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 seven days(7일 동안) # Friday4
그날 이후로 난 태환형을 찾으러 다녔다. 미친 사람처럼 여기저기 들쑤시며 샅샅이 훑었다.
민성형에게 받은 신상정보에서 휴대폰 번호로 연락도 해보았다.
그러나 휴대폰 스피커에서는 전원이 꺼진 상태라고만 되풀이할 뿐이었다. 젠장!
아쉽게도 집 연락처는 없어서 배터리가 나가 전원이 오프된 상태로는 도저히 연락할 방도가 없었다.
그래서 지금 살고 있는 집주소로 찾아갔다.
그 주소는 예전에 살던 곳과 다른 지역이었고 현재 내가 있는 서울이었다.
다행이다 싶은 마음도 들었다. 어릴 적 기억만으로 찾아갔다면 허탕만 칠 뻔 했으니까.
집은 오피스텔로 흔한 복합 상가 건물 내에 있었다. 집을 찾아갔지만 인기척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이사라도 간 것일까? 그건 아니겠지.
힘이 모조리 빠지는 느낌이 들어 바닥에 주저앉아 접힌 무릎에 머리를 기대었다.
"하아...형...어딨어."
이렇게 기다리면 그가 오지 않을까 하고 하루종일 있어봤지만 태환형은 오지 않았다.
아프다면서...엄청 아프다면서...죽을 병 걸린 환자가 대체 어디로 돌아다니는 건지 저녁이 다 된 지금까지도 오지 않는걸까.
울컥하는 마음에 다시 솟구치는 눈물을 삼켰다.
《삐로로》
《지금 어디냐? 당장 와라. 중요한 정보 알아냈으니까. -민성》
형의 문자에 알려달라는 답장을 보냈고 되돌아온 답장은 없었다. 할 수 없이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밤새도록 집앞을 지키고 태환형과 만나려고 했던 계획이 무너졌다.
형이 중요하다고 했다면 중요한 정보였기 때문에 무시하고 계속 있을 수만은 없었다.
아쉬움을 뒤로한 채 오피스텔에서 나왔다.
이렇게 갔다가 마침 태환형이 되돌아오면 어쩌지? 그러한 생각때문에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겨우 때었다.
"중요한게 뭔데요."
"자."
급하게 차를 몰고 회사앞으로 갔다. 아직 일하는 중이었던 민성형은 잠시 나와서 나에게 종이서류를 하나 건네주었다.
이 서류가 중요한 것이라고? 의아했지만 서류를 찬찬히 읽어보았다.
"박태환...부(父) 사망(死亡), 모(母) 사망(死亡)...형...이거 정말이에요?"
믿기지 않는 사실에 눈동자가 흔들렸다.
난 그가 오피스텔이 살길래 따로 독립하여 홀로 사는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같이 함께 할 부모의 존재가 없었던 것이다.
나의 떨리는 물음에 형은 고개를 끄덕이며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맞아. 그...박태환이라는 그 사람이 고등학생때 돌아가셨다더라."
"어떻게..."
"교통사고로. 후...그 청년 참 불쌍하다. 어릴 때 부모 여의고 이제는 자기가 죽을 병에 걸리고...하아...이런게 세상은 불공평하다고 하는거지."
"......"
눈물이 났다. 울움소리도 내지 못하고 부들부들 떨리는 입술을 꼭 깨물고 눈물만 또르르 흘리었다.
이십년동안 찾지 못했던 내 탓 같았다. 그런 내가 미워서 하늘에서 벌을 주나보다.
왜 태환형에게만 이렇게 모진 시련을 주는 것인데. 몹시 슬펐다. 생각조차 하기 싫을만큼 안타까웠다.
"친척들은 많아서 한쪽에 의탁하고 살았다던데...그러다 독립한 것 같더라."
"......"
"그리고 화장했대. 부모님...묻지 않고 화장하고 납골했다더라."
"납골? 거기가 어딘데요?"
