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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훈] 늑대와 함께 춤을 00 | 인스티즈 


 


 

 


 

 

늑대와 함께 춤을 

W. 망고빙수 

 

 

 


 

 






※ 스압주의 ※






정령이 어린 늑대에게 말했다. 절대로 인간 세상에 내려가서는 안 된다. 인간에게 눈길을 주어서도 안 된다. 인간에게 마음을 주어서는, 더더욱 안 된다. 호기심에 유혹 당해서도 안 되느니라. 오직 이 산만이 너의 집이고, 고향이다. 이 숲의 모든 것을 누려도 되지만 마을로 내려가지만 말거라. 그것이 너 자신을 지키는 법이다. 어린 늑대는 고개를 끄덕였다. 정령은 안심 할 수 없었지만 어린 늑대의 동그란 눈망울만 보고 불안감을 씹어넘겼다. 정령은 어린 늑대를 지키고 싶었다. 그가 다치지않고, 상처입지 않고 오래 살 수 있도록.






늑대와 함께 춤을


00.
아씨와 늑대









"애기씨! 애기씨 어딜 자꾸만 가시어요!"

"공기가 좋구나, 유모. 이 쪽으로 가면 풍경이 더 좋을 것 같아!"



유모는 속이 탔다. 제 말은 조금도 듣지 않고 제멋대로 발걸음을 놀리는 애기씨 때문이었다. 아이의 이름은 여주였다. 나라의 권세를 쥐고 흔든다는 영의정 대감의 귀하디 귀한 막내딸이었다. 지긋한 나이에 가진 딸이라 아비는 생채기 하나도 용납하지 못했다. 애기씨 관리를 못했다고 죽은 노비가 몇이나 될 정도로 딸을 아꼈다. 애기씨는 제 마음을 모르는지 눈알을 쉴새없이 굴리며 뛰어갔다. 유모는 제 목이 달아날까 두려웠고, 오매불망 키워와 제 자식 같은 애기씨가 다칠까 겁이 났다. 애기씨, 애기씨! 그러나 제 부름이 들리지도 않는지 신이 난 애기씨는 자꾸만 깊은 숲속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그 때였다. 으악, 하는 고성이 들렸다. 유모는 허겁지겁 숲을 헤치고 넘어진 애기씨 앞에 무릎을 꿇었다. 발목을 다친 것이었다. 유모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괜찮아, 유모. 발목이 삔 것 뿐이니라…응?"

"그러니 제가 뭐랬어요! 함부로 산 같은 곳에 오시면 안 되는 귀한 몸이라고 제가 말씀 드렸지 않습니까. 
대감마님이 이를 아시면 또 경을 치실겝니다!"

"미안해, 유모-. 내가 아버지께는 잘 말씀 드릴것이야. 응? 미안하다."



마음 약한 애기씨 눈시울이 또 붉어졌다. 유모는 섬칫해 어깨를 조금 떨었다. 애기씨 눈에 눈물 나게 하는 날엔 네 목에 피국물이 흐를 것이라 엄포를 놓은 대감의 도깨비같은 얼굴이 떠올랐다. 발목을 잡고 돌리자 인상을 잔뜩 찡그렸다. 삐어도 단단히 삐었다. 유모는 한숨을 작게 내쉬었다. 이를 또 뭐라고 말씀을 드려야 할까. 부디 퇴청한 대감마님의 기분이 좋아야할텐데. 



"애기씨, 의원에게 보여야 할 정돕니까?



애기씨, 애기씨! 아무리 불러도 아이는 대답이 없었다. 아이의 눈이 향한 곳을 따라 시선을 옮기니 웬 새끼짐승이 있었다. 강아지인가, 했지만 그것보다 조금 더 날카롭다. 아직 덩치가 작지만 저것은 필시 늑대의 새끼였다. 아이구머니나! 유모가 뒤로 넘어지며 엉덩방아를 찧었다. 애기씨, 어, 얼른! 어째서인지 애기씨는 꿈쩍도 하지않았다. 



"아가야, 쭈쭈쭈, 이리오련."



아가야, 하는 것은 제 아비의 입버릇이었다. 아이는 아비가 그랬던 것처럼 상냥한 미소를 지으며 쭈쭈쭈, 하고 늑대를 불렀다. 새끼늑대는 공격도 하지않고 가만히 아이를 보고 있다가, 슬금슬금 다가왔다. 유모는 숨을 죽였다. 머릿속이 하얗게 질려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아가야, 너는 어디서 온 거니?"



