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석진 빙의글]세상의 끝 07
한동안 괜찮다싶더니 또 날씨가 말썽이다. 미친듯이 내리는 비를 보다가 창문을 닫았다. 집 안의 창문을 모두 닫은 오빠가 내 옆에 와서 섰다. 전기는 안 나가니까 다행이네요. 오빠의 말이 끝나자마자 번쩍하며 번개가 친다. 그러게요... 내가 대꾸를 하자 천둥이 친다. 벌써 며칠째 내리는 비였다. 해를 언제 봤는지 기억도 안난다. 하긴, 늘 구름에 안개에 희미하게 보였지만.
오늘은 뭐할까요. 소파에 앉아 멍하게 앉아있자 오빠가 말을 건다. 그러게요. 화투도 카드도 전부 질렸다. 둘이서 할 수 있는 놀이는 한정되어 있었다. 티비가 불통이니 영화를 보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었고, 기껏 할 수 있는 것은 책읽기 정도? 다행히 날씨가 나빠지기 전에 오빠랑 마트를 다녀와서 먹을 것은 충분했다. 이 정도로 쏟아지는 날씨에는 나가는 게 미친 짓이니까.
오빠의 말에도 한참 가만히 앉아 있었다. 오빠가 대뜸 집 구경 시켜주면 안되요? 하고 물어온다. 집에서 산 지 몇 달이나 지났는데 웬 집구경. 의아한 표정으로 오빠를 보자 오빠가 웃으며 내 머리에 손을 얹는다. 그냥 방 구경도 시켜주고 앨범도 보고 해요. 오빠의 말에 오, 하며 탄성을 질렀다. 좋아요, 좋아! 그렇게 해서 방에 있던 앨범을 전부 들고 나와 거실에 쌓았다. 오빠 앨범도 있으면 좋을텐데. 내가 아쉬워하자 다음에 나갈 때 자신의 집으로 가서 앨범을 가져오자며 오빠가 웃는다. 그래요. 오빠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앨범을 펼쳤다.
"몇 살 때에요?"
"다섯살인가...?"
귀엽다. 오빠가 내 사진을 보더니 웃는다. 지금이랑 똑같이 생겼어요. 오빠의 말에 멋쩍은 미소만 흘렸다. 그래요? 괜히 쑥쓰러워하자 오빠가 네, 하며 고개를 끄덕인다. 옆에는 누구에요? 오빠의 물음에 아, 하고 쉽사리 말을 잇지 못했다. 얘가 지민이에요. 앨범을 넘겨 한 사진을 손으로 집었다. 얘는 태형이. 내 말에 오빠가 말없이 빤히 사진을 내려다본다. 아주 어릴 때부터 친했던 사이였나봐요. 오빠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어릴 때부터 볼 거 못 볼 거 다 보고 자랐고, 친하기도 되게 친했어요. 자주 만나기도 했고. 아... 지민이는 직업이 직업이다 보니까 자주는 못 만났어요. 내 말에 오빠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사진을 빤히 본다. 태형이와 지민이와 내가 활짝 웃으며 카메라를 보고 있는 사진을.
앨범을 다 보고 나서는 졸업 앨범을 펼쳤다. 이건 내 흑역사여서 절대 보여주고 싶지 않았는데. 아무리 오빠에게 애원을 해도 오빠는 들어먹지를 않는다. 에이, 괜찮아요. 오빠의 구슬림에 결국 울며겨자먹기로 앨범을 펼쳤다. 하... 내가 한숨을 쉬고는 1반부터 펼치자 오빠가 활짝 웃는다. 누구는 미치겠구만, 누구는 좋아죽고! 억울한 마음에 다시 앨범을 덮을까, 하다가 오랜만에 보는 앨범이라 나도 구경을 시작했다. 아, 얘가 지민이에요. 3학년 때 지민이 혼자서만 1반으로 떨어졌었다. 어색하게 찍힌 지민이를 보며 웃었다. 얘 사진 찍기 좀 전에 머리 잘라가지고 저랑 태형이한테 완전 난리쳤었는데. 내 말에 오빠도 작게 웃는다. 아, 얘는 저랑 완전 사이 안 좋았던 애. 나보고 맨날 꼬리친다고 욕했었어요. 1반의 다른 여자애를 찍으며 오빠에게 말을 하자 너무했네, 하며 맞장구를 쳐준다. 애들이랑 난 진짜 친구였는데. 그래서 맨날 지민이가 한소리하고 그랬어요. 물론 1도 안 무서웠지만. 내가 킥킥거리자 오빠도 소리내어 웃는다. 아, 진짜 보기 싫었는데. 그래도.. 보고 싶기는 하네요.
