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이는 조선시대 명문가의 자제.
예쁘고 참하기로 몇 동리 밖까지 소문이 자자할 지경이었어.
그러나 얼마전 일어난 반역 사건에 연루되어 온 집안이 풍비박산 나고 말았어.
세상 어느 곳보다 안전할 것만 같았던 별이의 집에 수십의 포졸들이 밀려들어오고
존경하던 아버지의 서재,
우아하신 어머니가 하던 꽃꽂이,
언제나 듬직하던 오라버니가 사준 작은 경대
그 모든게 산산조각났어.
붉은 호승줄에 묶여 무릎 꿇리어진 채, 너의 자랑이었던 아버지가 포졸의 육각모에 맞아.
쓰러진 아버지를 감싸던 오라버니 앞에 포도대장의 길다란 칼이 내밀어 지고 억울하다며 울부짖던 어머니가 혼절하며 쓰러지는 사이, 포도대장의 칼이 머리 위로 높이 들려. 칼에 비친 빛이 잠깐 빛나더니 아버지와 오라버니가 네 앞에 붉은 피를 흘리며 쓰러져.
스르릉, 하는 소름끼치는 소리와 함께 네 목앞에 내밀어진 칼이 턱을 들어올려.
"그나마 얼굴이 반반하구만. 이 년은 관기로 넘겨라."
그리고 관기가 된 너,
(1, 2 랑 안 이어져!)
3. 이홍빈 上
그 뒷모습을 떠올리며 매일 울다가 날이 밝아오면 손님을 받아.
어느 순간부터 이렇게 살아서 뭐하지? 라는 생각이 너를 잠식해. 차라리 죽는 게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 너는 곱게 옷을 차려입고 강가로 가.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오라버니. 지금 죽으면, 그래서 그 분들을 만나면 그래도 나를 반겨주실까?
한 걸음씩 걸음을 옮길때마다 찰랑거리는 강물도 더 가까워져.
어느덧 바로 코앞에서 넘실거리는 강물을 보며 눈을 꼭 감고 마지막 걸음을 옮기려는 그때,
"이보시오!"
누군가가 너를 확 낚아채.
"지금 뭐하는 짓이오!"
"이거 놔..! 이거 놓으라고!"
발버둥쳐도 그 사람은 꿈쩍도 하지 않아. 아무말도 없이 너를 뭍으로 끌어내.
"당신 뭐하는 짓이야...!"
소리를 지르던 너는 그 사람의 얼굴을 본 순간 아무말도 할 수 없어.
이보시오, 하고 묻는 그 얼굴이, 그 말간 눈빛이 꼭 죽은 오라버니와 닮아서.
"죽으려 했소?"
"..."
"...어찌 귀한 목숨 저버리려 했소?"
"...오라버니..."
"..."
"오라버니..저도...저도 데려가요. 너무 힘들고...혼자는 싫습니다...제발요.."
어느새 너는 그 자의 긴 도포자락에 파묻혀서 엉엉울고 있어.
잠시 당황하던 남자가 조금씩 네 등을 토닥여. 꼭 죽은 오라버니가 어릴 적 해주던 것과 같아서 마음이 편해진 너는 한참을 울고 난 후에야 고개를 들어.
"주제넘을 수 있으나...내가 그대 오라비라면 이렇게 아름다운 누이가 우는 것은 보기 싫을 것이오."
"..."
"누이가 스스로 생을 끊는 것 또한 진정 싫을 것 같소."
"..."
"나는 이가(家) 홍빈이오. 인연이 되면 다시 만나오. 그러니 그때까지 살아있으시오."
그와 그렇게 헤어진 후로 너는 죽을 수 없어. 다시 죽으려하면 자꾸 오라버니를 닮은 그의 얼굴이 떠올라.
그렇게 하루하루 시간이 흘러가고 있을 즈음, 갑자기 기생집이 떠들썩해져.
새로 부임하는 수령을 위한 잔치가 열린대. 그나마 유명한 기생들은 수령을 비롯한 높은 관직을 모시러가고 너와 같은 어린 기생들은 그 아래 하급 관리들을 맡게 됐어.
"안녕하시옵니까. 별이라 하옵니다."
"네 이름이 별이었구나."'
익숙한 목소리에 고개를 들자 이홍빈, 그 자가 너를 보며 웃고 있어.
"내 이리 너를 만날 줄 이야. 아버님의 잔치에 끌려오길 잘 했구나."
그러고 보니 새로 부임한 수령의 성이 이가(家)였다는게 기억나. 그때는 소첩, 신세를 졌습니다. 하고 급하게 고개를 조아리자 너를 빤히 보더니 얘기해.
"고맙구나. 약조를 지켜줘서."
"약조라 하시면...?"
의아한 얼굴로 그를 쳐다보자 그가 눈꼬리가 휘어질 듯 웃어.
"나를 다시 만날 때까지 살아있기로 약조하지 않았느냐."
괜스래 부끄러워진 네가 고개를 숙이자 그가 다가와.
숙인 네 턱을 살며시 잡고 고개를 올려.
얼굴을 가까이 대고 네 눈에 눈을 맞춰.
"화려한 화장이 어울리지 않는구나. 고운 얼굴을 분칠아래 다 숨겨놓고 뭘 그리 애써 감추는 것이냐."
"..."
"그래도, 그때도 지금도 여전히 곱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