셋
( 부제 : 겨울 여름 그 사이 가을 )
겨울 X 가을 X 여름
전정국 X ㅇ탄소 X 김태형
우리의 시작은 딱히 정해지지 않았었다.
나와 전정국은 같은 미술학원 출신이었으며 김태형은 건너 알던 같은 학교 남학생이었다.
고등학교 3학년 여름방학 중반부에 들어섰을 즈음 김태형은 중학교 친구라는 전정국을 쫄래쫄래 따라 뒤늦게 우리 학원에 다니기 시작했다. 조그맣던 학원 안에선 나와 전정국의 마주 본 책상 대각선엔 석고상과 이젤 하나가 놓여 져 김태형의 자리가 되었다.
전정국과 나는 자리를 마주하고 있음에도 서로 필요한 말 이외에는 하지 않던 사이였다. 나 역시 낯을 가리는 쪽이었고 전정국은 나보다 더 낯을 가리면 가렸지 나보다 못하진 않았던 것 같다. 거기다 남녀공학인 나와 김태형과는 달리 남고에 다니던 전정국은 특히나 나에게 더 낯을 가렸다.
“어, 안녕.”
“어? 어, 안녕.”
전정국을 따라 학원에 처음 들어섰던 김태형은 연필을 깎고 있던 나에게 와 대뜸 헤실 거리며 인사했었다. 안면만 있었을 뿐 서로 말을 주고받은 적이 한 번도 없었던 사이였고 나는 당황한 채 손을 흔들어주었다. 이리저리 신기한 듯 학원을 둘러보는 김태형에게서 시선을 돌렸을 때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는 전정국과 눈이 마주쳤고 나와 눈이 마주치자 아무렇지 않은 듯 쓱 눈을 피하던 전정국이었다.
김태형이 미술학원에 나오기 전까지는 저녁시간이나 방학 중 점심시간이 되면 나는 학원의 데멘데멘한 여자 친구들, 동생들과 우르르 몰려 밥을 먹었고 전정국 역시 제 친구들이나 동생들과 우르르 몰려다니곤 했었다.
오전 보충 수업을 마치고 점심까지 먹은 채 학원에 와 저녁시간이 되도록 개체 연습이며 질감 표현 같은 개인 연습을 하던 중이었다. 저녁시간이 가까워졌고 곧 저녁을 먹고 오라는 원장선생님의 말씀에 나와 전정국은 밍기적 팔에 끼웠던 팔 토시를 빼내고 있었다. 그때 하루 종일 빽빽이 선긋기 중이던 김태형은 탁 소리가 나게 연필을 내려두고선 홱 돌아 나와 전정국을 쳐다보며 말했다.
“야, 밥 먹자.”
나는 전정국에게 하는 말이겠거니 하고는 눈치를 보며 책상을 정리하고 있었다. 전정국은 김태형을 한 번 힐끔 보고는 제 자리에서 일어섰고 어느새 나와 전정국 책상 앞으로 와 서 있던 김태형은 내 책상을 손바닥으로 툭툭 치며 말했다.
“빨리, 배고파.”
“나?”
“엉, 빨리.”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키며 되물었고 김태형은 울상을 짓고서 고개를 끄덕거리며 내 팔을 잡아끌기까지 했다. 당황한 나는 전정국을 쳐다보았고 전정국은 나와 눈이 마주치자 또 김태형에게로 눈을 피해버렸었다. 자꾸 보채는 김태형에 나는 손을 씻어야 한다며 빠져나가려했고 그럼 다 같이 손을 씻고 가자며 양 손으로 내 팔과 전정국의 팔을 잡아 끌어가는 김태형이었다. 얼떨결에 그 뒤로 우리 셋은 항상 점심, 저녁을 같이 먹는 사이가 되었고 학원에 붙어 있는 시간이 어마했던 남은 고3 입시 시간 동안 꽤 친한 사이가 되었다.
“야, ㅇ탄소!”
“아, 안녕.”
“와, 너 학원가는 거면서 왜 치사하게 혼자 가냐?”
딱히 학교에서도 그렇게 치댄다는 것은 없었지만 저를 두고 먼저 학교를 나서 학원에 가는 날이면 입이 튀어나와서는 징징거리던 김태형이었다. 학교 안에서 저와 마주치면 내 앞에 손을 들어 박수를 치듯 툭하고 치며 인사를 하던 김태형이었고 가끔 급식실이나 이동수업 중 마주칠 땐 지나가며 머리 위에 손을 한 번 얹었다 갈 뿐이었다.