2반으로 넘어갔다. 오빠, 진짜.. 웃으면 안되요. 내가 몇 번이고 확인하자 오빠가 고개를 끄덕인다. 하... 한숨을 푹 쉬고는 내 얼굴을 집었다. 오빠의 표정이 미묘해진다. 이것 봐요. 내가 이럴 줄 알았어. 내가 징징거리자 오빠가 하, 하고 숨을 내쉰다. 미치겠다, 귀여워요. 오빠가 웃음을 터뜨리며 나를 본다. 거짓말 하지마요. 내가 툴툴거리자 진짠데? 하며 웃는다. 장난스러운 표정의 오빠를 보자 괜히 창피해진다. 이건 진짜 수치플이다. 내가 하... 하고 한숨을 쉬자 오빠가 더 크게 웃는다. 진짜에요. 나 믿어요! 오빠의 말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못 믿어.
그렇게 나의 수치플로 집안 구경은 끝났다. 더 구경하고 싶었지만 비가 그쳤기 때문에. 내가 앨범 정리를 하고 오자 오빠가 창문 앞에 서서 밖을 내다보고 있다. 우린 언제까지 이렇게 있어야 될까요. 오빠의 말에 아무런 말도 답할 수가 없었다. 그러게요, 작게 답하자 오빠가 미소를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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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거짓말처럼 안개가 서서히 걷히기 시작했다. 며칠에 걸쳐서 천천히. 안개가 걷히고 나자 구름도 서서히 걷히기 시작했다. 완전히 푸른 하늘이 보이는 것은 아니었지만 드문드문 보이기 시작했다. 그 즈음에 오빠는 혼자 생각에 빠지는 일이 많아졌다. 나와 얘기를 하다가도 때때로 밖을 쳐다보며 무언가를 생각하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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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느 날과 다름없이 오빠와 저녁을 먹고 설거지를 시작했다. 으레 그렇듯 내가 설거지를 하는 동안에 오빠는 소파에 앉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설거지를 마치고 손을 씻었다. 수건에 손을 닦고 냉장고로 향했다. 내가 냉장고 문을 잡는 순간 오빠가 조용히 말을 했다. 여태까지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없었는데, 세상에 혼자 남으니까 정말로 이상해요. 웃긴 일이죠. 왜 하필 나였을까요.
오빠의 말에 냉장고를 잡은 손을 놓았다. 뒤돌아 오빠를 마주보았다. 오빠는 잔잔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왜요? 내 물음에 오빠는 고개를 저었다. 글쎄요. 잠시 말을 멈춘 오빠는 다시 입을 열었다. 영화를 보면 주인공들은 어떻게 살아남으려고 하던데. 나는 좀 부질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물론 이 생활이 미친듯이 싫은 건 아니에요. 그래도, 가끔 그런 영화를 보면서 상상해본 적은 있었지만... 역시 상상과는 다르네요. 내가 살아남을 것이라고도 생각지 못했었는데. 오빠의 말에 다시 냉장고 손잡이를 잡았다.
난 그런 생각조차 해본 적도 없어요. 내 목소리가 떨리지 않길 기도했다. 애써 담담한 척, 오빠에게 등을 보이며 입을 열었다. 절대로 일어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거든요. 종말이 이렇게 빨리 찾아올 줄 알았으면.... 진작에 해 둘 걸, 하는 일들이 많이 생각났어요. 냉장고 문을 열었다. 뜯었지만 반도 먹지 않은 오렌지 주스를 꺼냈다. 식탁에 주스를 놓아두고는 씽크대 쪽으로 향했다. 컵 두 개를 꺼내와 식탁에 올렸다. 오렌지 주스를 따르며 다시 입을 열었다. 가끔 그런 생각을 저도 하기는 해요. 왜 하필 살아남은 사람이 나였을까. 차라리 죽었으면 편했을텐데. 그래도 혼자 살아남은 건 아니라서 다행이구나. 내가 오렌지 주스를 마저 따르고는 오빠와 눈을 마주치며 웃었다. 오빠도 내 눈을 보며 웃었다. 우리, 찾으러 가볼래요? 뜬금없는 오빠의 말에 앉다말고 어정쩡한 자세로 멈췄다. 내 의아스러운 시선을 눈치챘는지 오빠가 다시 활짝 웃었다. 우리 말고, 살아남은 사람 있는지, 찾으러 가볼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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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제가 실수 한 것 같아영....8ㅅ8
다음 편에 완결날 확률이 높습니당... 어흑... 미아내여...8ㅅ8 저를 내려치시옵소서...ㅠㅠㅠㅠ
어떻게 어제 글잡 무료였다는데! 많이 읽었어여?ㅎㅅㅎ...
제 글은 인기 없어서 안 읽었을 줄 알았는데.... 확인해보니까 조회수는 많이 올라가있더라구욯ㅎㅎㅎㅎ핳흫ㅎ 고마워요!
여튼 늘 고맙구 사랑합니당'ㅅ'
암호닉
여기봐전정꾸/디즈니/비비빅/비슬이/봄꾸기/민빠답없/요를레히/슙디/민슈가/뎡국/정글곰/김석진/침침맘/새슬/구구콘/김태태/센빠이/끗/토마토마/디기/진
짧다고 느끼는 건 착각입니당...ㅎㅅㅎ.. 애매해서 잘랐어요!
오늘 다쓰면 아마 오늘이 완결... 완결데쓰.... 헤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