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이는 조선시대 명문가의 자제.
예쁘고 참하기로 몇 동리 밖까지 소문이 자자할 지경이었어.
그러나 얼마전 일어난 반역 사건에 연루되어 온 집안이 풍비박산 나고 말았어.
세상 어느 곳보다 안전할 것만 같았던 별이의 집에 수십의 포졸들이 밀려들어오고
존경하던 아버지의 서재,
우아하신 어머니가 하던 꽃꽂이,
언제나 듬직하던 오라버니가 사준 작은 경대
그 모든게 산산조각났어.
붉은 호승줄에 묶여 무릎 꿇리어진 채, 너의 자랑이었던 아버지가 포졸의 육각모에 맞아.
쓰러진 아버지를 감싸던 오라버니 앞에 포도대장의 길다란 칼이 내밀어 지고 억울하다며 울부짖던 어머니가 혼절하며 쓰러지는 사이, 포도대장의 칼이 머리 위로 높이 들려. 칼에 비친 빛이 잠깐 빛나더니 아버지와 오라버니가 네 앞에 붉은 피를 흘리며 쓰러져.
스르릉, 하는 소름끼치는 소리와 함께 네 목앞에 내밀어진 칼이 턱을 들어올려.
"그나마 얼굴이 반반하구만. 이 년은 관기로 넘겨라."
그리고 관기가 된 너,
(1, 2, 3 안이어져!)
4. 한상혁 下
"싫습니다."
네 대답을 들은 그의 표정이 빠르게 굳어. 그 표정을 보는 너는 가슴이 아파.
그때서야 깨달아. 지금 이 사람이 네게 얼마나 소중해졌는지. 왜 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가슴이 아팠는지, 함께 외로웠는지.
그럴수록 너는 더 단호한 표정을 지어.
"싫습니다, 마마."
"....이유가 무어냐."
무수리의 피라는 이유만으로 그 무엇도 쉬이 얻을 수 없는 그가 역모를 꾸몄다는 죄명으로 기녀가 된 자신을 데려간다면,
그가 궁에서 인정받을 수 있는 그 어떤 방법도 없어진다는 걸, 넌 이미 알고 있었으니까.
"...네가 말했지않으냐. 권세란 아무것도 아니라고...나도...나도 모든 걸 버리고 그저 너와..."
그리고,
그런 그가 모든 걸 버리고 행복할 수 없다는 것도.
넌 이미 알고 있었으니까.
"전, 궁으로."
"...별아, 제발."
"가지 않을 겁니다."
잠시 너를 바라보던 그가 눈을 질끈 감아. 천천히 눈을 다시 뜬 그가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방문을 나서.
그가 문 앞에서 한참을 서 있다는 걸 알면서도 너는 돌아보지 않아.
얼마뒤 다시 기방 출입을 시작한 그는 네 방을 찾지 않아.
대신 누구보다 화려한 복색을 하고, 누구보다 호화로운 잔치를 벌여. 양 옆엔 그가 천박하다고 했던, 그와 한번이라도 동침하고자 안달이 난 기녀들을 끼고.
너와 눈이라도 마주칠 때면 못볼 거라도 본 냥 표정을 굳히며 눈을 피해.
그런 그를 보며 잘 되었다고, 처음부터 이렇게 됐어야 한다고 너는 스스로를 다독여. 그렇지만 아무도 없는 텅빈 방은 쓸쓸하기만 해.
그가 풀어놓은 많은 말들, 그리고 그 말과 함께 풀려가던 네 마음이 갈무리되지 못한 채 방을 맴돌아.
괜히 그 방에 들어가기 싫어진 너는 문 앞에 앉아. 별도, 달도 없이 그저 어둡기만 한 하늘을 보니 꼭 그가 생각나.
"저기에 별하나 뜨면 좋으련만."
텅빈 하늘을 보며 너는 혼잣말을 해. 별하나가 떠서 그가 외롭지 않고, 슬프지 않기를.
그때 옆에서 웃음소리가 들려와. 혁의 눈에 띄고 싶어 안달이던 기녀들이야.
"대군마마 옆에서 꼬리칠 때는 언제고 꼴 좋구나. "
한동안 멈췄던 칼날같은 말들이 다시 너를 향해.
잊혀진 줄 알았던 상처가 다시 헤집어져.
"대군이 궁에 가자는 걸 거절했다지."
"건방진 년. 행수어른만 불쌍한 거지 뭐. 저년 팔아먹고 돈 좀 만지나 했을텐데."
"거절한 이유가 뭐니? 그 잘난 이유 좀 들어나 보자."
"행수께는 대군이 무수리의 피라서 싫다고 했다던데?"
"얘, 역모를 꾀하다 몰락한 가문아니니. 대군 정도로 성에 찼겠어? 적어도 임금님은 되어야 한단다, 얘."
깔깔깔하고 높은 웃음소리가 조용한 밤을 갈라.
저 근원도 모를 말들이 너와 그를 함께 욕보이고 있어.
문 안으로 들어가버리면 되는데, 거기는 안전한데, 저 작은 방으로 들어가면 되는데 몸이 굳은 듯 말을 듣지 않아.
그저 눈을 질끈 감고, 귀를 막고 제풀에 지쳐 그만두기를 기다리는 찰나 갑자기 모든 웃음소리가 멎어.
