잡았다.
그냥 오늘은 집에나 갈걸. 괜한 후회가 밀려왔다.
이야기를 시작하라는 듯 고개를 까딱하는 민윤기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웬만한 흥미거리가 아니면 나도 아까 저 여자처럼 답지 않은 수모를 당할게 뻔했다.
담담한 척 일부러 두 눈을 느릿하게 깜빡였다.
대기업 자제 출신으로서 쪽팔리게 그런 일을 당할 수는 없지.
술에 취해 붉어진 얼굴을 자신의 손에 기대며 나를 빤히 바라보는
민윤기의 시선을 피한 채 아까 봐 둔 와인을 집어 들었다.
"일단 마시던 와인은 마무리하고 시작하지?"
"..."
"식용 증진, 식사, 디저트, 브랜디.
중간에 끊는 건 내 스타일이 아니라서."
"..."
"놀 시간은 언제든 충분하잖아?"
앞에 놓인 와인을 집어 들어 새로운 와인 잔에 신경 써서 따랐다.
마지막 순간에 병을 돌리는 내 모습을 본 민윤기가 순간 웃음을 터뜨렸다.
언젠가 배웠던 와인따르는 법이 이렇게 유용하게 쓰일 줄이야.
어릴 때 죽도록 싫어했던 후계자 수업이 새삼 고맙게 다가왔다.
내 쪽으로 돌려 앉은 민윤기의 목울대가 움직임에 따라 와인잔에 있던 와인이 점점 자취를 감춰갔다.
분홍빛을 띄는 그의 머리칼이 흔들렸고,
그의 눈이 일그러지며 예쁜 미소를 띄었다.
"너 이름이 뭐랬지?"
"김탄"
"그래, 김탄. 김탄...,"
"..."
"야, 얘 빼고 다 나가."
민윤기의 명령에 재빠르게 자리에서 일어난 여자들이
얼굴 가득한 눈물자국을 훔치며 룸 밖으로 벗어났다.
그들의 발목을 붙잡고 싶은 걸 꾹 참았다.
민윤기와 둘만 있는 방 안에 싸늘한 정적이 맴돌았다.
"...이제 이야기 하면 되는-"
"탄아"
내 이름을 부른 그가 옅게 웃었고, 온 몸에 소름이 돋는 듯 했다.
저건 김남준이 많이 보이는 웃음이었다.
나를 시험하고싶을 때 마다 보이는 비릿한 웃음.
민윤기의 눈빛에 등골이 서늘해졌다.
"내 얘기 들어볼래?"
"뭐?"
"이번엔 내 얘기 해준다고"
그의 강압적인 눈이 나를 내리 눌렀다.
나한테 선택권은 없었다. 그의 얘기 정도야 밤 새서라도 들어줄 수 있었다.
나중에 다 살이되고 피가 될 얘기들일테니까.
하지만 지금 이 순간 제일 걱정인 건 내가 갈피를 못잡고 있다는 거다.
도대체 내 뭐를 시험하기 위해서 자신의 얘기를 해주는거지?
오늘 처음 본 나한테 자신의 얘기를 해서 좋은 게 뭐가 있다고?
"너는 내 얘기가 끝날 때 동안"
"..."
"내 얘기를 끊을 수도"
"..."
"이 방을 나갈 수도 없어"
장난스럽게 웃으며 문으로 다가간 민윤기가
룸의 열쇠를 빼들어 그대로 보드카 병 안에 빠뜨렸다.
짤랑이는 소리를 낸 열쇠가 그대로 병 안에 담겼다.
"그리고 이야기가 끝난 후 룸을 나서서"
"..."
"오늘 들은 얘기를 어디서 꺼낼 수도 없고"
"..."
"물론, 네 기억 속에서도 지워"
내게 다가온 민윤기가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만약 배신할 시 너도 죽는거야"
"..."
"내 동생처럼"
그의 마지막 말에 탄식을 터뜨렸다. 두려움으로 온 몸이 떨렸다.
문제가 풀렸다. 민윤기는 여동생을 미워하는 것도 싫어하는 것도 아니었다.
민윤기는 그녀를 미치도록 사랑했을테니까.
사람이 배신에대해 이만큼 치를 떨 정도면 배신의 상대가 자신에게 아주 큰 존재여야한다.
그리고 민윤기의 그 존재는 자신이 아주 사랑했을 여동생이었을테고.
민윤기의 마지막 말에 따르면,
여동생은 죽었을거고. 그 범인은 아마 민윤기일테다.
]
정말 어쩌면, 생각보다 더 위험한 게임일지 몰랐다.
"오빠, 더 이상 찾아오지마"
집 문 앞을 막아선 네가 네 앞에 선 나 또한 막아냈다.
두 주먹을 꽉 쥐었다. 도대체 왜?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나는 너를 지켜줬고, 이제 너를 사랑하기 위해 다시 찾아온건데.
도대체 왜 너는 내게 그렇게 차갑게 대하는건데?
"솔직히, 남매간의 사랑이라니.
말도 안되잖아"
어째서 너는 그렇게 쉽게 우리의 사랑을 지워버린걸까.
아니, 우리의 사랑을 처음부터 가지고 있기는 했을까.
"난 자신 없어. 그만큼 오빠 사랑하지도 않고"
"..."
"그러니까, 그만-"
"윤지야"
내 말에 네 눈이 나를 바라봤고,
공허하게 빈 두눈을 바라보며 알았다.
아- 넌 단 한 번도 나를 사랑하지 않았구나. 그저 나는 이용됐을 뿐이구나.
너는 나를 이용했구나.
꽉 쥔 두 주먹이 부들부들 떨렸다.
"세상에 말되는 일들만 존재한다고 생각해?"
"...뭐?"
"아직 어리구나, 민윤지.
세상엔 말 되는 일보다 말 안되는 일이 더 많아."
"..."
"지금 내가 너를 죽이든 살리든,
그 것도 다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는거지."
나를 바라보는 네 눈이 흔들렸다.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그 중에서 딱 하나 안변하는 게 뭔줄알아?"
"..."
"네가 알려줬잖아"
"..."
"봄"
내 말에 부르르 떨던 네가 집으로 들어가려 발걸음을 옮겼고,
그런 너의 손목을 재빨리 잡아챘다.
이렇게 쉽게 보낼 순 없다.
"너와 내가 있어야,
비로소 봄이 오잖아"
"...민윤기.."
"그러니까 우린 항상 함께여야해"
"..."
"이번 봄에도, 그 다음 봄에도, 그리고 그 다음 봄에도"
"..."
"우린"
"..."
"항상 함께여야해, 윤지야"
너는 나의 봄이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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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송합니다..내용에 담고 싶은 이야기가 많아서 막 넣다보니, 글이 조금 조잡스러워 진 것같은 느낌이...ㅎ
하하. 음, 일단 글 연재에 대해 말씀드리려고 하는데요.
이렇게 어두운 글은 처음이라 제 노력에도 불구하고 연재가 조금 뎌뎌질 것 같아요.
이번엔 정말 심혈을 기울여 쓰고 있는 글이라..., 이해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ㅎ
그럼 여러분 안녕히 주무세요!ㅎ
목단 / 곱창 / 뇌몬 / 웬디 / 김데일리 / 요를레히 / 슙디 / 알라 / 포도 / 똥맛카레 / 선블록
암호닉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