늑대는 가만히 아이의 손길을 받고 있었다. 해에 반사된 회색털에 윤기가 돌았다. 눈동자가 유난히 깨끗하고 또렷했다. 그 눈에 애기씨의 어릿한 얼굴이 가득 담겼다. 애기씨는 짐승이 늑대인 것도 모르고 웃으며 아가야, 하고 불렀다. 



"아가야. 어머니는 어디로 가셨니? 
어찌 숲을 혼자 헤매고 있어. 응?"



늑대가 사람의 물음에 대답할 리는 없었다. 그러나 어째서인지 늑대가 대답을 하듯 눈을 가만히 맞춰왔다. 애기씨는 싱긋 웃었다. 아가야, 꼭 네가 내게 말을 하는 것 같구나 했다. 늑대는 고개를 가만히 수그렸다. 더 쓰다듬어 달라는 것인가, 싶어 손을 들었더니 늑대가 으르렁거렸다. 유모가 놀란 나머지 애기씨를 품 안 가득 끌어안았다. 

어찌된 영문인지 늑대는 혀를 내어 아이의 발목을 핥았다. 붉게 부어올랐던 발목이 언제 그랬냐는듯 하얗고 고운 것으로 돌아왔다. 요술이라도 부린 것일까. 깜짝 놀란 아이가 무어라 말하기도 전에 늑대는 수풀사이로 몸을 숨겼다.






***








어느 날 나무가 정령에게 물었다. 어찌 늑대에게 사람 근처도 가지 말라 하십니까? 그의 무리들이 사람들에게 죽임을 당한 까닭입니까? 정령은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말했다. 
꿈을 꾸었느니라. 숲이 불타고 있었고, 나의 어린 늑대는 그 화염 속을 걸어가고 있었다. 모든 것을 버린 듯 처연한 얼굴로. 나는 그것이 늑대의 미래가 될까 두려웠다. 
그 때 거센 바람이 불었다. 나뭇잎이, 땅을 짚고 선 풀들이, 꽃들이 바람을 따라 고개를 갸웃거렸다. 정령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던 까닭이다. 








***





여주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잠이 오지 않아 잠깐 마당으로 마실을 나왔다가, 뒷산 쪽에서 들리는 기척때문이었다. 걔 누가 있는 것이야? 물었으나 대답이 돌아올리 만무했다. 그런데 까만 밤 속, 푸른 빛의 눈동자가 보였다. 익숙했다. 여주는 설마, 하며 조금 더 다가섰다. 달빛 아래 모습을 드러낸 정체는 다름아닌 그 때 그 어린 늑대였다. 애기씨는 신이 나서 방방 뛰었다. 너로구나, 아가야. 늑대는 말을 알아듣기라도 한 듯 고개를 숙였다.



"아가야, 어찌 여기까지 오게 되었…어머나, 아가야!"



어린 목소리가 달달 떨렸다. 늑대의 앞쪽 발에서 피가 줄줄 흐르고 있었다. 애기씨 눈시울이 또 금세 붉어졌다. 이를 어째, 유, 유모…. 아이는 바들바들 떨었다. 창문에 고개를 대고 불편하게 잠이 든 유모를 깨울 수는 없는 노릇이고, 그렇다고 제 부모를 깨울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아이는 어렸지만 알 수 있었다. 사람들이 늑대의 존재를 안다면 죽일 것이라는 걸. 

아가야, 괜찮니? 아가야. 아이는 어찌할 바를 몰라 허둥지둥댔다. 늑대는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답답한 마음에 곧 아이의 볼 위로 굵은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이를 어쩌면 좋아, 의원에게 보일 수도 없는 노릇인데…. 아이는 아랫입술을 물어뜯으며 발을 동동 굴리다, 이내 무언가 생각난듯 제 처소로 뛰어들어갔다. 그리고 곧 나무상자 하나를 꺼내 왔다. 약상자였다. 몸이 약한 딸을 위해 청국이나 왜에서 건너온 효험 좋은 약들을 담아 상비해둔 것이었다. 아이는 과감하게 제 속치마 아래를 북- 찢었다. 그리고 유모가 상처가 났을 때 발라주었던 약통 하나를 꺼냈다. 검지로 그 약을 듬뿍 떠 다리 위에 살살 펴발랐다. 얼마나 아팠던 것인지 늑대의 다리가 덜덜 떨렸다. 아이는 연신 히끅대며 상처 위에 약을 발랐다. 



