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tle: 붉은 참혹상
written by: 규피덴셜
state: 공유, 배포 xX
nick: 테라규, 감성, 씨규빠, 타라, 베긔, 체리펀치, 소라빵, 코알라, 모닝콜, 찹쌀떡, 뇨뇽
붉은 참혹상 -12-
“이번에 승급으로 서인국을 올려줘야할 것 같긴 한데…”
“더 이상은 안 돼. 군부대 내에서 사고를 몇이나 친 놈인데.”
다시 한 번 김명근 대령과 이상민 대령의 싸움이 붙기 시작했다. 이상민 대령이 무언가 제안하면 김명근 대령은 이런 저런 문제를 들어가면서 반대했고 또 김명근 대령이 무언가 제안을 하는 경우 이상민 대령이 이런 저런 근거를 들어가면서 아예 들은 척도 하지 않음의 대화가 오고가자 서로 지쳤는지 의자에 엉덩이를 앞으로 빼내고 등을 길게 내받힌 채로 서로를 의욕 없이 쳐다보면서 펜을 든 채로 골똘히 생각에 빠져 있었다.
서인국 훈련병 아니 지금은 대위라고 해야 맞는 말인 걸까? 현재까지 훈련병을 한 인물 중에서 가장 훈련병 생활을 오래한 인물 중 하나로 겨우 얼마 전 글라디우스 부대의 대위까지 승급을 시켜주었다. 그 이유인 즉슨, 우발적인 행동을 가끔 한다고 해도 전투력에 있어서는 깨나 머리가 날 돌아가는 인물이었기 때문이었다. 눈치가 빠르고, 행동도 빠르며 항상은 아니어도 옳은 길을 추구하는 인물이었다. 그러나 현재 김명근 대령이 서인국의 승급을 더 이상 진전하는 것이 옳지 않다고 말하고 있다. 그 이유인 즉슨, 4년 전의 이야기 때문이었다.
「왜 성규 학생을 두고 두 훈련병이 그런 식으로 성규 학생을 붙잡고 있는 건지 설명 좀 해줄 사람?」
4년 전, 김명근은 사관학교에 2년이나 빠르게 입학할 수 있었던 성규를 붙잡고 있었던 두 남자를 목격한 사건이 있었다. 그 두 남자는 훈련병 중에서도 가장 큰 이슈를 몰고 다녔던 인물이었는데. 첫째는 오종혁이었다. 오종혁은 훈련병의 신분으로 대령관에 들어와서 홍단의 왕관을 훔친 일이 있었다. 왜 훔쳤는지 알지도 못한 채로 이상민의 명령에 의해 현재 스투쿰 부대의 대위까지 올라간 상태이지만 그런 인물이 있다는 것 자체도 명근은 맘에 들지 않았는데 자신의 부대에 있다는 것에 굉장한 불편함을 느끼고 있다.
인국의 얘기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성규의 어떤 안전한 부분이 아닌, 조금 고통스러울 거라 예상되는 머리채를 붙잡고 있는 성규를 보자마자 인국은 손을 놓고 바로 고개를 푹 숙여내었다. 명근은 그에 혀를 끌끌 차면서 종혁과 인국을 바라보았고, 딱 봐도 인국으로부터 종혁이 성규를 데리고 어디론가 가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성규 군에게 할 말이 있는 와중에 오종혁 훈련병이 성규를 끌고 가기에 급하게 잡은 것이 이만…」
「할 말이 뭐였는가?」
「지금은 할 수 없습니다.」
명근은 살짝 올라와 있는 수염이 까슬하게 자신의 턱에 맞닿는 것을 알고서는 손가락으로 슥슥 훑어대었다. 인국을 쳐다보자 도저히 인국의 눈을 봐서는 그게 진실인 지 아닌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럴 경우 성규에게 물어보는 수밖에 없었는데 이미 공포에 질린 듯한 하얀 얼굴의 성규를 보자 명근은 한숨이 절로 나왔다. 그럴 수밖에 없을 터, 들어보아하니 성규가 사관학교 들어오기 이전에 오종혁 훈련병과 친분이 있었다고 들었는데 그를 이용해서 사관학교에 들어왔으니 얼마나 피하고 싶겠어. 명근은 내쉬던 한숨을 멈추고서는 헛기침을 해대면서 그 셋을 쳐다보았다. 이미 그들은 성규에게서 손을 떼낸 지 오래였다.
