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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따라 마음이 들떴다 . 지금 난 피시방 누나의 번호를 따기위해 만반의 준비를 하고있는 중이었다 . 애처롭게 울리는 휴대폰 벨소리도 무시한 채 , 머리에 한껏 힘을 주고있는데 지민이형이 방에 들어왔다 .
" 야 , 휴대폰 충전기좀. "
" 알아서 가져가요. "
" 근데 너 뭐하냐? "
" 어제 말했잖아요, 오늘 반드시 사랑을 쟁취할 거예요. "
" ... 내가 봤을때 넌 오늘 번호 못 딴다. "
" 시작도 하기전에 초치지 마요. "
" ... "
*
엘레베이터 속 나를 가만히 들여다 보았다 .
베일듯한 콧대, 조막만한 얼굴, 큰 키, 남자다운 속쌍, 넓은 어깨, 누구집 아들인지 참 잘생겼다.
피시방을 향해 가는길은 마냥 행복했다.
어젯밤 내내 보고싶었던 그녀의 얼굴을 본다는 안도감, 드디어 사랑을 쟁취할 수 있다는 정복감이 동시에 느껴져 기분이 묘했다. 그나저나 뭐라고 말하지.
" 마음에 들어서 그러는데 번호좀 주세요. "
... 아니다,
" 누나 왜이렇게 예뻐요 ? 누구 홀리려고 ? 아무도 못채가게 제가 잡아놔야겠어요. 번호줘요. "
... 싸이코같다,
" 야 , 번호 내놔. "
... 아니다,
" 저 핸드폰을 놓고와서 그런데 핸드폰좀 빌려주실수 있으세요? "
... 너무 속보인다,
시발, 그냥 마음가는대로 지껄여야겠다.
*
" 어서오세요. "
" ...? "
" 학생, 몇 시간 ? "
" ... "
" 학생, 몇 시간 할거냐구. "
" ... 저 그냥 나갈게요. "
*
시발, 분명 어제까지만 해도 카운터에는 그녀가 상냥한 목소리로 어서오세여, 라고 내게 말을 건넸었는데 왜 지금은 전에 계시던 아저씨가 다시 카운터에 계시냐는 말이다.
" 야 근데 피씨방 누나 바꼈대 . "
" ... ! 그 아저씨 관두신거 ? "
" 아니 , 그 토토로닮은 아저씨 딸인데 , 존나 예쁘대. "
" 헐 시발 , 그럼 여자 ? 시발 , 드디어 내인생에도 봄이오는구나.
" ... "
" 이 학생 또왔네, 몇 시간 할거냐구. "
" 저 ... "
" ...? "
" 그 ... 전에 계시던... 알바 누나... 관두셨어요? "
" 아, 우리딸? "
" 아... 네, 이제 안오시는 거예요? "
" 아니, 곧 올거야. 왜, 너 우리딸한테 관심있니? "
" 아학, 아, 하, ㅋ, 아하ㅇㄱ, 니ㅇ, 업ㅅ, "
" ... "
" ... 한시간이요. "
*
" ... "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녀가 저 토토로닮은 아저씨의 딸이라니, 닮은 구석이 하나도 없는데 말이다. 그래도 내 미래의 장인어른이 되실 분이니만큼, 잘 해드려야겠다.
게임을 하다보니 슬슬 배가고파오기 시작해 컵라면을 하나 시켰다.
*
" 여기 컵라면 나왔습니다 ~ "
" ...! "
" 저, 저기요 누나...! "
" ...? "
" 어, 그니까... "
" ... "
" 번호 좀 알려주세요. "
* 왜인지 쓸쓸하게 느껴지는 집, 4시,
" ... 그니까, 윤기ㅎ... "
" 좋아하는 여자애가 생겼다고? "
" 반응이 왜 이따구야, 저는 뭐 좋아하는 여자애 생기면 안돼요? "
" 안되는 게 아니라, 형이 좋아하는 여자애 생겼다고 이렇게 수줍게 말하는게 존나 역겨워서 이러는 거예요. "
" 이새끼 이거 또 존나 싸가지없게 말하네. "
" 그래서 그여자가 누군데요. "
" ...ㅍㅎ.... 있어... 되게 귀여운 여자애... 키도 작고... 단발에... 되게 하얗고... 예쁘고... 귀엽고... "
" ... "
" 다들 각자 자신의 짝을 찾아가네요, 부러워요. 저는 없어서 탈인데. "
" ... 사실 나도 좋ㅇ... "
쾅 !