"많이 아팠지? 이제 괜찮을 것이다. 
헌데 누가 네 다리를 이리 했어. 응? 얼마나 아팠니?"



아이는 천조각을 어설프게 칭칭 감았다. 그리고 나름 있는 힘껏 매듭을 지었다. 



"아가야, 빨리 나으렴. 호-."



제 어미가 해주었던 것처럼, 호- 하고 입김을 불었다. 늑대는 가만히 아이의 눈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아이는 눈물을 닦으며 씩 웃었다. 아가야, 너도 내가 보고싶었던 모양이구나? 나 실은, 그 날 이후로 한 시도 너를 생각하지 않은 적이 없었단다. 여주는 고백을 하듯 수줍게 말했다. 



"허니 이제 아프지 말거라.
네가 다치면, 내가 많이 속상할 것 같아."



호오, 얼른 나아라. 아이는 입을 동그랗게 말고 연신 상처 위에 입김을 불어주었다. 늑대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그런 여주를 가만히 보고 있을 뿐이었다. 







***







네게서 사람 냄새가 나는구나. 정령은 귀신 같이 알아챘다. 늑대는 말 없이 지친 몸을 동굴 바닥에 뉘였다. 마을로 내려가지 말라는 명을 어긴 것이지, 어린 늑대야. 여전히 늑대는 대답이 없었다. 잔뜩 타들어가는 정령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천천히 눈을 감았다. 정령은 무어라 더 탓하고 싶었지만 할 수 없었다. 애써 화난 마음을 가라앉히며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늑대야, 네 어찌 명을 어기고 

마을로 내려간게야. 인간에게 현혹되지 말라하였거늘, 어찌 명을 어겼어! 게다가 그 상처는 인간에게 공격을 받은 것이지 않느냐! 곧 늑대가 눈을 떴다. 몽롱한 듯 피곤한 기색이 역력한 눈으로 늑대는 말했다. 

그 아이가 궁금했어요. 잘 지내고 있는지. 혹 또 다치지는 않았는지, 누가 다치게 하진 않았는지…. 
정령은 화가 나서 더욱 따지고 들었다. 모름지기 정령의 말은 모두 이유가 있거늘, 명을 어긴 너를 용서 할 수 없다. 너는 성년이 될 때까지 숲에서 움직일 수 없을 것이다, 알아듣겠느냐? 늑대는 부정도 수긍도 하지 않은 채 차분히 시선을 떨어뜨렸다. 











 



 

 

[세훈] 늑대와 함께 춤을 00 | 인스티즈 


 


 





속세의 시간은 물처럼 빠르게 흘렀다. 애기씨는 어느새 어엿한 아씨가 되었다. 미색이 빼어나 그녀가 밖을 나올 때면 고을의 온 청년들이 나와 구경을 할 정도였다. 하얗고 고운 피부는 눈과 같았고, 붉은 입술은 꽃잎을 머금은 듯 했다. 검고 윤기가 흐르는 머리칼을 단정하게 땋아 허리 위로 늘어뜨린 그녀는 심성 또한 고왔다. 세도란 세도는 다 끌어모아 권세를 유지하는 제 아비와는 정 반대라, 사람들이 입을 모아 그를 칭찬했다. 

영의정댁 막내딸, 하면 모르는 이가 없었다. 어느 집안이고 그를 며느리로 삼고 싶어 했다. 그녀가 비단 높은 집안의 딸이라서만은 아니었다. 나릿님마저 그녀를 알고 물을 정도였으니까. 그러던 어느 날, 과년한 딸을 그저 집안에 둘 수 없어 아비는 어쩔 수 없이 혼처를 정했다. 저희 댁만큼 아니어도 제법 이름이 높다는 병판 댁 둘째아들이었다. 아씨는 가고 싶지 않았다. 눈물로 호소했으나 아비는 들어주지 않았다. 아니, 들어줄 수 없었다. 

그녀가 시집을 가던 날. 비가 왔다. 여우비였다. 마른 하늘에 내리는 비가 꼭 제 마음 같아, 여주는 자꾸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억지로 눌러참으며 가마에 오르는데, 저 멀리서 익숙한 형체가 보였다. 그 때 그, 늑대였다. 

듬직하게 자란 늑대는 분명 그 때 그 어린늑대였다. 그저 어릴적 흐릿한 기억이라 생각했던 여주는 화들짝 놀랐다. 담록색의 눈동자. 변했지만 그녀는 알아볼 수 있었다. 아씨, 아씨 하는 부름에도 개의치 않고 그녀는 신이 벗겨지는 것도 모르고 달려갔다. 




