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 seven days(7일 동안) # Wednesday6
쑨양이 뒷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든다.
무엇일까 궁금증을 참고 그의 손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천으로 된 모양새가 손수건처럼 보였다.
"잠시만요."
그 물건을 내 목에 둘러서 가볍게 묶는다.
"스카프?"
"네. 태환에게 주는 선물. 잘 어울릴 것 같아서 샀는데 정말 잘 어울려요."
"그래요?"
"네."
네크라인이 좀 깊게 파진 티셔츠로 인해 서늘했던 목덜미가 따뜻해졌다.
나에게 어울릴려나.
남자가 하기에는 여성스럽지 않을까 싶어 목에 두른 스카프가 어색했다.
"이제 가요. 데이트하러."
마치 첫데이트하는 수줍은 소녀마냥 두근거리는 심장을 느끼며 쑨양의 손을 잡고 주차된 자동차쪽으로 걸어갔다.
우리가 탄 자동차는 서서히 땅거미가 지는 하늘을 배경으로 하나둘씩 불이 켜지는 거리를 달렸다.
낮과 달리 저녁 거리에는 많은 차량과 사람들로 북적였다.
"사람 많다."
조수석에 앉아 창밖너머로 보이는 인산인해의 현장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평일 저녁인데도 이렇게 많으니 주말은 오죽할까 싶다.
"태환."
쑨양의 부름에 고개를 돌려 그를 쳐다보았다.
내가 돌아보자 싱긋 웃더니 말했다.
"먼저 밥 먹으러 갈까요?"
거의 소화기능이 상실된 위장으로 소화가 힘들었다.
식욕도 거의 없었지만 쑨양을 위해 저녁먹자고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뭐 먹을까요?"
"음~ 죽집 갈까요? 여직원들이 맛있다고 추천하던데."
쑨양은 천천히 운전을 하면서 말을 이었다.
"좋아요."
다행히 부담이 없는 식사메뉴라서 안도의 한숨을 속으로 내쉬었다.
난 그와 함께 식사하는 것이 참 좋았다.
같은 음식을 맛보고 즐기는 그 순간이 행복하다.
하지만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검은 암세포는 내 위장을 점령한지 오래였고 다른 장기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나마 남아있는 건강한 세포덕에 나름 괜찮았지만 슬슬 한계가 오고 있었다.
안타깝게도 좋은 세포가 힘쎈 암세포에 밀려 사라지는 듯 하다.
사실 음식따위 아무래도 좋았다.
예전부터 먹는 것에 집착한 적도 없었다.
쑨양을 위해, 그가 싫어하니까 꼬박꼬박 챙겨 먹었을 뿐이었다.
그래서 슬펐다. 아주 많이.
쑨양과 함께 하는 행복한 시간을 잃어 간다는 사실이 못내 안타까웠다.
"꽤 다양한 메뉴를 팔고 있네요?"
"그러게요."
근처 유료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주변에 있는 상점에 위치한 프랜차이즈 죽집을 찾아 들어갔다.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죽을 주문해서 먹고 있었다.
이른 바 웰빙 식사랄까.
비어있는 자리에 앉아 메뉴판을 들추었다.
쑨양의 말대로 다양한 종류의 죽을 팔고 있었다.
전복죽부터 해물죽, 소고기죽, 야채죽, 바지락죽 등 다양했다.
"쑨양은 뭐 먹을거에요?"
"음...잠깐 고민 좀."
아주 신중해 보이는 그의 모습이 귀여웠다.
"태환은 뭐 먹을거에요?"
아직도 못고른 내색이 내가 정한 메뉴를 참고할 생각인 듯 했다.
쿡 소리내어 웃었다가 내가 고른 것을 말해주었다.
"호박죽이요."
"흠..."
내 메뉴를 듣자 더 고민에 빠진다.
직접 생각해둔 것과 많이 차이나서 도움이 되지 못한 것 같았다.
