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태 함께 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암호닉 관련글은 밑에 있어요, 오늘은 끝까지 다 읽어주셔야 해요 정말로!
22.
"너무 오랜만에 뵌 거라, 조금 설레기도 하네요."
"여전하시네요, 그 날아다니는 입도."
"민 회장님 앞에서만 날아다니는 거 아시나 몰라."
"몰라도 되는 부분 같아서, 무시해도 되죠?"
누가 보면 이 여자와 민윤기 간의 신경전으로 볼 것이다. 하지만 어느 신경전과 다른 것은 민윤기는 약간의 짜증을 담고 있었고, 여자는 이상하리만치 신나 보였다. 저건 여유로움이 아니라 신난 거다. 게다가 약간의 수줍음도 가지고 있는 듯 하고.
"여전히 생각 없으신가 봐요, 제 제안에 대해서."
"그 때 바로 거절한 것으로 압니다."
"그래도, 민 회장님 드리려고 EDIC 도 반이나 인수를 해놨는데, 제가 EDIC 대표로 온 거 보면 모르시겠어요?"
"최 회장이 인수한 EDIC을 왜 저한테 주십니까."
"연희아,"
"..."
"복수하고 싶으셨잖아요."
"최 회장이 상관할 일이 아닌 것 같네요, 남의 손 빌려 하고 싶은 마음도 없고요."
〈edic>〈edic>〈edic>여자는 계속해서 날 힐끔거리며 민윤기에게 매달리는 것 같아 보였고, 민윤기는 그런 최회장을 밀어내며 짜증을 부리는 듯 했다. 그러더니 결국 내 손을 잡아 들어올리며,
"이미 연인이 있습니다."
"..."
"최 회장님이 그렇게 하고 다니셨던 제 뒷조사 중에, 아이가 있는 건 보셨으면서 어떻게 연인이 있는 건 모르셨나 봅니다."
"..."
"모르는 척을 하신다던가"
"... 민회장님."
"이제 그만 저희는 데이트를 하러 가야겠습니다. 집에 아이도 있고 해서 그런지 이 사람이 화려함과 점점 거리가 멀어지는 것 같아요."
"..."
"이렇게 드레스를 입은 모습이 더 어울리는 사람인데 말입니다."
민윤기는 꽉 잡은 손을 풀고 내 어깨를 감싸더니 싱긋 웃은 후 나를 이끌어 사람이 많은 쪽으로 향했다. 힐끗 돌아 본 그 곳에는 여자가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 눈에 놀란 것도 잠시, 민윤기는 저런 거 보지 말고 앞을 봐. 하고 고개를 돌려주었다. 나는 계속해서 이 상황에 대해서 드는 의구심에 민윤기를 쳐다보았고, 그는 내 시선이 느껴지는지 여기 저기를 둘러보며 무심하게 물었다.
"왜 그래."
"... 아, 아니..."
고개를 갸웃거리며 계속해서 혼자 꿍하게 생각하고 있는데, 민윤기가 저기 네가 좋아하는 파르페 있는데 먹을래? 하고 묻는다. 파르페라는 말에 또 기분이 좋아져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팔을 잡아 이끌었다. 그는 천천히 가자, 하면서도 웃음이 새어나오는 걸 참기 힘들어 보였다.
"맛있냐."
"네, 여기 파르페 진짜 괜찮네요."
"뷔페에서 나오는 거면 이 호텔에서 파는 거니까 종종 먹으러 오자."
"그래도 돼요?"
"안 될 건 뭐야."
"노출 심하면 안 되잖아요."
"그런 놈이 나랑 데이트도 다니고 쿠키도 매일 바래다 주냐."
"... ㅎㅎ"
민윤기는 열심히 파르페를 먹는 내 앞에서 다리를 꼬고 앉아 대화를 해주고 있었고, 나는 그런 민윤기의 말에 계속해서 대답하다 결국엔 파르페에 코를 박고 먹기만 했다. 누가 보면 이틀 굶긴 줄 알겠네. 하고 중얼거리던 민윤기는 내 입가에 쓱 손가락을 갖다대며 묻히고 먹네, 하고 제 손에 묻은 파르페 크림을 입에 갖다댔다.
"그런 장면은 어디서 보셨어요?"
"왜, 싫어?"