"서울 근교. 주소는 종이에 적혀 있다. 에휴...이게 뭐냐. 너때문에. 나까지 찝찝하게. 니가 뭐라고 형을 흥신소 직원처럼 부려먹냐. 하아..."
"미안해요...형. 그리고 고마워요. 형밖에 없어."
"고마운 건 아냐? 밥 사라. 그리고 지금 가볼거냐?"
"아...응. 그럴까 싶어요. 왠지 형이 있을 것 같아요. 지금까지 집에도 안왔고...혹시 집으로 왔을지도 모르지만 한번 찾아뵈야하니까."
살아 생전에 보지 못하고 이미 세상을 떠난 그분들을 찾아뵙는다는 사실이 못내 슬펐고 가슴이 아팠다.
한번 더 고맙다는 인사를 전하고 자동차를 탄 다음 네비게이션에 주소를 찍고 납골당으로 출발했다.
그 길을 가는 동안 머릿속은 복잡했다.
그곳에 형을 만날 수 있을까? 형을 만나면 어떻게 위로를 하지? 부모님부터 본인 병까지....쉽게 말을 꺼낼 수 있는 화제가 없었다.
"미치겠다..."
그리고 내 마음에게 묻는다. 왜 그를 이토록 필사적으로 찾는건지.
죽을 병에 걸리고 고통스러워할 형이 불쌍해서? 그 처지가 안타까워서? 이십년동안 쌓아온 그리움이 아까워서?
어느 것도 마음에 들지 않는 생각만 떠올랐다.
하지만 이내 복잡했던 마음은 확실하게 말을 해주었다.
그저 보고 싶으니까. 힘들어할 그를 달래주고 싶으니까. 그래서 그를 이렇게 찾는 것이라고 말해주었다.
그래. 태환형에게는 내가 필요해.
갑자기 나타난 내가 그에게 위로가 될 사람이라도 될런지 모르지만 그렇게 나를 위로했다.
웃는 모습이 예뻤던 형의 얼굴이 보고 싶다.
힘차게 액셀러레이터를 밟았다. 그 반동으로 자동차는 쏘아진 총알처럼 앞으로 튀어나갔다.
-
끼익! 급브레이크로 지면과 마찰하는 타이어가 소름끼치게 비명을 질렀다.
급하게 차에서 내려 납골당 안으로 뛰어들어갔다. 관계자 직원에게 뛰지말라는 한 소리 들고 난후에는 빠른 걸음으로 이동했다.
여기 저기 납골함을 살폈다. 너무도 많았지만 끈질기게 찾았다.
"아, 여긴가."
태환형의 부모님 사진이 담긴 액자가 놓여진 칸을 찾았지만 그곳에 태환형은 없었다.
아쉬웠지만 먼저 태환형 부모님께 허리 숙여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아저씨. 아주머니. 저 쑨양이에요. 곧잘 버들이라고 주셨던 그 꼬마요. 기억나시죠? 지금은 이렇게 많이 컸지만..."
밝게 웃고 있는 형의 부모님 사진을 바라보고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조금 어그러진 미소였다. 결코 좋다는 웃음은 지을 수 없었다.
"일찍 찾아뵙지 못해서 죄송해요. 바쁘다는 핑계로...거리가 멀다는 이유로...오지 못했어요,"
고개 숙여 한번 더 인사하고 나오려는 나의 눈에 하얀 물체가 들어왔다.
액자 바로 앞에 놓여져 있었는데 정신이 없었던 것인지 지금에서야 눈에 들어왔다.
꽃이었다. 하얀 국화 한송이.
꽃은 깨끗한 자태를 뽐내며 놓여 있었다. 전혀 시들지 않은 모습으로 놓여 있었다.
"어?"
전혀 시든 기색이 없는 꽃을 보면서 깨달았다.
형이 왔었다. 태환형이 온지 얼마되지 않았음을 알아차렸다.
서둘러 납골당에서 나왔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그곳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는 시내로 뛰어갔다.
태환형이 있을까봐 열심히 뛰어다녔다. 그러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어디로 숨었는지 머리카락 하나 보이지 않는지 모르겠다.
