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에 1. 2. 3. 이거 꼭 봐주세요~
20.
윤기의 시선
"... 김탄소랬나, 저 여자애 이름이."
"..."
"착각하지 마, 민윤기. 너는 저 애랑 절대 못 이루어져."
"..."
"저 여자애는 이제 겨우 스물 한 살이야. 너는 서른이고."
"..."
"과연 나중에도, 저 여자애가 너와 결혼하고 싶다고 할까?"
"..."
"결국에 넌 다시 상처 받게 될 거야. 물론 이번엔 쿠키도."
"..."
"태어나자마자 없는 것과 있다가 없는 건 차이가 많이 클텐데, 감당할 수 있겠어?"
"..."
"그러고도 저 미래를 약속할 수 없는 여자애와 관계를 지속하면, 넌 이기적인 거야."
그 말을 끝낸 후 연희아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무렇지 않게, 처량한 모습을 모두 지우곤 그렇게. 흘끗 본 정수정의 주먹이 안쓰럽게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바로 옆에 서 있던 김남준이 정수정의 주먹을 잡아주고 있었고.
"... 네 말을 들으니까, 그런 것도 같네."
"민윤기!"
"그런데 누누히 말하지만 정말 네가 관여할 일이 아닌 것 같은데."
"..."
"적어도 쟨, 너처럼 도망치진 않을 것 같거든."
"..."
"책임감도 너보단 뛰어나고, 무엇보다 제 어미도 버리고 간 아기를 제 자식처럼 돌본다는 건,"
"..."
"적어도 그 어미보다는 인간적인 사람일테니."
내 말에 이번엔 정수정이 주먹을 풀고 연희아가 주먹을 꽉 쥔다. 그 모습이 흥미로운 듯 지켜보는 김남준과 박지민. 연희아는 고개를 돌려 어이없다는 듯 하, 하고 웃더니 다시 나를 쳐다본다.
"너 진짜 미쳤구나...? 아홉 살 어린 여자애를 상대로 지금..."
"그 아홉 살 어린 여자애보다 지금 네가 더 비참하다는 거 아나 모르겠다."
"..."
"여기서 더 하면 더 비참한 바닥 꼴을 면치 못할텐데. 아까 봐주랄 때 떠나라고 하지 않았나."
"..."
"정말 모든게 다 털린 채 이 바닥에 내던져지고 싶어?"
더 이상 얼굴을 보고 싶지 않았다. 계속해서 그 아이와 내 사이의 믿음을 깨려고 애를 쓰는 연희아에게 마지막 말을 남기고 김남준에게 손짓했다. 김남준과 박지민은 내 손짓에 고개를 끄덕이곤 연희아의 팔을 잡는다. 연희아도 이 뜻을 알았는지 둘의 팔을 내쳐버리곤 제 손으로 대문을 열더니 그대로 나가버렸다. 지끈거려오는 머리를 부여잡고 쿠키의 방으로 향했다. 그리고 문을 연 순간 보이는 껴안고 둘이 좋아서 어쩔 줄 모르는 김탄소와 쿠키. 내뱉는 듯한 웃음을 지어 보이곤 정호석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팔짱을 끼고 어이 없다는 듯 웃고 있는 그가 보였다.
#
"야, 민쿠키!!!!!"
"마, 마망 왜 화내애!!!!!!"
"너 마망이 이거 이렇게 벗어놓지 말라고 했어 안 했어!!!!"
"마, 마망!!!!! 소리 지르지 마아!!!!!"
아침에 눈을 뜨면 보이는 건 쿠키와 김탄소의 추격전. 그리고 주위에서 들려오는 웃음소리. 보나마나 유치원 가기 싫은 쿠키가 아무렇게나 던져놓은 옷가지들을 보고 김탄소가 빡쳐서 잡으러 다니는 것일 거다. 그걸 보고 주위에서는 계속해서 웃어댈테고. 오늘 새벽 세 시에 잠들어서 일곱 시에 일어난 것 치곤 너무 심하지 않나, 나 일하다 잠들었는데... 갑자기 치밀어오르는 빡침에 자리에서 일어나 이불을 아무렇게나 던져놓곤 방문을 열었다. 그러자 일동 정지. 내가 일어나면 꼭 이렇게 멈출 거면서 왜 저러나 몰라.
"이, 일어나셨어요...?"
"... 그럼 그렇게 뛰어다니면서 소리를 지르는데 안 깰 수가 있나."
