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이는 조선시대 명문가의 자제.
예쁘고 참하기로 몇 동리 밖까지 소문이 자자할 지경이었어.
그러나 얼마전 일어난 반역 사건에 연루되어 온 집안이 풍비박산 나고 말았어.
세상 어느 곳보다 안전할 것만 같았던 별이의 집에 수십의 포졸들이 밀려들어오고
존경하던 아버지의 서재,
우아하신 어머니가 하던 꽃꽂이,
언제나 듬직하던 오라버니가 사준 작은 경대
그 모든게 산산조각났어.
붉은 호승줄에 묶여 무릎 꿇리어진 채, 너의 자랑이었던 아버지가 포졸의 육각모에 맞아.
쓰러진 아버지를 감싸던 오라버니 앞에 포도대장의 길다란 칼이 내밀어 지고 억울하다며 울부짖던 어머니가 혼절하며 쓰러지는 사이, 포도대장의 칼이 머리 위로 높이 들려. 칼에 비친 빛이 잠깐 빛나더니 아버지와 오라버니가 네 앞에 붉은 피를 흘리며 쓰러져.
스르릉, 하는 소름끼치는 소리와 함께 네 목앞에 내밀어진 칼이 턱을 들어올려.
"그나마 얼굴이 반반하구만. 이 년은 관기로 넘겨라."
그리고 관기가 된 너,
(1, 2 랑 안 이어져! 3의 상 편 있음ㅎㅎ)
3. 이홍빈 (2)
그는 매일 너를 찾아와.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아.
그저 자기 얘기를 하거나, 책을 읽거나. 시를 쓰거나 혹은 너를 빤히 바라보다 집에 갈뿐이야.
너는 그런 그가 이상해.
"...왜 매일 저를 찾으십니까?"
여느떄처럼 그와 아무말도 없이 보내는 밤. 가만히 서책을 보는 그를 보다가 너는 물어. 왜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냐고.
왜 술은 입에도 대지 않는 그가 그 누구보다 화려한 술상을 차려오게 하는 지.
화려한 복색을 하고 온 날이면 표정이 굳어지는 지.
왜 매일 너를 찾는 지.
이해가지 않는 것 투성이인 마음이 소란해서 물어, 왜 그러냐고.
"화려한 술상을 차리는 것은 술상에 들이는 돈 만큼 네가 기방에서 귀이 대해지기 때문이고,"
"..."
"화려한 복색을 하고 온 날이면 다른 이에게 술을 따랐을 네 모습이 떠오르기 때문이고."
"..."
"매일 너를 찾는 것은,"
"..."
"글쎄, 그것은 나도 잘 모르겠구나."
"..."
"허니, 차차 알아가도록 하자. 내가 왜 자꾸 너를 찾게 되는지. 시간은 많으니."
그 후로도 그는 너를 계속 찾아.
아기같은 맑은 얼굴을 하고 능청스러운 태도로 너를 대하는 그가 점점 편해져. 오라버니가 돌아온 것 같기도 해.
"오라버니...."
"내가 네 오라비와 그렇게 많이 닮았느냐?"
그를 보다가 너도 모르게 입 밖으로 오라버니라는 말이 나온 날,
너는 그에게 모든 걸 얘기하게 돼.
왜 네가 관기가 될 수 밖에 없었는지. 부모님은 어떻게 돌아가셨고, 오라버니는 어떤 사람이었는지.
네 이야기를 찬찬히 들은 그가 말해.
"내가 네 오라비가 되어주마."
"...예?"
"그리도 그리는 오라비가 되어주마. 그러니,"
"..."
"너는 내게 기대다오."
그 후로 너도 그에게 맘을 열게 돼. 그 마음이 오라버니를 향한 마음인지, 그를 향한 마음인지 헷갈리기 시작할 무렵,
동리에는 수령의 아들이 뻔질나게 기생집에 발걸음을 옮긴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해.
시간이 지날 수록 그가 호색한이라느니, 술독에 빠져 산다느니 하며 소문은 눈덩이처럼 커져.
너는 여전히 하루도 빼지 않고 너를 찾아오는 그가 점차 마음에 걸려.
그가 너를 찾아오는 시간도 점차 늦어지고 날이 밝기 전에 너를 떠나는 시간은 점차 빨라져.
