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텅 빈 도시에서 홀로 등을 꼿꼿이 세우고 늠름하게 빛을 발하는 그 풍정에서 강인함과 아름다움을 느끼는 거라고 생각했다.
어딘가에 휩쓸리고 패거리를 만들고, 친해졌다 배신하며 서로 속고 속이며 넘어가는 우리는
그 고독한 아름다움에 저절로 끌려드는 거라고.
외로움을 견디지 못해 계속해서 빙글빙글 돌아버리는 우리가 그것을 동경하는 것이라고.
-도쿄타워 (릴리 프링키 저) 中-
*
"옷 입고 나와요 별빛씨"
그 모든 일이 있던 방은 내가 쓰는 방이 되었고, 바뀐게 있다면 이불과 옷이 늘었다는 거 정도
이건 뭐 어디 시장 바닥에서 주워온건지. 몇 번 빨면 다 헤질꺼 같았다.
이런 것도 고마워 해야겠지.
정택운이 오늘 집에 혼자 남으면 위험하다면서 같이 나가자고 했다. 무슨 일을 하는지 이 집 사람들은 밤에 나갔다가 동 트기 전 쯔음 돌아 온다.
한상혁은 거의 옷에 피를 묻혀오거나 , 상처를 달고 들어왔다. 그리고는 그 상태로 잠이 들었다가 오전 11시 정도에 일어나 씻고 옷을 갈아 입는다.
그 전까지는 아무에게도 말을 걸지 않는다.
정상으로 돌아올때까지, 그는 아무에게도 말을 걸지 않았다.
정택운은 무슨 일을 할까.
사다준 흰 티와 검은 치마를 입고 거울을 쳐다봤다. 조금 수척해진 얼굴. 길어진 앞머리. 조금 있으면 눈을 덮을꺼 같다. 이대로 기를까.
여기 오기 전까지만 해도 알바 점장에게 까이고 있었고,
술에 취한 사람들은 휘청거리고 있었고,
내 집의 노트북은 켜져 있었고,
발이 아파 벗은 구두를 잃어버렸다.
모든 것들은 내가 없어도 맞물려진 톱니바퀴는 계속 굴러가는 듯 했다.
"옷 괜찮아요?"
"네"
"다행이네. 인터넷에 검색해보니 그런 스타일 옷의 사진이 제일 많더라구요"
정택운은 내게 친절하다. 이 사람이 누군지도 모르는데 괜히 말을 걸면 무장해제가 됬다.
조수석에 앉은 내가 안전벨트를 매는데 벨트가 꼬이자
자기는 이런 일에 능숙하다는 건지, 한번에 벨트를 잡고 해결해 주었다.
"차가 좀 오래되서,,"
그는 무심한듯이 시동을 걸고 골목을 빠져나갔다.
*
"저 정택운씨"
"네,"
"어디 가는거에요?"
"제가 가는 정기적 모임에요"
"네?"
"거기는 매달 들어갈때마다 다른 조건이 붙어요. 사람을 가려내기 위한 건데, 이번에는 여자친구를 데려오라더군요"
"이번에 제 여자친구 역할 좀 해주세요 별빛씨"
누군가 말을 걸면, 제가 다 커버 할테니까 별빛씨는 그냥 인사만 간단하게 하면되요, 정택운은 핸들을 왼쪽으로 돌리면서 내게 간단하니까 할 수있을꺼라는 말투로 말했다.
많은 차들 가운데 주차를 하고, 어떤 건물 지하로 들어갔다.
건물 뒤 쪽의 쪽문이라 그런지 음침했다. 깊게 내려가는 것을 보니 한 2층은 걸어 내려온 것 같았다.
"자"
문 앞에 다다른 정택운은 내게 팔짱을 끼라고 사이에 틈을 만들어 주었다. 정말 껴야하나라는 생각을 하며 내 손이 허공에서 자리를 못 잡고 있자
정택운은 그 손을 낚아채 원래 내 손이 있어야 할 자리에 가져다 놓듯이
팔짱을 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다들 그 조건 때문인지 모두들 여자와 남자가 한 짝을 이루었다. 약간 어두운 술집같은 분위기 였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있었고, 그 중에는 경호원같이 검은 양복을 입은 사람들이 유난히 많았다. 꽤 유명인들도 있는듯 했다.
어느 테이블에는 주사기가 한가득 있었고, 어느 테이블에는 하얀 가루가 한가득 놓여져 있었다.