"죄송해요 ㅠㅁㅠ"
"됐어, 쿠키 옷이나 입혀."
내 말에 아 맞다, 하곤 똑같이 일시정지한 쿠키를 잡아 억지로 옷을 입힌다. 흐앙, 마마앙!!!! 하고 소리를 지르는 쿠키를 뒤로한 채 부엌으로 향했다. 그러자 자연스럽게 컵에 물을 따라주는 정수정. 잘 잤어? 하고 물어본다. 순간적으로 소름이 돋아 물을 뿜자 인상을 팍 찡그리더니 더러운 새끼... 하고 욕짓거리를 뱉는다. 그래, 저래야 정수정이지;
"왜 그래, 아침부터 뭐 잘못 먹었어?"
"아직 아침 먹기 전이거든."
"근데 왜 이래."
"오늘 점심에 탄소랑 쇼핑 가기로 했어."
"뭔 쇼핑."
"오늘 임무에 하고 갈 악세사리."
"그런 거 집에서 사라고 했잖아."
"싫어! 직접 가서 보고 고르는 게 재미있어. 임무 전에 탄소 맛있는 것도 좀 먹이고. 애 팔목에 저게 뭐야 저 나이에."
"..."
그러면서 파스 가득한 김탄소의 팔목을 가리킨다. 그래, 내가 대역 죄인이지.
"근데 무슨 임무에 악세사리를 해."
"몰랐어? 오늘 파티에서 죽이는 거잖아."
"... 젠장."
그 말은 즉슨 정수정이 만든 부담스럽게 화려한 수트를 입으란 소리군. 감히 예언하는데, 오늘 하루는 매우 좆같겠다.
라고 생각하고 그래, 좋게 생각하자 싶어 실컷 쇼핑하고 오라고 카드를 줬는데, 왜 나는 지금 토파즈 귀걸이에 정신이 팔린 정수정과 그 옆에서 루비 반지에 정신이 팔린 김탄소의 옆에 있는 걸까. 것도 자기가 왜 여기에 있는지 모르겠다는 얼굴을 한 김남준을 끼워서.
세 시간 전, 아침을 먹고 김탄소와 함께 쿠키를 유치원 버스까지 데려다 주러 나갔을 때였다. 쿠키는 우리의 손을 한 쪽씩 잡고 신나게 발걸음을 하고 있었다. 평소엔 잘 들려주지 않는 콧노래도 흥얼거리며. 그 모습이 귀여운지 같이 따라부르는 김탄소도 있었고.
'쿠키 잘 다녀오겠습니다 인사해야죠!'
'우웅, 마망! 파파! 잘 다녀오게씀미다!'
'응, 잘 다녀오구. 아 맞아 선생님, 쿠키가 요즘 잘 때 자꾸 발로 이불을 차요.'
'아, 정말요? 제가 낮잠 잘 때 잘 지켜볼게요, 감기 기운은 좀 나아졌나요?'
'약도 먹이고 했는데, 병원을 한 번 데려가야할 듯 싶어요. 늘 감사해요, 선생님.'
'아니에요, 오늘 유치원에서 밥 먹구 약 한 번 더 먹일게요. 너무 걱정 마세요~ 자, 쿠키 이제 갈까요?'
'웅! 파파 마망 빠빠~'
'잘 다녀와라.'
'잘 다녀 와~'
솔직히 놀랐다. 그래 뭐, 물론 같이 지내면 쉽게 알 수 있겠지만은, 잠 잘 때 이불 걷어차고 저런 건 알기 쉬운 게 아니거든. 꼼꼼히 애를 체크해서 그걸 유치원 선생에게도 주의를 당부하는 모습이 정말 영락없는 엄마 같아서. 연희아 없이 혼자 쿠키를 키울 땐 절대 신경쓰지 못했던 부분을 신경써주는 것 같아서. 이제야 정말 쿠키에게 엄마가 생긴 것 같아서. 멍하게 선생님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김탄소를 바라보다 바짓단을 꾹 잡는 느낌에 밑을 쳐다보자 쿠키가 똘망똘망한 눈을 하고 나를 쳐다본다. 왜, 하는 입모양을 보이자 쿠키가 그 조그만 입을 열어 파파 뽀뽀. 한다. 피싯, 웃으며 쭈그려 앉아 볼을 갖다대자 쪽, 하는 소리와 함께 입술을 찍었다가 뗀다. 갑자기 왜 애교야, 하고 작게 묻자 요즘 마망하테만 신경 써준 거 가타서! 하고 새침하게 대답한다. 저게 무슨 다섯 살이야, 열 다섯이겠지... 고개를 절레절레 젓다 어쩔 수 없이 새어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쿠키에게 귓속말로 오늘 유치원 칭얼거리지 않고 잘 다녀오면 저녁에 파티 가자. 하고 속삭이니 파티를 좋아하는 쿠키는 좋다고 방방 뛴다. 그렇게 쿠키를 보내고 김탄소와 집에 돌아오면서 오늘 하루 계획을 짰다.
