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김에리!!!!!!!"
"아, 미친! 정수정 귀 찢어지겠어!"
"너 오세훈이랑 아는 사이라며? 어? 오세훈이랑 어떻게 아는 사이야?!"
"초등학교 때..."
"초등학교 때?!"
"아, 말 좀 끝까지 들어!!!! 친구라고, 친구. 중학교도, 지금도."
"헐!!! 대박!!!!! 완전 부러워!!!! 실제로도 그렇게 잘 생겼어? 어?"
"야, 김에리."
미친, 오세훈이다. 입학식 땐 안 온다더니, 학교에 왔다. 덕분에 복도엔 학생들로 가득했다. 창문을 열고 대놓고 구경하는 애들도 있었고, 근처에 앉아 힐끔 쳐다보는 애들도 있었다. 와, 진짜 뭐가 다르구나. 수영 유망주라고 작년에 방송을 한 번 탄 뒤에는 연예인 급으로 인기도 많아지고, 인지도도 하늘을 뚫을 듯 했다. 내가 가장 믿고, 의지하는 친구가 오세훈인데 그런 오세훈이 부담스러워질 정도로 너무나 먼 사람 같았다. 특히 이렇게 사람이 많은 곳에선. 아 물론 수정이는 학원에서 만난 친구라 세훈이랑 내가 친구인 걸 모르는 게 당연했다. 그런데 이 사실을 수정이가 안다는 건. 변백현이다. 변백현, 죽일거야. 백현 오빠는 수정이와 나랑 같은 학원을 다니며, 세훈이와 나랑 함께 초등학교, 중학교를 거쳐 지금까지 친한 사이이다. 삼총사라고 떠들어다니며 같이 뛰어다닌지만 거의 10년이란 말이다. 변백현이 자랑했음이 틀림 없다.
"너 왜 학교에 있어?"
"준면이 형이 가래."
"너 담당한다는 그 사람? 매니저?"
"응, 비슷한 거. 옆자리 누구 앉냐?"
오세훈의 물음에 자연스레 수정이를 쳐다보자, 수정이는 손을 저으며 난 네 뒤에 앉으면 돼! 하고 말했다. 우리의 뻔뻔한 오세훈은 고마워 하며 바로 의자를 빼서 내 옆에 앉았다. 뻔뻔하다. 내 중얼거림을 들었는지, 오세훈이 손을 뻗어 내 입술을 때렸다. 아, 아파!!! 내가 소리를 지르자, 오세훈은 귀를 막는 시늉을 하며 이어폰을 귀에 꽂았다. 오세훈 행동 하나하나에 반응하는 여자 애들을 보고 있자니, 와 이러다가 나 학교에서 매장 되면 어떡하지, 이상한 소문이라도 나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 표정이 이상했는지 오세훈이 나를 한참 쳐다보다가 내 이마를 툭 쳤다.
"왜 때리냐!"
"못생긴 표정 하지 말라고 했지?"
"어이가 없네, 증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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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여기 어떻게 알고 왔어?"
"나 보러 다녔구나"
"아니 여기 어떻게 알았냐고, 우리 집 어딘지 어떻......"
"전화했어, 아버지한테."
"우리 아빠?"
미쳤다, 오세훈은 지금이나 그때나 너무 똑똑하다. 어떤 상황에서나 똑똑했다. 아, 방금 말은 취소. 헤어질 땐 정말 멍청했다. 아니다, 지금은 이렇게 추억이나 회상할 때가 아니라. 지금 우리 집에, 심지어 내 방 앞에, 아니 내 앞에 있는 오세훈의 설명을 들을 타이밍이다. 결론은 이거다. 나랑 할 얘기가 있었고, 나한테 연락을 하자니 스캔들도 있고, 준면이 오빠의 잔소리가 싫고, 그래서 만나고 싶었는데, 만나려면 연락을 해야하니까, 연락 없이 만나는 방법은 찾아오는 거 뿐이고, 나한테 묻자니 안 알려줄 거 같고, 준면이 오빠는 더욱 더 그렇고, 그렇다면 남은 건, 세훈이와 아직도 각별하게 연락을 하는 우리 아빠 뿐이다.
