뜬 눈으로 뒤척이다 이내 잠든 나에게 불청객이 있었다.
쾅쾅쾅!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요란했다.
누나! 일어나봐! 빨리!!
괜시리 무서웠다. 상혁이는 그럴 아이가 아니지만서도 괜히 의심이 갔다.
누나! 쟤 이상해! 쟤 이상하다고!! 일어나, 빨리!!!
심장이 내려앉는 기분이 들었다.
-
상혁이의 말대로 소년은 이상했다.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고 피부가 다 일어나있었다. 온 몸엔 붉은 반점을 하고 소년은 숨을 헐떡였다. 일단 소년의 얼굴을 잡고 눈을 확인했다.
왜 그러는 거지? 대체 왜 그러는 거야?
소년은 이 이상한 대화를 할 수 없는지, 아니면 정말 너무 아픈 건지 눈물을 흘렸다.
대체 뭐가 잘못된 걸까. 저녁을 잘못 먹였나? 그러기에 소년이 먹은 것은 흰 죽 뿐이었다. 다른 음식엔 일체 입도 대지 않았다.
그럼 대체 뭐 때문에 이럴까. 뭐 때문에 이렇게 아픈 거니.
아, 얘 죽는 건 아니겠지? 누나, 그렇지? 그렇겠지?
나보다 더 안절부절 못하는 상혁이의 말에 나는 소년을 일으켰다. 그리고 억지로 고개를 잡고 내 눈을 보게 했다.
말해, 왜 아픈 건지.
...
어디가 얼마나 아픈 거야.
...
이 답답하고 짜증나고 이상한 대화는 내가 소년의 눈을 피함으로 끝을 맺었다. 그의 앞에서 고개 숙인 난 나를 자책했다. 대체 뭐 어쩌려고 그런 거야. 그 전의 대화는 다 우연일 뿐이었는데 왜 그런 헛된 것에 희망을 거는 거야.
그러던 중 내 뒷통수로 차가운 물이 떨어졌다. 그리고 내 눈 앞에는 내 머릴 타고 내려오는 물들이 우물을 이루었다.
나는 고개를 들어 소년을 바라봤다.
소년은 여전히 바닷물을 눈에 담고 있었다.
나는 낮게 상혁이를 불렀다.
상혁아, 얘 업어.
에? 왜요?
얼른.
한 시가 급해. 어서.
-
상혁이에게 소년을 업게 하고 온 곳은 내 집이었다. 어둠과 바다에 삼킨 내 집은 한없이 어둡고 추웠다. 상혁이의 핸드폰으로 불빛을 만든 나는 벽이 무너진 그 방으로 갔다.
거긴 위험하다는 상혁이의 말에도 굴하지 않고 그 곳으로 향했다. 어쩔 도리 없이 따라온 상혁이는 이내 이어진 내 말에 소스라치게 놀랐다.
걔 바닥에 둬.
뭐라구요?!
얼른.
아니, 누나. 얘 그랬다간 차가워 죽어. 얼어 죽어, 죽는다고!
집 안에 얕게 차오른 물 때문에 나와 상혁이의 발엔 이미 동상이 걸리고도 남았을 거라 생각했다. 심지어 아직 바다는 안정되지 않은 상태였다. 평소에 내 집으로 범람한 적 없던 바닷물이 찰박거리며 벽에 부딪히는 소리가 그를 증명했다. 그 차갑고 위험한 바닷물에 소년을 두라는 말에 상혁이는 뒤집어졌다.
하지만 나는 완강했다. 소년은 그렇게 하지 않으면 죽어. 나는 확신했다.
이상한 걸로 고집을 피우는 날 못마땅하게 여겼지만 상혁이는 내 말을 따랐다. 물론 불평도 함께 따랐다.
상혁이는 조심스레 소년을 바닥에 눕혔다.
웅크린 자세였던 소년이 깊게 숨을 쉬며 평온하게 누웠다.
어? 누나! 쟤!!
상혁이의 외침과 동시에 소년은 더 깊은 쪽, 그러니까 벽이 무너져 바다와 맞닿은 곳으로 빨려들어갔다.
순식간이었다. 정말 순식간에 소년은 바다에 삼켜졌다.
우리는 모두가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소년은 사라졌다.
에이씨!
크게 욕을 뱉은 상혁이가 웅크려앉아 제 상체에 바닷물을 뿌리더니 소년을 따라 무너진 벽 틈새 사이로 가 바다로 빠졌다.
나는 여전히 멍하니 있을 수밖에 없었다.
-
상혁아!
바다는 넓었고 나의 외침은 고독했다. 나의 외침이 바다를 흔들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바다는 광대했고 나는 너무 작았다.
급하게 정신을 차리고 집 밖으로 나와 뛰었다.
상혁아!! 한상혁!!!
이게 무슨 일일까. 대체 난 왜 그랬던 걸까. 나는 나를 자책했다.
나로 인해 소년과 상혁이를 잃었다. 나는 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 걸까.
밤하늘과 바다는 맞닿아있어 두 개의 달을 만들었고, 나는 그 밝은 빛에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다.
그 빛은 마치 내 안의 내 죄를 다 밝혀버린 듯 했다.
나는 그 빛에 의해 발가벗겨졌다.
순간이었다.
내가 고래를 본 것은.
고래는 다시 한 번 고개를 하늘로 내밀었다.
설마, 설마 저거...!
고래의 입에 걸쳐져 있는 것은 사람의 인영이었다.
-
여보야, 무슨 생각해?
