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이는 조선시대 명문가의 자제.
예쁘고 참하기로 몇 동리 밖까지 소문이 자자할 지경이었어.
그러나 얼마전 일어난 반역 사건에 연루되어 온 집안이 풍비박산 나고 말았어.
세상 어느 곳보다 안전할 것만 같았던 별이의 집에 수십의 포졸들이 밀려들어오고
존경하던 아버지의 서재,
우아하신 어머니가 하던 꽃꽂이,
언제나 듬직하던 오라버니가 사준 작은 경대
그 모든게 산산조각났어.
붉은 호승줄에 묶여 무릎 꿇리어진 채, 너의 자랑이었던 아버지가 포졸의 육각모에 맞아.
쓰러진 아버지를 감싸던 오라버니 앞에 포도대장의 길다란 칼이 내밀어 지고 억울하다며 울부짖던 어머니가 혼절하며 쓰러지는 사이, 포도대장의 칼이 머리 위로 높이 들려. 칼에 비친 빛이 잠깐 빛나더니 아버지와 오라버니가 네 앞에 붉은 피를 흘리며 쓰러져.
스르릉, 하는 소름끼치는 소리와 함께 네 목앞에 내밀어진 칼이 턱을 들어올려.
"그나마 얼굴이 반반하구만. 이 년은 관기로 넘겨라."
그리고 관기가 된 너,
(1이랑 안 이어져!)
2. 이재환
믿어지질 않았어. 눈을 뜨면 모든 게 꿈이기를 바랬어. 눈이 떠 있는 시간에는 매일 울고 눈을 감을 떄는 꿈에 쓰러져간 아버지, 어머니, 오라버니가 보였어. 나도 데려가라고 나도 죽이라고 꿈에서 소리쳐보고, 포도대장의 칼에 너 스스로 목을 갖다 대봐도 모든 건 다 꿈이야. 늘 꿈에서 깨면 현실이 너를 짓눌러. 차라리 죽어버렸으면, 눈을 꼭 감고 물 한모금 손대지 않길 몇일일까? 밥을 먹지 않는 벌로 독방에 갇혀있는 네 방에 행수기생이 들어와. 거의 정신을 잃어가는 네 얼굴에 물을 확 뿌려.
"정신차려, 이 년 아."
"...."
" 너 혼자 사연있는 것 같니? 여기 사연 없는 사람은 없다."
"..."
"네 년 하나 죽는다고 장사 못하는거 아니야. 그런데 네가 죽으면 너네 아버지, 어머니, 오래비는 누가 기억해준다니?"
울컥. 이제 눈물도 안날 줄 알았는데 다시 눈물이 흘러. 입을 틀어막은 손 위로 물이 흐르고 어느새 얼굴이 다 물기로 덮여. 아무말도 없이 널 보던 행수가 네게 다가와서 너를 토닥여줘. 다 울어버리라고, 다 털어버리라고. 기생년들이라고 가족 없는 거 아니라고, 이제 우리가 네 가족이라고. 토닥이는 손길만큼 눈물을 쏟아내. 그리고 결심해, 살아서 오래 오래 기억하기로. 아무도 너의 가족을 떠올리지 않는, 입에 올리기만 해도 반역자라고 처형당하는 이 한양땅에서 너만은 오래 기억하고 오래 곱씹기로. 살기로.
몸을 추스리고 스스로 머리를 올리겠다고 행수에게 말해.
너를 물끄러미 보던 행수는 안그래도 한량인 유생 하나가 있대. 집이 워낙 한양에서 유명한 명문가라 그 분이 머리를 올려주면 너한테도 도움이 된대.
너는 승낙했어.
어차피 살아야 하니까, 기생이든 어느 여염집 아낙이든 중요하지 않았어.
너는 살아야 했어.
.
.
.
머리를 올리는 날이 되자 너는 얼굴에 곱게 화장을 해. 눈물이 자꾸 나서 얼굴에 바른 분을 몇번을 덧칠을 했어.
가장 화려한 옷을 입고 방을 나서. 오늘이 끝나면 다시는 예전으로 돌아가지 못할 수도 있지만 너는 발걸을음 옮겨.
"오늘 머리를 올리실 기생입니다. 잘 부탁드리어요."
행수의 말이 들려. 너는 고개를 숙여 사내를 볼 수 없어.
"그래. 제법 반반해 보이는 구나. 너는 이만 나가있거라."
예, 하는 작은 대답과 함께 행수는 나가. 너는 절을 하고 고개를 들어. 근데 눈 앞에 보이는 남자 얼굴이 익숙해.
"...이...재환....."
눈 앞에 있는 남자는 너의 집을 반역 사건에 연루되게 한 '이'가(家)의 도령이야.
"아니 이게 누구요. 그 귀하다는 별이 아씨 아니오?"
"...."
"어쩌다 이런 꼴이 되었소?"
실실 웃으면서, 모든 걸 다 알면서 웃는 그 모습에 너는 손이 부들부들 떨려. 이 모멸감과 분노를 어찌할 줄 모르겠어.
당장이라도 이 자리를 박차고 나가고 싶어서 자리에서 일어나. 그대로 문을 향해 걸어가려는데 재환의 목소리가 들려.
"그거 아시오? 머리를 올리지 못한 기생은 소박맞은 신부랑 똑같다는 걸. 이대로 방문을 나서면 다시는 기생짓을 하지 못할 것이오. 소박맞은 신부는 그 누구도 찾지 않지."
방문 앞에서 너는 발이 굳은 듯 아무것도 할 수 없어.
"알면 돌아오시오. 아, 옷이라도 벗어보던가. 몸 파는 기생처럼."
당연히 너는 못할 꺼라며 웃는, 아무렇지 않게 술잔에 술을 따르는 그 얼굴을 보다가 너는 저고리를 풀어.
사르륵, 겉옷 떨어지는 소리에 술을 따르던 그가 고개를 들어.
"옷을 벗겠습니다. 기다리시지요."
떨리는 목소리로 말하며 네가 한꺼풀씩 옷을 벗을때마다 여유 있던 재환의 얼굴도 점점 굳어가.
속저고리까지 벗을 때가 되자 굳어 있던 재환이 급하게 달려와.
매듭을 풀려는 네 손을 두 손으로 잡아.
재환의 굳은 얼굴이 네 바로 앞에서 너를 보고 있어.
"천한 기생년이 옷을 벗는다는데 왜 이러십니까."
"....그러지 마시오..."
"..."
"내가...내가 잘못했오. 그러지 마시오."
"...."
"이 손 놓으십시오. 이 손 놓고 천한 기생년을 취하십시오!"
악에 받쳐서 네가 소리를 질러.
네가 재환을 뿌리치려 하자 재환이 갑자기 네 손목을 잡더니 확 당겨.
어느새 너는 재환의 품에 안겨있어.
"당신을....이렇게 가지려 했던게 아니야...이런게 아니야."
재환의 목소리가 작게 들려.
"그렇게 힘든 얼굴을 하고.... 스스로 천해지려 하지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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