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두 개의 귀걸이 」
# 2
수업이 있어 이만 먼저 간다는 태환 선배를 배웅하고 성용 선배와 함께 걸어갔다.
태환 선배가 준 도시락을 떨어뜨릴세라 두 손으로 꼭 잡았다.
옆에서 함께 걷던 성용 선배가 눈을 흘깃더니 투명스럽게 말한다.
"언제 먹으려고? 수업 9시지?"
"네. 먹어야죠. 맛있을 것 같아요."
"아무렴. 태환이가 요리 하나는 잘하거든. 얼굴도 예쁘고 늘씬하고...성별만 여자면 시집오라고 할텐데."
태환 선배가 여자가 아니라서 못내 안타깝다는 듯이 말하는 성용 선배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시집이라니...결혼? 단어에 따라 연상되는 장면에 상상을 하던 나조차도 깜짝 놀랐다.
에이프런을 입고 부엌에서 요리하는 태환 선배가 나를 보며 입꼬리를 올려 웃는 장면이었다.
거기다 알몸의 에이프런이었다. 으아~~!!!!!
쑨양아! 무슨 상상을 하는거야!
내가 생각해도 미친 생각이었다. 지난밤 오랜만에 겪었던 섹스의 영향인걸까. 이따위 상상이라니...
그런 상상을 했다는 것만으로 죄책감이 들었다.
"야. 뭐하냐?"
"네?"
대뜸 묻는 성용 선배의 말에 이해가 되지 않아서 고개를 갸웃뚱했다.
"너 얼굴 빨개. 삶은 문어 같아."
"아..."
얼굴에 열이 오른다 싶더니 정말 빨개진 모양이었다.
최대한 빨리 얼굴을 식히면서 앞으로 태환 선배를 어떤 얼굴로 봐야할지 걱정이 앞섰다.
박태환 선배님 정말 죄송합니다. 불경스런 후배를 용서하여 주세요.
혼자서 원맨쇼를 하다가 어느새 학과 건물 앞에 도착했다.
"무슨 수업 들어?"
"강철민 교수님꺼요..."
"헉...그 교수님꺼? 엄청 깐깐한 양반인데...에고...취소조차 할 수 없는 전공과목이잖아. 안됐다. 나도 겪어봤지만 사람이 할짓이 아냐."
"선배도 들었어요?"
"당연하지. 전공과목인데...싫어도 어쩔 수 없다는게 서글플 뿐이지."
"선배는 뭐 받았어요?"
"나? A+. 내가 그걸 받기 위해 얼마나 용썼는대. 땡땡이의 유혹을 참아낸대다가 밤샘까지 치면서 레포트 작성했다는 거 아니냐."
"와...A+ 쉽지 않다던데...대단하세요."
"훗~ 마음껏 존경해라."
높은 코를 쭉쭉 하늘 위로 올려보내며 오만하게 자세를 잡고 있는 성용 선배를 보며 정말 존경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나도 최고 평가를 받을 수 있다면 좋을텐데. 교수님 얼굴만 생각해도 골치가 아팠다.
전적으로 상대평가의 레포트를 만점 받았다는 것만으로 성용 선배는 찬사를 받아야 마땅했다.
"지금 들어가냐?"
"아뇨. 먼저 태환 선배가 준 도시락 먹고요. 헤헷."
"그래. 다 먹고 나한테 넘겨라. 과룸에 와라."
"네."
건물로 들어가는 성용 선배와 인사를 하고 근처 벤치 앉아서 도시락의 뚜껑을 조심스럽게 열었다.
주먹밥과 갖갖은 반찬이 담겨 있었다. 먹기 좋게 썰려 있는 모습이 참 앙증맞아서 귀여웠다.
"와...정말 먹기 아깝다."
한입 먹어보았다. 혀끝에 닿는 음식물의 맛은 정말 맛있었다.
왜 성용 선배가 그 말을 했는지 이해가 되었다. 왠만한 요리사보다 맛있게 만드는 것 같았다.
