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호와 지훈은 학교 내에서 꽤나 유명인사였다. 물론 서로 상반된 의미로. 이 둘의 이름을 듣는 이들의 반응은 확연히 달랐다. 아, 우지호요? 걘 뭐… 공부도 잘하고, 문제 없이 학교 잘 다니잖아요. 주위에 신경을 하나도 안 써요. 자존심도 되게 세고, 종일 공부만 해요. 밥 먹는 시간도 아껴가면서 한다니까요. 존나 징해요, 진짜. 지금도 공부나 하겠죠. 지호가 이런 반응이라면 지훈은 표지훈이요? 걔 안 건드리는 게 좋아요. 생긴 게 뺀질나게 잘생겨서 그런지 여자도 존나 많이 꼬이잖아요. 영악하기는 존나 영악해서 오는 여자 안 막고 가는 여자 안 막아요. 오히려 철저히 이용하다가 버리는 거죠. 그랬던 적이 한 두번이 아니에요. 지금도 이상한 얘기나 떠들고 있겠죠. 그리고 이 소문의 장본인들은 오늘도 자신이 하던 일을 꾸준히 할 뿐이었다. 애초에 이런 소문에 관심을 가지지도 않았고, 서로 조차도 소문만 익히 들어 이름만 알 뿐 그 이상의 관심은 가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약육강식 上
w. 달래
“야, 너네 남자랑 자봤냐?”
“에라이, 미친놈아. 잘 년이 없어서 남자랑 자냐? 존나 불쌍한 새끼.”
그게 아니라 씨발, 진짜 존나 쩐다니까. 그딴 년들이랑은 비교가 안 돼. 그 년들은 다 헐어서 조이는 맛도 안 나잖아. 근데 남자 새끼랑 하면 느낌 쩐다고. 들어가자마자 싸는 줄. 존나 명기라니까, 씨발…. 지훈은 경의 뒤통수를 갈기며 낄낄대며 웃었다. 박경 너 원래 미친놈인 건 알았는데… 아, 그게 아니라니까 이 씹새끼야!
“그거 기분은 좋냐?”
“그래, 존나 명기라고.”
막상 경의 말에 미친놈 취급을 하며 낄낄거리기는 했지만 남자랑 자면 어떨지 조금씩 궁금해졌다. 확실히 남자랑은 다른 맛이 있을 것 같았다. 항상 늘어날대로 늘어난 여자들도 이제 서서히 질리던 참이었다. 저 새끼도 했는데 내가 못 할 건 없잖아? 순간 항상 단정하고 올바른, 그런 만큼 자존심도 드높고 그리 고고하다고 소문이 자자한 -자신도 소문으로만 들어 본- 지호가 생각이 났다. 평소와는 다른 묘한 설렘에 지훈이 씩 웃었다.
“나랑 술 내기 한 판 하자.”
“내기는 또 무슨 내기?”
“내가 전교 1등 따 먹으면 내가 이긴 거, 못 따 먹으면 내가 진 거.”
그 존나 징하다는 우지호? 지훈이 아무렇지도 않게 고갤 끄덕였다. 그냥 쉬운 놈으로 하면 되지, 왜 사서 고생이냐 병신아. 쉬운 놈이면 재미 없잖아. 가볍게 몸을 푼 지훈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금부터 시작이다, 술 살 준비나 하고 있어 새끼들아.
아, 그런데 우지호가 몇 반이지. 그리고, 씨발. 애들 말로는 존나 모범생이라는데 할 맛 안 나게 찌질이같이 생겼으면? 이렇게 막상 지르고 보니 미처 생각지도 못 했던 변수가 생각이 났다. 이미 큰 소리를 치긴 했고 남자의 자존심으로 내기를 무를 순 없다. 그까짓 거 그냥 술 사면 되는 거지, 이 개씨발. 지훈은 비장하게 숨을 내 쉬곤 학생에게 물어서 얻은 지호의 반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우지호가 누구야.”
“저기, 쟤….”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에는 누가 전교 일등 아니랄까봐 맨 앞 자리 끝에 앉아 안경을 쓰고 공부를 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하지만 제가 상상한 귀두컷 찌질이는 아니었기 때문에 내심 안도했다. 중도 포기 할 일은 없겠네. 지호는 어느샌가 자신의 앞에 우뚝 서 있는 인영을 보고는 고개를 들어올렸다. 슬쩍 명찰을 보니 표지훈. 제가 익히 들어왔던 이름이었다. 지호는 이런 부류의 인간을 혐오했다. 여자랑 잔 걸 자랑스레 떠벌리는 부류라던가, 학교 내에서 사고를 치고 돌아다니는 그런 부류. 안타깝게도 지훈은 저 부류에 꼭 들어맞았고 지호는 단박에 표정을 굳히곤 못 본 척 다시금 볼펜을 집어들었다.
“야, 우지호.”
지호는 일어나지도 않은 채 지훈의 말을 그대로 무시했다. 최대한 이런 애들하고는 어울리지 않는 게 좋다. 금방 물들어버릴 게 뻔하기 때문이다. 지훈은 지호의 속도 모르고 계속 그런 반응만 보이는 지호가 짜증이 나기 시작한 지훈은 지호의 손목을 잡아채 자리에서 억지로 일으켜 세웠다.
“너 나 알아?”
“모르는 게 이상한 거 아닌가, 전교 일등?”
“…건드리지 마, 네 손 닿는 거 싫으니까.”
그런 둘의 모습은 누가 봐도 가히 언벨런스했다. 달라도 너무 다른 두 사람. 지훈의 손에 의해 억지로 세워진 지호는 제 손목을 잡은 지훈의 손을 탁 쳐내며 지훈을 표독스럽게 쏘아봤다. 꽤나 당돌한 지호의 대응에 웃음을 터뜨린 지훈은 두 손을 들어올렸다. 워, 난 너랑 싸우자고 온 거 아니야. 그냥 친하게 지내고 싶어서. 지훈이 특유의 능글맞은 웃음을 지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지호는 알 수 없는 갑작스런 지훈의 행동에 의문을 느끼면서도 이런 건 자신에게 가치도 없는 일이다, 싶어 지훈의 대한 생각을 싹둑 잘라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