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사랑하는 사람이 날 좋아해라 얍!
w.1억
사실은 괴로웠다. 그치만 이런 상황에도 나를 불러주는 사람이 있음에 감사하고 조연 주연 안 가리고 열심히 해야겠단 생각을 했다.
어차피 다시 처음부터 시작을 해야된다면 다른 방법이 없으니까. 근데.. 나는 여기서 무너지게 된다.
"잘 부탁드려요! 다희씨..!"
"….….."
"왜..그러세요..?"
계속 나를 빤히 바라보는 다희씨에 당황스러워 같이 보고있으니 하는 말이.
"내가 한희씨 보다 나이 더 많은 걸로 아는데."
"아.."
갑자기 저렇게 말을 하는데 나는 뭐라고 대답을 해야할까.
이분도 조금은 이름을 날렸고, 이번에 주연을 처음 한다고 들었다. 촬영장에서 마주칠 일은 별로 없었고, 오늘이 겨우 세번째 만남이었다.
언니라고 부르기엔 애매한 사이라 다희씨라고 불렀는데. 이게 뭐가 기분이 나쁘다는 건지.. 갑자기 얼음장같이 차가워진 촬영장 분위기에 감독님이 오히려 어색하게 웃으며 내게 말했다.
"그래요 그냥 편하게 언니라고 불러도 되겠다. 그치?"
"….….."
"얼른 사과해요..! 한희씨가 마음이 원래 고우니까~ 그냥 사과하고 끝내면 되겠다."
이런 상황은 한 번도 없었다. 오히려 이런 상황이 나를 너무 괴롭게 만들었다. 늘 나에게 맞춰줬던 사람들은 나를 모르는 사람 취급을 한다.
스태프분들도 감독님도 모두 모르는 사람같았다. 그리고..
"….….."
너무 쪽팔렸다. 모두가 나를 비웃는 것 같았고, 이도현 마저도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혀라도 깨물고 죽어버리고 싶었다.
그래도 난 쪽팔림이라곤 모르는 사람처럼
"죄송합니다.."
사과를 해서 이 상황을 끝내버린다. 그리고 나는 오늘.. 대접이라곤 하나도 못 받았다.
촬영을 끝내고 쉬는 타임에는 이다희에게만 의자를 갖다주고, 선풍기를 돌려주고.. 오히려 메이크업 해주는 언니들이 내 눈치를 볼 정도였다.
그럼 난 괜찮다고 할 뿐이고, 이 상황에서 얼른 벗어나고싶다.
"감독님 이 장면 다시 찍어야 될 것 같은데요. 한희씨가 긴장했는지 발음이 꼬이네요."
이다희의 말에 모두가 그래 쉬어요- 하고 나에게 말했고, 나는 괜찮다고 했지만.. 모두가 눈치를 줬다.
결국엔 차에 타서는 가만히 허공을 보았다. 한숨이 절로 나왔다. 괜히 너무 속상해서 눈물이 고일 것 같았는데..
이도현이 운전석에 타면서 뒤돌아 내게 물을 건네주는 것이다. 말 없이 물을 받았는데..
"긴장했을 땐 물 마시면 좀 괜찮아지더라구요."
"누가 긴장했다고 그래."
"….….."
"나 하나도 긴장 안 했어."
또 내 말에 조용히 웃는 이도현이 싫었다. 미워서 뭐라고 하려다가도 입만 아플까 그냥 물 한모금 마시고선 창밖을 봤다.
이다희는 내가 마음에 안 들었던 걸까. 분명히 평소에는 인사만 하고 지나가 별 문제 없었는데. 왜 갑자기 나한테 이러는 걸까.
아마도.. 루머들이 진짜라고 확신하는 걸까. 너무 싫었다. 이 차에서 나가는 게 너무 힘들었다. 그냥 이 상태로 집에 가버리면 안 되는 걸까.
그래.. 단편영화니까 조연이니까.. 겨우 사흘 촬영하면 그만인 게 다행이지.
내가 긴장해서 발음이 꼬인다.. 쉬고와라.. 등등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자꾸만 나를 욕 먹게 한 이다희가 미웠다.