하늘은 이미 황혼으로 붉게 물들어 어두어 지고 있었다.
반쯤 포기하고 천천히 거리를 걸었다.
"어딨어요. 형."
툭.
걷고 있는 나의 팔에 무언가 부딪혔다. 사람이었다.
고개를 숙이고 걷는 남자의 어깨를 잡아 사과를 했다.
"괜찮아요?"
나의 물음에 그제서야 고개를 들어 얼굴을 보여주었다.
그 얼굴은 사진으로 수없이 봐았던 얼굴이었고 지금 필사적으로 찾고 있는 사람의 얼굴과 똑같았다.
형이었다. 태환형. 박태환 그였다.
그토록 찾아도 없더니 이렇게 찾았다. 기뻤고 동시에 슬프기도 했다.
먹먹해져오는 가슴에 입을 꾹 다물고 끓어오르는 내부를 진정시켰다.
그리고 퉁퉁 붓고 붉어진 태환형의 눈이 보였다. 몹시 울은 티가 여실하게 드러났다.
그 모습이 아파보여서 나도 모르게 물었다.
"어디 아파요?"
다시 묻는 나를 멍하게 올려다보던 그는 갈라진 목소리로 대답했다.
슬픔이 담긴 그 목소리는 내 귓가를 깊게 파고들었다.
"네. 아파요. 아주 많이."
그말과 동시에 태환형은 정신을 잃었다. 무너지는 그의 몸을 받아내어 껴안았다.
정신적으로 몹시 힘들었나보다. 당연했다.
부모님을 잃은대다 아직 어린 나이에 나을 수 없는 죽을 병에 걸린 자신을 생각한다면 버틸 수 없는 것이 당연했다.
어떠한 강철의 소유자라도 쉽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태환형."
그의 이름을 불러보았지만 의식을 잃은 태환형은 깨어나지 않았다.
이렇게 있을 때가 아니었다. 겨드랑이 사이에 한쪽팔로 껴안고 다른 한손은 그의 무릎에 팔을 넣어 들어올렸다.
서둘러 병원에 데려가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혹시 암으로 더 나빠질 것도 없을 몸이라지만 더 위험할지도 몰랐으니까.
납골당으로 되돌아와 주차된 자동차에 그를 조심스럽게 뒷자석에 누이고 운전석에 올라타 조심스럽게 출발했다.
근처 병원에 도착했지만 늦은 시각이라 응급실로 바로 향했다.
응급실 안으로 들어가며 큰 목소리 외쳤다.
"여기 사람이 의식을 잃었어요!"
간호사가 유도하는 비어있는 침대 위에 조심스럽게 내려 눕혔다. 의사가 진료하는 것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조금 작은 키의 의사는 한참 큰 나를 올려다보며 진찰 결과를 말해주었다.
"단순히 의식을 잃은 상태입니다. 무슨 큰 충격을 받은 것 같네요. 링겔 하나 놓을테니 깨어나면 데려가세요."
다른 환자에게로 옮겨가는 의사에게 꾸벅 고개를 숙이고 보조 의자에 앉아 눈을 감고 있는 태환형을 내려다 보았다.
기다란 속눈썹이 그림자를 드리운다. 어릴 적 그때처럼 손을 들어 속눈썹을 살짝 만져보았다.
그리고 뺨을 만져보고 코, 이마 모두 조심스럽게 쓰다듬었다
피부가 무척 부드러웠다. 하얀 피부와 달리 대조적으로 붉은 눈가를 손끝으로 매만졌다. 안쓰러웠다.
몇번이고 그를 쓰다듬었다. 혹여 닳아 없어질까 걱정이 될 만큼 매만졌다.
그렇게 쓰다듬으면 그의 아픔이 나누어질까 싶어 밤새도록 그 곁을 지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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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이니까 이렇게 새벽에 글을 올려봅니다.
드디어 태환과 만났습니다.
프롤로그에 나왔던 그 장면입니다^^
태환의 시점과 비교해보시는 것도 좋아요.
암호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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