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인정
아무 말도 못하는 나를 보며 김종인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그와 시선을 제대로 맞추지 못하고 시선을 아래로 떨어뜨리고 말았다. 그런 나를 보던 김종인은 느릿하게 말을 꺼냈다.
“경수야, 이번 주말에 날씨 좋대. 그러니까 우리 영화 보러 가자.”
뜬금없는 말에 고개를 들고 그를 마주했다. 눈을 맞춰오는 그의 의도를 알 수 없어 혼란스러운 기분이었다. 그 때의 내 표정은 보지 않아도 알 것 같다. 분명 멍청한 표정을 짓고 있었을 게 분명했다. 내 표정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을만큼 그가 궁금해졌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내게 이러는 이유가 뭔지도.
그리고 김종인은 토요일, 자신의 말을 기어코 실행해 보였다. 갑작스레 울린 벨소리에 비몽사몽 잠에서 깨 문을 여니 그가 서있었다. 한동안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다가 결국 그를 집에 들였다. 그는 나를 보고 웃어보였다. 그는 신발을 벗으며 경쾌하게 얘기해 보였다.
그의 말에 대꾸할 말을 찾지 못한 나는 결국 화장실로 도망치듯 들어가고 말았다. 양치를 하며 거울을 통해 바라본 내 모습은 가관이었다. 머리는 부스스했고 얼굴 역시 머리와 별반 다를 바가 없었다. 이런 모습을 보였다니 갑자기 얼굴이 확 달아오르는 느낌이었다. 그는 이런 내 모습이 뭐가 좋다고 그렇게 웃어 보였을까. 그의 웃는 얼굴을 휘휘 쫓아내며 서둘러 양치를 끝내고 머리를 감고 세수까지 끝내고 화장실에서 나섰다.
그는 내 침대에 앉아 휴대폰을 보고 있었다. 내가 나오는 소리에 고개를 들고 나를 쳐다본다. 대충 머리를 털어 말리고는 옷장에서 갈아입을 옷을 꺼냈다.
“계속 그렇게 볼 거야?”
“내 앞에서 옷 갈아입는 거 부끄러워?”
“같은 남자끼리 별 상관이야 없지.”
대수롭지 않게 말했지만 김종인이 바라보는 데서 갈아입을 생각을 하니 선뜻 옷을 벗을 수가 없었다. 그는 천천히 눈을 감으며 말했다.
“눈 감고 있을 테니까 갈아입어.”
티셔츠를 갈아입는데 팔을 잘못 넣어 허둥지둥 대고 있는데 앞에서 그의 기척이 느껴졌다. 더 당황해서 옷을 제대로 입지도 못하고 헤매고만 있으니 그가 옷을 끌어 제대로 입혀준다. 티셔츠를 내리자 보이는 그의 얼굴에 또 다시 시선을 떨어트리고 말았다. 그 때처럼.
“키스해도 돼?”
애초에 내 대답을 들을 생각이 없었던 건지 그는 내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입을 맞춰온다. 동시에 허리를 끌어당겨 자신과의 거리를 좁힌다. 나보다 훨씬 키도 덩치도 큰 남자가 키스를 했는데 여전히 불쾌하거나 기분이 나쁘지가 않다. 곧 떨어진 입술에 차마 눈을 뜨지 못하고 파르르 떨고만 있었다. 그는 그사이 거의 다 마른 머리를 가지런히 정리해 주고 집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조심스레 잡아 온 손이 나쁘지 않았다. 그 때의 키스처럼 좋다고 생각했다. 맞잡은 손에 키스를 할 때와는 다른 기분이 들었다. 인정해야만 했다. 술집에서 마주친 그 순간부터 나는 그를 신경 쓰고 있었으며 지금 역시 그를 신경 쓰고 있었다.
그 해 봄, 나는 그에게 어떤 설레임을 느끼고 있었다.
+암호닉
세모네모 조무래기 텐더 봄큥 세큥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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