학교가 달랐기에 학원에서야 보게 되던 전정국은 어느 순간부터 나와 김태형이 내리던 학원 앞 버스 정류장에서 매일 우리를 기다렸고 나란히 셋이 학원에 들어가는 일이 무슨 약속처럼 계속 되어 왔었다. 그 동안 낯을 가리는 것 같던 전정국은 나에게 장난도 툭툭 거는 사이가 되었고 언제 한 번은 떠들어대다 원장선생님께 혼나 손을 들고 벌을 서기까지 했었다.
“아, 전정국 왜 포스터 빌려 달라 그래가지고.”
“야, 나는 한 마디 했다, 한 마디.”
말이 없는 성격이라 생각했던 전정국은 김태형처럼 가볍지는 않았지만 맞장구를 치고 굳이 물통에 물을 뜨러 가는 길을 돌아가 내 정수리를 툭툭 건드릴 만큼 장난스러운 성격이었다.
김태형은 항상 개인 연습 시간이 주어지면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며 그림을 그리는 나와 전정국을 보고는 툴툴거렸다. 늦게 입시를 시작한 만큼 보편적인 디자인 실기 시험 입시를 하는 나와 전정국과 달리 석고소묘를 실기 시험으로 준비하던 김태형은 항상 연필 냄새를 달고는 혼자 대각선 구석에 앉아있었다. 쉬는 시간이나 점심, 저녁시간이 되면 쿵쾅거리며 나와 전정국의 책상으로 와서는 둘이 뭐가 그렇게 재밌었냐며 따지기 일 수였고 그럴 때면 나와 전정국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붙어대는 김태형을 떼어놓기 바빴다. 어느 순간부터 우리 셋은 함께였고 묶여있는 것 마냥 하나를 부를 땐 셋이 함께였다.
결국 우리 셋은 같은 대학교에 진학하게 되었다. 나와 전정국, 김태형은 각각 패션디자인과, 가구디자인과, 실내디자인과 신입생이 되었었다. 왜 따라 오냐며 서로 진절머리가 난다고 짜증을 냈지만 결국엔 미술대학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 가서도 셋이 꼭 붙어 있곤 했었다. 자취방 역시 같은 골목 마주본 건물들에 하나씩 터를 잡았고 슬리퍼를 찍찍 끌고서 한 밤중에 들락날락 거릴 수 있는 정도였다. 서로의 자취방이 제집인양 드나들곤 했지만 나는 예외였다. 여자라 배려한답시고 절대 내가 먼저 데리고 들어가지 않는 이상 나의 자취방에 발을 들이는 일이 없었고 새벽 중 제 자취방에 내가 찾아오면 둘 다 너나 할 것 없이 나를 타박하며 나의 자취방 앞까지 다시 모셔다 놓곤 했다.
오후 11:48 님들 어디
전정국
미대 오후 11:53
김태형
엉아는 후문 오후 11:55
1 오후 11:56 ㅇㅇ 가겠음
버스가 끊긴다며 다 떠나버린 과실에 혼자 앉아 과제를 하는 중이었다. 매일 울리다시피 하는 단톡방에 카톡을 보낸 지 얼마 안 되어 답장이 왔고 나는 미대라는 전정국에 핸드폰을 덜렁 들고는 과실을 나왔다. 과실에서 나와 다른 층에 있는 전정국의 과실로 가기 위해 엘리베이터 앞에 섰을 때 김태형에게서 전화가 왔고 나는 올라오고 있는 엘리베이터를 보며 전화를 받았다.
“왜.”
“온다며, 어디야.”
“뭔 소리, 너한테 간다는 말 아닌데?”
“아, 왜!”
김태형은 저에게 간다는 소리가 아니었다는 말에 징징거리듯 소리를 질러댔고 나는 곧 도착할 엘리베이터에 전화를 끊으려 했다.
“끊어, 나 엘리베이터 탈거야.”
“아, 나 말고 누구!”
“너 말고 다른 남자, 어.”
징징거리는 김태형에게 일부러 장난치듯 말하며 열리는 엘리베이터를 타려 하다 떡하니 엘리베이터 안에 서있는 작업복을 입은 다리에 고개를 들었다. 고개를 들자 먼지가 묻은 작업복을 입고서 고개를 삐딱하게 들고 있는 전정국이 보였고 나는 아직 김태형이 무어라 소리를 쳐대고 있는 전화기를 들고서 전정국에게 손을 흔들었다.
“다른 남자 누구.”
“뭘?”
