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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 새벽이아쉬워
다시 혼자가 되었다(Alone again) - 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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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 어… 난 열아홉이고. "
옆에서 얼굴이 벌게져서는 웃음을 꾹 참고 있는 김석진에 아랑곳하지 않고 차근히 말을 이어 나갔다. 그러니까 그 다음 말이 뭐였더라.
" 앞으로 잘 부탁할게. 김아미야. "
자기소개를 끝내고 벌게진 얼굴을 손부채질로 진정시키고 있는 김석진에게로 시선을 옮기면 기다렸다는 듯 맨뒷자리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책걸상을 가리킨다. 한 발씩 내딛을 때마다 닿는 낯선 시선들을 굳이 피하지 않으며 의자에 앉아 가방을 풀었다. 갓 창고에서 나온 걸 티라도 내듯 먼지가 수북한 것이 아무래도 새 교복을 오늘 빨아야 할 것 같다.
교복을 벗은 지 어연 5년째에 제복을 벗고 다시 교복을 입었다. 사이즈가 맞지 않은 옷을 입은 것처럼 몸이 불편했다. 제복이나 교복이나 똑같은 유니폼이고 단체복일뿐인데 뭐가 이렇게 느낌이 다른지 까슬까슬함이 피부에 직접 닿은 것처럼 몸을 자꾸 움츠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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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잘 부탁드립니다. 김아미입니다. "
" 여형사, 말만 들었지 실제로 보는 건 처음인데 잘 부탁해요 우리도. "
" 여기서 맡을 사건이 있을까, 모르겠어. "
" 사건이 있어서 온 거니까요. 앞으로 많은 도움 부탁드리겠습니다. "
나이는 스물넷. 직업은 경찰.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형사. 덧붙이자면 막내라는 이유로 첫 사건을 위해 깡촌까지 내려와 교복을 입은 비운의 형사.
우리 집안은 대대로 경찰 집안이다. 지금은 퇴직하신 할아버지도 그랬고,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오빠까지도 현직 경찰이다. 자연스럽게 어린 시절부터 내 꿈은 경찰이었고 경찰 대학교를 졸업한 오빠를 따라 경찰 대학교에 입학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오빠와 나의 엘리트 코스에 만족하셨고 흠이 된 건 갑작스레 그 코스를 벗어난 내가 되었다. 위에서 지시를 내리는 것보다도 직접 발로 뛰어 잡고 싶다는 내 말을 아버지는 조금도 이해하지 못하셨다.
아버지의 말씀이 절대적이었던 집을 벗어나 새 원룸을 얻기 바로 직전, 새로운 직업과 함께 주어진 새로운 사건에서 내가 중요하게 해야 할 일이 있다는 선배들의 절대적인 말씀에 고개를 주억이며 오게 된 곳이 바로 이 곳이었다. 근무지에서 차로 약 세 시간 반, 배로 약 한 시간쯤의 거리에 있는 이 곳은 그야말로 깡촌이었다. 배에서 내리자마자 물씬 풍겨오는 비린내에 얼굴을 찡그리기도 잠시, 우리나라가 맞는 건가 싶을 정도로 펼쳐진 낯선 풍경에 눈에는 놀라움이 가득했다.
" 우리야, 뭐 도와 줄 건 없고, 궁금한 거 있으면 민순경한테 묻고 그래요. 여기 실세야, 실세. "
깡촌이라도 있을 건 다 있는지 제법 그럴듯한 파출소를 둘러보다 새카만 눈동자를 가진 사람과 눈이 마주쳤다. 덥지도 않은지 꽁꽁 챙겨 입은 겉옷에 민윤기, 석자가 박혀 있었다. 이름 예쁘다. ' 그게 무슨 섭섭한 말씀이세요. ' 소장님의 장난스런 말투에 사람 좋은 웃음을 흘리던 민순경님이 겸손하게 받아쳤다.
" 아니, 빈말이 아니라. 진짜. 진짜 궁금한 거 있으면 물어보고 그래요. 민순경이 이 마을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어. "
" 소장님께서 과장이 좀 심하시긴 해도 물어볼 거 있으면 물어봐요. 도울 수 있는 거면 도울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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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니까 여기에 우리가 찾는 그 애가 있다, 이 말이잖습니까. "
" 그렇지! 우리 막내 잘한다! "
" 아, 선배 똑바로 들어보십쇼. 그럼 제가 어떻게 걔를 찾습니까? "
" 그건 네가 알아서 할 일이지. 그거 다 알면 우리가 너를 왜 보내냐? "
" 자, 조용히 좀 하고. 회의 시작하자. "
이 팀에 들어와 처음으로 가지는 회의였다. 중요한 사건이라며 연신 겁을 주던 김선배는 평소와는 다르게 엄한 표정으로 수첩을 꺼냈다. 불을 끄라는 팀장님의 말에 불을 끄고는 자리가 부족해 선배들이 다 앉고 나서야 그 뒤에 멀뚱히 섰다. 하얀 화면이 뜨고 내가 맡게 될 첫 사건의 브리핑이 시작되었다.