「둘은 대령관 앞에서 경비를 서고 있도록. 할 말이 있으니…」
가만히 굳어서는 서 있는 성규를 보면서 명근은 웃어대었다. 들어보니까 성규가 명수랑 같은 학교에 다니고 있던데 말이지. 거 참 똘똘하네 싶었다. 이상민한테 인정 받아서 2년씩이나 일찍 들어온 것에 대해 분명 반대를 했었지만 들어보아하니 생각보다 엄청난 전략을 끌고 온 데다가 어릴 적부터 군인의 꿈을 키워와 벨름 제국에 대해 모르는 게 없다고 하기에 문득 성규라는 아이가 궁금해진 것이 사실이었다.
「성규 학생. 무슨 일인지 설명해줄 수 있겠어요?」
성규는 무서운 마음에 쉽사리 입을 열 지 못했다. 이런 식으로 나는 사관학교에 비겁한 방법으로 들어왔으니 이번에 또 말을 하게 되면 또 다른 사람에게 신뢰를 잃게 되는 것이었다. 성규는 아까 두 사람 사이에 붙잡혀 있었던 것보다 그 사실이 더 공포스럽게 만든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꾹 다문 입을 열지 않고 김명근 대령을 보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저어댔다. 성규는 이것이 자신이 지킬 수 있는 최대의 의리라고 생각했다.
「제가 성폭행 당할 뻔한 것을 성규 군이 저를 살렸습니다.」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꽤나 얇은 목소리로 대강 어린 인물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누구인가 지켜보았더니 이번에 사관학교에 입학한 이호원 학생이었다. 명근은 또 웃으면서 둘을 번갈아서 쳐다보았다. 열 다섯 살의 성규가 성폭행 당할 뻔한 호원을 구했다는 사실에 한 번 놀랐지만 더 놀라게 한 사실이 있었으니 이 상황의 원인이 성폭행 때문이었다는 것이었다. 호원의 말을 들어보아하니 호원이는 인국에게 겁탈 당할 뻔한 와중에 있었고 그 때 성규가 상황을 목격하자 인국은 입을 막기 위해서 성규를 잡으러 쫓아 다녔다? 명근은 머릿 속에 점점 상황이 풀리는 것 같아서 씨익 웃었다.
「성규 군이 잘한 건데 왜 말을 못 해요? 성규 군이 칭찬 받을 일이에요.」
「…….」
「왜요. 홍단의 왕관 절도범이 오종혁 훈련병인 걸 말하고 사관학교에 들어온 게 비겁한 짓이라고 생각하는거에요?」
성규는 그간 느껴왔던 공포심과 지금까지 달려오느라고 못 쉬었던 숨이 턱 막혔다가 한 번에 확 쏟아지는 듯 헉헉거리면서 숨을 몰아 내쉬었다. 얼굴은 붉어질대로 붉어지고 성규의 눈은 명근을 노려보았다. 어쩌면 저렇게 비꼬는 것도 김명수랑 똑같을까 성규는 생각했다. 그에 명근은 살짝 웃으면서 호원과 성규를 계속 번갈아가면서 쳐다보았다. 호원의 하얀 피부를 슬쩍 보다가 괜히 끄덕였다. 성폭행 당할 만큼 예쁜 남자 아이기는 하지만 성규 같은 경우는 정말 물건이군 싶었다. 그제서야 명근은 상민의 생각을 알 수가 있었다.
성규와 호원에게 일 주일동안 휴식을 잘 취할 수 있게끔 편하게 휴일을 내주었다. 이제 막 들어온 성규에게는 너무나도 후한 휴식이었지만 홍단의 왕관의 절도범을 잡아낸 인물이기도 하고 또 성폭행 사건도 막을 수 있었으니 그야말로 성규는 복덩어리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또 상민의 목적을 알게 되었으니 그럴 만 하다라는 생각에 고개를 끄덕이며 대령관으로 발걸음을 향했다. 양 문 앞에 정면을 보고 우뚝 서 있는 남자 둘이 있었으니 당연 오종혁 훈련병과 서인국 훈련병이었다. 그 둘을 보자 아까 공포에 질려 숨을 헉헉 내쉬는 성규의 모습이 떠오르면서 혀가 저절로 끌끌 차지는 듯 했다.