"아뇨 너무 뻔해서요. 드라마에서 봤죠?"
"어, 시크릿 가든."
"내가 아는 시크릿 가든은 안 그랬는데."
"입으로 떼줬어야 했나."
"누가 그렇대요?"
못하는 말이 없어 진짜... 화악 붉어진 얼굴을 가리려 고개를 푹 숙이고 파르페만 먹고 있는데, 이어폰에서 소리가 들려온다. 보나마나 김석진 아니면 김태형이다.
- V 입니다, 하라는 임무는 안 하고 노닥거리니까 재밌냐.
"이것도 임무의 일종이죠."
- 말은 잘하지. 보스는?
"김탄소 앞에 있다."
- J 입니다. 보이네요, CCTV가 위에 있다보니 얼굴들이 잘 안 보여요. C 드레스는 눈에 확 띄는데.
"이 호텔은 늘 뭔가 2% 부족해. CCTV를 사람 얼굴이 안 보일 정도로 높게 달면 어쩌자는 거야."
- 그러게 말입니다.
"살인사건이라도 일어나면 어쩌려고."
- 곧 최 회장 죽일 보스가 할 말은 아닌 것 같아요.
"닥쳐."
그렇게 말하고 내 앞에 놓인 다 먹은 파르페 그릇을 지나가는 웨이터에게 주는 민윤기. 나는 뒤늦게 드레스를 생각하며 괜히 먹었나, 하는 마음에 배를 통통 쳤다. 민윤기는 잘 먹으니까 보기 좋더만, 드레스 생각하지 마. 하며 내 손을 잡아 나를 일으킨다. 하여간에 눈치는 귀신이지.
"이제 시작이에요?"
"어, 정수정 일어난다. 반지 자랑했었네 저거."
"ㅋㅋㅋㅋㅋㅋㅋ 마음에 든다더니."
"넌 왜 아무것도 안 샀냐."
"아, 뭐... 그렇게 안 예쁘더라고요."
"그래?"
그 말에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그만둘 걸 그랬나... 하고 중얼거린다. 뭘 그만둬? 다 들리거든요? 하고 물으니 좀 듣지 마 그런 건. 하고 성큼성큼 내 앞에 먼저 간다. 웃겨, 중얼거린 건 자긴데 왜 나한테 그래... 시무룩해져 있으니 다시 내게로 와 내 손을 잡는다.
"최 회장이 대표로 왔다더니, 진짜 그 놈이 안 왔네. 사교 파티에는 무조건 오던 놈이 무슨 바람이 불어서."
"누구요?"
"EDIC."
- V 입니다, 그 새끼 외출 금지 당했을걸요?
"뭐? 외출 금지?"
- 또 스폰해주던 여자애 만나다가 걸렸거든요. 아버지가 외출 금지 시켰다고 들었어요. 그래서 최 회장이 왔고요.
"그 나이 먹고 외출 금지라니, 답이 없다."
아, 아까 그 여자가 한 말이...
"그래도, 민 회장님 드리려고 EDIC 도 반이나 인수를 해놨는데, 제가 EDIC 대표로 온 거 보면 모르시겠어요?"
"최 회장이 인수한 EDIC을 왜 저한테 주십니까."
"연희아,"
"..."
"복수하고 싶으셨잖아요."
그래서 저 여자가 EDIC이란 명찰을 가지고 있었던 거구나. 근데 연희아 이름을 알고 있어?
"그 여자는 연희아 이름 어떻게 아는 거예요?"
"그건... 아, 넌 왜 하필 이런 것만 물어보냐, 다른 건 안 궁금해 하면서.'
"알려주세요, 저 여자 죽이려는 이유는 뭔데요?"
"창피하니까, 나중에 들어."
- Crystal 입니다, 네 잘못도 아닌데 왜 창피하대ㅋㅋㅋㅋㅋㅋㅋ
"그럼 네가 설명하던가."
- C, 지금 바쁘니까 짧게 설명할게.
"네!"
