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주 어렸을 시절, 할아버지께서 우리집 마당에 커다란 나무를 하나 심으셨었다.
그 나무의 이름은 여호수아 나무. 인도자라는 뜻을 가졌다.
그 어린 시절, 할아버지께서는 나에게 이런 말씀을 해주셨다.
"여호수아 나무에는 정령이 깃들어있어. 네가 힘들 때, 조언을 구하면 인도자라는 이름에 맞게
널 인도해줄거다. 물론 할아버지는 한번도 본적이 없지만."
물론, 나는 그 얘기를 믿지 않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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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달 전 할아버지는 갑작스러운 뇌졸중으로 돌아가셨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나는 몇달을 울며 지새웠다.
내가 울다 지쳐 잠이 들면 항상 꿈에 어떤 남자가 나와 날 달래주곤 했었고,
난 그가 여호수아 나무의 정령이라고 믿었다.
"울지마. 울지마 세봉아"
"나 너무 힘들어요. 할아버지가 너무 보고 싶어"
"할아버지도 네가 많이 걱정 되실거야."
"왜, 갑자기. 왜"
"울지마. 울지마"
"내 이름은 어떻게 알아요?"
"할아버지가 늘 내 옆에서 네 이야기를 하셨으니까. 물론, 나는 할아버지랑 대화를 나누지는 못 했지만"
"그 쪽은 이름이 뭐예요?"
"조슈아."
매일 밤, 나는 그의 품에 안겨 한참을 울었고,
그는 그런 나를 안고 조용히 달래줄 뿐이었다.
그 당시 여호수아 나무는 내 허리 춤 정도에 오는 작은 나무였다.
그리고 며칠 후, 사촌인 민규네가 날 거두어주셨고, 난 그 집을 떠나게 되었다.
그리고 그 남자는 꿈 속에서 다시는 볼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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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별에 무뎌지고 난 뒤, 난 할아버지의 유품을 정리하기 위해
내가 살던 나의 집, 그리고 여호수아 나무를 찾았다.
분명히 내 허리춤 정도 오는 작은 나무였는데 어느새 나보다 머리 하나는 더 커있었다.
아마, 내가 이별에 무뎌지기까지 많은 시간을 허비한 탓이겠지.
"민규야"
"응?"
"할아버지 유품들 다 정리하고 나면, 이 나무는 어떻게 돼?"
"베어버리실거래. 그리고 저 나무로 무슨 조각품 만든다고 하시던데?"
"그럼....."
무언가 이상한 감정이 들었다.
내가 울며 잠들던 그 밤에 날 달래주던 조슈아.
"오늘 여기서 자고 가도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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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의 유품을 정리해 트렁크에 싣고,
민규와 이모부는 거실의 소파에서
나는 내 방의 딱딱한 나무 침대에 몸을 뉘였다.
오늘이 지나면, 할아버지와의 추억도, 날 달래주던 그도 모두 기억 속으로 사라지겠지.
무언가 공허한 기분에 이불 속으로 파고 들었다.
내 주변에 아무도 남지 않았다는 생각에 미치자, 다시 그 정령이 떠올랐다.
항상 포근하게 날 안아오던 그.
그러다 잠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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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색 포근한 공간.
무언가 익숙해.
"오랜만이네?"
"어?"
"어느새 많이 컸구나. 예뻐졌어"
"보고싶었어요. 정말"
"나도"
익숙한 그의 얼굴을 보자 눈물이 흘러 뺨을 타고 바닥으로 떨어졌다.
떨어진 눈물은 바닥에 커다란 구멍을 냈고,
그 구멍을 본 그의 얼굴은 잠시 일그러졌다, 이내 평온한 표정으로 돌아왔다
자각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내가 그를 좋아했었나보다.
"조슈아"
"말하지마. 나도 그래"
"조슈아, 내 손 놓지마요. 가지 마"
"세봉아"
따뜻하게 눈을 맞춰오는 그.
"네가, 어른이 되면. 날 이해할 수 있을까?"
"아니야, 그러지마요. 나 여기서 계속 살게요"
"아니, 넌 떠나야해. 그리고 난 사라져야해"
담담한 그의 말에 눈물은 계속해서 흘러 바닥에 더욱 큰 구멍을 냈고,
하얀 이 공간은 점점 어둡게 물들어져갔다.
"많이 보고 싶을거야"
"안아주세요."
"음?"
"이제 못 보니까, 그러니까. 안아주세요"
"그래"
그가 날 조심스래 안아왔다.
점점 더 어두워지는 이 공간,
이제 그의 얼굴도 잘 보이지 않는다.
그때 입술에 느껴지는 말캉한 촉감.
잠시 입술이 맞물렸다 이내 쪽, 하는 소리와 함께 떨어진다
"보고 싶을거야. 세봉아. 그래도, 이제 날 잊자. 이제 다시 시작하자"
그리곤 내가 서있는 그 공간은 영원한 암흑으로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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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질듯한 머리,
"아, 씨"
이상하게 축축한 배게와 퉁퉁 부어버린 눈.
머리만 더 아프게 머릿속을 맴도는
"어른이 되면"
이 말만 계속 머릿속에 맴돌아.
어지러워
분명히 무슨 꿈을 꾸었는데 아무런 기억이 나지 않는다.
대충 눈곱을 때고 거실로 내려갔다
"야, 민규야"
"응?"
"나 머리가 너무 아픈데 물 한잔만"
"아, 손이 없어 발이 없어어!"
"아 응!!"
그때 들리는 귀를 찢는 전기톱 소리.
그리고, 쿵. 하며 바닥으로 떨어지는 나무 한그루.
이상하게 공허해진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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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달 뒤, 새해가 밝고
나와 김민규는 어른이 되었다.
"야양야야아ㅏㅏ!!"
"아, 왜!"
"그 조각품말야,"
"응?"
"아 왜, 그 니네 집 마당에 있던 나무로 만든 조각품"
"응."
"오늘 집으로 온데"
"아, 그래?"
"그 나무 이름이 뭐였더라..?"
"여호수아 나무 였을걸?"
"여호수아 나무가 무슨 뜻인데"
"몰라"
"그럼 검색을 해보자."
"그러시던가"
꿀잠을 자고 있던 일요일 아침,
김민규가 여호수아 나무 이야기를 하며 내 방으로 쳐들어왔다.
아니, 나 자야됀다고.
"아, 맞다 인도자"
"인도자?"
<여호수아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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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서부 개척시대인 1851년경 모라비안 교도들이 당시 척박한 땅이었던 서부를 개척해 나가다
기진맥진하여 어떤 고개를 넘어 왔을 때 천사들이 그들을 반기는 모양을 보게 된다.
알고보니 바로 이 나무들이었고, 여호수아의 이름을 따, 여호수아 나무라고 불리게 되었다.
인도자, 라는 뜻이 있고. 영어로는 Joshua tree. 조슈아 트리이다.
그리고 눈에 들어온 세글자.
조슈아
그리고 떠오른 그 날의 모든 기억들.
어른이 되면, 널 이해할줄 알았는데,
달라질 줄 알았던 모든 것들이
자꾸 나를 괴롭혀.
보고싶어. 조슈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