" 이름 김재혁. 나이 마흔 다섯. 급격하게 성장하고 있는 조직의 보스입니다. 불과 10년 전까지만 해도 청부살인이나 하면서 뒷구멍에서나 놀던 놈들인데 최근 들어 기업범죄에 가담하고 있답니다. "
" 기업범죄면 우리가 굳이 나설 필요 없는 거 아니야? "
" 그러니까요. 이 새끼들이 조용히 지들 기업 뒤나 봐 주면 되는데 엄한 놈들을 자꾸 잡으니까 문젭니다. 제작년 K 기업 손자 사건 아시죠. 이게 이 새끼들이 한 건 확실한데 물증이 없어요. 녹취록이라도 있으면 괜찮은데 분명 있는데 이걸 못 찾는다는 거죠, 우리가. 작년 L 기업 때도 마찬가지로 이 새끼들이 H 기업에 돈 처받고 한 짓인 건 확실한데 물증이 없어요, 물증이. 그리고 중요한 건 올해. 올해에 분명 무슨 짓을 저지를 것 같긴 해요. 그리고 추리고 추린 게 바로 여기. "
" J 기업? "
" H 기업이랑 그렇게 쉽게 관계를 끊을 것 같진 않거든요. 그래서 H 기업에 라이벌 정도 되는 기업이 어딘가 찾아봤더니, 계열도 비슷하고, 런칭 시기도 맞물리고, 거기다 최근에 떠오르는 곳이잖아요, 여기가. 이번에 해외 수출량도 어마어마하고. 아, 아무튼 이건 그렇게 중요하지 않고, 다음 타겟이 아마 J 기업이 될 확률이 높다는 거죠. "
" 그러니까 네 말은 J 기업을 보호하자는 거야, 아니면 이 놈들을 잡자는 거야. "
" 둘 다죠. 김재혁 이 새끼 아들이 한 명 있어요. 아들한텐 그렇게 끔찍하다는데 얼굴을 안 보여준답니다. 본 사람이 없대요. 겨우 입수한 정보가 여기. 여기 살고 있대요. 그리고 열아홉 살. 학교가 작아서 반이 하나밖에 없다니까 3학년 1반일 거고. 아들이 여기 살고 있다는 말은 김재혁도 가끔 얼굴을 비춘다는 건데… 그러니까 결론적으로 우리가 여기서 아들을 찾아서 그 집에서 찾을 수 있는 자료들을 찾자는 거죠. "
" 병신 새끼야 김재혁이 그렇게 멍청한 새끼도 아니고 이런 데에 왜 지 약점을 두고 가? "
" 아, 그러니까 찾자는 거죠. 그럼 약점을 가족한테 보이지, 또 누구한테 보입니까? 김재혁 이 새끼, 냉철한 새끼예요. 마음만 먹으면 지랑 10년 넘게 알고 지낸 동료도 고민 없이 죽일 수 있는 새낀데 이런 새끼가 누굴 믿습니까? 지 아들밖에 더 있어요? "
김선배의 일리 있는 말에 팀장님이 고민하는 듯 턱을 쓸다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진행해보자는 의미임이 분명했다. 김선배의 얼굴이 금세 환해져서는 나를 향했고, 초를 치고 싶은 마음은 없었지만 솟아오르는 궁금증에 조심스럽게 손을 들었다.
" 저, 근데… 가택침입은 범죄 아닙니까? "
" 막내! 그러니까 합법적으로 들어가자는 거 아니야, 합법적으로! 누가 침입하재? "
" 어떻게…… "
" 그건 막내 네가 알아서 할 일이고! "
어떻게 해야 한다, 제대로 된 답변도 주지 않고 어물쩡 넘어가는 김선배에게 다시금 질문을 하려던 입이, 파이팅을 하자는 팀장님의 말에 막혀버렸다. 궁금증은 여전히 마음속에 가득한데 해결해 주려는 사람이 없으니 간질간질한 곳을 시원하게 긁지도 못하고 찝찝한 마음으로 책상에 가까이 다가섰다. 유치하게 손을 겹쳐올리는 짓은 하지 않았지만 팀장님은 꽤나 밝은 표정으로 다치지 않고 잘해보자며 웃으신다.
" 김재혁 아들이 3학년… 몇 반이라고 했지? "
" 1반입니다, 팀장님! "
" 좋아, 그래. 우리 그럼 우리끼리는 3-1 작전으로 부르자, 3-1 작전, 어때? "
3-1작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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