솔직히 우리 엄마보다 잘 만드는 것 같다. 정말 태환 선배는 못하는게 없구나.
도시락을 순식간에 게눈 감추듯이 해치웠다.
"정말 맛있다."
아쉬움이 남을 만큼 금세 사라진 빈 도시락 통을 챙겼다.
아쉬움을 달래 가방에 도시락 통을 잘 집어넣고 강의실로 향했다. 강의시간까지 20분가량 남았다.
강의실에 도착하니 이미 도착한 학생들로 시끌시끌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친구들이 반겨준다.
"헤이~ 쑨! 이제 온거야?"
"응. 일찍 왔네."
친구들의 인사를 받으며 빈 자리에 앉았다.
"그럼. 하하. 어제 별로 안마셨거든. 쑨양 너는 많이 마셨지?"
"응. 엄청 마셨다."
"맞아. 쑨은 말술이잖아. 밑빠진 독같아. 안 취해!"
"그런데 어제는 아닌 모양이던데...난 봤거든. 술 취해서 헤롱헤롱하는 거."
"아, 나도 봤어. 어떤 여자랑 가는 것도 봤는데."
"그래? 와우~ 어떤 여자?"
"키가 한 170cm? 키가 크고 늘씬한데다 머리도 생머리였어! 물론 뒷태만 봐서 얼굴은 모르겠다."
"와...쑨양. 어서 털어내봐. 그 여성과 무슨 사이야? 얼굴은 예쁘냐?"
여기저기에서 어제 학과 술자리 이야기를 하는 통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거기다 태환 선배와 성용 선배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본 모양이었다.
그러나 기억이 없는 나로서는 다그치는 친구들에게 대답할 수 없었다.
그런 내가 답답했는지 어서 대답하라고 난리다. 한숨이 나왔다.
"나도..몰라..."
"뭔 소리야. 모르다니..."
"나도 모른다구. 그 여자..."
"엥? 그럼 왜 같이 간건데..."
"몰라. 아무것도 기억 안나."
그냥 짜증이 나서 책상에 얼굴을 박았다. 나도 생각 안나는 일을 어떻게 말하라는거야.
대꾸조차 하지 않고 엎드리자 미친놈이라고 격한 단어를 사용하는 친구들에게 외치고 싶었다.
미칠 사람은 나라고!
정말로 미칠 사람은 나였다. 아무 것도 기억나지 않았다.
그러면서 황홀했다는 기억만 남아서 더 괴롭혔다.
한번 더 그런 섹스를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머릿속 한켠에 남아 더 짜증나고 미칠 것 같았다.
나 정말 변탠가봐.
교수님이 강의실에 들어올 때까지 책상에 엎드린 채 간밤의 묘령의 여인을 떠올렸다.
다이아몬드 귀걸이를 제외한 아무런 흔적조차 남기지 않은 그 사람을 생각했다.
하지만 이렇게 머리카락이 빠지도록 생각하면 뭐하는가. 아무것도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수업하는 교수님의 목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았다.
모든 게 무성 영화와 같았다. 아, 미치겠다.
-
수업을 마치고 강의실을 나와 과룸으로 향했다. 태환 선배의 빈 도시락통을 성용 선배에게 전해주어야 했다.
똑똑. 문을 두드리고 과룸의 문을 열었다.
과룸에는 아무도 없었다. 안쪽으로 들어가 두리번 두리번 살피는 나의 눈에 종이 쪼가리가 눈에 들어왔다.
성의없이 찢겨진 종이 쪼가리에 무언가가 적혀 있었다.
《쑨양은 보아라. 미안하다. 갑자기 축구하자고 연락이 와서 자리 비운다. 미안하지만 환이에게 직접 도시락통을 전해다오. - 기선배가 씀》
잠시동안 그 종이 쪼가리를 잡고 눈만 깜빡였다.
축구하러 갔다라고 하면 한동안 오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축구 동아리에 들어 왕성한 활동을 할 만큼 실력이 좋은 선수로 활동했다.