「절도범에 성폭행범. 니네가 아직도 이 벨름 연합 부대의 일원으로 남아있을 수 있다는 사실은 성규에게 고마워하도록 해라.」
그 둘은 아무 말도 없었다. 그것을 통해서 명근은 그 둘이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고 이해한다는 뜻으로 받아들이고서는 그저 소리를 내면서 깔깔거리며 웃어대기 시작했다. 별로 웃기는 일이 아니었음에도 명근은 웃다가 못해 고여버린 눈물을 닦아대면서 그 둘을 번갈아가면서 쳐다보았다.
「너희 둘에 대한 징계 얘기는 이상민 대령이랑 얘기 더 나눠본 후에 하도록 할테니까 그 동안 성규한테 가서 얘기를 하든가 알아서 빠져있든가.」
대령관으로 발걸음을 더 옮겨서 문고리를 쥐고 열어주는 훈련병들의 행동에 고개를 살짝 숙여가며 감사를 표한 후에 명근이 대령관으로 들어가자마자 인국과 종혁은 중얼거리며 욕을 하기 시작했다. 왠지 모르게 그 때만큼은 종혁과 인국은 서로 조금 더 가까워진 느낌을 받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같은 시기에 훈련병으로 들어와서 서로 의지하고 믿어준 적 한 번 없이 경쟁만 해왔으니 말이다. 이미 대령관으로 들어가버린 명근을 욕하기 위해 문을 노려보면서 중얼거리는 서로를 발견한 종혁과 인국은 그저 배꼽이 빠져라 웃어버렸다.
“일단 서인국을 올려 놓자고.”
“안 돼.”
상민의 눈빛이 무거워지기 시작하면서 그 눈빛은 무섭게 명근을 노려보았다. 서인국을 올려야만 하는 이유, 명근은 끝까지 상민을 이해하지 못했다. 아무렴 성규라는 재미있는 아이를 놀려주는 것이야 재미있긴 하지만 그것 하나 보자고 벨름 제국의 흐름을 깨자는 건 말도 안 되었다. 명근은 벌떡 일어나서 새빨개진 얼굴을 내민 채로 상민에게 손가락질을 해대며 소리질렀다.
“그깟 꼬맹이 하나로 재미 보자고 하는 짓이라면 그만 둬. 이게 재미야? 이게 장난이야? 군부대가 장난이야? 벨름 제국을 뭘로 보는거야, 대체. 어린 나이에 대령 된 게 그게 자랑이야? 그래서 뭐가 더 나아졌어. 언제까지 너 재미만을 바라보면서 살거야. 그만할 때 됐잖아?”
“뭐?”
상민이 서서 침을 툭툭 튀겨가면서 새빨개진 얼굴로 손가락질 해대며 강하게 상민의 행동에 부정하는 명근을 쳐다보다 벌떡 일어나 명근의 목을 부여잡았다. 목젖을 손에 품은 채로 더 꽉 쥐면 쥐일 수록 원래도 빨갰던 명근의 얼굴이 빨개지다 못해 점점 창백해지고 있었다. 점점 힘이 풀리면서 상민을 날카롭게 쳐다보던 명근의 매서운 눈빛이 점점 눈꼬리가 내려가기 시작하면서 힘이 풀리더니 명근은 정신을 놓고야 말았다. 상민은 재수 없다는 듯이 명근을 발로 한 번 세게 걷어 찼다. 가만히 흔들리기만 하고 반응이 없는 명근을 보자 더 화가 치밀어오른 상민은 명근을 발로 계속 밟고 때리고 즈려 밟았다. 그리고 그제서야 명근의 코 근처에 숨기운이 돌지 않는 것을 안 상민은 '일이 복잡해졌네…' 속으로 읊으면서 명근의 눈을 감겨주었다.
*
“야, 김성규! 봤냐? 봤냐? 나 합격이다. 봤냐?”
명수는 신났다고 합격 소식을 들고 성규에게 찾아와서는 보여주었다. 성규는 훈련병이지만서도 스쿠툼 부대 훈련을 받고 있었기에 실질적으로 몸으로 부딪히는 싸움보다는 머리를 쓰는 쪽으로 훈련을 받고 있었다. 머리가 안 그래도 복잡했는데 명수가 옆에서 혼란스럽게 하는 바람에 지금까지 기억해두려고 했던 것들이 싹 다 하얗게 사라져버린 느낌이었다. 성규는 또 짜증난다는 표정으로 명수를 바라보았지만 김명수 역시 눈빛에 지지는 않았다. 성규는 생각했다. 왜 예전에는 자기를 못 괴롭혀서 안달이었던 놈이 속 보이게 훈련병 된 나에게 잘 해주는 걸까. 합격 통지서를 눈 앞에 가져다가 대는 것을 어찌 안 읽을 수 있으랴. 영혼 없는 박수 짝짝 쳐주면서 끄덕였더니 당연 김명수가 바라던 반응이 아니었으니 표정이 구려질 수밖에 없었다.