사실, 세훈이는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셨다. 그래서 할머니와 생활을 했는데, 아빠가 그런 세훈이가 신경 쓰여서 어릴 때부터 많이 도와주셨다. 피자나 과자 치킨 등등 뭔가를 살 때, 무조건 세훈이네 몫도 사오셨고. 가족여행도 함께, 모든 걸 함께 했다. 세훈이가 내 가장 친한 친구였던 탓도 있지만, 세훈이네 아버지와 우리 아빠가 가장 친한 친구였던 탓도 있었다. 그리고 세훈이가 수영을 시작하게 된 계기도 우리 아빠였다. 그래서 세훈이도 유독 우리 아빠를 잘 따랐고, 아빠도 아들이 생긴 거 같다며 세훈이를 잘 챙기셨다. 나는 엄마가 일찍 돌아가셨다, 아니 사실 얼굴도 잘 모른다. 내가 태어나고 바로 돌아가셨으니, 알 리가 없지. 그래서 그런 세훈이한테 동질감을 느꼈던 것 같기도 하다.
"할 말 있다며 뭔데?"
"듣고 싶던 말 들었으니까 갈게."
"나 아직 아무 얘기도 안 했는데?"
"난 들었어, 전화 하면 받아라."
그렇게 오세훈은 우리 집을 나갔다. 멍하니 닫힌 문을 바라보다가 어이가 없어서 침대에 털썩 주저 앉았다. 와, 진짜 오세훈. 왜 저래. 이럴 시간이 없다. 당장 아빠한테 전화를 걸어야겠다. 선반 위에 있던 휴대폰을 들어 아빠한테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얼마 가지 않아 아빠가 왜 우리 공주~ 하며 다정한 목소리로 전화를 받으셨다. 아빠, 세훈이한테 전화 왔었어? 하고 묻자, 아빠는 응, 공주 집 주소 묻던데? 아빠가 금방 기억이 안 나서, 문자로 찍어줬는데. 아빠 말이 끝나자 마자 소리를 지를 뻔 했지만, 아빠랑 통화중인 걸 인지하고 참았다. 아, 아까 세훈이가 왔길래 전화했어. 아빠, 이번 달에 한 번 내려갈게. 응, 할머니한테도 안부 전해줘! 응, 아빠도 오늘 하루 파이팅!
전화를 끊고 그냥 침대에 누워버렸다. 휴대폰엔 여러 사람들에게 연락이 와있었다. 백현이 오빠, 수정이 등등 고등학교 때 부터 알던 친구들에게 다시 만나는 거냐며, 기사 봤냐며 호들갑 떠는 내용들이였다. 전화가 안 와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찰나에 수정이에게 전화가 왔다. 와, 진짜 무슨 말을 못 하겠네. 여보세요 하고 전화를 받자 마자 야!! 하고 소리를 지르는 수정이다. 진짜 얘 때문에 언젠가 한 번은 귀가 찢어지겠다. 왜, 뭐! 안 사겨! 안 만나! 헤어지고 어제 처음 봤어! 내 대답에 수정이는 아, 뭐야. 기대했네. 하며 실망한 목소리로 답했다. 아니 무슨 기대를 해!!! 우리가 어떻게 헤어진지 아는 사람이!!!!
"내가 오세훈이랑 있었던 일 너한테 말 안 한 적 있니?"
"없지, 없지!"
"있으면 말할게, 일단 나 진짜 지금 너무 복잡하니까 전화 끊자."
"응, 알겠어! 쉬어! 주말에 봐!"