"수고했어요. 누나."
"….….."
"배고프죠? 편의점에서 뭐라도 사올까요?"
"됐어."
"그래도 아무것도 안 먹었잖아요. 술만 마셔서 속 안 좋아졌을 텐데 밥이라도 먹는 게.."
"됐다고!"
너무 화가났다. 됐다는데 왜 자꾸 그러는지. 눈치 없이 자꾸만 묻는 이도현이 미웠다. 그냥 다 싫었다.
차에 타서는 또 눈물을 참는데. 이도현이 한참 들어오지않았다. 한참 있다가 들어 온 이도현이 곧 봉지를 내 옆에 놓으며 말한다.
"먹기 싫어도 먹어요. 몸 상해요. 진짜."
"….….."
"괜히 하는 소리 아니니까. 조금이라도 먹어요. 알았죠?"
"멋대로 이런 거 사오지도 마. 내가 시킨 적 없잖아."
"알았어요. 미안해요."
저 말 마저도 살짝 미소를 지으며 말하는데.. 참.. 할말 없게 만드는구나.
먹을 생각이 없었다. 차는 열심히 달리고있고.. 나는 창밖을 보고있다. 잠도 못 자고 그냥 그렇게 계속 가다가 결국 집에 도착했다.
개인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선 내리면 우리는 서로 마주보게 되었다.
"집가서라도 뭐 먹고 자요."
"내일 촬영 있는데 뭐 먹고자면 부어."
"간단하게 샐러드라도 사다줄까요?"
"….….."
"아니면 우유라도. 걱정 돼서 그래요. 예쁜 얼굴 상할라."
"야."
"네."
"너는 내 매니저야. 나 좋아하는 티 내지 마. 선 넘지 말라고."
그냥 화가났다. 왜 이렇게 이도현을 보면 화가날까. 나는 너무 화가 나는데. 자꾸만 긍정적인 네가 거슬렸던 것 같다.
"알았어요."
"내가 우습지."
"….….."
"내가 그냥 웃기잖아, 너. 내가 촬영장에서 무시당하니까.. 한사람도 아니고 여러명한테 따 당하듯이 무시당하니까 웃기잖아. 왜 자꾸 그렇게 웃어? 내가 뭘 해도 그냥 웃겨?"
이번엔 웃지 않았다. 아무래도 이 녀석도 다른 사람들처럼 내가 싫어진 걸까.
내가 자신한테만 화를 내고 짜증을 내는 게 화가 난 걸까. 그치만 너는 내 예상과 달랐다.
"우습게 본 적 없어요. 단한순간도."
"….….."
"오히려 누나가 멋지다고 느껴졌어요.그래서 누나가 더 좋아졌는데."
"….…."
"계속 이렇게 화내요. 짜증내고.. 욕도 하고. 그래야 살아요. 착한 사람들은 그걸 못 해서 속병 생긴다더라구요."
"….….."
"나 누나한테 샌드백 역할 제대로 하고싶은데."
분명 나는 화를 냈는데. 뻘쭘하게 저렇게 착하게 말해버리면 어쩌자는 거야.. 당황스럽고 뻘쭘해서 그냥 앞장서서 걸으면, 이도현도 날 따랐다.
엘레베이터 버튼을 누르고선 생각했다. 설마 이 자식이 집까지 오려는 건가? 따라오면 뭐라해야지.
문이 열렸고, 먼저 올라타고선 같이 탈 것만 같은 녀석에게 말했다.
"집까지 오려고? 미쳤어? 너도 퇴근해."
"네?"
뻘쭘했다.
"….잘가라고."
전혀 엘레베이터에 탈 생각이 없어보이는 녀석이 당황한 듯 나를 바라보았고.. 나도 너무 당황스러워서 잘가라며 인사를 하고선 헛기침을 했다.
그럼 이도현을 웃으며 말한다. 넌 내가 밉지도않니.
"좋은꿈 꿔요."
너의 인사에 따뜻한 인사에도 나는 받아주지않았다. 문이 닫혔고 힘이 풀렸다. 집에 들어오니까 다리에 힘이 완전히 풀려 주저앉았다.