메뉴판을 몇번 더 들추기를 반복하더니 결정했는지 가게 종업원을 부른다.
"골랐어요?"
"네. 낙지김치죽이요. 매콤할 것 같아요."
손을 들며 쑨양이 부르자마자 순식간에 종업원이 테이블로 와서 좀 놀랐다.
근처 남자 종업원도 있었는데 거리가 좀 더 멀었던 그녀가 더 빨리 온 것이다.
"주문하시겠습니까?"
"이거...호박죽이랑 낙지김치죽 주세요."
"호박죽 하나, 낙지김치죽 하나요. 알겠습니다."
꽤 낭랑한 목소리로 주문을 받고 돌아가는 종업원의 뒷모습을 쳐다보았다.
카운터쪽으로 가면서도 몇번이나 이쪽을 향해 뒤돌아본다.
"태환."
"네?"
나를 부르는 쑨양의 목소리에 그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러자 그가 입꼬리를 들어올리며 미소짓는다. 아주 부드럽게.
괜히 설레었다.
쑨양의 미소는 항상 날 홀린다. 매려적인 미소를 붉은 입술에 메달고 나의 눈을 바라보며 나를 수줍게 했다.
쑨양은 테이블 위에 올린 내 손위에 그의 손을 얹어 겹쳤다.
크고 곱게 뻗은 하얀 손가락으로 손등을 지분거렸다.
"그냥 불러봤어요."
중저음의 목소리가 내 귓가로 스며들었다.
무척 달콤해서 이곳에 둘만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이 들었다.
가게가 아니었다면 이대로 키스했을만큼.
"주문한 음식이 나왔습니다."
어느새 주문했던 죽이 나왔다.
진갈색의 우드 트레이에 담긴 죽이 각자 앞에 놓여졌다.
따끈한 열기와 더운 김이 올라왔다.
국자로 죽을 떠서 함께 준 빈그릇에 담아 죽을 식혀 한숟갈 떠 먹었다.
단호박의 달달함이 혀끝에서 느껴졌다.
내가 먹는 모습을 본 후 따라서 먹기 시작한 쑨양을 바라보았다.
좀 어색한 손짓이 몰랐던 모양이다.
주변 손님들이 그렇게 먹길래 그 모습을 따라서 먹은 건데 미처 보지 못한 것 같았다.
"좀 매운데..."
"김치가 들어가서 그럴걸요. 먹을만 하죠?"
"맛있어요."
대화를 나누면서 식사를 했다.
소화 잘되는 호박이라 그런지 제법 괜찮게 먹었다.
쑨양도 죽이 어느정도 식은 후에는 먹는 속도를 올려 금세 그릇을 비웠다.
"맛있었어요?"
"네. 괜찮았어요."
"다먹었으면 일어날까요? 다음 장소로 이동해야죠!"
"좋아요."
드디어 비밀의 장소로 데려갈 모양이었다.
배를 채운 우리는 계산을 하고 가게를 나왔다.
더운 낮과 달리 서늘한 저녁 바람이 불었다.
좀 추운 느낌이 들었지만 목에 묶은 스카프 덕분에 따뜻했다.
쑨양의 따뜻한 손이 닿은 것 같은 포근함이 느껴졌다.
-
화려한 네온사인과 할로겐 램프가 환하게 밝히는 밤거리를 지나쳤다.
빠르게 나아가는 자동차에 따라오듯이 가로등의 램프는 빛의 꼬리를 유려하게 빛냈다.
대체 어디로 가는 것일까.
점차 궁금증이 커져가서 묻지 않겠다는 맹세가 깨어질 것 같다.
그리고 그 만큼 기대감도 커졌다.
언제 쑨양이 나를 실망시킨 적 있나. 항상 날 놀래켜주고 행복하게 만들어주었다.
그는 내가 사랑하는 것보다 더욱 사랑해주는 특별한 사람이었다.
