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투명한 블루빛 바람이
기분 좋게 내 옷깃을 스칠 때.
너는 나의 여름이었음을,
비로소 느낀다.
낮은 지붕들 사이로 보이는 여름 밤하늘이 다홍색, 청색, 보라색 수채화 물감을 컨버스에 흩뿌려놓은 듯 오묘하다.
마을버스가 덜덜거리며 지나가고, 역시 시골이라 그런지 아직 이른 저녁임에도 불구하고 인적이 드물다.
남준은 셔츠 깃사이로 불어오는 바람에 기분이 좋아져,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흘러내린 앞머리를 쓸어 올렸다.
후덥지근한 열대야로 인해 끈적하게 불어오던 바람도, 이젠 제법 선선해짐을 느끼며 남준은 보건소 안으로 들어갔다.
'미친-. 야,아무리 제비뽑기라 해도 저어기 산골에 있는 보건소가 말이 되냐?'
'뭐가 어때서? 난 좋을 것 같은데.'
남준은 어깨를 으쓱하며 태형을 향해 반달 눈웃음을 지어보였고, 덕분에 옅게 보조개가 생겼다.
같은 의대에서의 6년의 커리큘럼을 함께 마치고 태형은 군의관을, 남준은 군대 대신 3년동안 보건소에서의 봉사를 택했다.
이 새끼-잘 버티고 있으려나. 다음 휴가 때 술이나 마시자던 태형과의 약속을 곱씹던 남준은 피식 웃었다.
제비뽑기로 인해 이름도 모르는 깡촌에서 지내게 된 남준은,나름 이곳에서의 생활이 마음에 들었다.
아직 이 곳에 온지 한 달여밖에 되지않았지만, 시골에서만 느낄 수 있는 그 특유의 여유로움과, 정겨운 풍경.
그리고 정이 참 많은 사람들. 모든 것이 느리게 흘러가는 이 곳이, 도시에서만 살아오던 남준에게는 참 좋았다.
[오빠 잘 지내고 있지? 이번 주말엔 아버지가 집에 내려오라셔. 꼭 와! 또 바쁘다고 핑계대지 말고.]
흰 가운을 반듯이 접어 정리하던 남준은 여동생의 문자를 보고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썩 내키진 않았지만 본가에 들린 지도 꽤 된 것 같아 알겠다고 답장을 보내던 순간이었다.
쾅-
보건소 문이 거칠게 열리는 소리와 함께 한 소녀가 뛰어 들어왔다.
자신의 무릎을 양손으로 짚고 거친 숨을 몰아쉬던 소녀는 눈물 때문에 시야가 흐려진 두 눈을 계속해서 문질렀다.
"학생, 무슨 일 있어요?"
남준은 소녀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땀에 젖은 앞머리는 이마에 어수선하게 붙어있고, 새하얀 교복셔츠도 헝클어져있다.
큰 눈에서는 투명한 눈물이 쉴새 없이 투두둑 떨어진다.
"흐앙..의사 아저,씨.. 끄읍.."
얼마나 오래 울었는지 조그맣고 귀여운 코는 빨갛게 물들어 있고, 목이 매이는 듯 말을 쉽게 잇지 못한다.
남준은 소녀의 볼을 두 손으로 감싸고, 쉴 새없이 흐르는 눈물을 부드럽게 닦아주었다.
남준은 허리를 굽히며 키를 낮춰 소녀와 눈을 맞추고.
다정한 목소리로 다시 물었다.
"무슨 일인지 말해줄래요?"
"의..의사 아저씨- 우리, 우리 할머니가 많이 아파요.. "
소녀는 천천히 남준의 소매부분 셔츠를 꼬옥 잡아쥐었다.
*
아, 이 고물차.
아무리 세게 밟아도 털털털-소리를 내며 느릿느릿 달리는 차가 답답한 지 남준은 미간을 찌푸렸다.
소녀는 입술을 앙 다물어 눈물을 참아보려 하지만, 마음처럼 되지 않는 듯 잇사이로 울음소리가 삐져나온다.
아직도 남준의 옷깃이 생명줄이라도 되는 듯 꼬옥 잡은 채.
"할머니 괜찮으실 거예요. 내가 약속할게."
많이 놀랐을 소녀를 진정시키기 위해 남준은 걱정하지 말라며 다정하게 속삭였다.
사실, 연세가 많으신 어르신들께는 조그마한 감기라도 목숨을 앗아갈 수 있을 만큼 치명적일 수도 있기에 상황을 보지 않고서는 큰 문제인지 아닌지 가늠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떨리는 손으로 자신을 붙잡고 한없이 울고있는 아이 앞에서 그런 매정한 말은 차마 할 수가 없었다.
남준은 소녀의 손목을 천천히 잡고, 자신의 셔츠에서 살며시 떼어냈다.
아주 잠깐 허공을 맴돌던
그 조그맣고 하얀 손에,
자신의 큰 손을 포갠다.
괜찮을 거야.
걱정하지 말아요.
어느 새,
어두워진 여름 밤 하늘엔 별이 총총 박혀있고,
짙어진 풀냄새가 향긋하게 공기를 감싼다.
간간히 들리는 개구리 울음소리와, 깜깜한 논길을 홀로 달리고 있는 차의 엔진 소리만이 시골의 침묵을 깨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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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항상 조각글로만 메모장에 더듬더듬 글을 써내리던 제가
의사 남준이가 넘나 보고싶은 마음에 이렇게 글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어쩌다보니 첫 화부터 분위기가 좀 무겁네요 ;ㅁ;
앞으로는 풋풋하고 좀 더 밝은 분위기로 이 이야기가 채워질 거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부족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8ㅅ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