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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딸기 케이크

 

 

 

 

 

 

 

 

기욤이 나고 자란 곳은 거리였다. 날씨 좋은 날에도 거리는 항상 우중충하고 축축했다. 다행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거리에는 그와 처지가 비슷한 아이들이 많았다.

어찌어찌 아이는 낳았는데, 키울 돈이 없어 눈물을 머금고 버려졌거나 고아원이 싫어서 뛰쳐나온 경우였다. 어떻게 해서 거리로 나왔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오직 먹을 것과 잠잘 곳뿐이었다.

***

비가 주룩주룩 내려 아이들끼리 모여 서로의 온기로 몸을 덥히던 날이었다. 비에 옷은 다 젖어버렸고 몸은 자꾸만 차가워졌다. 그 때 커다란 마차가 그들 가까이에 멈췄다.

"뭐지?"

"저기 마차 좀 봐. 엄청 커."

"나 저거 뭔지 알아. 성에서 나온 마차야. 봐, 짙은 하늘색에 월계수 문양이잖아."

이윽고 문이 열리며 나이 지긋한 남자 하나가 내렸다. 마부가 잠깐 내리더니 아이들을 가리키며 뭐라 말했다. 남자는 몇 번 고개를 끄덕이더니 그들 가까이로 걸어왔다.

"야, 이쪽으로 온다."

"우리를 잡아가려는 걸까?"

"진짜?"

"나 잡혀가기 싫어!"

"기다려 보자. 확실한 게 없잖아."

기욤은 아이들을 향해 말했지만 별로 소용은 없었다. 아이들이 겁에 질려 웅성거리고 있는 중에 어느새 남자가 그들 앞에 와 있었다.

"너희들 집 없지?"

"네. 우리 모두 집이 없어요."

기욤이 겁에 질린 아이들을 대신해 용기 내어 대답했다.

"그럼 날 따라와라."

"어디로 가는데요? 우리를 잡아가는 건가요?"

"잔말 말고 따라와."

"말해 주세요. 안 그러면 여기서 한 발짝도 안 움직일 거예요"

남자는 불쾌한 눈빛으로 기욤을 쏘아봤다. 기욤도 지지 않고 마주 봤다. 남자는 못이긴 듯 말을 꺼냈다.

"성으로 간다. 왕께서 방금 청소부들을 칼로 베어버리셨거든. 왜인지는 내 알 바 아니다. 청소부들은 줄었고, 성은 그대로. 하지만 이제 너희들이 청소부로 성을 들어가게 되면

청소부 수가 그대로 유지되겠지. 어떠냐? 여기서 비를 맞으면서 떨고 있을 거냐, 아니면 비를 피할 지붕과 음식이 있는 성으로 갈 테냐? 물론 목숨은 보장 못한다만."

마지막 말이 으스스했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아이들은 하나도 빠짐없이 마차를 탔다. 성에 도착해 남자가 시키는 대로 씻고 옷을 갈아입은 뒤 청소 도구들을 하나씩 받았다.

"자, 너희 둘은 저쪽, 너는 여기 이 방. 나머지는 날 따라와라."

기욤은 빗자루와 걸레닦이를 들고 남자를 따라갔다. 이렇게 그의 청소부 생활은 시작되었다.

***

하루는 그가 방 하나를 빠드리고 청소를 한 적이 있었다.

"멍청한 놈! 가구 하나도 아니고 방 하나라니! 오늘 점심은 없는 줄 알아! 그 대신 넌 점심시간동안 청소를 더 해라. 이 방까지 포함해서 다른 곳도!"

기욤은 아연했다. 한숨을 푹 쉬고 있는데 그의 친구들이 다가와서 그를 위로했다.

"참아, 오늘 저 자식 기분 안 좋더라고."

"우리가 조금 덜 먹으면 네가 먹을 양은 나올 거야."

"괜찮아. 내 잘못인데 뭘. 그리고 덜 먹긴 뭘 덜 먹어. 양도 적은데."