그리고
철썩,
살과 살이 맞닿는 소리가 나.
"천박한 년. 감히 그 입에 누굴 올리는게냐."
"...소...소첩이 죽을 죄를 지었나이다..."
너는 익숙한 목소리에 살며시 눈을 떠.
눈 앞에는 당장이라도 죽을 것 처럼 하얗게 질린 얼굴로 머리를 조아리며 빌고 있는 기녀 셋과 그들 앞에서 아무 표정도 없이 서 있는 그가 보여.
"감히 폐하를 그 천한 입에 올리다니. 죽고 싶은 게로구나."
"아닙니다...아닙니다...소첩이 경..경거망동 하여..."
"그래. 경거망동한 행실을 했으면 책임을 져야지 않겠느냐."
"마마...!'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당장이라도 그들을 죽일 것 같아서 너도 모르게 그를 불러.
너를 향해 돌아본 그가 잠시 멈춘 채 너를 바라봐. 아무런 표정도 없던 그의 얼굴이 점차 일그러져. 마치 우는 것 같기도 하고, 화난 것 같기도 해.
그가 천천히 네게 다가와.
그 틈에 기녀들은 도망가지만 그는 아무것도 신경쓰이지 않는 것 처럼 멈추지 않아.
어느새 네 바로 앞에서 너를 내려다보고 있어.
"...마마...여긴 어떻게..."
미처 네 말이 끝나기도 전에 네 팔을 당겨 일으켜 세워.
그리고 방 안으로 너를 거칠게 밀어넣어.
비틀거리는 몸이 넘어지려 하자 그의 양 손이 네 어깨를 잡아. 어깨가 아파서 표정이 저절로 찡그러져.
"너..."
"...마마... 왜 이러십니까..."
"저 년들의 말이 사실이냐."
"..."
"저 천박한 년들의 말이 사실이냔 말이야."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내가,"
"..."
"내가 아무런 힘이 없는 왕자라서...! 그래서 나를 거절했다는게 사실이더냐."
떨리던 몸이 차갑게 식는 것 같아. 너는 텅빈 눈으로 그를 바라봐. 그가 네 어깨를 잡고 흔들어.
대답해, 하고 그가 낮게 말해. 한치의 흔들림도 없이 너를 바라보는 그의 눈을 봐.
그 안에 나를 향한 믿음이 있긴 할까?
아니 애초에 내가 그에게 믿음을 기대할 수 있는 주제가 되나. 고작 천한 기생일 뿐인데.
"예."
너는 그를 향해 말해. 곧게 선채 흔들림 없이 말해.
그런 너를 보던 그의 눈동자가 흔들려. 아무말도 못하고 너를 바라보던 그의 손에서 힘이 빠져. 네 어깨를 짓누르던 그의 손이 바닥을 향해 떨어져.
"별아...내 다시 물으마....사실이더냐."
"예."
그의 표정이 한순간에 무너져. 저런 말들에 흔들리는 진심이기에, 너는 확신해.
나와 함께 하는 건 그에겐 도피일 뿐이라고. 절대 그는 행복하지 못한다고.
그러니 그가 단념할 수 있게, 내 입에서, 더 독하게.
너는 입술을 꽉 깨물어.
눈을 질끈 감아.
그에게 한 마디를 더 하려는 찰나,
너는 한 순간에 바닥으로 밀쳐져. 놀라서 눈을 뜨자 네 바로 앞에 그의 눈이 보여.
이마가 맞닿을 듯 가까운 그의 얼굴과 어느새 네 양손목을 그러쥔 그의 손이 보여.
마마, 하고 손에 힘을 줘보지만 일어날 수 없어.
"그래, 네가 바라는게 그것이라면."
"..."
"네 년의 머리에 화초를 올려줄 것이 아니라,"
"..."
"면류관(*왕관)을 씌워줘야 만족하겠구나."
"...마마..."
그의 숨결이 입술에 닿을 만큼 그가 가까이 다가와.
그리곤 너를 보며 말해.
".....네 가족들이 반역을 꾀하다 죽었다지. "
"..."
"내일이 되면 보아라."
"..."
"너 때문에 궁중에 피바람이 불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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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아아아아아 드디어 혁이 끝!!!!!!!!!!!
저 마지막 대사 하나 쓰려고 상중하의 길을 걸어왔습니다 여러분! 드디어 끝났어요!!
정말 너무 좋아요 너무 길었죠? 혁이꺼 연재하는 기분이었어요...그치만 쓰는 저는 재밌었어요히히히
혁이랑 쟈니는 굉장히 다양한 심리를 표현하기 좋은 캐릭터같아요.
마냥 아기같으면서도 외롭고 그래서 욕심많고 원한는걸 이루지 못하면 성격이 확확 개차반이 되는 캐릭터에 되게 어울린다고 생각하거든요!
혁이도 그렇게 써보려고 했는데....죄송해요...(손을 내려친다)
구독료가 없는 거에 의아하신 분이 계셨는데 저는 포인트보다 많은 분들이 읽으시고, 또 댓글 달아주시는게 너무 좋아요!
댓글은 정말 늘 힘이 돼요 읽어주셔서 늘 감사합니다:-)
+ 이쯤되면 해피엔딩을 못쓰는 병이 있는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