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lyakov Ilya x Blair Williams
나의 사랑 나의 신부
3. 결판과 데이트 사이
블레어는 애써 교복 자켓 끝을 다듬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귀찮아도 다림질 해서 나올 걸. 저도 남자인터라 엉망진창으로 구겨진 옷자락을 펴고 다닐 이유가 없었다. 결혼이 하기 싫다느니, 방방 뛰었으면서 저에게 만나자고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소년은 내심 궁금했다. 변덕도 심하셔라. 나이들면 다 그런가? 목을 빼고 교문 앞을 내다보던 블레어는 생각했다.
물론, 나이가 든다고 변덕이 죽 끓듯 하지는 않는다.
차라리 오지 않는다고 취소라도 할 걸 그랬나. 운전대를 잡고 있던 일리야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울컥해서- 사실은 술 김에 내뱉은 말이 자꾸 생각나서- 차를 몰고 오긴 했는데 둘이 만나 무얼 할 지에 대한 생각은 하나도 한 적이 없다. 네비게이션이 시키는 대로 꼬맹이의 학교를 찾아오기는 했는데, 찾아온다고 해서 모든 일이 끝나는 게 아니니까. 자기가 생각해도 참 대책없었다 싶어 일리야는 고개를 저었다. 저 멀리 보이는 마른 몸.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 같이 빼꼼히 내민 고개에 그는 그게 블레어라는 걸 알아챘다. 아, 이걸 어쩌지. 그래도 왔으니까. 일단 차를 세운 그가 조심스레 조수석 유리를 내렸다. 동글동글. 푸른 눈이 저를 쳐다보고 있었다.
" … 안녕. "
" 안녕하세요. "
" 그, 타라. "
누가 본다면 참으로 호구 빙딱같은 대사라고 생각하며 일리야가 고갯짓을 했다. 타라는 제스쳐에 블레어가 올라탄다. 어색하지만 달리 할 말은 없었다. 가방을 멘 교복 차림의 꼬맹이가 차에 올라탔고, 가방을 품에 안은 채 저를 말똥말똥 바라본다. 별이라도 박힌 것 같이 반짝이는 눈이 새삼 낯설다. 말 하나 함부로 하면 당장이라도 큰일 날 것 같은 얼굴이라니.
" … 뭐, 별 건 아니고. "
" 그럼요? "
" 밥이나 먹자고. "
다행히 꼬맹이는, 이 시간에요? 라거나 메뉴를 묻는 등의 곤란한 질문은 하지 않았다.
그냥 나 좋아하는 거 먹어도 되지? 그 말에 블레어는 고개를 끄덕였다. 뭐, 아저씨 취향 알아놓아서 나쁠 건 없으니까요. 차에 시동을 걸려는데, 아직 매지 않은 안전벨트가 신경쓰여 일리야는 흘긋 블레어를 쳐다보았다. 자신의 시선에도 무언가 이상함을 느끼지 못하는지, 고개만 갸웃하는 블레어를 보며 그는 한숨 지었다. 벨트매야 출발하지. 사고 나면 큰일 나. 아-. 그제야 작게 터뜨린 탄식에 일리야는 고개를 살며시 저었다. 얘, 진짜 정신을 어디 놓고 사는거야.
" 근데 어디있어요? "
" 거기 뒤에, 잘 보면... 됐다. "
내가 해주고 말지. 손을 뻗어 안전벨트를 매준 일리야가 엑셀을 밟았다. 아, 뭔가 기분 이상하다. 정말로. 악셀을 힘 주어 밟으며 일리야는 헛기침을 했다. 모르겠다. 방금 기분이 엄청 이상한 것 밖에 생각이 안 난다. 이게 다 저 꼬맹이 때문이었다. 안전벨트 하나 제대로 못 찾는 어린애탓이라고 일리야는 혼자 중얼거렸다.