'일단 10시에 언니가 가자고 그랬어요. 근데 그게 나을 것 같긴 해요, 쿠키가 세 시에 오니까.'
'그럼 지금부터 준비하란 소리잖아.'
'집에 가자마자 씻어요.'
'아 씨.'
'귀찮아도 씻어요, 오늘 언니가 오빠 머리 올린다고 그랬어요. 오늘 저녁에 뭐 입을 거예요?'
'왜.'
'전에 제가 사준 타이 하면 안 돼요?'
'뭐 어렵다고.'
'그거랑 전에 내가 예쁘다고 했던 블랙 수트.'
'너 화이트 드레스 입을 건가봐.'
'들켰다.'
하고 나름 달달한 대화를 했던 것 같은데...
"탄소야! 이거 봐! 언니가 이거 사줄게 한 번 봐봐!"
"아, 아니 언니 이거 비ㅆ..."
"무슨 소리야! 빨리!"
"... 어울리네."
회상에서 깨어나 다시 정신을 차려보니 김남준은 어느새 정수정의 손에 이끌려 세뇌되어 로봇처럼 어울리네를 연발하고 있었다. 대충 시간을 보니 두 시. 슬슬 출발해야겠다 싶어 그들 곁으로 다가가 입을 열려는데, 어떤 반지가 눈에 확 들어온다. 예쁘네, 라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그 반지를 보자마자 드는 생각이 있었다. 씩 웃곤 그들에게 이제 갈 시간이다, 하고 등을 떠밀었다. 아쉬워하는 애들을 데리고 백화점 로비 쯤 왔을 때, 화장실 좀 다녀온다며 자리를 피해 다시 그 악세사리점으로 들어왔다.
21.
"마망!"
"쿠키 왔어? 우리 쿠키 오늘 안 울고 잘 했다며?"
"웅! 글고 오늘 망개가 떡 줘써."
"뭔 떡, 망개떡?"
"...?"
"진심 노잼이다."
"저거 언제 나가 죽는대냐."
"아 왜요 솔직히 다 웃었잖아요, 인정? 인정?"
"노 인정 씨발."
"노인정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정말 노잼이다. 어쩌면 이런 사람들만 모여서 조직을 만들었나 몰라. 흘끗 수정 언니 쪽을 쳐다보자 신경도 쓰지 않겠다는 듯 더블 이어폰을 나눠 낀 채 김남준과 눈을 감고 있었고 운전하는 정호석은 진심 질린다는 듯 운전대를 잡지 않은 손으로 반대편 팔을 쓱쓱 문질렀다. 시선을 돌려 쿠키에게 오늘은 유치원에서 뭐했어? 하고 물으니 쿠키가 그 작고 오동통한 손가락을 하나씩 접으며
"오늘은 망개랑 놀아꾸, 낮잠두 자꼬... 음... 밥두 머거써!"
"그랬어? 야채도 먹었어?"
"우... 그럴걸...?"
"그럴걸이 뭐야, 야채 먹어야지."
"머, 머거써."
"정말?"
"응! 야채 다 머거써!"
"잘했어, 그럼 이제 우리 쿠키 집에서도 야채 먹겠네?"
"... 구건 아직 마으미가 준비 안 댔대... 다음에 머글게... 응?"
그 모습에 웃음이 나와 크게 웃어버렸다. 민윤기는 전정국을 응징하다 쿠키를 쳐다보고 나를 쳐다보더니 왜. 하고 많은 의미가 함축된 물음을 던진다. 쿠키에게 파파한테 아까 했던 말 해 봐. 하고 부추기니 꼼지락거리며 안 해애, 하고 내 품에 얼굴을 묻는다. 웃음이 나와 머리를 쓰다듬으며 아휴, 이거 진짜 어떻게 해. 하고 한숨을 뱉었다.
"뭘 어떻게 해, 임무 완료하고 나서 또 봐."
"벌써 다 왔어요?"