"살아있었구나. 꿈인줄로만 알았는데, 아니었어."




여주는 어릴적과 같은 굵은 눈물을 뚝뚝 떨어뜨렸다. 품위도 모르고 그녀는 바닥에 주저앉아 늑대의 목을 끌어안았다. 잘 지냈느냐? 무탈한게지? 아, 어디보자. 상처는 다 나은 것이니? 그녀는 어릴적 그 상처를 기억했다. 그리고 그 다리를 따뜻하게 매만졌다. 상처는 씻은듯이 나아 있었다. 여주는 울며 미소지었다. 다행이다, 다행이야. 그 날 너를 그렇게 보내고 얼마나 걱정을 했는지 모른다. 다 나아서 정말 다행이다. 그녀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이제 영영 너는 못 보겠구나. 난 오늘 마을을 떠나거든. 
오늘 시집을 간단다, 아가야."




이제 아가는 아닌가…. 여주는 씁쓸하게 웃으며 이만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만 나는 가봐야겠다. 더 늦으면 뭐라 하실까 두렵구나. 그 때였다. 늑대는 그녀를 낚아채듯 등에 업었다. 그녀가 제 목을 안는 것을 느끼자마자 무작정 달렸다. 무어라 할 틈도 없이 아씨와 늑대는 멀어졌다. 그 광경을 지켜본 사람들은 무언가에 홀린 듯 말리지 못했다. 

얼마나 흘렀을까. 아씨는 온전한 모습으로 다시 돌아왔다. 사람들은 지레 겁을 먹고 감히 물어보지도 못했다. 그러나 여주의 표정이 밝은 것을 보아, 해코지는 당한 것은 아니겠지, 하고 짐작할 뿐이었다. 그리고 아씨는 가마에 올랐다. 몇 번이나 산을 돌아보는 그 눈빛이 처연했다. 





***






인간이 되고싶어.
늑대의 중얼거림을 들은 나무가 화들짝 놀랐다. 네 어찌 그런 말을 입에 담느냐, 부모형제를 잃은 너를 이 숲에 들여준 정령님의 뜻을 거스를 셈이냐? 불경하다, 생각도 하지 말거라. 나무의 호통에도 늑대는 개의치 않았다. 그는 인간이 되고 싶었다. 아씨를 지켜주고 싶었다. 그녀의 손을 잡고 싶었다. 그녀의 언어로 대화를 하고 싶었다. 부질없는 생각임을 알고있었다. 하지만 그녀가 시집가던 날 흘렸던 눈물이 잊혀지지 않았다. 사람이 되고 싶다, 늑대는 물처럼 밀려드는 생각들을 밀어낼 수 없었다.





***





병판댁 차남이 망나니라지, 글쎄. 우리 아씨 불쌍해서 어쩌나. 대감이 다칠까 두려워 밖에 내놓지도 못했던 따님인데. 어쩌겠는가, 그 마저도 아씨의 운명인 것을. 가여워도 자네가 대신 살아줄 수는 없지 않는가. 마을의 아낙 셋만 모여도 죄다 아씨 얘기로 입방아를 놀렸다.

그녀에게서 눈물 냄새가 났다. 매일이 눈물이었다. 늑대는 해줄 것이 없었다. 고작해봐야 정령의 당부를 어기고 그녀를 보러 몇십리를 달려오는 것 밖에는. 어쩔 도리도 모르고 눈물 짓는 그녀의 등만 바라보다, 옆을 지켜주는 것 밖에는 할 수 없었다. 



"늑대야."




눈물이 들킬까 두려워 여주는 고개를 돌렸다. 오늘따라 유독 달빛이 휘영청했다. 늑대의 담록색 눈이 슬픔에 젖었다. 우는 그녀의 가녀린 어깨를 안아주고 싶었지만 할 수 없었다. 저는 늑대에 불과했기에. 여주는 싱긋 웃으며 늑대의 머리를 쓸어주었다.



"오늘 별고는 없었니? 나도, 잘 지냈다. 
오늘은…그동안 쌓아만 두었던 서책을 몇 권 내어 읽었다. 
시간 가는 줄도 모르게 말이야."



거짓말이다. 한참동안 종잇장이 넘어가질 않는 것을 모두 지켜보았다. 늑대는 자리를 잡고 그녀의 곁에 앉았다. 여주는 촉촉히 젖은 눈가를 아프게 닦았다. 