"그건 맞아. 이건 거리에서 먹는 거랑 별로 차이가 안 나잖아."

"따뜻하잖아. 훔쳤다고 쫓아오는 주인도 없고."

"하긴."

***

점심시간, 기욤은 그가 빠뜨린 방을 다 청소하고 추가로 청소해야 하는 곳으로 갔다. 성에서 가장 높은 탑으로 연결되는 기다란 복도였다.

"으, 진자 길다. 이걸 언제 다 해. 오후에 또 해야 하는데 이걸 점심시간에 다 하란 말이야?"

그는 일단 해보기로 했다. 먼지 쓰는 것만으로도 힘들었다. 쉼 없이 쓸고 쓸어 복도 끝에 다다랐다. 꽤 깨끗해 보였다. 먼지가 또 없나, 하고 이리저리 둘러보는데 탑으로 들어'가는 문이 보였다.

열려 있었다.

기욤은 갑자기 호기심이 발동했다.

'어차피 걸레질도 하기 싫은데 들어갈까? 잠깐인데 뭘.'

기욤은 조심스레 탑으로 들어섰다. 나선 돌계단이 위로 올라가 있었다. 그도 한 걸음 한 걸음 위로 올라갔다.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제법 높았다.

"아, 힘들어. 진짜 높네." 

그만 갈까도 생각해봤지만 여태껏 올라온 게 아까워서 계속 올라가기로 했다. 몇 분 더 올라갔을까, 기욤의 앞에 나무로 만든 문이 있었다. 문 옆의 벽에는 큰 창문이 있었다.

기욤은 창문 밖으로 바깥의 풍경을 보았다. 아래의 정원이 까마득히 보였다.

수도의 풍경이 한눈에 보였고, 저 멀리 커다란 호수가 보였다. 그 옆에 작게 붉은 뭔가가 보였다.

"건물인가? 하여튼 경치는 끝내주네."

순간, 문 안쪽에서 말소리가 들렸다.

"오빠, 오늘도 날씨가 참 좋네."

"스텔라, 창문에만 붙어 있지 말고 여기 와서 좀 앉아. 위험하잖아."

".....알겠어."

기욤은 화들짝 놀라 계단을 달리듯 내려갔다. 정신없이 복도로 돌아와 숨을 몰아쉬었다.

"유령인가? 사람이 살고 있다는 얘기는 없었는데......"

머리를 열심히 굴려보았지만 탑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얘기는 들은 적도 없었다.

목소리는 어린 소녀의 목소리와 여자아이보다 나이 많아 보이는 소년 목소리, 이 둘이었다.

'그런데 목소리가 영 슬픈걸......'

기욤은 날씨가 참 좋네, 하고 말하던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

그날 밤, 기욤은 뜬눈으로 점심의 일을 곱씹었다.

"야, 너 탑에 관해서 이상한 얘기 들은 적 없냐?"

"무슨 이상한 소리야. 빨리 자."

"아니, 사실 내가 오늘 탑에 올라가봤거든. 왜, 성에서 제일 높은 탑 있잖아."

"뭐라고?"

'성에서 제일 높은 탑'이라는 말이 나오자 방 전체가 벌떡 일어났다.

"거기 가 봤어?"

"어때? 어떻게 생겼어?"

"박쥐 살아?"

"거기 유령 산대. 유령 만났어?"

"어.... 그게.... 하나씩 말해. 하나씩."

기욤이 당황해서 말을 더듬거렸다. 하지만 질문 공세는 그치질 않았다.

"아, 좀 조용히 해!"

결국 큰 소리를 냈다. 그는 작은 한숨을 내쉬고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사실, 오늘 내가 복도 청소했잖아. 방 하나 빼먹었다고. 그 복도가 그 탑이랑 연결되는 장소였어. 궁금해서 올라갔는데 웬 문이 있는 거야. 그런데.... 거기서 말소리가 들렸어. 두 명이야. 여자 하나랑 남자 하나. 근데 어른 목소리는 아니었어."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아이들이 유령이라며 웅성거렸다. 기욤이 정말 유령인가, 생각할 때쯤.