연희아가 도망가고 한 삼 년 됐나? SUGA가 마음 추스리고 사교계 파티 자주 나왔었거든. 근데 거기서 최 회장이, 아 그땐 최 이사였다. 아무튼 걔가 SUGA한테 반한 거야. 처음엔 비즈니스 상으로 만나자고 막 그랬었거든. 근데 가면 갈수록 정도가 심해지는 거야. 우리 회사가 원랜 주택이 아니라 빌딩이었는데 저 여자가 계속 자기한테 넘기라고 빌딩 주인에게 협박해서 그냥 주택을 사서 옮긴 거거든. 그런 년이 SUGA한테 애인 생기는 걸 어떻게 두고 보겠어. 우리가 최 회장 죽이려는 것도 지금은 너를 노리고 있어서야.
〈/edic>
"제가 보스랑 사귀는 사이라서 그러는 거예요?"
- 응, 저 여잔 여태껏 SUGA한테 들러붙는 여자도 다 처리해왔었어.
"사생 수준이네요."
- SUGA 어디가 좋아서 참...
"야."
- 말씀 중에 죄송한데 HOPE 입니다, 지금 JK한테 최 회장이 붙었어요. 대충 이야기하는 거 들어보니까, JK가 SUGA 얘기로 먼저 떡밥 던져준 모양이에요.
"뭐? 그 새끼는 왜 안 시킨 짓을 하고 난리야."
- 제 말이요. 룸으로 가는 중이라 빨리 가야할 것 같아요.
"룸은 왜?"
- 그 여자 칼 들었거든요. 방금 JK한테서 지원 요청 들어왔어요.
- J 입니다, 지금 보스랑 C는 JK한테 가보고, HOPE은 19층으로 사람 못 올라가게 막고. RM이랑 Crystal은 무조건 데스크랑 말 맞춰놔.
김석진의 지휘에 맞게 우리는 빠르게 발을 옮겼고, 곧이어 이어폰을 통해 수정 언니와 김남준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데스크에 말해놓는 거겠지. 사실 곧 본 파티 시작이라 사람들이 잘 안 나가겠지만, 꼭 이런 사교 파티가 지겨워서 반항하는 놈들이 있거든. 저런 놈처럼. 나는 빠르게 엘리베이터 앞에 서있는 남자의 뒷목에 마취총을 쏜 후 옆에 눕혀놓았다. 그리곤 V, CCTV 잘 돌아가죠? 하고 물었다.
- 넌 무슨 여자애가...
"잘 돌아가냐구요."
- 파티장이 있는 층은 다 CCTV 돌려놨기 때문에 걱정 없어, 당장 올라가기나 해.
V의 말에 안심하고 엘리베이터에 탑승해 19층으로 향했다. 사람들이 타지 않아 엘리베이터는 막힘 없이 쭉쭉 올라갔다. 그 때 민윤기가 입을 열었다.
"왜 이렇게 덤덤하냐."
"네?"
"애인이 다른 여자한테 집착 당하는데."
"..."
"게다가 네 목숨이 달렸는데."
"어차피 오늘 죽을 거 아니에요?"
"..."
- ...
우리 막내가 처음 들어왔을 때가 엊그제 같은데... 하고 중얼거리는 언니의 목소리가 이어폰을 타고 흘러왔다. 아니, 이렇게 태평해도 돼? 우리 막내가 저렇게 타락해가는데? 하는 김태형의 목소리도 들리고, 이건 다 보스 때문이에요. 정호석도 빼놓지 않고 투덜거렸다. 옆에선 민윤기가 어이없는 얼굴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고.
"그렇게 보지 마요, 마음은 질투 가득이니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어쩌자고 그렇게 잘생겨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나 이제 엄청 튕겨야겠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퍽이나."
뾰루퉁해서 툭 튀어나온 내 입을 보자마자 민윤기는 한 번 더 웃음을 터뜨렸고, 엘리베이터가 도착하자마자 먼저 내려버렸다. 민윤기는 같이 내려야지, 남편 놔두고 내리면 쓰나. 하며 내 손을 잡았고, 나는 그 모습에 또 얼굴이 빨개져 고개를 홱 돌려버렸다.
- V 입니다, 연애하지 말라고. 곧 19 층 CCTV 화면 뚫을 거예요, 그때까지만 시간 벌어주세요.
"알았다."
- 그, C랑 웬만하면 애정행각 줄이시고요.
"왜?"
- Crystal인데, 왜!? 왜라는 말이 나와!??!?!?
어 언니...