"내 유일한 친우는 너다. 
모자란 내 곁을 지켜주어 고맙구나. 항상, 네가 있어 위로가 된다."



늑대는 분했다. 아무것도 해준 것이 없는데, 그녀는 오히려 제 마음을 안아주고 있었다. 화가 났다. 자신이 아무것도 할 수 없음에.





***






무료한 삶이 이어지던 어느 날, 그녀의 남편이 안방문을 거칠게 열어젖혔다. 수를 놓던 그녀가 화들짝 놀라 바늘에 손가락을 찔려 피가 났다. 



"당신 예 있었구려?"

"…서방님."

"당신에게 부탁이 있소."



어찌 갑자기 들이닥쳐 이러시느냐, 묻지도 못하고 여주는 눈만 꿈뻑거렸다. 다짜고짜 무릎을 꿇은 그에게서 지독한 술냄새와 사향냄새가 진동을 했다. 여주는 덜컥 겁이 나 무어라 답도 하지 못했다. 



"이 집에서 나가주시오."

"예?"

"나는 이미 평생을 약조한 처자가 있소. 당신은 이제 그만 나가주시구려."

"서, 서방님…이게 무슨 말씀이세요. 제가 무,뭘 잘못했나요?"

"그대의 잘못이라면, 나에게 시집을 온 것이오. 미안하게 되었지만, 나가주시오. 
어머니께는 내 잘 일러두리다. 나를 견디다 못해 도망을 갔다고 말이오."

"다짜고짜 찾아와서 하시는 말씀이, 고작 그것입니까?
그 기생년때문에 이러시는 것이지요? 저를 내치고, 그 년을 여기에 앉히려-"



그 때였다. 여주의 고개가 돌아갔다. 얻어맞은 뺨이 화끈거렸다. 여주의 눈이 붉어졌다. 서방님…. 바늘이 파고들어 피가 줄줄 흐르는 것도 모르고 여주는 주먹을 꽉 쥐었다. 이미 인사불성이 될만큼 술을 먹어 비틀거리는 남편의 꼴이 보였다. 화가 났다.



"어찌 서방님께서 제게 이러십니까! 
이러고도 서방님이 무사하실거라 생각하세요?"

"허면, 하늘 같은 서방님을 그 잘난 아비에게 이르기라도 하실 참이오?"

"그렇게 한다면요! 한다면요! 저는 결코 나갈 수 없습니다. 
나가려면, 서방님이 나가세요. 이 망나니 같은…!"




여주는 차마 뒷말은 잇지 못하고 삼켰다. 그러나 사내는 이미 그 말을 듣기라도 한 것처럼 눈을 부라렸다. 감히, 네 년이 입을 함부로 놀려? 네 년 따위가 감히? 여주는 덜덜 떨리는 손을 뒤로 감췄다. 



"아이고, 어머니 아버지 나와보십시오- 이 죽일 년이 나를 죽이려드네 그려."

"서방님 정말…."



죽고 싶었다. 죽음으로 이 구질구질한 생生을 끝낼 수만 있으면 좋았다. 여주는 피가 베어나올 듯 입술을 꾹 깨물고 감정을 참았다. 사내는 어느새 마당으로 나가 대자로 드러누워버렸다. 연신 아버지 어머니를 부르며 난동이었다. 



"이게 웬 소란이냐?"

"어머님…소자 저 천박한 여인과는 살 수가 없겠습니다-"

"이게 무슨 소리야. 새아가, 너 말해보거라. 이게 어찌 된 것이야?"

"그것이…"

"어머님, 저 년이 글쎄, 제 아비에게 일러 저를 죽이겠다 합디다. 예."

"무, 뭐? 너 정말이냐? 감히 아녀자가 어찌 서방님에게 그런 불경한 말을 입에 담는단 말이냐. 
네가 아비 권세를 믿고 하늘 높은 줄 모르는 구나."



병판내외는 그렇지 않아도 저희 가문을 누르고 무시하는 영의정 댁이 불만이었다. 그 모든 화살이 여주에게로 돌아갔다. 가뜩이나 밖으로만 도는 제 아들이었다. 여주가 들어온 뒤로 그 역마가 더욱 심해진 것 같아 눈엣가시였다. 졸지에 여주는 서방 간수도 못하는 방자한 여인이 되어버렸다. 



"네 년이 감히…아니, 저게 뭬야?"