"바보들, 그건 유령이 아니야."

그 목소리는 너무 또렷해서 모두의 시선을 집중시켰다. 기욤과 나이가 얼추 비슷한, 성에서 제법 오래 일한 청소부였다. 경력 덕분에 왕의 집무실 근처 방들까지 전부 그의

몫이었다.

"기욤, 너 다시 거기 가지 마. 죽을 수도 있어."

"왜? 그리고 유령이 아니면 뭔데?"

"그건..... 유령이 아니라 사람이야. 아주 높은 사람. 이 나라 왕자랑 공주."

"왕자랑 공주?"

"내가 청소하다 들었는데 왕이 자기 자식들을 거기 가뒀대. 그 사실을 아는 사람은 이 성에 얼마 없어. 우리 같은 사람들이 그 사실을 알게 됐다간 너뿐만 아니라 우리도 다

위험해 질 거야."

기욤을 비롯해 나머지도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가서 자. 오늘 일은 잊어버려."

***

몇 주일이 지났다. 기욤은 그 탑에 다시 가지 않았다. 하지만 목소리는 여전히 그의 기억에 남아있었다. 슬픈, 아주 슬픈 목소리.

위로하고 싶었다.

점심시간, 적은 양의 식사를 마치고 청소부들은 낮잠을 잤다. 식사시간을 다 쓰기에는 식사 양이 너무 작았다. 그래서 나머지는 부족한 잠을 보충하기 위해 낮잠을 잤다.

기욤도 낮잠을 자려는데 발밑의 빗자루가 보였다. 너무 낡아서 새 빗자루가 필요했다. 그는 청소도구를 모아둔 창고로 갔다. 창고는 부엌 옆에 있었다. 요리사들도 식사를 하고

낮잠을 자는지 안이 조용했다.

'잠깐, 그러고 보니 조금만 더 가면 그 복도네'

기욤은 낡은 빗자루를 들고 잠시 생각했다. 그리곤 조심스레 부엌으로 들어갔다. 휘황찬란한 음식들이 완성된 채 줄지어 놓여 있었다.

그런데 한 편에 먹음직스런 산딸기로 장식한 케이크 하나가 보였다. 구석에 있는 것이 실패작인 모양이었다. 자세히 보니 모양이 찌그러져 있었다.

기욤은 케이크를 조심스레 들고 탑으로 향했다. 어느새 문 앞, 그는 케이크를 조용히 내려놓았다.

이번엔 다른 의미로 숨이 찼다.

재발리 창고로 가 창고 벽에 붙어 부엌의 소리를 들었다. 요리사들이 하나 둘 돌아오고 있었다.

"어, 여기 케이크 누가 버렸어?"

"모르겠는데.... 뭔 상관이야, 어차피 버릴 거였는데. 누구든 치웠겠지. 버릴 음식은 항상 거기 놓잖아. 나도 가끔 눈에 보이면 버려."

"그래? 그럼 뭐."

기욤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새 빗자루를 챙겨 낮잠을 자러 돌아갔다. 비실비실 웃음이 나왔다.

***

그 날 이후 기욤은 매일같이 부엌에 가서 탑에 가져다 줄 간식이 있나 살펴봤다. 아예 없는 날이 많았지만 하나라도 있을 때면 기분이 날아갈 것 같았다. 산딸기 케이크가 자주 나왔는데, 아무래도 만들기 까다로운 모양이었다.

하루는 산딸기 케이크를 놓고 돌아가는데 위에서 기쁨에 찬 소녀의 목소리가 들렸다.

"오늘도 왔어!"

그 날 기욤은 하루 종일 구름에 떠다니는 기분이었다.

