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경수와 나는 전혀 다른 인격체였다. 굳이 공통점을 꼽자면 같은 부모님 아래 자라고 있다는 것? 작년, 우리 엄마는 처음 보는 말끔한 아저씨와 결혼을 하겠다고 했다. 그 남자의 집으로 들어왔을 때 처음으로 도경수를 만났다. 동그랗고 큰 눈이 제 얼굴을 쫓을 때 왠지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이 들었다. 도경수와 나는 서로 무언의 약속이라도 했는지 서로에게 터치를 하는 일은 드물었다. 하지만 가끔 말을 거는 것도 정말 단순한, 엄마의 늦는다는 이야기거나 그 남자, 아니 도경수의 부친의 부탁이거나. 둘 중 하나였다.
아, 도경수의 아버지는 돈이 많았다. 엄마와 둘이 살 때 그렇게 궁핍하게 살았던 것은 아니지만. 그 남자는 내게 무던히 많은 신경을 썼다. 이따금씩 명품 메이커 마크가 달린 옷들을 쇼핑백 한 무더기씩 사다주기도 하였고, 나는 그것들을 아무 말없이 받아들였다. 나에게 잘 보이려는 것이 아니라 우리 엄마에게 잘 보이려 하기 위해 하는 짓인 게 훤히 보였기에, 내가 부담스러워하거나 피할 이유 따위는 없었다. 여느 고등학교 2학년 남자 아이들처럼 선생님 몰래 야자를 빼고 도망가 pc방에 죽치고 앉아 게임을 하며 밤늦게까지 키보드 자판을 두드리고 있을 때도 있었고, 엄마와 그 남자와 일로 바빠 집에 오지 못할 때에는 호기심에 가득 차 친구의 집에서 술을 마셨던 일들도 허다했다.
그러던 내가 유일하게 별로 좋아하지 않던 것은 담배였는데, 도경수는 담배를 폈다. 굳이 보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는데 몇주 전 담배 냄새를 풀풀 풍기며 평소와 같이 넥타이를 죽 풀어헤진 모습으로 집에 들어섰을 때 나도 모르게 표정이 구겨졌다. 주스를 마시던 컵을 그대로 싱크대에 내려놓곤 제 얼굴을 한참 바라보다 제 옆을 지나치려는 도경수의 팔뚝을 어설프게 잡곤 입술을 열었다.
“담배, 피지 마. 엄마가 걱정해.”
제 말에 도경수는 작게 웃음을 터트리더니 제 손을 쳐내곤 (사실 그냥 떼어놓은 것에 가까웠다.) 2층으로 올라갔다. 나무로 된 계단이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리고, 곧이어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왠지 맥이 빠지는 것 같아 나는 그대로 그 자리에 주저 앉았다.
도경수와 그런 일이 있었던 다음 날, 창문을 통해 들어온 햇빛이 제 얼굴로 쏟아지자 표정을 찌푸리다 짜증스럽게 제 머리를 헤집으며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주말인데, 짜증나게. 혼잣말로 중얼거리며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신경질적으로 커텐을 쳐버리곤 다시 벌러덩 침대에 누웠다. 그러나 다시 잠들려 누운 것이 무색하게 정신이 말짱했다. 어제 잠들기 전 침대맡에 두었던 핸드폰을 들어 한참을 만지작거리다 그냥 그대로 홀드를 걸어 다시 침대위로 내려두었다. 시간이····. 8시28분. 일어날까 말까 한참을 고민하다 부스스한 머리를 대충 정리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대충 옷가지들을 챙겨 욕실로 들어가 씻고 나오니 벌써 30분이 훌쩍 지나가있었다. 물기어린 머리칼을 드라이기로 대충 말린 뒤 방을 나서자 음식 냄새가 코를 찔렀다.
“엄마?”
작게 엄마를 부르며 주방을 기웃거리자 보이는 건 엄마의 뒷모습이 아닌 앞치마를 두른 그 남자의 뒷모습이었다. 제 목소리에 웃으며 고개를 돌리는데, 눈매와 콧대가 도경수와 참 닮았단 생각이 들었다. 축축히 젖은 수건을 손에 들고 그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는데 먼저 긴 침묵을 깬 건 그 남자의 목소리였다.
“잘 잤니?”
