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아닌 밥을 먹고 지하로 내려가는데 클러치에서 어마어마한 진동이 느껴져 휴대폰을 꺼냈다. 백현 오빠. 대학 선배였다, 정확히 말하면 내가 짝사랑한? 뭐 끝내 고백은 하지 않았다. 그냥 선후배 사이가 좋기도 하고, 대학을 다니면서 연애에 집중하는 건 불가능 했기에 더욱 그랬다. 뭐, 지금은 마음을 접었지만.
" 어, 오빠 무슨 일로 전화를 다 하셨어요? "
" 그냥, 어떻게 지내나 궁금해서. 취직 했다며? "
" 네, 했어요. 열심히 다니고 있어요. "
" 어디서 일해? "
" 화장품 회사요, 인턴 때는 매장도 다니고 했는데 지금은 회사 내에서 제품 디자인 해요. "
" 보러갈 미끼도 없네, 나중에 밥 한 번 먹자. "
" 네, 선배. 수고하세요. "
짧은 통화를 마치고 옆에서 느껴지는 시선에 고개를 돌리자, 오세훈이 나를 빤히 쳐다본다. 그렇게 보면 어쩔건데. 한참을 쳐다보다가 밥 먹어요? 하고 묻기에 소리를 내어 웃었다. 진짜 이럴 땐 그냥 고등학생인데. 오세훈을 올려다 보면서 웃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기분이 나쁜지 입술을 가만히 못 두는 오세훈의 손목을 잡고 차에 태웠다. 왜 울상이야. 내 말에 몰라서 물어요? 하며 발끈한다. 몰라서 묻겠냐.
" 알고 묻는 거야, 밥 먹으면 어때서. "
'" 그 형 잘생겼어요? "
" 어, 엄청. "
" 허... 그렇게 대답이 바로 나올 정도로? "
" 대학 다닐 때, 좋아했던 오빠야. 왜 좋아했겠어. "
" 저 내릴래요. "
내리겠다며 안전벨트를 한 채, 문을 열려고 하는 오세훈을 보면서 안전벨트부터 푸시던가 라고 했더니 금세 손을 내려놓는다. 이 쯤이면 누나도 다른 남자 안 만날 때 된 거 아닌가? 오세훈의 말에 그건 무슨 논리야 하고 시동을 걸었다. 집으로 가는 내내 설교를 하더니 자연스럽게 집으로 들어가는 나를 따라온다. 너무 자연스러워서 내가 오세훈 집에 들어온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 야, 여기 우리 집이야. "
" 우리 집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르죠. "
국어과 과목 시간에만 안 자는 게 분명하다, 확실하다. 그게 아니고서야 저렇게 내 말 하나하나에 지지도 않고 대답을 할 수 있을리가 없다. 못 말린다는 표정으로 쇼파에 앉아서 잡지를 펼치자, 옆에 앉더니 내 시선을 따라 잡지를 본다. 우리 팀 기획으로 처음 출시된 립스틱이 실린 페이지를 보고 뿌듯함에 웃고 있는데 오세훈이 내 손 위에 자기 손을 겹친다.
" 누나, 모델 왜 이 사람이 해요? "
" 요새 잘 나가니까. "
" 누나가 훨씬 예쁜데. "
오세훈이 미친 건 아닐까 하고 잠시 생각했다. 가라는 학원은 안 가고 어딜 가서 저런 멘트를 배워오는지 도통 알 수가 없다. 너 말 배우는 학원 다니니? 웅변학원, 막 이런 거? 내 말에 오세훈은 머리를 긁적이더니 나를 보고 환하게 웃었다.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말인데, 누나 덕이죠. 어휴, 진짜 뭘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오세훈을 보며 고개를 젓고 있는데 인터폰이 켜지기에 잡지를 내려놓고 현관으로 가까이 갔다.
" 누구세요? "
" 세훈이 있나 해서요. "
" 네, 여기 있어요. 집으로 보낼게요. "
" 아, 굳이 그러실 필요는 없는데... 매번 감사해요. "
'" 아니에요, 곧 갈 거니까 걱정마세요. "
현관문을 두고 오가는 대화에 오세훈이 못마땅한 표정을 하고 문을 노려본다. 문까지 뚫을 기세네, 저거. 손으로 눈을 가리자, 왜요? 하고 물어온다. 문 뚫릴까봐. 내 말에 오세훈은 입꼬리를 올려 웃더니 사랑스럽다는 말투로 말했다.
" 누나는 어떻게 생각도 그렇게 귀엽게 하나 몰라. "
괜히 퍼지는 달달한 분위기에 오세훈의 등을 떠밀었다. 너, 집에 가. 내 말에 오세훈은 나한테 할 말이 그거 뿐이야? 하고 묻는다. 이게 또 은근슬쩍 반말이네. 오세훈을 현관까지 밀어 신발을 신기고 나서야 오세훈 등에서 손을 뗐다. 잘 가. 내 말에 안아줘요 하고 두 팔을 벌린다. 팔짱을 끼고 오세훈을 쳐다 보다가 얼른 집에 가세요 하고 손짓하자 한걸음 다가오더니 나를 꽉 안는다.
" 난 항상 진심이니까 누나도 그랬으면 좋겠어요. 너무 안 좋게만 생각 하지 말란 소린데, 알아 듣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