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질 듯한 머리에 잠에서 깨어났다.
주위를 둘러보자 보이는 익숙치 않은 풍경들.
그리고 깨달은,
아, 나 세븐틴이지.
[세븐틴/홍일점]
이터널 선샤인 (3/5)
솔솔 풍겨오는 맛있는 냄새, 그리고 소란스런 바깥.
거울을 보고 대충 얼굴을 정리한 다음에
문을 열자, 보이는
"누가 여기다 간장 탔냐아!"
"아핰ㅋㅋ하앟ㅋ카캌ㅋ캌 먹었닼ㅋㅋㅋㅋㅋㅋ서명호 당첨ㅋㅋㅋㅋ"
그리고,
"자, 오늘은 부 셰프라고 불러주세여~ 자, 고기 갑니다!!"
"부셰프는 무슨 부 솊...어?"
방 문 열고 한참을 서있다, 눈이 마주친 민규.
민규가 몸을 움찔, 하더니. 이내 장난스럽게.
"안녕히 주무셨습니까? 가온 형님?"
엄청나게 높인 존댓말을 쓰는 민규에,
소파에 앉아있던 승철이 민규의 뒷통수를 후려치곤,
"잘잤어 가온아?"
"응"
"얼른 와서 고기먹어. 오늘 스케쥴 없잖아아!"
승철의 말에 놀라 입을 벌리자,
부엌에서 채소를 씻던 순영이,
"오늘 하루종일 고기 먹고 연습하고 할꺼니까 빼지마라 김세봉"
".......알겠어"
멍하니 자리에 서있자, 내 어깨를 통통, 가볍게 두드리는 누군가.
누구지? 하고 뒤를 돌아보자
윙크하며, 내 입에 쌈을 쑤셔넣어주는 민규
"웡에유윀엠?"
"아, 먹으라고. 가만히 서있지 말고"
"아, 말로 하지"
괜히 툴툴대자 씨익, 미소 짓는 민규.
그리고, 갑자기
"끄오아아앙!!! 만세삼창 세븐틴!!! 쎗더넴!! 세븐틴!!"
소리치는 누군가의 목소리,
화들짝 놀라 바라보자,
음악방송 vod를 보며 소리지르는 부승관.
그리고, 그 안에서 예쁜 무대의상을 입고
함께 춤추고,
노래부르고, 미소짓고, 인터뷰하는 나.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분명 저건 나인데,
그렇지만 저건 내가 아냐.
띵하니 아파오는 머리에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
소파에 앉아있는 정한의 옆에 걸터 앉았다.
앉아서 음악방송을 보고 있자 옆에서 말을 걸어오는 정한.
"너 어제 애들한테 막 존댓말 썼다며. 왜 그랬어?"
"어.....그냥 갑자기 아팠다가 깨니까, 반말했던게 미안해서?"
무의식적으로 나온 능글맞은 말장난들.
점점, 가온이 되가는것 같은 내 자신.
좋은건가? 좋은거겠지.
적어도 원래의 나처럼 우울하진 않으니.
고기를 먹기 위해 머리를 묶으려고 방으로 향했다.
방에 들어가자 내 침대에 누워있는 지훈.
"뭐야, 왜 여기 누워있는데"
"새삼스럽게 왜 그래. 여기 아니면 잘 수 있는데 없어. 알잖아.."
"치, 얼른 나와서 고기먹어. 승관오빠가 고기 기가 막히게 구웠어"
"갑자기 왠 승관 오빠야?"
".........나보다 나이 많잖아?"
"원래는 그냥 부승관이라고 했으면서?
너 어제부터 조금 이상하다.
너 왜 그래. 어디 아파?"
정곡을 찔러오는 지훈의 말.
삐질, 흐르는 식은 땀. 그리고,
"오빠, 만약에 엘리베이터에서
다른 세계로 이동할 수 있다고 하면 믿을거야?"
조심스럽게 묻자, 배게에 얼굴을 묻고 푸스스 웃는 지훈.
그리고,
"너 지금 나 일어나라고 그러는거지? 아, 말도 안돼는 소리하지마"
이불 속으로 파고드는.
나와 지훈이 한참을 실랑이하자,
뭘 하던건지 거품기를 든채로
방 불을 껐다 켰다 하기 시작하는 순영.
"아- 권순영 뭐하는데"
"이지훈 너 빨리 일어나라-"
갑자기 어지러운 시야, 또다시 들리는 이명.
휘청, 하는 몸
"야, 괜찮아?"
신나게 움직이던 손가락을 멈추고 걱정스레 물어오는 순영.
"으응. 갑자기 어지러워서"
내가 그렇게 말하자, 부엌에서 오렌지 주스를 마시던 한솔이,
"안 먹으니까 그래 돼지야."
라 툴툴거렸고,
한솔의 말에 거실에서 고기를 먹던 승철이,
"너때문에 안 먹는거야"
그리고 다같이 웃는 세븐틴,
그리고 그에 미소 짓는 나.
+
이렇게 먹어본게 얼마만인지.
평소의 나는 누가 챙겨주지 않으면 잘 먹지 않았었다.
친구들은 점점 말라간다며 나에게 이것저것 사주었지만,
난 먹지 않았고 어느새 거식증이라는 병이 찾아왔다. ,
하지만 난 병원에 가지 않고, 먹지 않아 생기는 두통을 잠재우기 위해 타이레놀을 먹어댔다.
계속해서 돌아가는 악순환의 수레바퀴.
지금의 나는 얼마나 행복한지 가늠조차 되지 않는다.
+
아침부터 거하게 고기를 먹곤, 연습을 위해 연습실로 향했다.
흘러나오는 익숙한 노래,
그리고 무의식적으로 움직이는 몸.
그리고 상기 된,
여기의 난 내가 아니야.
한참을 연습했을까,
거울에 습기가 차기 시작하자 순영이,
"좀 쉬었다 할까?"
라 말하며 물을 벌컥벌컥 들이켰고,
그에 긴장이 풀려 드러누운 나,
힘들어 바닥에 드러눕자 나를 차례로 밟고 지나가는
민규, 석민 그리고 승관.
어떻게 반응해야하지?
당황해 눈만 도륵도륵 굴리자 더 당황한 승관이,
"원래 같으면 욕해야되잖아!!"
승관의 말에 당황해
"부승관 너 죽어..."
라고 낮게 얘기하자 소리 지르며 도망가는 승관.
또 다같이 웃는 세븐틴.
아, 행복하다.
한참을 낄낄대며 웃고 있으니, 찬이 내 옆으로 총총대며 걸어왔다.
편안한 기분, 조용히 눈을 감자,
"시상에 이게 무슨 일이여! 의사 선생! 여기 사람이 쓰러졌구만!"
소리지르는 찬,
그러자 뛰어와 수술 하기 시작하는 석민과 순영.
옆에서 꺼이꺼이 울어대는 승관과 민규
어이 없어서 반격도 못하고 자리에 누워 낄낄거리기만 했다.
온몸을 감싸는 즐거운, 행복한 기분.
원래의 나로 돌아가기 싫어.
나, 김 가온으로 계속 살고싶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