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대리님은 워낙 두루두루 잘 지내시는 성격에다가, 호의도 잘 베푸셔서 선배, 후배 할 것 없이 여직원 분들께 인기가 많으심
이대리님은 누구에게나 쉽게 여지를 주시지 않는 스타일 ㅋㅋㅋㅋㅋ
가끔 어떤 날엔 이름도 모르는 여직원께 선물 전달도 부탁받고 하는데 모르는 사람이 말을 걸면 쉽사리 대답도 못하는 내가, 그런 부탁이 쉬울리 없음
아직까지도 차장님이나 대리님이 안 계시면 밥을 못 먹을 정도니까
"이거 박서준 대리 좀 가져다 줘요, 꼭~"
꽁한 표정으로 어물쩡, 어물쩡 하면 옆에 있던 이대리님께서 대신 가져다 주시곤 했음.
차장님께 대놓고 호감을 표하신다거나 들이대는 분은 없음.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내고 가까워 지지 않은 사람이 볼 때는 그냥 한없이 차가운 직장상사이기 때문에
혼나본 유경험자로써, 호통치는 것도 매우 무섭고 특유의 포스가 다가가기 힘들게 만듦
근데 며칠 전부터 내 눈에 띌 때 마다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차장님을 응시하고 계신 대리님이 한 분 계심
구내식당에서 차장님과 둘이 밥을 먹는데, 맞은 편에 앉아 계신 그 대리님과 눈이 정면으로 마주침. 왠지 모르게 기분 나쁜 표정을 짓고 계시는데 무서워서 눈을 피함
그렇게 고개를 들 때마다 몇 번씩 체할 뻔한 위기를 넘기고 구내식당을 빠져나옴
엘레베이터에 탔는데 그 대리님이 모르는 직원분이랑 손에 커피를 들고 엘레베이터로 총총 뛰어오시는 게 보였음
의식의 흐름대로 닫기버튼을 죽어라 눌러댔는데 결국 함께 타게 됨
"어, 안녕하세요~ 저번에 도와주셨던!"
"아 그랬었나요"
"해외마케팅, 서예지요~~"
"네"
아까의 표정은 온데간데 없고 한없이 예쁘고 순한 표정으로 이거 드세요, 하며 차장님께 아이스아메리카노를 건넴
"찬 걸 잘 안 먹어서, 그냥 드세요"
거절했는데도 되받을 생각 않고 그냥 계속 눈웃음만 싱글싱글 짓는데 여자가 봐도 정말 예뻤음
"이거 마실래요"
차장님이 받은 커피를 나에게 내미심. 정말 환장할 노릇
불편한 공기에 질식할 것 같아 제발. 빨리 내려라 이 생각만 수십번을 함
17층에 도착해서 아 내가 먼저 내리는구나 하고 안도하고 있었는데 따라서 내리심. 왜 같은 층인데 나는 한 번도 본 적이 없을까
설상가상으로 차장님은 안 내리시고 옥상으로 가심. 왜 오늘따라 이렇게 눈치가 없으신 걸까 원망스러움
어차피 인간관계에 많이 데여 본 터라 이 정도 일에는 별 생각 없이 앉아서 책상 정리를 조금 하고 양치를 하러 화장실로 갔는데 거기서 서대리님이 화장을 고치고 계심
"왜 쌩까요?"
순간 내가 잘 못 들은 건가 화들짝 놀라서 네? 하고 되물음
"엘레베이터 같이 타는 게 그렇게 싫었나봐"
아무 말도 안하고 (못 한 걸지도) 듣고만 있었는데 팩트를 딱. 하고 닫더니 나가심
나가자마자 누굴 만난건지 인격을 갈아 탄 목소리가 들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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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저녁에 옆 부서 대리님 돌잔치가 있어서 차장님 차 타고 함께 갔음. 도착하고 보니 대리님들도 계셨음
차장님이랑 같이 음식을 가지러 갔는데 접시부터 음식까지 딸 데리고 식당 온 아빠처럼 하나하나 이거 먹을래요? 얼마나 먹을래요 하며 챙겨주심
자리에 앉아 있었는데 갑자기 차장님 맞은편에 서대리님이 와서 앉으심. 다행히 동그란 테이블이라 거리가 멀긴 했는데 그래도 눈 앞에 계속 보이니 도저히 입맛이 돋아나질 않아 그 때 부터 포크를 딱 내려놓고 연락이 오지도 않은 휴대폰만 만지작거림
대리님들과도 왜 저리 편하신가 했더니 입사동기라고 함. 끊임없이 차장님께 말을 걸어오며 즐겁게 대화를 하는데 나 혼자 끼지 못 함
서대리님 눈웃음도, 하나하나 대답하는 차장님도, 자존감 1도 없는 나도 그냥 다 짜증이 났음
끝나고 나오는데 문을 잡고 나를 기다리시는 차장님을 쳐다보지도 않고 나옴
내 귀를 의심하며 옆에서 잠자코 대화를 듣는데 넷이 이차를 간다고? 세상에 돌잔치 끝나고 이차 가는 사람들이 존재 하는 것인가, 나만 몰랐던 것인가
어차피 저 여자분도 나와 함께 가실 생각 없어보였고 나도 갈 생각 없었기에 짜증은 났지만 아무 말 않고 있었음
"난 좀 이따 가야 할 것 같은데"
하시며 나 타라고 조수석 문을 열어주셨는데 그냥 혼자간다고 하고 급하게 그 자리를 빠져나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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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가서 티비를 보는데도 집중이 안됐음. 연애 하면서 여자 때문에 걱정하고 맘 졸이는 걸 딱히 해 본적이 없는데 오늘은 이상하게 자꾸 화가나고 답답했음
나 있을 때에도 그렇게 생글생글 잘 웃는데, 이제 완전히 서대리님의 판이구나. 그냥 박박 우겨 따라갈 걸 그랬나 싶기도 하고
어차피 차장님은 취하시지 않을 것을, 술자리에서 일어나는 뻔한 스토리는 없을 거라는 걸 잘 아는데도 왜 이리 불안한지
연락이 한 통도 안 오길래 결국 밤에 내가 먼저 전화를 검
-여보세요
왜 서대리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지
"여보세요"
-이ㅇㅇ?