다시 노트북 앞에 앉아서 우리의 적으로 생각되는 나라들의 군부대 상황을 알아보는 게 우선이었다. 느긋하게 커피 한 모금 홀짝 마시고서는 노트북에 시선을 집중하는데 김명수는 뭐가 좋다고 실실거리는 게 무시할 수도 없어 짜증이 슬슬 날 참이었다. 벨름 제국 근처 다섯 개 제국들 중에서 네 개 제국은 전혀 생각이 없는 듯 보였는데 예상 외로 퓨르 제국이 가만히 있지 못하는 듯 보였다. 퓨르 제국은 무역 쪽으로 교류가 뛰어난 제국 중 하나였다. 그래서 나무 같은 원재료의 수출이 어느 정도 우리에게 많은 도움이 되는 것은 사실이었으나 요근래에 군부대가 커지기 시작하면서 많은 제국을 노리고 있는 것이 눈에 훤히 보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전쟁 경험이 하나 없는 나라에서 군부대가 크다는 이유만으로 군부대가 가장 강력한 우리 벨름 제국을 공격할 이유는 없었다. 그에 성규는 힘이 바짝 들어가 있던 어깨에 힘을 풀고 명수를 쳐다보았다.
“할 짓 없으면 티비나 봐. 실실 쪼개지 말고.”
저도 모르게 예상 외로 꽤 쎈 말이 튀어나온 것 같아 입을 살짝 물다가 명수를 쳐다보았다. 정말이지 신경은 쌀 한 톨만치도 안 쓴다는 듯 무시하며 티비 앞으로 가서 태연히 리모컨을 드는 저 태도는 정말이지 본 받고 싶을만큼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티비를 켜자 당연 성규가 자주 보던 국방부 뉴스가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성규도, 명수도 들려오는 뉴스에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오늘 새벽 3시경, 스쿠툼 부대의 김명근 대령이 별세하셨습니다. 이유는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으나 갑작스러운 기도의 막힘 증세로 호흡 곤란과 심장 마비가 동반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성규는 동그래진 눈으로 명수를 쳐다보았다. 대령의 별세 소식은 분명 벨름 제국에도 큰 영향이 있는 소식이 분명했다. 하지만 그 대령이 명수의 외삼촌, 그러니까 핏줄 섞인 인물이라면 김명수의 감정에도 또한 큰 영향이 있을 것이라고 지레 짐작했다. 역시나 김명수는 목에 핏줄을 세우고서는 당황해서 시선을 어디에 둘 줄 몰라하며 눈알만 도로록 굴려대었다. 눈물이 흐를 것을 막기 위해서였을까 이미 찡 해진 코는 빨개진 것이 보이는데 촉촉한 눈에서 눈물이 흐를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김명수는 벌떡 일어나 리모컨으로 티비를 곧바로 꺼냈다. 다른 날에는 잘 몰랐던 티비 꺼지는 소리가 오늘은 '팟-'하고 잘만 들리는 것 같았다. 그 조용함 속에서 말이다.
“이럴 리가 없어.”
“명수야, 오늘은 좀 쉬고…”
“우리 김명근 대령님이, 우리 삼촌이 얼마나 건강하신데 갑자기 저러는 게 어딨어…”
성규는 문득 떠올랐다. 오늘 새벽 2시 경에 김명근 대령님과 이상민 대령님이 만날 예정이라는 것을 엿들은 것을 말이다. 그리고 새벽 3시에 갑자기 김명근 대령이 죽었을 리는 없었다. 만약 성규의 예상이 맞다면 그것은 분명 타살이 맞았다. 하지만 성규는 입을 다물고 있었다. 김명수가 더 알아봐야 자신에게 좋을 것이 없다는 것을 알았기에. 지금껏 이상민 대령으로 인해 이만큼 쉽게 빠르고 젊은 나이에 올라올 수 있었고, 앞으로도 그럴 예정이었기 때문에. 더 말해봐야 김명수가 이 상황을 유지시킬 리도 없었다. 분명히 하나는 파괴시키고 가야 제 속이 풀릴 놈이라는 것을 어릴 적부터 알아왔기에 떨리던 명수의 목소리를 애써 무시로 삼켜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