"내릴래요?"
어느 곳에 자동차를 멈춰 세우고 내리라고 하는 쑨양을 쳐다보았다.
항상 문을 열어주던 그가 이러한 말을 했다는게 믿기지 않았다.
무슨 일이 있는걸까.
불안한 궁금증을 안고서 안전벨트를 끌러내고 차에서 내렸다.
검푸른 하늘과 가로등 조명조차 모두 꺼져 있어 사위는 어둡기 짝이 없었다.
주변 가로수는 서늘한 미풍에 흔들려 왠지 으스스해졌다.
고개를 돌려 차쪽을 보았다.
짙게 썬팅된 차의 내부는 전혀 보이지 않아서 쑨양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분명 그가 내리는 기척을 느끼지 못했으니 분명 차안에 있겠지.
보닛을 돌아 운전석쪽으로 걸어갔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왠지 쑨양이 없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점차 찾아오는 불안감에 몸을 떨었다.
"쑨양?"
나의 부름에도 답이 없었다.
심장이 쿵쿵대며 거세게 박동했다.
곁에 그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자 세상이 무너지는 느낌이 들었다.
입술을 꼭 깨물었다.
의식조차 못하고 비릿한 피맛이 날 때까지 깨물었다.
찰나의 시간은 억겁의 시간처럼 아주 느리게 흘렀다.
불안함으로 흔들리는 눈가를 쓰다듬으면 차분하게 마음을 가라앉혔다.
그러나 그러한 노력은 소용이 없었다.
내 마음을 대변한 손가락의 끝이 몹시 차가워졌다.
탁!
어두었던 주위가 갑자기 밝아졌다.
무척 눈부셨다.
가늘게 뜬 눈으로 빛 세례가 쏟아지는 방향을 쳐다보았다.
빛사이로 커다란 형체가 보였다.
흔하지 않는 크기는 그 형체가 쑨양임을 알아챘다.
순간 드는 안도감에 긴장이 풀렸다. 후들거리는 다리에 힘을 꾹 주고 그 형체를 꿋꿋하게 바라보았다.
"태환."
익숙한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즈막하고 부드러움을 담은 쑨양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내 이름을 부르면서.
왜 불안했을까. 자책을 하면서 그를 보았다.
눈부신 불빛때문에 그의 얼굴을 제대로 볼 수 없는 것이 안타까웠다.
내 눈을 괴롭혔던 불빛이 순식간에 꺼졌고 사위는 어둠으로 물들었다.
이윽고 쑨양 너머로 보이는 높은 건물에 하나둘씩 불이 켜졌다.
마치 수를 놓는 듯이 점등되는 불빛은 하나의 문장을 표현하고 있었다.
《I LOVE YOU》
조금 후 불들이 꺼지고 다른 단어를 만들어냈다.
《TAEHWAN》
내 이름이 적힌 건물의 창문을 바라보며 결국 눈물을 떨어뜨렸다.
어둠속에서 빛나는 그 글자는 각막에 새켜졌고 결코 잊을 수 없는 단어가 되었다.
"쑨양..."
그의 이름을 불렀다. 나의 부름에 답하는 그의 목소리.
"태환."
뺨에 흐르는 눈물이 너무도 뜨거워서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I LOVE YOU, 태환."
"...나..도..."
"평생 함께 해줄래요?"
그의 부탁에 난 또 한번 눈물을 쏟아냈다.
로맨틱한 그의 고백은 차가워진 내 몸을 단숨에 달아오르게 만들었다.
너무도 사랑스러운 두번째 고백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행복을 선사했다.
하지만 난 그의 고백을 감히 받을 수 없었다.
연인으로서 그를 붙잡아놓고 평생을 함께하자고 말할 수 없었다.
나의 마지막은 끝을 바라보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아직도 나의 아픔을 고백하지 못하고 있었다.
용기가 없는 나는 쉽게 말을 하지 못했다.