문이 닫힐 새라 엘리베이터에 올라타 1층 버튼을 누르고 돌아 마주 본 나에게 묻는 전정국이었고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전정국은 마음에 들지 않는 표정을 하고서 내 머리에 아프지 않게 꿀밤을 먹였고 나는 표정을 찡그리고 짜증스럽게 전정국에게 주먹을 휘둘렀다.
“시간이 몇 신데 혼자 어디 가냐?”
전정국은 팔짱을 끼고서 삐딱하게 나를 내려다보았고 나는 그제야 상황 파악이 돼서는 괜히 웃는 얼굴로 전정국을 약 올리듯 대답했다.
“갈 데 많지.”
엘리베이터는 1층에 도착했고 나는 나를 흘겨보는 전정국에게 어깨를 으쓱거리고는 먼저 엘리베이터를 내렸다. 어차피 심심해 전정국에게 가 노닥거리다 올 생각이었지만 매번 나를 놀려먹는 전정국과 김태형을 골려주기라도 하자며 무작정 전정국을 따돌리듯 뛰어갔다. 어차피 보폭이 큰 전정국에게 빨리 따라잡힐 게 뻔했지만 일단은 로비를 가로질러서는 중앙현관 유리문을 열고 나갔다. 꽤 쌀쌀한 날씨에 겉옷도 챙기지 않고 그냥 무작정 뛰쳐나온 것에 순간 후회했다. 전정국은 아니나 다를까 미대 앞 주차장을 뛰어가면 뒤를 돌아보자 벌써 유리문을 열고 나오고 있었고 다시 고개를 돌리려던 때 누군가 확 팔을 낚아채 잡아당기는 손에 휘청했다. 휘청하는 나를 잡아 제 품에 가둔 누군가에 놀라 고개를 돌리자 바로 코앞에 보이는 김태형의 얼굴이 보였다. 술 냄새를 그득 달고 있는 김태형은 진탕 마셨는지 눈이 풀려있었고 내 얼굴 코앞에 제 얼굴을 두고선 물었다.
“나 말고 누구 만나러 가.”
징징거릴 줄 알았던 목소리완 달리 낮은 목소리에 나는 당황해 말문이 막혔고 김태형의 품 안에 갇혀서는 김태형을 마주보고 눈만 멀뚱거리고 있었다. 숨을 쌕쌕 내뱉는 김태형에게서는 술 냄새가 가득했고 지금 계속 가까워지는 얼굴이 기분 탓인지 정말 가까워지고 있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나는 얼이 나가 있었고 김태형이 정말 가까워졌을 즈음 김태형의 품 안에서 나를 빼 내어 끌어당기는 손이 나타났다.
“미친 새끼가.”
놀란 탓인지 자꾸 쿵쿵 대는 몸에 전정국의 품으로 옮겨가서도 얼이 나갔다. 김태형은 정말 취한 것인지 제 어깨를 툭 미는 전정국의 손에 휘청하고는 바닥에 주저앉았다. 전정국은 나를 제 품에 두고는 한 팔로 어깨를 감싸고 있었고 어깨를 감쌌던 손으로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물었다.
“야, 괜찮아?”
그 물음에 나는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끄덕 끄덕거렸고 다시 내 어깨를 감싼 전정국은 바닥에 주저앉아 있는 김태형에게 헛손질을 하며 신경질을 냈다.
“애 놀랬잖아, 새꺄.”
전정국이 신경질을 내자 김태형은 방금 전 낮은 목소리는 어디가고 다시 전처럼 돌아와 어린 아이가 징징거리듯 시끄럽게 징징댔다.
“아, 어디 가는데! 나 말고 누구! 어디 가냐고!”
“닥쳐, 조용히 해.”
시끄럽게 소리를 지르는 김태형에게 욕지거리를 내뱉은 전정국은 내 어깨에 제 팔을 걸치고는 김태형을 두고서 나를 데리고 학교 근처 편의점으로 향하고 있었다. 김태형은 우리가 저를 두고 가자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비틀거리며 쫓아오고 있었고 나는 아직 어리둥절한 상태였다.
편의점까지 기어코 쫓아 온 김태형은 내 옆에 앉아서 계속 징징거리고 있었다. 전정국은 김태형의 머리를 한 대 때리고는 편의점으로 들어가 초코우유와 숙취 음료를 하나씩 사들고 나왔다. 그리고는 나와 김태형 사이에 의자를 끌고 와 비집고 들어와 앉았고 시끄러운 김태형 입에 숙취 음료를 억지로 먹이고는 초코우유에 빨대를 꽂아서는 내 손에 들려주었다.
“왜 내말은 들어주지도 않는데!”
“여명이나 쳐드세요.”
“왜! 안 취했다니까!”