다른 사람이 들으면 그저 평범한 아빠와 아들의 대화였지만 나는 그저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며 작게 고개를 주억거렸다. 굳이 피하려던 생각은 아니었는데, 분명 저 남자에 대해 나쁘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었는데, 왠지 모르게 몸이 먼저 거부반응을 일으켰다. 수건을 세탁실 앞으로 가 바구니에 대충 던져놓곤 다시 방으로 들어가려는 찰나, 부스스한 모습을 한 도경수가 2층에서 터덜터덜 내려오고 있었다. 가만히 그 모습을 올려다보는데 마주친 눈에 도경수의 시선이 제 얼굴을 진득하게 훑어내렸고, 나는 먼저 고개를 돌려 시선을 피했다. 왠지 들어본 적 없는 도경수의 웃음소리가 귓가에서 웅웅 울리는 것 같은 착각이 들어 기분이 퍽 나빴다. 그러나 다시금 몰려오는 잠에 문 손잡이를 잡는데 엄마가 제 이름을 부르며 아침을 먹으라는 목소리를 냈다. 나중에 알아서 먹겠다고 말하려는 찰나, 언제 왔는지 도경수가 제 손목을 잡곤 식탁으로 향했다. 이게 뭔가 싶어 미간을 찡그리며 도경수를 바라보는데, 도경수는 그저 묵묵하게 그 특유의 표정을 짓곤 식탁까지 제 팔을 끌어당겨 데리고 갔다. 엄마와 그 남자의 맞은편에 같이 앉아 내키지 않음에도 기대감에 가득 찬 그 남자의 표정에 어쩔 수 없이 젓가락을 들었다. 의외로 도경수는 우리 엄마와의 대화가 물 흐르듯 자연스러웠다. 그 사이에 걸림돌 같이 꿰어있으려니 밥알이 꼭 모래알 같았다. 꾸역꾸역, 얼마나 먹었을까. 남자가 웃음기 담긴 목소리로 도경수와 나를 겨냥한 듯한 말을 꺼냈다.
“아빠는, 둘이 더 친해졌으면 좋겠어.”
하마터먼 그 말에 입에 담고있던 것들을 모두 뱉어낼 뻔 했다. 도경수와 내가? 물론 도경수가 싫거나 나쁘다 생각했던 건 아니지만, 그냥 웃음이 터져나올 것만 같아 입술을 꾹 다물었다. 그냥 도경수와 나의 관계가 친밀해진다는 것은 달콤한 소금 같은, 작은 거인 같은 말도 안 되는 이야기 같이 다가와 한참 대답없이 젓가락으로 밥알들을 헤집다 어색한 침묵이 싫어 대충 둘러대려는 찰나, 도경수의 목소리가 울렸다.
“친해요.”
한 번의 침묵을 깨자, 분위기는 유하게 흘러갔다. 빈말인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 남자는 밝게 웃으며 다행이다, 하는 말을 반복했고. 엄마도 다행이라는 듯 미소를 띄웠다. 시종일관 무표정이었던 제 표정이 걸리는지 도경수가 팔꿈치로 제 팔을 툭 쳤다. 스르륵 고개를 돌려 도경수의 얼굴을 맞이하는데 그 잘난 얼굴이 입꼬리를 쓱 끌어당겨 웃으며 제게 물었다.
“그렇지, 백현아?”
백현아, 백현아. 백현아·····. 도경수에서 나온 제 이름이 메아리처럼 귓가를 파고들자 오소소, 소름이 돋는 것만 같아 오묘한 표정을 지으며 도경수를 바라봤다. 시선을 피하지 않고 한참을 마주하다 보니 당장이라도 그 까만 눈동자 안으로 빨려 들어갈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런 곳에서 쓸데없는 승부욕이 타올라 계속 피하지 않고 바라보자 이번에는 도경수가 먼저 고개를 돌렸다. 왠지 차가운 기운이 흐르는 우리 둘의 사이를 보고 애써 웃음을 짓는 그 남자의 모습에 잠시 숙였던 고개를 들곤 덤덤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친해요. 그렇지, 경수야?”
아무 생각없이 내뱉었던 저 말이, 도경수와 나의 헝클어진 실타래의 시작이었다.
짧네요.. 많이 짧아요.. (오열)
그래도 오백은 짱짱!!!맨!!이니까요
암호닉 받아요, 신청해주시는 독자님들 하찮지만 제 하트를.. ♡
다음편에서는 더욱 길고 재밌는 내용으로 써보도록 노력할게요
thㅏ.랑.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