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단단히 오해하고 있는 상혁이와 당황해서 말도 안 나오는 별빛이 사이에서 제일 당황스러운 사람은 아마도 택운이겠지.
택운이는 상황을 정리하고자 일단 집에 상혁이와 별빛이를 들이고는 진정하고 좀 앉으라고 말하고는 음료수를 내놨어.
택운이가 음료수를 가져오기가 무섭게 벌컥 벌컥 마시고는 택운이와 별빛이 둘을 죽일 듯이 노려보는 상혁이야.
그리고 그 셋에게는 엄청난 침묵이 흐르지.
" 아저씨가 변명할 기회를 난 오래 줬다고 생각하는데 한 마디도 안 하네요? "
" 상혁아, 그게 아니라...! "
" 시끄러, 한별빛. 입도 뻥끗하지 마. 네년은 내 손에 아작날 줄 알아. "
" 상혁아, 나 기억.. 안 나겠지...? "
" 개수작 부리지 마요, 아저씨는 "
개수작...., 이라니. 살벌한 상혁이의 말투와 표정에 택운이는 민망한 듯 머리를 긁적여.
분명 상혁이는 자기 앞에서 배시시 웃으며 귀엽게 걷던 천사같은 꼬맹이였는데... 어느샌가 자기만큼 자라서는
당차게 말하는 상혁이가 기특하기도 하면서도 세월이 그만큼 흘렀다는 걸 새삼 깨달아.
" 변명이랄 것도 없지만 일단 별빛이가 우리 집에서 나온 건 아침에 내가 데려와서 밥 해먹인 거야. 우리 집에 같이 잤거나 ㄱ, "
" 뭐요? 같이 자요? 와, 나 진짜 환장하겠네. 아저씨 얘 고딩이에요! 그거 뭐냐, 그거 아침법! 철컹철컹 알지? 내가 아저씨 죽여버릴거약ㄱ!!!!!!!!! "
" 아침법 아니고 아청법. 쪽팔리게 왜 이래, 한상혁.... "
택운이가 입을 열어 변명 아닌 변명을 늘어놓다가 상혁이는 자기가 듣고 싶은 말만 듣고서는 택운이 멱살을 붙잡고 방방 뛰어.
택운이는 더 이상 말해봤자 듣지도 않겠다 싶어서는 한숨을 쉬고 이리저리 흔들리지.
와중에 별빛이는 백치미를 발산한 상혁이가 창피한 듯이 상혁이를 툭툭 치며 작은 목소리로 속삭여.
" 나도 얘 고딩인 거 알아. 그래서 아직은 별 짓 안 했고, 앞으로도 안 할 예정. "
" 아저씨......히 "
택운이는 잡혀 있던 멱살을 풀고 담담하게 상혁이를 보며 차분히 말해. 상혁이는 그 말을 듣고 어이가 없다는 듯이 헛웃음을 지어.
옆에서는 별빛이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자기 입술을 만지작거리면서 두 눈 가득 하트를 담고 택운이를 올려다봐.
그때 택운이가 상혁이 머리를 헝클어트려. 상혁이는 이 사람이 미쳤나... 라는 표정으로 저항할 생각도 안 한채 택운이를 응시해.
택운이는 평소에 보여주지 않았던 밝은 미소를 지으며 입을 떼지.
" 멋있게 컸네, 한상혁. 너도 많이 보고 싶었다. "
-
" 그니까 저 아저씨가 우리 어릴 때부터 알고 지내던 동네 형이라는 거? "
" 어! 그거지 "
" 그리고 그 동네형이랑 사귀는 거? "
" 사귀는 거... 아닐까? "
" 사귀면 사귀는 거지 이건 또 뭔 개소리야... "
상혁이를 달래고 달래서 자기 집으로 데려온 별빛이는 어릴 때 같이 놀던 형이라는 설명을 해줘.
상혁이는 생각보다 쉽게 수긍하고 그래서 사귀냐고 묻지만 생각해보니까 별빛이는 자기가 정식으로 사귀는 건지 의문이 들어.
아직 키스만 했지 고백은 안 했으니까... 혼자 곰곰이 생각하다가 폰을 들어 택운이에게 카톡을 보내.
오전 9시 13분 아저씨 -
- 상혁이는 잘 달랬어? 오전 9시 13분
오전 9시 14분 아니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라 -
- 그게 문제가 아니라? 오전 9시 14분
오전 9시 14분 우리 키스했잖아요 -
1 오전 9시 14분 그럼 우리 사귀는 거에요? -
별빛이가 마지막 메시지를 보낸 뒤 한참 동안 1 표시가 없어지지 않아. 계속 메시지를 주고받다가 갑자기 끊긴 터라 100% , 아니 200%
읽고도 안 읽은 척하는 거라고 생각된 별빛이는 키스만 하고 자기를 가지고 논 걸까...하는 생각에 뭔가 기분이 우울해져.