간신히 김남준이 언니를 말리는 소리를 들으며 1902호를 찾기 위해 안내판을 확인했다 오른쪽에 위치해 있다는 안내말을 보고 방향을 튼 순간 나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아픈 꾹이라고 생각합시다... 손 누군지 알려주실 분... ㄱㅁㄱㅁ... ㄱㅂㄱㅂ...)
"... 존,나 늦게... 오네 진짜..."
"저... 전정국..."
"코드... 안, 부르냐..."
흰 색의 드레스를 빨간 피로 물 들인 채 쓰러져있는 최 회장 앞에 간신히 숨을 붙이고 앉아있는 전정국이 힘겹게 피가 터져나오는 부위를 누르고 있었기 때문에.
23.
민윤기는 놀라서 굳은 나를 보고 고개를 돌려 전정국을 발견한 순간 빠르게 다가가 피가 나오는 부분을 꾹 눌렀다. 고통으로 가득한 그의 얼굴을 보자 나는 머리가 새하얘지고 그 자리에 얼어 아무것도 하지 못했고, 간신히 입을 열어 V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V, V... 지, 지금 의, 의무반...
- 무슨 일이야, 왜 그래!
"JK가 칼인지 총인지에 맞았어, 지금 당장 병원 가야할 것 같으니까 의무반 불러.
- 잠, 잠시만요.
아수라장이다. 전정국의 셔츠를 벗겨 상처 부분을 지혈하는 민윤기, 의무반과 처리반을 부르는지 다급한 목소리의 김태형, 상황을 대충 눈치챘는지 거친 욕을 뱉는 김남준까지.
여기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다.
전공이 의학 쪽도 아니고 조직에 있던 기간이 세 달도 채 되지 않아 이런 직접적인 살인은 본 적도 없거니와 이대로 나가서 뭐라도 하려고 하면 짐만 될 수도 있다. 나는 그저 민윤기의 옆에서, 그가 상처를 눌러 피가 멎도록 지혈할 때까지 전정국의 손을 잡아주는 수밖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아, 흐... 진짜."
"마, 많이 아파요? 어, 어떻게 해줄까요 응?"
"..."
"이대로 ㅈ, 자면 안 돼요, 제발..."
"ㅇ, 안 자니까... 조용히... 좀... 골 울려."
- V 입니다, 호텔로 의무반 도착했대요! 지금 올라가는 중이랍니다! 조금만 더 버티세요, 조금만.
김태형의 말에 민윤기의 손이 좀 더 빨라졌다. 최대한 의무반이 올 때까지 해줄 수 있는 모든 일들을 다 해주고 싶겠지. 전정국도 그 마음을 알아서인지 정신을 놓지 않으려 내 손을 꽉 잡고 있었고. 그 때 갑자기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의무반이 도착했다. 19 층이라 아마 계단보다는 엘리베이터가 빨랐으리라.
"늦어서 죄송합니다, 일단 환자부터 보겠습니다."
"총알, 박힌 것 같으니까 당장 옮겨서 수술해야할 것 같은데."
"일단 응급처치부터 한 후 지하로 이동합니다!"
민윤기가 그들에게 끄덕거리고, 나는 이어폰으로 수정 언니에게 물었다.
"어, 언니... 지금 밖에 사람 많아요?"
- 곧 본파티라 그렇게 많진 않아. 아마 JK는 지하에 있는 우리 차로 옮겨질 거고, V는 호텔 내부에 있는 모든 CCTV를 뚫어야할 것 같아.
- 씨발.
"일단 전부 차에 가 있어. 곧 따라갈테니까."
침묵만이 감도는 우리 사이에 곧이어 처리반이 도착했다. 민윤기는 처리반에게 이것 저것을 지시하곤 나를 데리고 황급히 엘리베이터를 탄다. 그러더니 내 손과 드레스 끝자락에 묻은, 그리고 자신의 옷 곳곳에 묻은 피들을 보며 지하로 나가야겠다. 하고 엘리베이터 층을 다시 누른다.
"... 죽는 건 아니겠죠."
"그 여자 그렇게 총에 대해 전문적이진 않아."
"... 그, 그래도... 꽤 오랜 시간 있었던 것 같은데..."
"... 괜찮을 거야."