"어이, 정택운!"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뵙네요 어르신"
"그러게 말이야. 한 동안 안오더니, 운도 좋지 오늘은 물건이 많이 들어왔다구"
"아, 그런가요? 잘됬네요"
"저번에 그 친구는 같이 안왔나?"
"이재환이요? 네, 볼 일이 있다고 해서"
"그나저나 언제 또 이리 이쁜 여자친구를 만들었나"
"어르신 여자친구 분도 예쁘시네요"
한 정장을 입은 50대되보이는 남자가 찾아와 반갑다는 듯이 말을 걸었다. 그의 옆에는 나만한 또래의 여자가 본드처럼 붙어있었다.
막 클럽에서 나온듯한 옷차림의 여자는 정택운의 말을 듣고는 가볍게 목례를 하고는 다시 그의 옆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노인은 정택운에게 천천히 둘러보라면서 자리를 옮겼다. 그는 어디를 가나 많은 사람들이 붙는걸 보니 재산이 있는거 같았다.
정택운이 갑자기 내 귀에 소근 댔다.
"저 사람 부자에요. 여기 이 모임의 회장이에요"
아아, 역시나.
"별빛씨, 지금부터는 내 옆에서 떨어지지 말아요. 잘못하면 누가 잡아가요"
"네? 누가요?"
"다른 남자들이"
농담인지, 진담인지 모를 얼굴을 하고서는 내게 가볍게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마치 홀리듯.
그러고는 우리는 어느 테이블에 착석했다. 그 테이블 위에는 침같이 생긴 것들이 잔뜩 있었다.
"이번에도 같은거"
정택운은 그 테이블에서 담배를 피우는 사람에게 봉투를 건네주었다. 그러자 그 옆에 서있던 사람이 가져가더니 봉투에 들어있던 돈의 액수를 확인했다.
액수가 맘에드는지 고개를 끄덕이고서는 내용물을 가방에 담아 정택운에게 건네주었다.
정택운은 그걸 받고 자리에서 같이 일어나려 하는데, 담배를 피우던 남자가 입을 열었다.
"정택운 손님? 너무 고마워서 항상, 이건 서비스야"
남자는 비웃음밖에 지을줄 모른다는 듯이 자연스레 웃고는, 담배를 입에 문채 아까 돈 봉투를 받아들던 남자에게 갖다주라는 말을 했다.
그 남자는 여분의자에 놓여있던 검은 봉투를 들어 정택운에게 전해줬다.
"고맙지만, 저는 마약을 안해서요."
"에? 의외네. 잘생긴 양반이, 곱게 자랐나봐?"
다음에 또 보자구, 손님. 시비를 거는 듯한 말투가 온 신경을 건드는 듯 했다. 어디서 저런게 태어났는지 부모가 키우느라 애먹었을꺼다.
볼일이 끝났는지 정택운은 내 손을 잡고는 조급한 걸음으로 이 장소를 빠져나갔다. 건물 밖으로 나와서야 알았다.
그 곳의 공기가 너무 오염되있었다는 걸.
"눈치챘죠? 오늘 간 곳이 뭐하는 곳인지"
차를 타고 가고있는 정택운이 무거운 공기를 깨고 말을 던졌다.
사실, 좀 늦게 알았다. 전까지는 잘 몰랐는데, 마약이라는 단어를 듣는 순간 아, 밀거래하는 곳이구나.
불법으로 외국에서 들여온 물건들을 몰래 사고 파는 곳. 그런걸 주최할 수 있는 사람은 인맥도 많고 돈도 많아야 한다고 한다.
많은 인맥을 돈으로 관리하며, 돈으로 입막음을 할 수 있는 사람만이 그 일을 맡아 할 수 있었다.
"뭘 산거에요?"
"아, 저는 한의사에요. 사실"
"아..."
아 그래서 침같은걸 많이 산건가.
한의사라니. 근데 왜 의사가 범죄자랑 사는거지?
목구멍까지 질문이 차올랐지만 아직 그 궁금증을 풀기에는 시간이 걸릴 듯 했다.
"근데 오늘 산건 제꺼가 아니에요."
"내 명분으로만 살 수 있어서 누군가 부탁해가지고.."
그 때는 알지 못했다.
그 물건이 얼마나 위험한 건지.
*
장미빛 고래입니다.
궁금할꺼같아서 말씀드리는건데, 이 스토리의 주된 인물이 상혁이라
제목에 한상혁이라고 적은거에요!
그리고 계속 언급되고 있죠? 이재환.
곧 많이 등장할껍니다!
항상 읽어주시고, 좋은 댓글 달아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