" ... 우리 뭐 먹으러 가요, 근데? "
" 우리, 음. 선지해장국. "
이런 메뉴를 보면 질겁하지 않을까. 저도 그닥 좋아하지 않으면서 내뱉은 메뉴였다. 앞에서 그릇을 싹싹 비울 자신은 없지만 결혼 하나 엎으려면 무슨 짓을 못하리오. 전에 억지로 직장 상사에게 끌려갔던 집을 더듬더듬 찾아가며 일리야는 혼자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아저씨 취향 싫지, 그렇겠지! 어딘가 음흉한 흉계를 아는지 모르는지, 블레어는 일리야의 말에도 여전히 태연했다. 와, 맛있겠다.
" 응, 맛있지. "
" 그쵸? "
.... 뭐?
예상과 다르게 흘러가는 전개에 당황한 것은 아무래도 일리야 혼자인 것 같았다. 회색 교복을 몸에 두른 꼬맹이는 뭐가 그렇게 신나는지 콧노래만 흥얼거리고 있었다. 가벼운 허밍. 잠시 그 소리에 정신을 팔던 일리야가 물었다. 그런 거 애들은 싫어하지 않아? 싫어하는 줄 알았는데. 사실 싫어하기를 바라며 물어본 질문이었지만, 일리야는 굳이 그 말은 하지 않았다. 시선은 여전히 앞에 두고, 질문만 건네니 블레어가 저를 돌아보았다. 반짝반짝. 저 놈의 눈은 반짝임을 그칠 줄 모르는 것 같다.
" 나쁘지 않아요. 뭐. "
" 그, 그렇구나. "
" 아저씨 좋아하는 것도 미리미리 알아놔야, 나중에 밥 차릴 때 편하죠. "
으왁. 일리야는 입에 문 것도 없는데 무언가를 토해낼 것 같은 착각에 사로잡혔다. 만약 물을 마시고 있었다면 백이면 백 뿜었을거다. 다시 한 번 헛기침으로 말을 대신한 일리야가 핸들을 꺾었다. 밥을 왜 차려. 니가 왜. 당장이라도 닥달하고 싶었지만 녀석이 할 대답이 뻔해서 그는 묻지 않기로 했다. 물어봤자 무덤파는 꼴이지, 이게.
" 이러면서 알아가는 거니까? "
저렇게 해맑게 말할 수 있는 이유는 대체 뭐지. 한참 고민했지만 꼬맹이의 머릿속을 가늠할 수 없어 일리야는 고개를 저었다. 주차장에 차를 대고, 내려 식당으로 걸어들어가는데도 참으로 현실감이 없었더랬다. 옆에서 걷고있는 교복입은 꼬맹이라니. 얘가 몇달뒤에 나랑 결혼하는 애라니. 이게 말이나 되냐고. 자리를 잡고, 물이 놓일 때까지 별 대화는 오가지 않았다. 궁금함을 이기지 못한 일리야가 블레어에게 질문을 던지기 전까지.
" 너는, 근데 정말. 집안 약속이고 뭐고. 안 엎고 싶어? "
" 말했잖아요, 나는 아저씨 마음에 든다고. "
" 그거 말고. "
" 원래는 엎을까, 했는데. 마음에 들어서? 이 정도면 된거죠? "
이모, 여기 선지 해장국 둘이요! 싹싹하게 주문을 넣는 블레어의 얼굴을 보며 일리야는 그제서야 깨달았다. 아, 어쩌면.
*
3편이 되어서야 생각난 기본설정 (...)
먼저 글 속은 동성결혼이 합법화 된 시점입니다. 다만 사회적으로 아직 시선이 좋지는 않은 편...?
막 흔한 일도 아니고, 아직은 낯선일로 취급되는 시기!
기본 설정이 이게 뭐지, 싶을 땐 한 번씩 물어보셔도 되요.. 사실 저도 가끔 기억 안나요...
나의 사랑 나의 신부는 매주 토요일에 옵니다.
사실 손이 느려서 더 빨리 완성을 못하겠어요 허허...
다음주에 뵐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