“예,예.”
자꾸 소리를 지르는 김태형을 무시한 전정국은 아예 김태형을 등지고 앉았고 나를 보고서 말했다.
“야.”
나는 초코우유를 받아들어 한 모금 빨아 마시고는 전정국을 쳐다보았고 전정국은 또 못마땅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봤냐?”
“뭘.”
“김태형 새끼도 저러는데 뭘 다른 남자를 만나. 아주 그냥 발랑 까져가지고.”
그런 전정국에 나는 그냥 흘겨보고 말았고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려했다. 그러자 내 핸드폰을 툭 낚아채간 전정국은 반사적으로 손을 뻗는 나에게 말했다.
“나 말고 믿을 놈이 없어, 알았어?”
“아, 내 놔, 새끼야.”
“대답 안 하냐.”
나는 전정국을 무시하고서 손만 뻗었고 핸드폰을 제 작업복 주머니에 쏙 넣어버리는 전정국이었다. 그것을 빼내려 몸을 숙여 손을 뻗는 내 얼굴을 감싸 쥐어서는 들린 전정국은 아까 전 김태형처럼 제 얼굴을 내 얼굴 가까이 가져다댔고 나는 또 놀라서 굳어 버렸다.
“대답 안 해? 알겠냐고.”
나는 눈을 이리저리 굴렸고 자꾸 재촉해가며 제 얼굴을 더 가까이 들이대는 전정국에 얼른 고개를 끄덕끄덕거려주었다. 그제야 얼굴을 붙잡고 있던 손을 놓고서 내 머리를 한 번 툭 치듯 쓰다듬는 전정국이었고 나는 어색하게 초코우유를 들어 한 모금 빨아 먹었다. 그 와중에도 김태형은 계속 징징거리며 소리 지르고 있었고 전정국은 그런 김태형의 머리를 툭툭 치고 있었다.
그날은 그러고서 학교에 들러 가방을 챙겨서는 아직도 시끄러운 김태형과 전정국을 양쪽에 달고서 자취방으로 돌아왔다. 나를 집에 넣어다 두듯 밀어 넣고는 가버리는 둘이었고 정확히 말해 나를 밀어두고 김태형을 끌고 가는 전정국이었다.
다음날 김태형은 숙취 때문에 죽겠다며 나와 전정국을 불러내 근처 해장국집으로 데려갔고 아무 기억도 안 나는 건지 기억이 나도 별 일 아니라는 건지 아무렇지 않았다. 전정국 역시 그랬고 그런 김에 나도 자연스럽게 평소처럼 아무렇지 않았다.
종강은 빠르게 다가왔고 마지막 과제 제출까지 끝이 났을 때 김태형에게서 전화가 왔다.
“어디야, 당장 말해.”
“뭐래, 미대. 로비야.”
“오케이, 거기 가만히 있어.”
김태형은 뚝 전화를 끊었고 나는 무슨 일인가 싶어 동기들에게 먼저 가라며 손을 흔들고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곧 방정스러운 발소리가 들려왔고 뒤에서 덮치듯 어깨동무를 해대는 김태형이었다. 나는 신경질을 내며 김태형을 밀어냈고 울상을 짓는 김태형 뒤로 걸어오는 전정국이 보였다.
“뭐, 왜.”
“왜 라니, 너무하다.”
김태형은 울상을 지으며 내 팔을 붙잡고 늘어졌고 어느새 다가온 전정국은 김태형을 떼어내 저쪽으로 밀어냈다.
“다 끝났냐?”
“어, 너네는.”
“끝났으니까 김태형한테 끌려왔지.”
전정국도 김태형이 불러 온 것인지 이제 막 작업을 끝낸 듯 보였고 나와 전정국이 저를 쳐다보자 씩 웃는 김태형이었다. 그리고는 나와 전정국 사이로 비집고 들어와 어깨동무를 하고는 끌고 가듯 미대를 빠져나갔다.
김태형은 자취방 골목 근처 마트로 들어갔고 무작정 술이며 안주거리를 담아내기 시작했다. 나와 전정국은 멍청히 그 모습을 쳐다보다 뭐하냐는 물음에 헛웃음을 치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야, 족발은 네가 쏴라, 전정국.”
“그래, 인간적으로 족발은 네가 쏴.”
“뭘 나야, ㅇ탄소는 뭐냐.”
“난 같이 마셔주는 것만으로 감사해야되는 거 아님?”
“놀고 있네.”
