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lyakov Ilya x Blair Williams
나의 사랑 나의 신부
06. 그냥 가기 아쉬우니까 급조한 추석특집
1. 새아가?
- 새아가 추석에 놀러오는 게 어떠니?
새아가? 핸드폰을 붙잡고 있던 블레어는 고개를 갸웃했다. 아가라는 호칭도 새삼 낯선데 새 아가는 뭐지. 아기에도 헌 것과 새 것이 있는 건가. 한참을 빤히 액정만 내려다보던 블레어에게 다니엘이 다가왔다. 게다가 모르는 번호… 수상한데. 뭐하는데 그렇게 또 핸드폰을 보고 있어.
" 이거 봐. 나 더러 새아가래. "
" 아, 그래? "
" 아 그래는 무슨 그래야. 난 이 번호 모르는데 나를 이렇게- "
새아가는 그..... 그 아저씨네 부모님이 너를 부르는 말이야. 딱히 처지 다를 것 없는 외국인인지라, 시부모님 단어를 잃어버린 다니엘이 더듬더듬 설명을 내뱉었다. 네가 그 아저씨랑 결혼하면, 아마 들을 말이라고. 원래는 여자한테 쓰는 말이긴 한데 그 아저씨가 너희 부모님한테 새아가 듣는 거보다야 훨씬 그림이 낫긴하지. 아하.... 고개를 주억거리는 블레어를 보며 다니엘은 참 바보같다고 생각했다. 애가 얼이 빠진 거 마냥, 저게 다 뭐지.
" 그럼 이거 어머님이야? "
" 그렇겠지. "
" 와, 놀러간다고 해야지. "
단순하긴 엄청 단순하구나. 이번 추석에 찾아 뵐게요! 따위의 상큼한 멘트를 적어 보내고 있는 블레어를 보며 다니엘은 제 핸드폰으로 고개를 숙였다. 어휴, 앓느니 죽지.
2. 메리 추석!
새삼 지적하기 우스운 일이지만, 일리야의 집은 외국인 가정이었으므로 추석이라도 딱히 다를 것이 없었다. 추석은 어딘가 공짜로 주어진 것 같은 휴일일뿐. 간간히 송편 따위를 사다먹는 것 외에는 특별한 것이 없었는데 오늘은 영 달랐다. 아침부터 분주한 어머니와 깨끗한 집안, 까치집을 하고 신문을 읽고 계셔야 할 것 같은 아버지는 정갈하게 앉아계신 것 까지 어색하기 짝이 없었다. 평소에 살던 제 집이 아니라 무슨 모델하우스라도 보고 있는 기분이라고 하면 맞을까. 일리야는 그 낯선 풍경에 거실 한 복판에서 그것을 빤히 구경하고 있었다.
" ... 엄마. "
" 어? "
" 오늘 누구 와요? "
그래. 그러니까 너도 좀 씻는 게 좋겠구나. 옷도 잘 입고. 반 억지로 떠밀려 들어간 욕실에서 일리야는 고민했다. 대체 집에 누가 오길래. 친척들이야 늘 이런 꾀죄죄한 모습에서도 많이 봤는데, 새삼 씻으라고 할리도 없고... 곰곰히 생각하던 일리야의 입이 쩍 벌어졌다. 아 설마. 설마!
" 안녕하세요! "
아침부터 저 꼬맹이가 들이 닥칠 줄은 몰랐지. 머리를 짚은 일리야가 거실에서 몰래 한숨을 내쉬었다. 어줍잖게 웬 추석 코스프레인가 했더니 아예 며느리까지 세트로 들여온 모양이셨다. 그 놈의 결혼 하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새아가란 호칭을 너무 자연스럽게 부르는 것도 우스웠지만 그걸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게 더 어이가 없었다. 넉살도 좋아. 기어코 호화판 점심상을 차린 어머니와 흐뭇한 아버지, 그리고 생글생글 거리는 블레어까지. 정신없기 좋은 조합의 완벽한 삼위일체. 입에 집어넣는 한 숟가락이 목구멍에 턱턱 걸리는 것 같은 건 착각이었을까.