"네"
-아 내가 아는 이ㅇㅇ?
"차장님 휴대폰 아닌가요"
-화장실 가셨는데, 이사원이라고 뜨길래 누군가 했네~
"대리님들은요?"
대답 없이 전화가 뚝 끊김. 왜 전화를 그 쪽이 받는 건지. 그 쪽이 뭔데 차장님 전화를 받는 건지
나도 차장님을 차장님이라고 저장 해 뒀지만 막상 차장님 휴대폰 속에 내가 '이사원' 이라고 저장되어 있다는 걸 알게 되니 갑자기 우리 사이가 멀게만 느껴졌음
결국 그날엔 전화가 오지 않았음. 아마 내가 전화 했던 걸 모르시고 계신 것이겠지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 보니 문자가 와 있었지만 답장하지 않았음
[오늘 뭐해요 09:13]
[영화 볼까 09:17]
[아직 자나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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찝찝한 기분을 떨쳐내지 못하고 월요일 아침에 출근을 함
점심시간이 되어서 넷이 구내식당에서 밥을 먹는데
"금요일엔 죄송했어요~ 급하게 가버려서"
박대리님 말에 이대리님이 차장님이 예지랑 둘이 불편하셨겠네, 하심. 난 저게 무슨 말인지 당최 머리속에서 정리가 안 됨
"대리님 금요일에 같이 안 가셨어요?"
"응, 여자친구랑 갈 곳이 있어서"
저 말은 곧 박대리님 서대리님 차장님 셋이 술을 마시다 박대리님이 가시고 차장님과 서대리님 둘이 남겨졌다?
갑작스래 알게 된 상황에 결국 몇 술 뜨지도 않고 먼저 일어남. 차장님이 식판을 챙겨 나가려는 내 팔을 붙잡고 벌써 가요? 하고 물으심
속이 안좋네요. 하고 귀찮다는 듯 팔을 내팽개치고 나옴
양치를 하고 자리에 돌아왔는데 점심시간이 끝나갈 때 쯔음 차장님이 드링크형 소화제를 내미심
"이거"
괜찮아요. 한 마디 하고 다시 고개를 돌려 타닥, 타닥 타자만 열심히 침 옆에 한참 서 계시다가 결국 그냥 내 자리에 올려 두고 자리로 가심
그 때 부터 퇴근 할 때까지 소화제 병은 쳐다보지도 않고 건드리지도 않음
평소같으면 차장님 차를 타고 집에 갔겠지만 오늘은 퇴근시간이 되자마자 옷가지를 챙겨 나옴
엘레베이터를 기다리는데 차장님이 그 새 따라 나오심
"어디 가야 해요"
"아니요"
"아, 그냥 좀 서두르는 것 같길래"
처음으로 이렇게 단호하고 딱딱한 내 대답에 살짝 멋쩍은 표정을 지으심
평소같으면 주차장이 있는 층에서 내려야 하지만 오늘은 1층을 누름
그랬더니 차장님이 1층을 다시 한 번 더 누르심. 나는 한 번 더 누르고, 차장님이 또 누르심
"어디 가요? 데려다 줄까?"
"왜요?"
내가 생각해도 왜요라니 어이가 없을 것 같긴 한데 그런거 신경 쓸 기분이 아님
1층에 와서 내리려는데 아까 식당에서처럼 팔을 한 번 더 붙잡으심. 신경질적으로 뿌리치고 쳐다보지도 않고 내림
+
신알신에 달려왔다가 대놓고 달달함이 없어서 실망하셨죠
정말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왔어요
제가 생각해도 이 상황이 웃기네요 허허.
그래도 여전히 댓글은 소중해요 8ㅅ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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