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과 이상의 경계. 나는 이상을 택했다.
꼭 감겨진 두 눈두덩이 위에 찬 바람이 결을 따라 스친다. 추운 건 이제 지겨운데. 슬며시 눈을 떠 본 장면은 꽤나 익숙한 풍경. 남학생들이 눈 오는 날 강아지 마냥 뛰놀던 학교 운동장과 그 운동장 옆, 여학생들이 삼삼오오 모여 담소를 나누던 등나무 쉼터, 조회대. 나에겐 지독한 상처와 외로움의 공간들. 그들이 내 발 밑에 있으나 이곳은 어딘가 낯설다. 수업 시작 종도 울리지 않고 황량한 적막 만이 존재하는 곳. 어쩌면 나에겐 이런 학교가 더 어울리는 장소였을지도.
옥상 난간에 걸쳐진 다리를 흔든다. 냉랭한 공기 속을 두 다리가 가른다. 추운 느낌에 교복 자켓 위로 겹쳐 입은 패딩을 굳게 여민다. 언제부터 내 손에 있었는지 모를 안개꽃 가지 하나를 살살 돌린다. 그때 철컥 하며 단단한 철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린다. 소리가 나는 쪽을 향해 고개를 돌리니 문 사이로 낯설지 않은 얼굴이 보인다. 성재였다. 반가운 마음에 서로의 얼굴에 잔잔한 미소가 피어 오른다. 여전히 티없이 깨끗한 웃음이다.
" 늦지 않게 왔네. "
" 좋아해 "
" 뜬금없이? "
" 응, 그때 못했거든. 이 짧은 말을. "
성재는 여전히 당돌한 성격의 남학생이다. 만나자마자 대뜸 좋아한다니. 성재가 내 옆자리에 털썩 주저 앉자 거무튀튀한 먼지가 풀썩이다 이내 겨울 바람에 흩어진다. 그에게 안개꽃을 전하며 묻는다.
" 옥상 무섭지 않아? "
그러자 성재는 무심히 꽃가지를 만지며 장난스레 웃는다.
" 별로, 너도 여기서 한번 뛰어내려봐. 무섭나. "
표정으로는 미처 전해지지 않은 씁쓸함이다. 단지 그가 왔을 뿐인데 그토록 잿빛이던 풍경이, 이 장소가 생생히 살아난다.
잠깐 안 봤을 뿐인데 왜 이렇게 보고 싶었을까. 어쩜 넌 이리도 그대로야. 그 눈도. 그 코도. 애정어린 눈길로 성재의 얼굴을 훑는다. 그리곤 생각한다. 이렇게라도 다시 만나게 되어서 참 다행이야. 그의 손에 꼭 쥐어진 안개꽃이 다가와 간지럽힌다. 한층 가까워진 그의 얼굴을 조목조목 살핀다. 곧 성재가 내 이마에 그의 흔적을 남긴다. 서툴지만 진심이 담긴 사랑스런 입맞춤이다.
" 설아. 생각해보니까 나 너 처음 봤을 때부터 좋아했었다. 몰랐지? "
" 응. 나도 너 어렸을 때부터 좋아했는데, 몰랐다. "
내 대답에 사뭇 성재의 표정이 진지해진다.
" 여기서는 죽지도 않으니까 평생 놀고 먹고 다 하자. "
아이처럼 내 어깨에 기댄 그에게서 가슴 깊숙이 숨겨둔 외로움이 전해진다. 이제는 나 때문에 외롭지 않았으면. 한 손으로 성재의 어꺠를 감싸며 짙은 초콜릿색 머리카락 위에내 머리를 슬며시 기댄다. 순간의 낭만을 온 몸으로 즐기며.
꼭 어제같은 우리의 유년기. 비로소 우리는 성숙해졌다. 더이상 간단한 공식조차 모르는 어린아이가 아니었다. 우리는 지독히도 쓴 초콜릿이다.
너로써 완성되는 온전한 이상(理想)세계.
반복재생
결국 성재는 설이와 함께 이상세계에서 행복했다는 해피엔딩 같지 않은 해피엔딩!!
이번편은 분량이 너무 적어서 포인트가 없어용
왜 이번 편은 고쳐도 고쳐도 마음에 안 드는지..하..
다음엔 더 높은 퀄리티의 글을 들고 오겠습니다!! 읽어주시는 독자님들 사랑해요♥
(성재 목소리 꿀ㅠㅠ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