" 아저씨. 입맛 없어요? "
너 때문이라고는 못하고, 고개를 저으며 묵묵하게 식사를 시작한 일리야가 건너편을 흘긋흘긋 훔쳐보았다. 어머니와 사이가 꽤 좋아보였다. 몇번이나 만나서 저러는 지 모르겠지만, 나름 어머니가 좋아하시니까. 남은 말들은 목구멍 너머로 삼키고 일리야는 식사에 집중했다. 음식은 여느때보다 맛있었다.
식사가 끝나자, 정말 며느리라도 된 양 오손도손 부엌에서 설거지를 하는 두 사람을 바라보던 일리야가 헛웃음을 터뜨렸다. 이게 뭐야. 결혼 한 적도 없는데, 보내는 명절 꼬라지가 딱 유부남과 다를 바가 없다. 옆에서 신문을 보시던 아버지 눈이 웃음소리 덕에 일리야에게 꽂혔다.
" 넌 쟤가 싫으냐? "
" ... 어리잖아요, 뭐 딴 건 몰라도. "
" 싹싹하고 귀여운데, 왜. "
... 아무래도, 블레어는 딱 제 남편(?) 될 사람 마음만 빼면 시댁 식구들 맘에 쏙 든 것이 분명했다.
3. 그래서, 싫어?
그래서 싫냐고 물어보면, 또 그것도 아니지.
방으로 혼자 들어온 일리야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싫다고 하라고 하면 그것도 아닌 것 같고. 이래저래 복잡했다. 언제부터 감정 가지고 이래 고민을 했었나 거슬러 올라가보면, 제법 오래전 일이라 소름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아무래도 이상하긴 하다.
" 아저씨, 과일 먹을래요? "
" ... 어? "
" 어머님이 갖다 주라고 하셔서- "
방에 들어오는 게 눈치가 보이는지 뭉그러지는 말 끝에 일리야가 조금 비켜앉았다. 들어와. 들어와서 너도 먹어. 그 말에 또 기분이 좋은지 얼굴이 확 밝아져서 들어오는 게 애는 애다, 싶어 그는 작게 웃었다. 표정 하나하나에 참 티가 많이 났다. 이래저래.
" 넌 이 집에 시집살이 하러 왔냐. 손님이면서 뭐 일을 하고 있어. "
" 어머니 혼자 일하시면 힘들잖아요. "
재미도 없고. 다른 건 몰라도 참 마음 쓰는 건 곱단 말이야. 정갈하게 깎인 사과를 베어물며 일리야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니가 진짜 아들인 나보다도 우리 엄마한테 잘하는 것 같다. 그 말에 블레어가 뿌듯하게 웃으며 대꾸했다. 얼굴에서는 늘 그래왔듯 반짝반짝, 빛이 나는 것 같았다.
" 당연하죠, 아저씨 어머님인데! 시... 시어머님? 이니까! "
쿨럭. 시어머님 호칭에 놀라 기침부터 냅다 하자 블레어가 등을 토닥였다. 왜그러냐고 걱정을 하는 눈에 너때문이라고 대답을 할 수는 없어, 고개를 그저 숙이자 시선이 저를 따라온다. 괜찮아요?
" 어... 그냥 그 호칭에 놀라서그래. "
" 왜요. 틀렸어요? "
" 아니, 그런건 아니고.... 좀. "
왜요, 아직도 나랑 결혼하기 싫어요? 새침떼기 마냥 블레어가 싱글벙글 웃고 있었다.
*
여러분 좋은 한가위 보내셨나요?
과제하다 말고 추석이 아쉬워 후다닥 쪄낸 저퀄 특별편 던지고 갑니다 :)
남은 추석 행복하게 보내시고 다음에 또 만나요!
일레어 참 잘 어울릴 것 같지 않나요... 신혼부부... 크으... 블새댁 일서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