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싶다
굳게 닫혀있던 방문을 열어 보았다. 지난 시간들이 소복이 쌓인 듯 책상이며 침대, 옷장에 먼지가 켜켜이 내려 앉아 있었다. 우리가 함께한 사진이 담긴 액자에도, 네가 즐겨 보던 책에도, 목숨보다 소중히 여기던 차키, 내가 선물해준 시계에도. 하얀 먼지가 너의 손길처럼 닿아 있다.
세월에 희미해진 너의 향기가 무거운 공기와 함께 방 안에 잠겨 있었다. 좀 더 빨리 이 문을 열어보았더라면 난 더 너 같은 향기를 맡을 수 있었을까. 코끝에 아리아리 맴도는 옅은 너의 흔적에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지난 밤 꿈에 네가 나왔다. 어제처럼 생생한 모습인데 그 끝은 조금 닳고 헤져 있었다. 내가 달려온 시간만큼 너는 낡은 모습이었다. 너는 그 날처럼 등을 보인 채로 앞서 걸어가고 있다. 나는 달리고 너는 천천히 걷고 있었는데, 나는 끝내 너를 따라잡지 못했다. 지쳐서 헉헉대는 나를 너는 한 번 돌아보고는 그대로 걸어 나갔다. 계속 걸어 나갔다. 너는 점점 작아지고, 얇아지더니, 마침내는 보이지 않았다. 천천히 너는 사라졌다.
그래서 네 방의 문을 열었다. 지나가면서 쳐다보는 것조차 안타까워서 한동안 멀리했던 그곳이었다. 너의 모든 것을 그 안에 던지듯 밀어두고 잠가 두었던 너의 공간. 흘러간 시간 속에서 사실 나는 네가 그리워져서 다시는 열지 않으리라 결심했던 그 곳의 문을 연다.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고 했던가. 언제 들어왔는지 모르게 내 마음을 꽉 채워놓았던 네가 썰물처럼 남김없이 빠져나가자 처음에 나는, 어땠더라. 먹먹했던가. 터질 것 같았던가. 너무 오래된 전이라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하지만 오래된 기억에도 흔적은 있다. 미친듯이 아파했던 그 기억의 잔해가 남아 아직도 쿡쿡 심장이 찌른다. 내 잘못이 더 큰 파도가 되어 내 인생을 송두리 째 덮친다. 난 몇 년이나 너에게 속죄하는 마음으로 들리지도 않는 용서를 구하고 있다.
우리 마지막 날 기억하니.
내가 너에게 너무 화를 냈었지. 너는 나더러 지친다며 그만 좀 하라고 했었지. 나 사실 너한테 그렇게 부담 주거나 할 생각은 아니었어. 나는 그게 사랑이었으니까. 내 마음이 이러니까, 너도 그럴 거라고 생각했어. 내 사랑을 이해하지 못하는 네가 이기적이라고 나는 그렇게 이기적인 생각을 했었던 거야.
헤어지자는 말은 그렇게 쉽게 하는 게 아닌데, 너 따위는 필요 없다는 말, 더 좋은 사람이 있다는 말, 그런 거짓말은 하는 게 아닌데. 상처받은 네 얼굴을 보면서 묘하게 즐거웠던 내가, 아직도 너에게 난 이런 존재구나, 확인하면서 행복해했던 내가, 악마같아. 너는 우는데 왜 나는 웃었을까. 너는 아픈데 나는 왜 기뻤을까. 너는 슬픈데 왜 나는, 행복했을까.
홀가분한 마음으로 너를 버리고 돌아와서, 곧 네가 돌아오겠지, 하루, 기다리고. 태산처럼 높았던 너의 자존심을 떠올리며 이틀을 기다리고. 사흘, 또 나흘. 시간이 흐를수록 불안해졌어. 그리고 닷새 째 되던 날 너의 번호로 드디어 걸려온 전화에 난 화를 내버리고 말았지. 지금 장난 하냐고. 벌써 며칠 째냐고. 그러니까 네가 말하더라. 네가 아닌 목소리로. 김명수 씨를 아십니까, 라면서.
네가 이 글을 볼 수 있다면 난 조금이라도 마음이 편해질까. 내게 너를 만날 수 있는 단 1분의 시간만이라도 주어졌으면 좋겠어. 아니면 너와 이야기만이라도 할 수 있는 1분이, 주어졌으면 좋겠어. 그럼 난 너에게 미안하다고, 다 내 탓이라고, 잘못했다고 용서를 빌고, 너에게 용서를 받고, 그럼 조금이라도 마음이 편해져서 너를 더 이상 미안한 얼굴로 바라보지 않아도 되고, 너를 좀 더 행복하게 기억할 수도 있을 텐데. 이것 또한 내가 편해지기를 바라는, 내 이기인가, 끝까지 나만 생각하는 내 욕심인걸까.
이젠 너를 봐도, 너의 이름을 들어도, 너와 비슷한 사람을 스쳐도 괜찮을 것 같았는데. 니가 이 방에 없다는 걸 이제 좀 받아들이면 괜찮아질 것 같았는데. 아직 어려운가봐. 꿈에만 나와도 이렇게 네가 그리운데, 너를 떠올리기만 해도 눈물이 고이는데, 어떻게 널 잊어.
다시 방문을 닫는다. 언제 이 문을 다시 열 지 모르겠지만, 다음을 기약하며 꼭 걸어 잠근다. 다음에는 더 단단해져서 이 문을 열어야지. 그 땐 또 이렇게 눈물을 흘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도 여전히 너를 사랑한다면, 명수야.
아마 난 영원히 너를 놓지 못할 것 같아.
오늘도 사랑해.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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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집착인가 사랑인가
나 자다가 깼는데 갑자기 너무 슬퍼져서 이거 썼어요..
리얼감 돋는 꿈을 꿔서...
여러분 주변 사람들한테 잘해주세요..
후회할 일이 꼭 생겨요...
뭐 해 줄 걸, 뭐 할 걸, 뭐라고 말 할 걸...
전하지 못한 마음은 몇 년이고 계속 마음속에 남아서 잊은 줄 알았는데도 문득문득 이렇게 찾아와요. 뱉을 수도 없고 삼킬 수도 없는 그리움이란 몹쓸 병 같은 거. 누군가에게 영원히 잊혀지는 사람은 없나봐요.
진짜 보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