" 아 시발 깜짝이야 ! "
" 오바떨지마 병신아. "
" 다 닥쳐요, 시발. "
" 저 새끼는 도대체 싸가지는 어디다 빼먹고 다니냐? "
" 내비둬, 피시방 누나랑 잘 안됐나 보지. "
" ... 그래도 부럽다, 정국이. "
" ... "
*
*
사실 요즘 고민이 하나 생겼다.
이건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았는데, 요즘 부쩍 내게 지나친 관심을 표현하는 여자애가 한 명 있다.
" 지민아 또 아침 안먹었지? 이거 너 주려고 사온거야. "
" 지민아 교과서 안 가져왔어? 내꺼 볼래? "
" 지민아 학교 끝나고 떡볶이 먹으러 갈래? "
정말 노이로제가 걸릴 것만 같다. 분명 내가 싫어하는 티를 많이 내고 있는데, 지치지도 않나보다. 이쯤되면 포기할만도 한데...
*
오늘은 기분이 좋다. 그 여자애도 나를 건들지 않을 것 같았다. 이유는 없다. 그냥 그럴 것 같았다.
" 지민아 ! "
" ... 어, 안녕. "
" 헐, 나한테 인사해준거야? 대박, 일기에 적어야지. "
"...하하. "
" 헐, 내말에 웃어준거야? 와, 오늘 아빠한테 복권 사라고 해야지. "
" ... "
" 지민아, 넌 좋아하는 사람 있어? "
"...아니. "
" 난 좋아하는 사람 있는데, 누구게? "
" ... 모르겠네, 하하. "
" 비밀 ~ "
" ... "
이 여자애 진짜 이상하다.
*
" 번호 좀 알려주세요. "
" ... "
" ... "
" ... 왜요? "
" ... "
" ... "
난 정말 호구새끼다. 모든 일에는 언제나 타당한 이유가 있어야 하는 법인데, 그걸 생각을 못했다.
" ... 그냥. "
" ...네 ? "
" ... 첫눈에 ㅂ..반했어요... "
" ... "
" ... "
" ... 핸드폰 주세요. "
" ...? "
" ... 번호 달라면서요. "
" ... 아, 여기... "
" ... "
" ... "
" ... 여기요. 또 뭐 필요하신 거 있으시면 콜버튼 눌러주세요. "
*
세상을 다 가진 것마냥 행복했다. 내가 여자 번호를 땄다. 그것도 존나 예쁜 여자, 아 - 전정국천재짱짱맨뿡뿡.
*
" 다 닥쳐요, 시발. "
욕을 내뱉는 형들을 뒤로한 채, 허겁지겁 방에 들어와 핸드폰을 켰다. 카톡에 들어가보니 새로운 친구가 한 명 추가되어 있었다.
' ㅇㅇㅇ '
ㅇㅇㅇ, 이름도 얼굴처럼 예쁘다. 카톡을 걸어볼까, 전화를 걸어볼까. 알바중이겠지, 참아야겠다. 문득 내가 너무 한심하게 느껴졌다. 아직 사귀는 사이도 아니고, 이름도 방금 안 사이일 뿐인데 혼자 설레발을 치는 모습이 꽤 볼만했을 것이다.
아, 그래도 한 번 걸어봐야겠다.
난 정말, 상상이상으로 찌질한 새끼였다.
*
왜인지 그녀와의 만남이 순탄할 것 같지는 않았다.
읽어주신 여러분 모두사랑합니다 8ㅅ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