"엉, 쿠키 이리 주고."
차 안에서 전략을 설명하는 역할인 하는 김석진과 CCTV를 해킹해 우리에게 상황을 설명해야 하는 김태형이 쿠키를 받아들곤 차 문을 열어 주었다. 문 바로 옆에 앉아있던 내가 내리자 수정 언니가 그 뒤에 따라 내리며 내 어깨에 팔을 걸친다.
"오늘 네 편으로 그 놈이 안 가길 바래."
"에이, 그래도 한 번쯤은 오지 않을까요?"
"그래, 그래도 너무 성급하게 움직이진 마."
"당연하죠."
"차 안에서 토끼 같은 자식이 기다리고 있잖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 지금 시간 오후 일곱 시 반, 임무 시작 시간은 여덟 시. 끝나고 나오는 시간은 여덟 시 반.
"그렇게 짧게요?"
- 어쩔 수 없어, 사람이 많은 시간이 딱 여덟 시야.
- 일단 김탄소가 먼저 말을 걸어, BTS 그룹 새로운 간부진이라고.
"꼭 얘가 해야 해?"
- 우리 얼굴 웬만해선 다 알잖아요, 인사 차 다가가기엔 너무 명분이 적어요. 애인 걱정되는 건 알겠는데, 이건 임무예요.
"누가 뭐랬나."
툴툴거리며 앞을 보는 민윤기를 빤히 쳐다보다 나도 모르게 웃음을 흘렸다. 김석진은 계속해서 전략을 설명했다. 나는 그것을 들으며 대충 대본을 짜고 있었다. 일단, 말을 건 뒤 요즘 최 회장이 관심 있다던 골프 쪽으로... 그러다 보면 시끄러운 주위 소음에 잘 이야기가 안 들린다고 한 후 호텔방으로 자리 옮기자고... 근데 같은 여자인데 가줄까.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어깨에 걸쳐지는 무언가.
"무슨 생각을 하길래 불러도 몰라."
"대화 짜고 있었어요."
"너도 정수정 닮아가냐, 꼭 대본을 쓰네."
"언니가 가르쳐 줬거든요."
"정수정 하여간에. 이제 들어가야 해."
민윤기는 자연스럽게 내 허리에 손을 옮기며 파티장 안으로 향했고, 나는 내 다리에 꽂아놓은 총을 만지작거렸다. 드레스가 조금 두꺼워 티는 나지 않겠지만, 혹시 모르니... 언제 들어가도 적응이 되지 않는 파티장 내부는 역시 화려했다. 떨어지면 그대로 이 안의 인원 모두가 즉사할 것 같은 크기의 샹들리에, 여러 가지의 음식들, 뭐... 고개를 두리번 거리며 최 회장을 찾았다. 민윤기가 옆에서 찾지 마, 알아서 올 거야. 하고 중얼거렸다. 그러고 보니 민윤기가 내 옆에 있어도 되나? 임무할 땐 나 혼자 말 거는 거 아니었나.
"같이 있기로 했어. 남자가 있는게 아무래도 여자 회장 꼬시는 데 쉽지 않겠냐."
"... 어, 진짜 싫다..."
"애인이 다른 여자 꼬신다니까 싫어?"
"뭐 딱히 그런 건 아닌데..."
"표정에서 다 드러나."
에잇.
"온다, 저 여자가 최회장."
"아..."
"안녕하세요, 민윤기 씨."
"아, 네."
"요즘 이런 사교계엔 잘 안 나오시더니, 무슨 일로?"
"뭐, 이런 사교계는 마음 내키면 오는 거죠."
익숙하다는 듯 가식적인 웃음을 내비치는 민윤기의 음성을 들으며 여자를 스캔했다. 언니가 가르쳐 준 대로 티 안 나게. 열심히 스캔하고 있는데, 눈에 띄는 것 하나를 발견했다. <EDIC>...?
저거 연희아 배신하게 만든 남자 회사 아닌가.
*
1. 이제 암호닉 안 받아요!
2. 이번에도 늦었네요...... (머리박기) 글은 썼는데 계속 늦어졌었어요 ㅠㅁㅠ
3. QnA 할까요 말까요 ㅠㅁㅠ?
글이 좀 짧은 거 같네... 다음은 완결입니다 양 거업나 많을 거예요 ㅠㅁㅠ
4. 늘 사랑하는 거 알지요~? ♡♥ 암호닉도 사랑하구 비암호닉도 사랑하구 다 사랑해~
암호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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