수정이와 정신 없던 전화를 끝내고, 가득 쌓인 카톡 답장을 다 보내고 나니, 모르는 번호로 문자 하나가 도착했다. 스팸인가 하고 확인을 하니, 저장해 라는 내용만 달랑 적혀있다. 그 세글자에서 나 오세훈이야 하는 말이 귀에 들리는 듯 했다. 어이가 없네! 입으로 외치면서도, 손은 이미 오세훈의 번호를 저장하고 있었다. 3년을 남자친구♡ 라고 저장했던 번호를 오세훈으로 저장하는 게 너무나도 어색했다. 어쩔거야, 김에리! 남자친구 아닌데, 남자친구로 저장할 수도 없는데! 괜히 합리화하며 오세훈이라고 저장했다. 저장한 뒤, 답장으로 저장했다. 라고 보낸 뒤에 휴대폰을 침대 위에 던져두고 거실로 나왔다.
"라면이나 끓여 먹을까"
냄비를 꺼내 물을 올리고 티비를 한참 보다가, 라면을 끓이기 시작했다. 밥을 해서 먹기도 귀찮고, 오늘 딱히 나갈 일도 없는 마당에 귀찮기도 하고. 라면을 후루룩 소리까지 내면서 먹고 있는데 자연스럽게 비밀번호가 풀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게 무슨 소리야, 무서움보다 의아함이 앞서서 현관 쪽으로 가자, 오세훈이 신발을 벗고 있다. 너 비밀번호는 어떻게 알아? 하고 묻자, 알았으니까 아까도 들어왔겠지 하고 동문서답을 한다. 어이가 없으려니까. 그리고 자연스럽게 의자에 앉아 내 라면을 먹는 게 아닌가. 아니 저 자식이?
"너 왜 내 라면 먹어!!!!"
"먹을게"
뻔뻔한 자식. 그러고 보니 쟤 대회 전에 이런 인스턴트 음식 안 먹는데...... 야, 너 곧 대회 아니야? 하고 묻자, 네가 어떻게 알아 하고 묻는다. 싸가지 진짜. 기사 떴으니까 알지, 너 라면 안 먹잖아, 대회 전에 하고 따지자 그런 거 이제 신경 안 써 하고 국물도 보란듯이 싹 다 마시더니, 전화 하면 좀 받아라 하고는 다시 신발을 챙겨 신는다. 야!!!! 너 라면 먹으려고 왔어?! 하고 소리치자, 그건 아닌데, 전화 하면 좀 받으라고 하더니 쑥 나가버린다. 아, 진짜 짜증나 오세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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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훈이는 중학교 때 보다 학교를 더 안 나오긴 했지만, 나오더라도 나랑만 계속 있어서 딱히 친구라고 할 것도 없었다. 하지만 난 세훈이 친구인 덕에 입학과 동시에 수많은 친구들이 생겼다. 남자 애들은 물론, 수많은 여자 애들까지. 물론 나랑 하는 얘기는 다 세훈이 얘기였다. 괜히 심술이 나서 잘 모른다고, 무뚝뚝해서 얘기도 잘 안 한다고 얼버무렸지만 여자 애들은 그런 모습 마저 좋다며 날뛰었다. 그리고 세훈이가 학교에 나오는 날이면.
"야, 이거 너 먹어라"
자기가 받은 과자와 간식을 나한테 던져주고,
"자꾸 묻히고 먹을래? 턱에 구멍났냐?"
급식을 먹을 때 챙겨주고,
"졸리면 자, 쌤 오면 깨울게"
야자 시간 마저 날 챙겼다.
덕에 여자 애들은 세훈이랑 사귀냐고 물었고, 나는 아니라고 변명하기 바빴다. 남자 애들과 수정이가 전해준 말에 의하면 여자 애들이 나를 그렇게 싫어한다고 한다. 아, 오세훈 짜증나. 내 고등학교 생활 어쩔거야. 매일 옆에라도 있으면 덜 할텐데, 없으니까 눈치 보여 죽겠다, 아주. 주말이 되면 수영장에 찾아가, 세훈이가 연습하는 걸 구경하고, 같이 세훈이 집에서 밥을 먹고, 잠들기도 하고, 게임을 하다가 잠도 안 자고 아침을 맞이한 적도 있다. 그 정도로 우린 너무 좋은 친구였다. 세훈이가 나한테 고백을 하기 전까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