민윤기는 내 손을 꽉 잡으며 엘리베이터가 지하에 도착하고 문이 열리자마자 준비된 차를 향해 달렸다. 언니 말대로 본 파티의 시작이라 그런지 호텔 내부는 조용했다. 고개를 조금 들자 보이는 건 우리가 타고 온 검은 차 두 대. 나머지 한 대는 이미 전정국을 태우고 갔는지 보이질 않았고, 나는 민윤기와 함께 중간 차에 탔다. 차에 타자마자 기다리고 있었던 듯 언니가 나를 안아주며 세상에, 얘 피 좀 봐. 많이 무서웠지. 하고 걱정했고 나는 대답해 줄 힘도 없어 그저 언니의 품에 얼굴을 묻었다.
"호석이 형은요?"
"처리반."
"김태형, CCTV 화면 돌렸어?"
"네, 원래 화면은 곧 빼서 폐기할 계획이에요. 일단 지금 CCTV들은 다른 것들로 대체 되었고요."
"정국이 상태는 어때?"
"수술 중."
"... 하."
나는 드레스 자락에 피가 묻은 손을 닦고 있었다. 피가 내 손에 묻어 말라가는 그 기분이 딱히 좋진 않았다.
"호석이 온다."
"저 새끼도 만만찮게 피 범벅이네."
"그러고 보니, 전정국 이어폰도 없던데 일부러 뺐나."
"최 회장은 우리 이어폰 끼는 거 알았잖아, 의심 안 받으려고 뺐나 봐."
그가 일어나면 무조건 이야기부터 들어야겠다고 말하며 수정 언니는 머리를 흔들었다. 쿠키는 아무 것도 모른 채 김석진의 품에서 자고 있었고, 정호석이 차에 탔다.
"처리는 잘 했고, 지금 호텔 카페트 새로 깔고 있어. 피가 워낙 많이 묻었어야지."
"방 같은 곳은 잘 살펴봤어? 방에서부터 그랬을 수도 있잖아."
"마스터 키 받아서 다 열어봤는데 딱히 이상한 점은 없었어요."
"복도에서부터 그랬다는 거네."
"진짜 미친년이야, 죽는 그 순간까지도..."
"... 일단 출발해, 집에 가서 좀 씻자."
23.
"뭐, 딱히 없는데."
"딱히 없는 놈이 총 맞고 다 죽어가고 있었냐."
"아 그거 진짜 쪽팔려요, 여자한테 총 맞고... 김태형보다 더 창피해."
"어쭈, 형이라고 안 부르지?"
전정국의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이 났으나 지독한 마취에 의해 사흘째 깨지 않아 모두의 걱정을 사고 있던 가운데, 전정국이 깨어났다. 의사는 전정국의 눈을 까뒤집으며 불빛을 비춰보고 말을 걸어보더니 회복은 아직 좀 멀었지만 마취도 성공적으로 잘 깨어내셨네요. 하고 한 마디만을 남긴 후 나가버렸다.
"그래서, 뭔데."
"아, 파티 중에 잠깐 나갔다 왔었거든요."
그 호텔 초코 쿠키 맛있잖아요. 쿠키가 좋아하기도 하고. 초코 쿠키 보는데 쿠키 생각이 막 나길래 한두 개 집어서 갖다줬어요 차에 있을 거 아니까. 파티고, 제 얼굴 아니까 웨이터들도 안 잡더라고요. (그래서 지금 그 말이 중요한 게 아닐텐데.) 존나 중요해요, (뭐?) 아, 아니 완전 중요해요. 그러고 들어오고 있는데 최 회장이 있는 거예요, 어떤 남자랑. 얘기하는 거 들어보니까 대충 탄소 잡아놓으라고. 딱 봐도 뭐 꾸미고 있는 거잖아요? 그래서 보스한테 알리려고 파티장 안에 들어왔는데 얼마 안 가서 최 회장이 들어오더라고요. 이렇게 일찍 들어올 줄은 몰라서 무턱대고 다가갔죠, 보스한테 알리면 늦을 것 같아서. 그래서 얘기 막 하고 있는데 이 여자가 룸으로 가쟤요, 너무 시끄럽다고. (작정했네.) 그래서 지원 요청 누르고 같이 19 층으로 올라가는데, 이 여자가 갑자기 나보고 연기 잘 한대요. 이제 자기 EDIC 먹었으니까, 연기자 시켜줄 수 있다고 그러면서 보스 옆에서 떨어져서 연기자 하는 건 어떻냐고 막 그러는 거예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전정국이 연기자래...)(형, 형뚜! 형뚜!) 아 하지 마요 진짜ㅋㅋㅋㅋㅋㅋㅋㅋ 아무튼, 그래서 무슨 연기요 하고 시치미 떼니까 갑자기 총 꺼내 드는 거예요. 그래서 같이 총 꺼내 들었는데 왜 자기한테 다가왔냐고 말은 그렇게 하면서 손은 벌벌 떨리고 있는 거예요. 그냥 아무 말 없이 먼저 쐈거든요. 그러고 쓰러지길래 한 두 번 더 쐈어요, 이제 진짜 죽었겠지 싶어서 처리반 부르려고 폰 들었는데 갑자기 총소리 들리면서 아랫배가 엄청 아픈 거예요. 그래서 예...