결코 예비 엔트리에는 속하지 않고 본진에서 풀타임을 뛸테니 성용 선배 말대로 내가 직접 태환 선배에게 갖다줘야 했다.
물론 싫은 것은 아니었다. 감사하게 자신의 도시락을 먹으라고 준 착한 선배에게 갖다주는 것은 당연했으니까.
그저 아까 상상의 나래를 펼쳤던 꺼림칙한 기억이 걸려서 주춤거릴 뿐이었다.
"...갈까?"
태환 선배가 있을 학과 화실로 향했다. 그런데 선배는 수업을 마쳤을까?
고민하면서 열심히 걸었다.
중간 중간 가는 길에 친구들과 인사를 나누며 예술 학과 건물 앞에 도착했다.
처음 와보는 것이라 세워진 표지판과 주변 학생들에게 물어물어 화실이 있는 건물층에 겨우 도착했다.
복도를 걷는데 반대편에서 걸어오는 두 명의 여학생들이 조근조근 대화하는 것을 들었다.
"너무 멋지다. 그치?"
"응. 태환오빠는 정말 멋진 것 같아. 친절하고 다정해."
"거기다 너무 예뻐. 웃는 거 봤니? 너무 예쁘더라. 착하고 다정하고...남친 삼으면 좋일텐데."
"그건 너만의 꿈이 아니야. 다 그런다구."
그녀들은 키득키득 웃으며 지나갔다.
착하고 다정한 선배는 누구에게든 인기가 좋았다. 외모부터 성격까지 빠지는 것이 없으니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이상형의 남자. 방금 전 그녀들의 대화속 처럼 여기저기에서 안나오는 데가 없을 정도였다.
멀대같이 키만 큰 나랑 다르게 모든 것이 완벽한 사람이었다.
여자친구가 있으려나?
지금까지 지내오면서 그런 개인적인 질문은 해본 적이 없었는데 갑자기 궁금해졌다.
당연히 있겠지? 없는게 이상했다.
화실문을 열고 들어가자 한쪽에서 캔버스에 그림을 그리고 있는 태환 선배가 보였다.
선배를 부르려다가 그림에 열중하고 있는 그를 차마 부를 수 없었다.
그리고 격자 창을 통해 들어오는 햇살에 화사하게 빛나는 모습을 보니 두근거렸다.
하얀 피부는 햇살을 받아 더욱 하얗게 빛났고 옅은 머리색은 더욱 옅어져서 갈색빛으로 반짝였다.
아침에는 제대로 보지 못했던 쇄골이 유독 눈에 들어왔다.
태환 선배의 환상적인 옆태에 심장이 제멋대로 박동했다.
그림에 열중하던 태한 선배가 굳은 몸을 스트레칭 하며 자세를 풀고 나를 발견하기 전까지 멍하니 선배만 바라보았다.
"어? 양? 여긴 왠일이야?"
나를 보며 환하게 미소짓는 태환 선배의 얼굴을 보자 심장은 더욱 펌프질을 하며 쿵쿵거렸다.
그 이유는 나도 몰랐다. 내가 왜 이러지?
대강 짐작하건데 선배의 웃는 모습이 너무 예뻐서 그런 걸거야.
여자든 남자든 선배의 미소에 반하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어? 누구든 다 나처럼 두근 거릴거야.
그만큼 태환 선배는 아름다운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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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동안 올리고 나서 바로 써서 올립니다.
여자와 함께 사라진 쑨양을 본 목격자가 많네요ㅋㅋ
이야기는 갈수록 미궁속으로...ㅎㅎㅎ
【암호닉】
ㅌ/흰구름/꽃게/유스포프후작/우구리/마린페어리/박쑨양/촹렐루야/잼/초코퍼지/쌀떡이/꾸워엉/탱귤탱귤/응가/햄돌이/토야/이율/아와레/허니레인/태꼬미/포스트잇/샤긋/딸기빼빼로/소띠/광대승천/태환찡/쥬노/빠삐코/초코퍼지/잼/렌/비둘기/박태쁘/아스/아마란스/뺑/피클로
★ 오타지적 환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