불호령을 내리던 시어미가 손가락질을 멈추고 시선을 돌렸다. 웬 늑대 한 마리가 여주의 뒤를 지키고 서 있는 것이 아닌가. 눈을 씻고 보아도 마찬가지였다. 여주는 의아해 고개를 돌렸다. 늑대였다. 네가 어찌…. 여주가 놀라 물었다. 



"웬 집채만한 늑대가…이게 무슨…게 누구 없느냐? 
얼른 무장을 하고 나와 이 휴, 흉측스런 괴물을 없애거라!"

"어, 어머니. 아니어요. 괴물이 아닙니다. "

"뭐? 이게 괴물이 아니면 무엇이더냐."

"그, 그것이…어, 얼른 도망가거라. 응?"



장정들이 하나 둘씩 무장을 하고 나타났다. 여주는 늑대의 앞을 가로막았다. 이러시면 안 됩니다. 괴물이 아닙니다. 제발 칼을 거두세요…. 시어미를 비롯한 이들은 영 이해가 안 된다는 듯 그녀를 보았다. 



"얼른 저, 저것을 없애라!"



시어미는 여주를 바닥으로 내팽겨쳤다. 그 광경을 가만히 보고 있던 늑대가 아씨가 원하시는 대로 하겠습니다, 했다. 여주는 제 머릿속에 울려퍼지는 목소리에 당황했다. 아가야, 정녕 네 목소리니? 늑대는 대답하지 않았으나 여주는 알 수 있었다. 분명 늑대의 것이었다. 여주는 그를 에워싼 날카로운 칼날에 초조했다. 자비조차 없는 그들의 잔인함에 울컥한 여주가 말했다. 이 집안을 모조리 불태워다오. 

사람들까지 모두. 잔인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야만적이라는 것도. 하지만 이제껏 겪은 수모를 생각하면 한참 모자란 것이었다. 늑대는 곧 저를 에워싼 놈들을 헤치고 사라졌다. 곧, 사랑방 쪽에서 불이야-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머지않아 늑대가 그녀의 앞에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설마…."




홧김에 던진 말이었다. 정말 들어줄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으니까. 늑대가 하면 얼마나 하겠나 하는 어리석음이 수많은 사람을 죽게 만들었다. 여주는 덜덜 떨리는 손을 들어 늑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여주는 옥구슬 같은 눈물을 뚝뚝 떨어뜨렸다. 늑대는 의아했다. 아씨가 원하는대로 해주었는데, 왜 그녀는 웃지 않고 우는 것일까. 여주는 늑대가 정말 제 부탁을 들어줄 것이라 생각하지 못했더랬다. 여주는 두려움에 뒤를 돌아볼 생각도 하지 않았다. 



"미안하구나. 내가, 내가…상관도 없는 너까지 끌어들였다. 
허나 명심하거라, 이건 네 탓이 아니다. 모두…나의 탓이야. "



늑대는 고개를 낮추었다. 제 등에 업히라는 뜻이었다. 하지만 여주는 멍하니 바라만 보았다. 그녀의 등 뒤로 저택이 삽시간에 불길에 휩싸였다. 여기 저기서 죽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무리 물을 끼얹어도 불길은 사그라들 낌새조차 보이지 않았다. 늑대는 초조해져 여주에게 고개를 내밀었다. 



"그래, 가자구나."



늑대는 안도하며 그녀를 업었다. 마치 그녀가 타지 않는 듯 깃털처럼 가벼웠다. 주체할 수 없는 기쁨때문일까. 그는 평생 아씨와 함께 하고 싶었다. 정령도 그녀를 직접 만난다면 반대하지 않을 것이다. 인간이 모두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기대에 부푼 늑대는 제 등이 허전한 것도 모르고 달렸다. 태어나 가장 빠르게 발을 놀렸다. 문득 그가 알아차렸을 때는 멀어지는 늑대를 향해 손을 흔들어주는 여주가 보였다. 곧, 화염이 그녀를 집어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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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올리는 거라 떨리네요 후
판타지물은 처음이라 부족한 점이 많습니다ㅠㅠ
부족하지만 응원해주세요!
다음편부터 현대로 시간이 이동됩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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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회원171.17
헐대박......쩔어요ㅠㅠㅠㅠㅠ작가님 완전 재밋어요 내용도짱인데 분량도짱이예요ㅠㅠ 다음편보고싶어요
8년 전
독자1
잘보고가용!!!!!
8년 전
비회원도 댓글을 달 수 있어요 (You can write a comment)
작품을 읽은 후 댓글을 꼭 남겨주세요,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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