"괜찮으십니까?"
"뭐가 말이냐."
"동리에..좋지 않은 소문이 돌고 있습니다. 허니 요새는 그만 찾아오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
"내가 오지 않으면..."
"예."
"네가 다른 이에게 안겨야 할 것 아니더냐."
"..."
"하나뿐인 여동생을 다른 이의 품에 안길 수 있는 오라비는 없단다, 별아."
네 머리를 쓰다듬고는 그는 서둘러 방을 나서.
내일 오마, 하고 남긴 그 말만 되새기며 너는 너도 모르게 그가 올 밤을 기다려.
그런데 하루가 가도,
이틀이 가도,
그렇게 몇일이 지나도 그가 오지 않아.
그가 걱정되지만 그 누구에게도 물을 수 없어.
감히 남들 앞에서는 입에 올릴 수도 없는 이름이야.
왜인지 모르게 불안한 마음만 가득해 질 무렵, 동리엔 새로운 소문이 돌아.
수령의 아들이 몹쓸 병에 걸렸다고.
'아들 기방 출입을 못하게 하려고 집에 가뒀는데 글쎄 내보내달라고 곡기도 끊고 버텼다네요.'
'아이고, 그거 뿐이야? 이번에 내리는 비를 다 맞았다고 하더라고.'
'아니, 그 큰비를요?'
'글쎄 말이야. 그걸 다 맞았으니 아무리 장정이라도 버텨? 지금까지 숨이 붙은 게 용하지.'
장터에 나갔다가 들은 아낙들의 말을 너는 믿지 않아.
여전히 머리를 쓰다듬던 느낌이 남아있는 걸.
머리 위에 손을 얹으면 아직도 그의 온기가 느껴지는 것 같은 걸.
내일 온다고 했느니, 오늘은 아닐 거라고. 그래서 못오는 거라고, 그러니 내일은 올거라고 스스로를 달래.
"별아...별아...!"
너도 모르게 잠든 새벽, 누군가 너를 불러. 급하게 호롱을 키자 문 뒤로 사내의 그림자가 비춰.
"별아...문을 열어다오."
그의 목소리라는 생각이 들기도 전에 벌써 문을 열고 있어. 너무 그리워던 목소리니까, 그 눈빛이니까.
문을 열자 문에 기대고 있던 그가 네 품에 풀썩 쓰러져.
그가 누운 채 너를 보며 얘기해.
"별아, 오라비가 늦어서 미안하구나."
오랜만의 본 그의 얼굴이 너무 상해서 눈물이 날 것 같아.
푸석해진 입술과 피부, 생기를 잃은 눈빛이 그가 아닌 것 같아.
떨리는 손을 그의 뺨에 갖다대며 네가 말해.
"아닙니다. 아닙니다. 전혀 늦지 않았습니다."
"...별아.."
"내일 온다고 하시지 않으셨습니까? 늘 내일을 기다렸습니다. 그렇게 저는 꼬박 하루만 기다린 것입니다. 그러니,"
"..."
"부디 말씀하지 마십시오. 왜이리 힘들어 보이십니까, 왜이리..."
말을 다 하지 못하고 네가 눈물을 흘려. 네가 흘린 눈물이 그의 볼을 타고 흘러.
그가 손을 내밀어서 네 눈물을 닦아줘. 그리고 네 뺨에 손을 대며 얘기해.
"별아, 나는 한 번도."
"...말씀하지 마십시오...."
"나는 단 한번도 네게 오라비이고 싶었던 적이 없었다."
"...도련님 제발요..."
"네겐 늘 정인이고 싶었다, 별아."
"...도련님 제발.."
"별아, 처음도, 지금도 너는 늘 내겐 정인이다."
"먼저 가서 네 오라비에게,"
"..."
"너는 늘 자랑스럽고 예쁜 사람이었노라, 얘기해주마."
"..."
"그러니 이제 악몽을 꾸지 말거라."
"...도련님 제발..."
"사랑한다, 별아."
*
제가 이 구역의 새디스트입니다ㅇㅅㅇ
홍빈도령을 죽이기 위해 이 먼 길을 돌아왔습죠..
이제 옮김은 끝이구...
하느님 부처님 제발 제가 이 다음글을 쓸 수 있도록 해주세요....(기도)
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