***

반란군이 수도를 점령했다. 기욤은 동료 청소부들과 함께 숙소 방 안에 틀어박혀 경과를 지켜보았다. 혹시 몰라 창문을 꼭꼭 막고, 문 앞에 침대를 놓아 문이 안 열리게 했다.

마침내, 사람들의 환호 소리가 들렸다.

반란이 성공한 것이다.

***

새 왕의 즉위식, 기욤은 방 안에서 들려오던 목소리의 주인공을 그제야 만났다. 차분한 목소리와 어울리는 인상을 가진 새 왕의 모습이 보였다.

'공주님, 공주님은?'

공주, 그가 위로해주고 싶었던 존재.

'공주님, 앞으로 행복하세요. 행복한 목소리로 말씀하시며 사세요. 꼭.... 그 아름다운 목소리로..... 이렇게 아름다운 모습으로........'

기욤은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 같은 모습의 공주를 보며 끝없이 기도했다.

***

기욤은 사람으로 가득한 정원을 휘 둘러보았다.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으, 어느 몰상식한 사람이 여기에 휴지를!'

그는 빗자루로 휴지를 치웠다. 아무리 자유롭게 들어와 구경하며 즐긴다 해도 성의 정원에 쓰레기라니, 성의 청소부들은 오늘따라 더욱 바빴다. 기욤은 고개를 들어 여왕을

바라봤다. 멀리 여왕이 그녀의 부군들과 앉아 있는 모습이 보였다. 공주는 이제 여왕이 되었다. 오빠를 잃고 슬픔에 빠진 여왕을 보면서 기욤도 가슴이 찢어질 것 같았다.

'하지만 이제 괜찮아. 대단하고 멋진 분들이 여왕님을 지켜주고 계시니까.'

기욤은 그늘에 쓰레기를 버리지 않았을까, 하고 그늘로 발걸음을 옮겼다.

'음? 저건 누구지?'

사람들은 전부 햇살을 맞으며 색색의 옷을 자랑하고 있는 반면에 그는 더러운 망토에다 모자까지 쓰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그늘로만 돌아다니고 있었다.

'뭔가 이상하다.'

기욤은 몰래 망토 쓴 자의 뒤를 밟았다. 시간이 가며 햇빛이 점점 강해지는데 그는 멈출 생각을 하지 않았다.

'멈췄다!'

망토 쓴 자는 덤불 옆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뭔가 이상했다. 기욤은 계속 그를 주시했다.

그런데 갑자기 망토 쓴 자가 덤불 속으로 뛰어들었다.

"뭐야, 왜 저러지?"

순간 기욤의 시야에 여왕과 두 왕자가 보였다. 망토 쓴 자에게만 집중하다보니 그들이 오는 것도 몰랐던 것이다. 기욤은 덤불 쪽을 바라보았다.

덤불 밖으로 삐죽 튀어나온 쇠붙이가 햇빛을 반사해 번쩍였다. 기욤은 필사적으로 여왕을 향해 달렸다.

"안 돼애애애!"

여왕을 끌어안는  순간, 등에 통증이 느껴졌다. 기욤은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

정원을 급하게 통제했지만 빠져나간 사람들이 꽤 많았다. 다니엘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대로 범인을 놓치는 건가?'

게다가 며칠째 여왕은 제정신이 아니었다.

"어떡해, 어떡하면 좋아! 다 나 때문이야. 다 나 때문에........'

알베르토와 함께 몇 번이나 달래보았지만 소용없었다. 그녀의 삶에는 이미 죽음 너무나 많았다.

어머니는 여왕을 낳다가, 선왕인 여왕의 오빠는 병약한 체질로, 여왕과 친했던 장 가의 딸은 자살했다.

그리고 여왕의 아버지, 그는 다니엘과 알베르토가 죽인 거나 마찬가지였다.

"아직도 그 청소부는 깨어나지 않았나?"

"의사는 곧 깨어난다고 하는데.... 조금만 기다려 보지."