언제든지 말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미안...미안해요. 난 쑨양의 부탁을 들어줄 수 없어...."
"어째서?"
"숨겨서 미안해요. 나 사실은 오래 살 수 없어요. 그래서 들어줄 수 없어요. 흐윽."
병을 알고 부모님을 납골한 납골당에서 오열했던 것만큼 아주 많이 눈물을 쏟아냈다.
몸 안의 수분을 모조리 뽑아내는 것처럼 하염없이 토해냈다.
"나 곧 있으면 죽어요. 그러니까 쑨양의 말은...흡...."
더이상 말을 잇지 못하는 나를 껴안았다. 아주 거세게 나를 껴안은 쑨양의 품에 안겨 울었다.
지금까지 못했던 고백을 울음과 함께 말했다.
울음이 무슨 촉진제라도 되는 것처럼 그 울음을 빌어서 그에게 고백했다.
"...사실 쑨양을 만나기 전부터 아팠어요....지금까지 숨겼어요. 미안해요. "
"......"
"말하면 떠나갈까봐 말 못했어요. 정말 미안해..."
"......"
울음섞인 내 목소리가 허공에서 흝어졌다.
눈물로 얼룩진 뺨이 당겨왔다.
그가 나를 떠나가도 괜찮았다. 그 때문에 심장이 문들어지더라도 상관없었다.
내 가슴에 그렇게 거짓말을 하며 거침없이 말을 이었다.
"난 쑨양의 사랑을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이에요."
"아니. 태환은 충분히 자격있는 사람이에요. 그 말 하지 말아요."
"...쑨양."
"지금 고백했으니까 됐잖아요. 난 좋아요. 사랑해요. 당신이 오랫동안 함께하지 못해도 그래도 좋아해."
"곧 죽을 수도 있는데도?"
"네."
이 남자는 어디까지 다정한 것일까.
내가 너무 불쌍해서 내려주신 천사가 맞나봐.
쑨양의 다정한 말에 기뻐하는 내가 너무 미웠고 그가 너무 사랑스러웠다.
가슴 한 구석에 자리했던 묵직한 고민이 흩어지는 것을 느꼈다.
비겁한 내가 싫지만 그를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이 미치도록 좋았다.
쑨양.
혹시 내가 마지막 가는 그 길이 아픔에 추해지더라도 남아줄래요?
사랑해...줄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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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어서 죄송합니다ㅠㅠ
오늘 하루종일 바빴네요. 지금 회사사무실인데...
독자님들께 빨리 글을 보여드리고 싶어서 퇴근전에 올립니다.
대신 글이 이상하더라도 욕은 말아주셔요..ㅠㅠ(오역난무는 애교?)
맛간 정신으로 쓰다보니 글이 이렇게...
전혀 안달달해..ㅠㅠ(달달하다고 선전까지해놓고..)
수요일챕터는 다음편이 마지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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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전 투표결과가 나왔습니다. 외전 찬성표가 많아서 외전 쓸거고요. 모든 공개를 원하셔서 인티에 모든 공개로 외전 올리겠습니다. 소중한 투표 감사드립니다^^ 메일링한정 외전이었으면 좋겠다고 투표하신 분도 계셔서... 고심해서 생각했습니다. 메일링+암호닉 하셨던 분께 특별히 다른 외전을 써드리기로 결정했어요. 이 외전은 저번의 상상으로만 그쳤던 카** 씬입니다. 싫으신 분은 싫다고 해주시면 제외할거에요. * 현재까지 받은 암호닉(순서대로 나열) 린연 / 팬더 / 슈밍 / 마린페어리 / 흰구름 / 광대승천 / 허니레인 / 포스트잇 / 여름향기 / 아와레 / 보석바 / 순대 / 쌀떡이 / 태꼬미 / 렌 * 암호닉은 비회원/회원 관계없이 받아요~^_^ * 독자님들 끝까지 함께 해주세요^^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