상혁이는 중학교때 친구들을 만나러 간다고 오후쯤에 집 밖을 나섰어. 오후가 되도록 메시지를 읽지 않는 택운이 생각에
별빛이는 단단히 화가 나면서도 억울해서 씩씩거리다가 잠이 들어.
' 띠 띠 띠 띠 띠 띠리릭- '
" 별빛아 "
".....? 뭐해요, 아저씨....? "
택운이는 자기 집 드나들듯 자연스럽게 비밀번호를 입력하여 자연스럽게 별빛이네로 들어와. 아마 자기 때문에 화가 잔뜩 나서는
화풀이를 하다가 잠들었겠지- 라는 생각으로 소파에서 자고 있는 별빛이를 조심스럽게 깨워. 비몽사몽으로 눈을 뜬 별빛이는 토끼눈이 되어서는
택운이를 바라봐. 분명 택운이의 목소리를 듣고 잠에서 깼는데 보이는 건 커다란 곰인형과 풍선이었거든.
택운이를 가릴 만큼의 커다란 곰인형에 놀란 별빛이는 곰인형을 옆으로 밀자 보이는 택운이를 향해 말해.
" ..... "
" 아저씨 뭐 하냐니까요....? "
" ㅅ,.... 서프라이즈- "
" .........풉 "
멍-한 표정으로 별빛이를 응시하던 택운이는 자기 뒤에 숨겨두었던 안개꽃 다발을 별빛이에게 내밀면서 말까지 더듬고 나름 격양된 톤으로 서프라이즈- 라고 외쳐.
다른 사람도 아닌 택운이가 그런 짓을 한다는게 별빛이 눈에는 너무나도 웃겼어. 그래서 참다가 참다가 웃음이 터지고 자지러지게 웃어버리지.
" 미안. 고백을 안 했었네 "
" 지금 고백하는 거예요? "
" 나는 네가 날 알아 봐주고 점점 더 가까워지면서 참 많이 좋았어. 널 진작부터 마음에 담아두고 있었지만 넌 아직 미성년자고 너도 날 좋아하는지도 잘 모르겠고,
그래서 혼자 참고 있었어. 그런데 어제 너도 날 좋아한다는 말을 듣고 여태 잘 참아왔던 걸 더 이상 못 참겠더라. 별빛아, 먼저 고백도 안 하고 키스 한 거 미안해
근데 내가 너보다 훨씬 나이도 많고 성격상 다정하게도, 네가 바라는 남자친구도 못해줄지도 몰라. 그래도 괜찮겠다면 나랑 연애해줄래요? "
" 네! "
택운이는 별빛이의 마지막 메시지가 알림 창에 뜨는 걸 보고 본인도 생각이 엄청 많아져. 자기는 자연스럽게 사귀는 거라고 생각했지만 별빛이 입장에서는
그게 아닐 것 같아진 거지. 그래서 쉽게 답장하지 못하고 고민하다가 밖에 나가서 대형 곰인형도 사고 풍선들도 사고 별빛이를 닮은 예쁜 안개꽃도 사 왔어.
제대로 된 연애도 사실 별로 해보지 않았고 제대로 연애하고 싶은 사람이 고등학생이라는 걸 감안한 택운이 생각에는 최선의 선물이라고 생각한 것들이야.
어떻게 고백할까 수 없이 연습하고 또 연습했지만 막상 별빛이 앞에서 준비한 말들을 못하고 그 자리에서 생각나는 말을 차분히 말해.
택운이의 말이 끝나기도 무섭게 기다렸다는 듯이 '네' 라고 대답하는 별빛이는 고개를 힘차게 끄덕여. 택운이는 별빛이의 태도에 귀여워 죽겠다는 표정으로
별빛이의 볼을 꾹꾹 누르더니 별빛이를 품에 안아. 커다란 곰인형은 내팽겨쳐진 지 오래지만 이 둘에겐 그게 무슨 상관이겠어.
앞으로 더 달콤해질 두 사람인 걸.
-
2년만에 21화로 돌아왔네요... 저를 매우치세요.
사정으로 인해 글을 못쓰면서도 택운이와 별빛이가 많이 생각났어요.
한창 달달해질 때 연재를 중단해버렸으니 기다려주신 독자님들에게 정말 많이 죄송합니다.
암호닉은 2년이 지나서인지... 쓰는게 의미가 있나, 생각하게 되네요.
제가 너무 책임감이 없었습니다. 그럼 아직까지 응원해주시는 분들과 함께
완결까지 달려보겠습니다. 암호닉 기억나시는 분들은 말씀해주세요.
저는 다 기억하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