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1 기억의 조각
알람 소리에 깜짝 놀라 깨서 허겁지겁 준비를 하고 강의실에 도착하니 강의 시간 까지 채 오분도 남아 있지 않았다. 숙취에 아파오는 머리를 부여잡으며 책상에 축 늘어졌다. 여느 때처럼 옆에 앉은 박찬열이 물어 온다.
“너 어제 막 들이 붓더니 괜찮냐?”
“아니, 머리 아파서 죽겠다. 근데 나 어제 집에는 어떻게 들어 갔냐?”
“필름까지 끊기고... 하나도 기억 안나?”
“어, 니가 데려다 줬냐?”
“어제 김종인이 너 데려다 줬잖아.”
“뭐?”
나도 모르게 고개를 들며 큰 소리를 내뱉었다. 주변의 몇몇이 제 쪽으로 흘끔 처다 보는 게 느껴진다. 눈치를 보며 작게 대화를 이어갔다.
“뭘 그렇게 놀라고 그래? 어제 준면이 형이랑 세훈이는 루한이 형이 챙겨갔고 난 백현이 데리러 간다고 너 김종인한테 맡겼는데. 왜? 무슨 일이라도 있었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없었는지 하나도 기억이 안 나는 게 문제다. 아픈 머리를 부여잡고 끊어진 기억을 찬찬히 더듬었다. 계속 마주쳐오는 김종인의 눈에 계속 술을 들이켰던 것까지는 기억이 나는데 그 다음은 도통 기억이 잘 나지가 않았다. 어렴풋이 백현에게 가보겠다는 박찬열도 기억해 냈고 택시에 준면이 형과 세훈이를 태우던 루한 형까지 기억해 냈는데 중요한 건 그 다음이 기억이 나질 않는다. 떠오르지 않는 기억을 찾겠다고 머리를 부여잡고 있는 사이 평소보다 일찍 수업이 끝났다. 점심을 먹으러 가는 도중에도 기억을 해내려 노력했지만 별다른 기억이 떠오르지는 않았다.
“도경수 왜 이래?”
“어제 술 마시고 필름 끊겨서 그래.”
“얼마나 마셨길래 필름이 다 끊기고 그래?”
비글 커플 때문에 가뜩이나 안 좋은 속이 더 안 좋아지는 기분이다. 결국 부대끼는 속에 대충 몇 숟가락 더 뜨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 먼저 간다. 니네끼리 먹고 데이트나 해라.”
멍청하게 웃는 박찬열과 걱정스런 눈빛으로 바라보는 변백현을 뒤로하고 식판을 비우고 식당에서 벗어났다. 수업까지는 시간이 넉넉히 남아 있는 터라 담배나 피울까 하고 수업을 듣는 건물 근처에서 담배를 꺼내들었다. 입에 물고 불을 붙이려는 찰나 익숙한 얼굴이 저 멀리서 걸어오는 것을 발견했다.
하루 종일 끊겨버린 기억을 찾으려 애쓰게 만든 장본인이었다. 김종인. 김종인의 얼굴을 보자 그토록 기억이 나지 않던 어제 밤 일들이 조각조각 떠오르기 시작했다.
익숙한 내 방을 배경으로 김종인은 나를 친절히도 침대에까지 뉘어주고는 걸음을 돌려 나서려고 한다. 그의 등을 보던 내가 뭐라고 묻는다. 뭐라고 물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가 뒤돌아본다. 그가 어떤 얼굴이었는지는 역시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김종인이 걸음을 돌려 내 쪽으로 다시 돌아온다. 그리고 시선을 나와 맞춘다. 그리고, 그리고.
맙소사. 물고 있던 담배를 발밑으로 떨어트리고 말았다. 그가 가까이 다가올수록 기억이 선명해졌다.
김종인이 나에게 키스 했다.
+암호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