그리고 참고 있었던 눈물이 계속 흘렀다. 어쩌다 내가 이렇게 된 걸까.
내일 촬영은 또 어떻게 해. 진짜 가기 싫어. 나 어떡해. 몇시간을 울어놓고선 내일 촬영 때문에 붓기 빼느라 꽝꽝 얼은 숟가락을 눈에 대고있는 나는 참 바보같다.
오늘 촬영은 더 고통이었다. 이다희가 나에게 컵에 담긴 물을 뿌리는 장면이 있는데. 벌써부터 힘이 빨리는 것이다. 이번엔 그냥 한 번에 가자.. 제발.
첫씬부터 물 맞는 씬을 찍는다고 해서 긴장을 많이했다. 근데.. 저 자식은...
"우리 한배우 잘부탁드립니다~"
시키지도 않은 짓을 한다. 음료수 한박스 사와서는 사람들에게 건네주기에 뭐라고 하려고 했을까..
"한희씨 매니저 바뀌었나보네? 싹싹하고 좋네 아주 그냥. 인물도 좋고."
"그러니까요. 나는 신인 배우인 줄 알았잖아요."
"한희씨는 주변 사람들도 평이 좋아서 좋아."
생각하지도 못 한 부분에서 사람들이 좋게 말을 해주었고, 오히려.. 화를 내려고 했던 내가 창피해졌다.
그리고 또... 물 맞는 씬에서 몇 번의 NG가 났다. 이다희가 자꾸만 다시 뿌려야 되는 거 아니냐며 다시 찍자는 게 벌써 네번째다. 그럼 이도현이 감독님 옆에 서서는 능청맞게 말한다.
"저는 두번째가 제일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감독님도 그렇죠?"
"뭐? 참나.."
감독님도 어이가 없는지 이도현을 보고 웃었고, 주변 사람들 마저도..
"한희 예쁘다아!!!"
이도현의 저 쓸데없는 주접에 귀여운지 웃어보였다. 그래.. 촬영장에 저런 캐릭터가 있기 드물지.
또 두 번을 찍었다. 물을 맞고, 드라이하고 옷 말리고.. 또 맞고.. 물 맞는 씬만 지금 두시간 째 찍는중이고, 모두가 지쳤다.
"웬만하면 한 번에 가자. 나도 힘들다."
난 잘 했는데. 본인이 만족 못 해서 다시 찍자고 해놓고 왜 나한테 저런 말을 하는지 궁금했지만, 물을 수가 없었다.
모두가 나에게 뭐라고 할 것만 같아서 불안했다. 또 한 번 이다희가 내게 물을 퍼부었다. 그럼.. 감독님이 컷- 소리를 냈고, 이도현이 말한다.
"감독님 진짜 고생하셨습니다. 와 진짜 감독님 최고."
멋대로 끝을 내려고 하니, 이다희도 더 하자고 말도 못 했고, 모두가 이도현을 보고 웃기 바쁘다.
이도현의 저런 행동들 덕분에 힘이 났다. 모두가 나와 이도현을 보며 웃었고, 무시하는 듯한 분위기는 절대로 오지 않았다.
다른 씬 촬영까지해서 새벽1시가 되었다. 또 몇 번 이다희가 다시 촬영하자는 말을 해서 1시까지 촬영을 해야됐다.
내일만 잘 버티면 되니까 사람들이 뭐라하던 그냥 꾹 참자 생각을 했다. 물론 이 긍정적인 생각은 금세 없어질 게 뻔하지만..
"나 화장실 좀. 손 좀 씻고오게."
내 말에 이도현이 '네'하더니 날 쫓아오는 것이다. 왜 따라오냐며 인상을 쓰고 바라보면 이도현이 말하길
"저도 손 씻으러 가는 건데요."
여자화장실 바로 옆에 있는 남자 화장실에 뻘쭘해서 크흠- 하고 뒤를 돌면, 이도현이 웃는다. 진짜.. 뻘쭘하게..
화장실에서 손을 씻고있으면 곧 칸막이 안에서 이다희가 나왔다. 내 옆에서 손을 씻던 이다희가 내게 말한다.