"그래서 이 지경까지 오셨다."
"... 예, 뭐..."
"내가 한 두 번 더 쏘지 말고 직접 맥 확인하라고 했었을텐데."
"아 저 맥 잘 못 본단 말이에요."
"그걸 지금 변명이라고 해? 하마터면 너 죽을 뻔 했어, 미친 새끼야."
"보스, 쿠키도 있는데 욕은..."
"후, 너 아무튼 이 시간 이후로 무조건 회복에만 신경 써."
"알겠습니다."
전정국이 히, 웃어보이다 내 품에 안긴 쿠키를 향해 손을 뻗었고, 쿠키는 주춤주춤 전정국에게 다가가 형아, 형아 다친 거 쿠키 때무니야...? 하고 물었다. 그 말은 또 뭔가 싶어 모두가 쿠키를 쳐다보니, 그 때 초코 쿠키 마시썼는데... 또 먹고 싶다고 해서... 그래서 형아 쿠키한테 가져다 주려다가 다친 거야...? 하고 또 울기 시작한다. 전정국이 깨지 않는 사흘 동안 모든 눈물을 다 쏟았다고 생각했는데, 것도 아니었나 보다. 전정국이 당황하며 아니라고, 절대 그런 거 아니라고 세네 번 말할 때까지 쿠키는 그 닭똥같은 눈물 줄기를 죽죽 뽑아내며 울어댔다.
"저것도 아직 애야."
"5 살이잖아요."
"곧 6 살이야."
"내후년엔 초등학교 가겠네요."
"맞네."
"그 전에 쿠키 동생 만들어 줘야지."
"무슨 소리해요, 수정 언니!"
"맞잖아, 쿠키랑 7 살 차이 나는 여동생 만들어 줄 거야?"
"나이 차이 많이 나도 괜찮다던데?"
이 사람이. 민윤기의 등짝을 내리치며 이상한 소리 하지 마요! 하고 짜증내자 피실거리며 맞은 부분을 쓱쓱 문지른다. 그러더니 왜, 난 좋은데. 하고 바보같이 웃는다.
"이런 캐릭터였어요?"
"너 만나고 변한 거지."
"..."
"좋으면서 튕기네 또."
"내가 언제!"
"저 환자거든요, 연애질은 좀 나가서 해주실래요? 가뜩이나 간병할 사람도 없어서 슬픈데."
"내가 해줄게 ^ㅁ^"
"태형이 형은 좀 그래요..."
"그럼 내가!"
"지민이 형은 더더욱 안 되고요."
"씨발..."
24. [完]
"마망!"
"파파 주무시니까 조금만 조용히. 왜?"
"우웅, 마망이랑 파파는 사랑하는 사이자나."
"... 어, 그렇지...?"
"근데 왜 그 증거가 없어?"
"...? 증거? 너 그 단어 어디서 배웠어?"
"어제 꾹이 형아랑 씨그널 봐써!"
"그걸 네가 왜 봐..."
"보면 안 되는 거야아?"
"... 즌증극..."
애한테 살인 사건이 나오는 드라마를 보여주면 어떡해. 나가자마자 패 줄 거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쿠키가 내 팔을 잡아 흔들며 묻는다.
"아니, 요점은 이게 아니야!"