그는 종종 설거지하는 내 뒤로 와 나를 안곤 했다. 지금도 그러했다.
그냥, 오늘 꾼 꿈 생각.
오늘 무슨 꿈 꿨는데?
음... 아마 달이 두 개였다가 하나가 된 꿈?
뭐야, 그게.
그는 여전히 나를 안은 채로 낮게 웃었다.
그런데 상혁아.
응, 누나.
너, 그 날 말이야... 아, 아니야.
아, 뭔데~
아니야, 아니야.
그는 나를 흔들며 보챘다.
뭔데 뭔데~ 그 날 뭔데~
아니, 잠깐만 상혁아. 누나 어지러워.
빨리 말 안 하면 더 어지럽게 할 거야!
떼쓰는 그가 옛날의 교복 입던 그 같아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그리고 난 애써 가벼운 척 그에게 물었다.
그 날, 우리 마을에 쓰나미 난 날.
아, 응.
상혁이는 삽시간에 얼굴을 굳혔다. 나는 모르쇠로 일관하며 물었다.
너 그 때 물에 빠지고 무슨 꿈 꿨다고 했지?
아, 그거.
고래꿈이었나?
응, 고래꿈. 근데 이상했지.
이상했어?
응, 많이 이상했어. 사람이 고래로 변해서 날 물고 육지로 데려다주는 꿈이었거든.
아, 그래?
나, 그 날 정말 죽을 뻔했어. 단 한 번도 무서운 적 없던 내 바다가 온통 어둠 뿐이었어. 그래서 나도 모르게 정신을 잃었었나봐.
내 목에 얼굴을 묻은 상혁이는 조용해졌다. 아무래도 나와 너 때문에 소년이 죽은 거라 생각한 탓이겠지.
그런데 상혁아.
나는 진실을 보았어.
소년은 살아있을거야. 저 바다 어딘가에.
널 구한 그 고래의 모습을 한 채로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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뭍까지 다가온 고래는 다시 물 밑으로 들어갔다 나왔다.
아니, 나오니 고래가 아니었다.
소년은 하체를 바다에 담근 채 상혁이를 뭍으로 밀었다.
상혁이의 옷을 쥔 나는 할 수 있는 최대한으로 상혁이를 끌어 올렸다. 그리고 상혁이의 뺨을 쳤다.
한상혁, 누나 말 들려? 한상혁!
이내 정신이 들었는지 상혁이는 눈을 떴고 나는 그런 상혁이를 붙들고 울었다.
쿨럭거리던 상혁이는 곧 나에게 이상한 말을 늘어놓았다. 남들이 듣기엔 이상한 말이었겠지만, 그 말은 나에게 내가 내 눈으로 직접 본 것을 확인 시켜주는 말이었다.
누나, 나, 고래, 고래가... 고래가 나 구해줬어...
고래...?
응, 고래, 근데 걔가 고래였어...
상혁이는 다시 눈을 감았다.
나는 다시 눈을 들어 바다를 보았다.
소년은 없었다.
바다의 달은 곧 고래의 등에 가려져 버렸다.
하늘 아래 남아있던 두 개의 달은 곧 하나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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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한 해설? (보셔도 되고 안 보셔도 무방합니다.) |
1. 마지막에서 두번째 씬은 상혁이와 별빛이 결혼한 뒤입니다. 2. 소년(홍빈)과 너쨍이 눈빛으로 대화를 할 수 있었던 건 주파수 때문. 고래들은 주파수로 얘기를 하잖아요. 사람들의 생각과 고래들의 주파수가 같다면 어떨까, 하는 가정하에 써봤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소년과 대화할 수 없었던 건 사람들이 홍빈이에게 그만큼의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기 때문. 3. 고래는 피부가 마르면 안 된다고 들었어요! 공기 중에 노출된 시간이 정해져 있다는 걸 동물농장에서 본 것 같아요;ㅅ; 그래서 홍빈이가 처음엔 괜찮았지만 시간이 지나고 아파한 거죠ㅜㅠ 4. 별빛이 홍빈이를 바다로 데리고 간 이유! 글을 잘 썼더라면 이런 해설따위 안 써도 되었겠지만 글을 다시 읽어보니까 설명이 필요할 것 같아요ㅠㅠ 홍빈이의 눈물이 바닷물이었기 때문이야. 바닷물과 눈물은 그 특유의 짠내가 다른 데다가 온도차가 있었으니까! 차갑고 짠내나는 바닷물이 홍빈이의 눈물 자체였고 별빛은 직감적으로 홍빈이가 바다에서 사는 애구나, 라고 생각한 거죠! 5. 상혁이는 사실 그 일(소년이 고래가 되어 상혁이를 살려준 일)을 잊을 수가 없었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말해봤자 허무맹랑한 소리로 들릴 게 뻔하니까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 거예요. 꿈이 아니란 건 진즉에 알고 있던 거고요. 그리고 별빛이 자신 때문에 소년이 죽은 거라고 자책할까봐 말을 꺼내지도 못하는 거고. 별빛과 상혁이는 사실 서로 착각하는 거죠. 서로가 제 탓할까봐8ㅅ8 6. 대화에 큰 따옴표나 작은 따옴표를 쓰지 않은 이유; 상혁이나 다른 사람들과 하는 대화나 소년과 하는 대화는 대화라는 본질 안에서 보자면 같기 때문입니다. 그 매체가 소리이냐, 주파수(;;)냐에 따라 다를 뿐 결국엔 같은 대화라는 선상에서 글을 쪘어요;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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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