"촬영장 분위기가 좀 그래도 네가 참아야지. 어쩔 수 없잖아. 그리고."
"네?"
"기 살려주는 매니저 따로 구한 건가. 나도 그런 업체 있으면 소개 시켜줘."
"…그런 거 아니에요."
"그럼 시키지도 않았는데 매니저가 철판깔고 그런 짓을 해? 아니면 뭐 돈이라도 줬나. 되게 촬영할 맛 날 것 같더라."
"오해 하시는 것 같아서 말씀 드리는데요. 저 누구한테 돈 먹이고 기 살려달라고 한 적 없어요."
"그렇게 보였어. 모두 다 그렇게 생각할 걸. 지금 마약했다고 난리 난 배우 매니저를 누가 해줘. 부정탈까봐 도망가는 매니저 많다던데. 그 전에 매니저도 그렇게 도망갔나봐?"
"…저기요."
"지금 네 상태를 알고 까불어. 네가 나한테 저기요라고 부를 짬이 돼?"
"……."
"남들이 예쁘다, 예쁘다 해주기만 했으니 이런 거 저런 거 모르겠지. 중간부터 올라온 네가 뭘 알겠어. 공주 대접만 받은 티가 그렇게 나던데."
"절 왜 이렇게 미워하시는데요. 이유라도 알려주세요. 그래야 제가..!"
"착한 척 하는 네가 재수가 없어. 이미지만 청순하고 예쁘면 뭐하니. 속으로는 나쁜 생각 다 하잖아. 아니야?"
"그게 무슨..!"
"국민 첫사랑이 마약을 하는 게 말이 되니?"
"저 마약 안 했어요."
"거짓말은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해. 계속 그렇게 마약에 찌들어서 살아."
"……."
"봉사한다 생각하고 난 올라가고, 넌 쭉 내려가면 돼. 그게 사람들이 바라는 일이기도 할 거야. 지금도 넌 잊혀지고 난 떠오르고있잖아."
할 말이 없었다. 나한테 이렇게 면전에 대고 뭐라고 하는 사람이 처음이라.. 너무 화가 나지만 여기서 뭐라고 할 성격도 아니고.. 꾹 참는 게 내 성격이라 나는 주먹만 꽉 쥔 채로 있다.
이다희가 화장실에서 나가고, 나는 뭐라도 해야겠다 싶었다. 이대로는 마음의 병이라도 생길 것 같아서 따라 문을 열고 나왔을까.
"뭐하는 거야? 일부러 길 막고 서서."
"제가요. 요즘 유명한 연예인들을 잘 모르거든요. 근데 그쪽은 누군지 모르겠더라구요. 사실 어제 촬영장에서 처음 봤어요. 혹시 이름이 뭐예요?"
"…뭐?"
"본인의 자리는 언젠가 다시 찾아가기 마련이에요. 억울한 사람은 언젠가 억울한 누명을 풀고, 다른 사람 괴롭히는 못된 사람은 언젠가 죗값을 받아요. 살면서 못 받으면 죽어서 받는다나..뭐라나.."
"……."
"이제 지나가셔도 돼요."
"지금 그거 나보고 하는 소리야? 괴롭히는 못된 사람."
"한희씨한테 한 건데. 아, 오해했을 수도 있겠다."
이도현의 말에 이다희가 나와 이도현을 번갈아보며 말했다.
"너네 재밌다."
기가찬 듯 했다. 어이가 없는 듯 콧방귀를 뀌고선 그냥 가버린 이다희에 나는 긴장이 풀렸다. 그리고... 이도현이.
"…야."
"…네?"
"너 뭐하는 애냐?"
"…저요?"
"어."
"그냥 누나 사랑하는 사람?"
"참나.."
"왜요? 나 남자로서 별로인가?"
"야!"
"네?"
"한 번만 더 그런 소리하면 확! 짜른다."
"……."
"안 오고 뭐해. 빨리 가자. 피곤해 죽을 것 같아."
"…네. 가요."
내편이 있다는 것에 마음이 편안해져서, 네가 위로가 돼서, 네 행동들이 웃겨서 웃음이 나왔다.
-
-
-
냐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