"너 그것도 시그널에서 배웠지."
"... 웅."
"... 그래, 요점이 뭔데?"
"증거가 피료해!"
"... 뭔 증거?"
"우리 사랑해요! 하는 증거!"
뭐 반지 같은 거? 하고 물으니 모든 걸 잃은 표정으로 달달 떤다. 애 오늘 상태 왜 이래... 쿠키 아파? 하고 묻자 아, 아니... 하고 얼버무리더니 그 작은 손으로 꼬물꼬물 내 손을 잡아 펼쳐 조그만 박스를 올려놓고 튄다.
"쿠키야 다쳐, 뛰지 마!"
"... 뭐야, 왜 이렇게 시끄러워."
"아, 미안해요. 깼어요?"
"아까부터 깨어 있었지."
"근데 왜 안 일어났어요?"
"쿠키가 잘하나 보려고."
"뭔 소리래... 아침으로 뭐 먹을래요? 다른 간부진들 다 임무 나갔는데."
"밥이고 뭐고, 상자부터 열어 봐. 쿠키가 준 건데."
"아, 맞아."
잠시만요, 하고 상자를 열어보니 작은 반지가 눈에 들어온다. 이걸 왜 쿠키가 준 건지 감이 안 잡혀 혼란스러워하고 있는데, 반지가 낯이 익다.
"예쁘네, 반지."
"... 이 반지 거기서 본 건데. 수정 언니랑 쇼핑하러 갔을 ㄸ... 이거 당신이 준 거죠."
"... 어."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쿠키한테 왜 시켰어요?"
"내가 그냥 툭 주면 의미 없잖아."
"ㅋㅋㅋㅋㅋ 쿠키가 주니까 또 색다르긴 하네. 쿠키랑 결혼해야지."
"뭐?"
"쿠키가 반지 줬잖아요, 그럼 쿠키랑 결혼해야ㅈ, 아!"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반지를 냉큼 빼앗아 가더니 다시 내 손 위에 올려놓는다. 뭐, 하는 얼굴로 쳐다보자 이제 내가 줬으니까 나랑 결혼해야 해. 하고 어린애 같이 군다.
"미쳤어..."
"뭐."
"미쳤다 진짜."
"뭐, 왜."
"30 맞아요? 곧 31 되는 거 맞고?"
"나이 얘기 하지 마, 안 그래도 요즘..."
"귀여워 죽겠어 진짜."
"까분다."
"그래서, 대답은?"
"뭔 대답을 바래요, 쿠키가 이미 나 엄마인 걸로 알고 있는데. 도망도 못 가게 생겼네."
"그래서, 싫어?"
"감사하죠, 당신이랑 결혼하게 되고, 쿠키 엄마가 된 것에 대해서."
"진짜로?"
"진짜로. 쿠키한테 잘하세요, 쿠키 아니었음 나 당신이랑 결혼도 안 했어."
"그래, 웨딩드레스 맞추러 가자."
"삐쳤어요? 삐쳤어?"
"아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민윤기가 제일 좋아요."
"어쭈, 민윤기?"
"그러면서 왜 웃는데?"
"..."
*
QnA 에 쏟아진 관심 사랑 모두 너무 감사해요ㅠㅠ 의도치 않게 이상하게 되었는데 수정 후 안 잊고 찾아주신 분들도 너무 감사해요ㅠㅠ
1. 끝이 조금 허무한가요... 어쩔 수 없지 뭐 번외를 써야겠다! 달달로만 채워진 걸로다가!!!!!!!!!!!!!!!!
2. 이 글의 시작은 내가 독서실에서 집에 갈 때 만난 꼬마 아기에 의해 만들어졌다... 그 아기도 노란 코트 입고 있었는데 ㅠㅠ 손이 토실토실했는데ㅠㅠ 아가야 잘 지내니 ㅠㅠ
3. 남준이 글 언제 올릴까요옹
4. 텍파는 언제 메일링 할까요옹
5. 곧 개학이네요 겁나 늦어지겠군
6. 암호닉 받습니다. 받는데, 오늘 자정까지 받을게요.
7. 자기 암호닉 꼭 확인하신 후 신청해주세요!
8. 실수로 암호닉 신청하셨던 분들도 다시 해주셔야 해요.
암호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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