술이며 안주거리를 한보따리 사서는 계산을 마친 김태형은 전정국에게 막무가내로 말했고 전정국은 나에게 따지고 있었다. 제일 주량이 약한 김태형은 오랜만에 셋이서 달려보자며 신이 나 있었고 종강도 했겠다 덩달아 들뜬 나는 둘을 데리고 나의 자취방으로 데려왔다.
나의 자취방에 데려왔으니 족발을 네가 쏘라며 전정국의 지갑을 억지로 열게 했고 초저녁 즈음부터 시작 된 술판은 밤 11시가 되도록 계속 되었다. 주량이 제일 약한 김태형은 취한 지 오래였고 나와 전정국 역시 취기가 올라 있었다. 게임도 했다 입시시절 이야기를 했다 한 것 들 떠 있었다.
“야, 너 근데 진짜 그때 누구 만나러 가려고 그랬냐?”
과자를 주워 먹던 전정국은 나에게 대뜸 물었고 나는 김태형의 잔에는 물을 채워주고 전정국과 내 잔에 소주를 그득 채우며 일부러 장난스럽게 대답했다.
“뭐, 나는 누구 좀 만나면 안 되냐?”
“안되지!”
김태형은 내 말이 끝나자마자 소리를 질렀고 나는 움찔하고서 김태형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취해서는 발음도 부정확한 채로 웅얼웅얼 거리는 김태형을 보고 나는 고개를 흔들었고 취기가 많이 올랐는지 아른아른 거리는 시야에 눈을 느리게 감았다 떴다.
그렇게 한 두 시간을 더 주거니 받거니 하고나니 정말 취해버려 나와 전정국 역시 김태형 같은 수준이 되어버렸다. 나는 화장실에 다녀와서는 바닥에 아무렇게나 벌러덩 누워버렸고 김태형은 내 옆으로 기어와서는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똑같이 누워버렸다.
“야, 머리 들어봐.”
전정국은 비틀거리며 일어나 내 침대에서 베개를 집어 와서는 내 머리 밑에 베개를 놓아주었다. 나에게 베개를 베어주고서는 김태형의 반대편인 내 옆자리에 저도 눕는 전정국이었고 김태형은 손을 뻗어 전정국을 툭툭 치며 징징거렸다.
“야! 나는 왜 베개 안 줘!”
“네가 가져다 하든가, 알쓰새끼야.”
징징거리는 김태형을 무시하는 전정국이었고 나는 가만히 누워 히죽거리며 웃고만 있었다.
“전정국이, 너는 내가 먼저야, 얘가 먼저야?”
조금 조용하다 싶었던 김태형은 또 입을 열었고 잠이 들려던 찰나 몽롱한 상태였다. 전정국 역시 그랬는지 잔뜩 잠긴 목소리로 나른하게 대답했다.
“얘지, 너 겠냐.”
“씨.”
김태형은 작게 씩씩거렸고 나는 또 그냥 피식 웃고 말았다.
“근데 나도. 나도 너보다 얘가 먼저야.”
웅얼웅얼 거리며 김태형은 덧붙였고 나는 울렁거리는 이상한 기분에 역시 계속 가만히 입 꼬리를 올려 웃고만 있었다.
“야, 너는.”
“어?”
“너는 나랑 저 새끼 중에 누가 먼저냐고.”
김태형은 아직도 잠에 들지 않았는지 또 툭 물었고 나는 곧 잠이 들 듯한 목소리로 말꼬리를 늘이며 대답했다.
“어, 나는…”
“됐어, 너는 그냥 네가 먼저 해.”
내 말을 싹둑 자르는 전정국이었다. 나는 그냥 잠자코 있었고 뒤척거리며 내 쪽으로 돌아눕는 전정국은 눈을 감고서 이젠 거의 잠꼬대 수준으로 중얼거렸다.
“다른 사람 먼저 말고 네가 먼저 해, 네가.”
“그래, 네가 먼저 해.”
김태형은 저도 질세라 웅엉웅얼 말했고 나는 그냥 고개 느리게 끄덕거렸다. 취기가 우리를 집어 삼킨 듯 했고 술 냄새 그득한 우리 셋은 나를 사이에 둔 채로 그냥 꼭 눈을 감았다. 그 사이에 있는 나는 양쪽 어디든 고개를 돌릴 수 없었고 정면만 응시할 뿐이었다. 은근하고 애매한 무언가가 우리를 감싸고 있는 것 같았다.
단편 가지고 와떠여
미대소년단이 보고 싶었던 키치키치의 발악
제목 도와준 독방 탄에게 뽀뽀를 보냅니다
현실엔 저런 남사친 없지
없어
그래
없지
토토는 있지
있어
그래
있지... ( 먼 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