둘은 한숨을 쉬었다. 슬픔과 불안에 빠진 여왕의 모습을 보기 힘들었다. 그 때 시종이 문을 벌컥 열었다.

"대공, 그 청소부가 깨어났습니다."

***

다니엘과 알베르토가 방에 도착하니 여왕이 벌써 청소부의 손을 두 손으로 꼭 잡고 있었다.

웬일로 일리야도 급한 걸음으로 방으로 들어섰다.

"여왕님, 지금은 정신이 또렷하지 못합니다. 너무 큰 충격을 주시지 않도록 주의하십시오."

"알겠어요, 수고 많았어요."

의사가 목례를 하곤 방을 나갔다.

***

기욤은 눈앞에 흐릿하고 머리도 어질어질했다. 기욤은 분명 자신이 죽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여기가 천국..... 그럼 이 사람은...... 천사?'

"괜찮아요? 정신이 들어요?"

'아, 천사는 역시 아름답구나.'

물 흐르듯 아름다운 목소리, 게다가 여왕은 충분히 기욤이 천사로 착각할만했다.

단순한 진주 장식을 한 쪽을 단정히 진 머리, 팔목이 살짝 드러나는 하늘거리는 소매의 하얀 드레스...... 드레스의 작은 유리구슬이 은은히 빛났다.

"저...... 말씀드릴게 있어요..."

"나한테 말할 게 있나요?"

"사실 저 도둑질을 했어요. 주방에서 음식을 훔쳤어요. 나쁜 짓인 거 알지만 공주님이, 아니 여왕님이 기뻐하는 목소리를 듣고 싶었어요. 처음 여왕님 목소리가 너무 슬퍼서....

바꿔주고 싶었어요. 사실 그 분 사랑했거든요. 지금도 사랑하고 있어요. 전 죽지만 여왕님이 행복하게 사셨으면 좋겠어요. 행복으로 가득한 여왕님의 목소리는 정말 아름답거든요."

'어... 천사가 우네... 근데 왜 울지?'

여왕은 기욤은 와락 끌어안았다. 사정을 모르는 주위의 부군들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고마워요. 나 당신 덕분에 조금이나마 행복할 수 있었어요......"

기욤이 당황하고 있는 와중에 조금씩 그의 시야가 선명해졌다.

'여긴 방 같은데.... 어, 저 세 사람은 낯이 익은데.... 잠깐, 린데만 대공? 몬디 대공? 벨랴코프 대공? 그럼, 그럼......'

"여왕님?"

"맞아요. 나예요."

여왕은 울면서 웃고 있었다. 기욤은 멍해졌다.

"그럼.... 다 들으셨어요?"

여왕은 살짝 미소를 띠었다. 그리곤 그의 볼에 입을 맞추어 주었다.

 

나의 열꽃을 위한 냉정한 날개 어른거리는 위로

천사의 감각을 감사하라.

오, 낙원의 깃털을 찬미하라.

-A.M 클레인 '듀 호텔의 자매를 위하여' 中

 

***

여왕이 종이 뭉치를 들고 집무실을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고민을 아무리 해도 풀리지 않았다. 한숨을 푹 쉬고 자리에 앉는데 문이 열렸다.

"여왕님, 찾으셨어요? 아니, 찾으셨습니까?"

말을 고치는 기욤을 보고 여왕은 웃음이 났다.

"잘 안 고쳐지죠?"

"네. 잘 안 되네요. 그런데 왜 부르셨어요?"

"이 종이에 이 사람, 설득을 하려하는데 잘 안돼요. 어떻게 해야 할지...."

"음, 일단 설명 좀 해주세요."

여왕은 손가락으로 짚어가며 설명해주었고 기욤은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여왕은 잠시 그의 옆모습을 쳐다보았다.

이럴 때면 그의 눈은 날카로워졌다. 꼭 다른 사람 같이 낯설었다.

"그러니까 이 사람을 만나려면 저 사람부터 만나야 할 것 같은데.... 좀 더 위에 있는 사람이니까 저 사람을 설득하면 결국 이 사람도 설득되는 거죠. 만나기도 더 쉽고."

"맞아요. 이렇게 해야겠네요."

"도움이 되셨나 보네요."

그 때 시종이 들어와 두 사람 앞에 뭔가를 내려놓았다. 산딸기 케이크였다.

"이거 그때 제일 자주 갖다 드린 건데."

"갑자기 먹고 싶어서요. 내 남편이랑."

***

다니엘과 알베르토는 다시 없을 질투심이 끓어올랐다. 물론 당연한 거였지만 여왕은 요즈음 기욤과 시간을 가장 많이 보냈다. 게다가 기욤을 보면서 웃을 때 그녀의 미소는

그렇게 해사할 수가 없었다.

기욤은 거리에서 청소부로, 청소부에서 여왕의 부군이 된 자였다. 백성들의 지지는 대단했다. 기욤과의 결혼은 여왕이 편견이 없고 평등하다는 점을 제대로 보여줬기도 했다.

일적인 측면에서도 기욤은 의외로 결정적인 안을 내놓기도 해 그들을 놀라게 했다. 이런 점들로 그들은 기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지금 상태로선 질투가 났다.

더 기분 나쁜 건 서로 동지애가 생겼다는 거였다.

정말 마음에 안 들었다.

***

일리야는 창밖으로 정원에서 여왕과 기욤이 산책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차가운 빛의 초록 눈동자가 분노와 질투로 일렁였다. 일리야는 창틀을 꽉 잡았다.

"저 따위 천한....."

나이는 같을 지 모르나 출신이 자신보다 한참 모자란 기욤이었다.

'그런데, 그런데!'

하지만 기욤은 일리야가 가지지 못한 것을 가졌다.

긍정적 여론, 타인의 인정, 순간의 차가운 이성, 그리고 여왕의 사랑.....

그는 한낲 청소부 따위에게 졌다는 기분이 든다는 사실이 증오스러웠다. 그리고 여왕은 그와 결혼할 때의 소녀가 아니었다.

그녀는 이제 우아하기 없는 성숙한 여인이었다. 하루하루 여왕은 피어나고 있었다. 이제 그녀의 모습은 일리야의 시선을 묶어두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그녀는 더 이상

그가 쉽게 가질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일리야는 창틀을 다시 꽉 잡았다.

그의 초록빛 얼음 조각 같은 눈동자는 오롯이 여왕, 그녀를 향했다.

 이제 시작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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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기다렸어!!! 음식가져다준게 기욤이었구나ㅠㅠㅠ그리고 오타가 두개난것같아 기욤도 낮잠을 자려는데 이부분에 처오도구를 모아둔 창고라고 되어있어 그리고 시종이 들어와서 케이크주는 장면..! 들ㅇ와라고 되어있네 그나저나 쓰니 열일한다ㅠㅠㅠㅠ천천히와도 좋아 난..♡ 하 진짜 이거 화력만 좋았으면 레전드였을텐데..
8년 전
독자2
그러고 보니 어떤 정 궁예가 맞았네 그 남자가 기욤이었어..! 이제 일리야 비중 커지는 건가?? 아 세상에 기대된다..다음화도 언제나 항상 기대해
8년 전
글쓴이
오타지적 넘 고마워! 재밌게 읽어줘서 더 고맙고! 다음화 오늘 밤에 올라왕
8년 전
독자3
역시..내가 맞았군 후후
8년 전
글쓴이
ㅎㅎ 너정 예리하네 ㅎㅎ 다음편도기대해줘!
8년 전
독자4
쓰니야 언제와아(바둥바둥)(칭얼칭얼)
8년 전
독자5
22222쓰니 빨리오세여 ㅠㅠ 현기증나여ㅠㅠㅠㅠ
8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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