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쳤나봐. 저런거 방송에서 말하다니. 그래도 김태형 팬들은 모르겠지. 모를거야. 하긴 항상 숨기기만하고 작업실에 박혀있는 워커홀릭이 무슨 꼬릴 잡히겠어. 하며 자기위로를 해보아도 앞으로 들키고 내 이름이 모르는 사람 입에 오르내릴 생각을 하니 앞이 캄캄해진다. 복잡한 생각에 머릴 쥐어 뜯었지만 회사하며 매니저까지 나몰라라 하고 있는 상황에 나는 그 사이에 낑겨 쩔쩔 매야했다. 그래. 그 두번 사실 나는 김태형이라는 사람이 싫진 않았다. 오는 사람은 받아들이고 가는 사람은 놓아준다는게 내 상책이었다. 하지만 김태형은 안된다. 수많은 팬들고 교활하고 무서운 팬들. 김태형과 스캔들 기사만 나도 그 사람은 쥐도새도 모르게 생매장된다는 소문(사실 그런건 없다)이 떠들썩하다. 나는 예능하며 지금 새로 발매된 노래까지 하기엔 벅찬데 김태형이란 작자까지 걱정하려니 머리가 터질것 같았다.
괜히 신경질 나서 티비를 꺼버리고 리모컨을 쇼파에 던졌다. 오늘 모처럼 휴가인데 휴가를 즐기지 못하고 있다. 짜증나. 왜 나를 힘들게 하냐고. 티비에 말만 안했음 적어도 이 지경은 안났을건데 인터넷엔 김태형이란 실시간검색어가 오르락내리락 거리는데 어떻게 신경을 안쓰냐고. 나도 컴백할때마다 1위하는 가수인데 어떻게 어찌하여 곡을 낼때마다 1위하는 프로듀서가 나한테 고백을 하냐고. 드라마보면 못 나가는 여자한테 고백해야되는거 아니야? 정말. 어이가 없네. 내가 얼굴이 이쁜것도 아니고 노래만 잘부르는데. 어디가 좋아서? 맨날 네티즌한테 가수가 아니라 예능인해야될 얼굴이라고 욕먹는데 어디가 좋아서 고백을 하는거냐고. 내가 얼마나 신경을 썼으면 김태형 이상형까지 찾아보겠냐고. 하나하나 다 따져봐도 내가 아닌데.
이상한 잡생각이 내 머리속에 들어갔다 빠져나갈동안 핸드폰은 우렁차게 울려댔다. 띠리링~
"아씨.. 누구야."
씹고싶었는데 집요하게 울리는 전화에 짜증을 내며 받아버렸다.
oh shit. 수신인을 보지않고 받은 내 잘못이다. 사생못지않게 자주 전화질을 해댄다는걸 깜빡했다. 내 이름을 듣자마자 쇼파 반댓편으로 폰을 던져버렸다. 폰에서는 한뼘통화도 아님에도 목소리가 우렁차게 거실을 울려댔다. 왜이렇게 전화를 안받냐는 둥. 아까 방송 봤냐는 둥. 헛소리를 해대는데. 진짜 미치겠다. 이거 뭐 사생보다 더하다. 내 전화번호는 어떻게 알.. 아 씹. 박지민. 그래 아까 티비 속 김태형 옆에 있던 박지민이 알려줬겠지. 김태형 이 한 사람 때문에 전화번호를 바꿀수도 없고 진짜 머리가 깨질것 같다. 심호흡을 깊게 하고 쇼파에 버려진 핸드폰을 주어들어 귀에다 대었다.
"여보..세요.."
-"앗. 저 벌써 신분 상승 한건가요? 여보라니~♡"
말끝에 하트가 보인다. 아니. 이쯤 되면 맘을 열어줄 의향이 있지 않은가? 할텐데. 나는 아직 음악이 하고 싶다고요.. 사랑따위 서른살 넘겨서 하고 싶은데. 나는 침착하게 일이 있어서 바쁘다며 내 할말만하고 팍 끊어버렸다. 한숨을 길게 쉬고는 핸드폰을 내 방 침대에다 던져버렸다. 내가 받으나 봐라!
*
그래. 만날수 밖에 없지. 내 신곡을 김태형이 프로듀싱 했으니까. 안만날수가 없지. 괜히 한숨을 푹푹 쉬고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는 김태형의 시선을 신경 안쓰는척 했다. 아마 저 머릿속에서는
'어머..탄소씨는 옆모습도 이쁘네.'
'꺄>< 도도하고 섹시해'
'오늘도 고백을 해야겠어'
하며 주먹을 불끈 부여잡겠지. 그래. 이거봐봐. 저 표정. 알아 안다고. 내가 사람 관찰한지 10년인데 김태형 저 인간 마음 하나 못 읽어내는게 이상한거지. 열번 찍어 안넘어간다는 나무 없다고 누가 말했냐!! 그 사람 진짜 때리고 싶다. 죽빵 날리고 싶다. 김태형이라면 열번도 아니라 천번도 고백할것 같다. 진짜.
"수고하셨습니다~"
인사가 오가는 사이 나는 매니저를 밀고 얼른 이 회의실을 나가고 싶었다. 하지만 걸렸다.
"탄소씨. 저 할말 있는데."
역시 안불러세우면 김태형이 아니지. 몇분전부터 불안한 낌새를 눈치체고 있었는데 한숨이 절로 나온다. 나는 눈을 내리깔고 김태형 앞으로 다가갔다. 매니저와 관계자들은 이미 나간지 오래. 회의실엔 김태형과 나뿐이였다.
"제가 탄소씨 많이 좋아하는데. 정말 제 고백 안 받아주실거에요?"
살짝 울쌍인 표정을 보고 나는 속으로 앗싸! 날뛰었는데 뒷 말을 듣고 다시 우울해졌다. 나는 또 한숨을 쉬고 알겠다며 회의실을 나왔다. 지하주차장으로 내려가니 차를 대기 시켜놓은 매니저가 보였다. 나는 하소연을 했다.
"아.. 언니이.. 진짜 태형씨 어떻게 안되요? 진짜 죽겠어요. 스캔들 터지면 어떡해."
최대한 울쌍인 표정으로 말했으나 매니저 언니는 무념무상인듯 고개만 끄덕끄덕 거렸다. 그래 내가 매니저한테 하소연해봤자 뭐하겠냐. 대표님한테 말해야지 어쩌겠어. 조수석 의자에 기대고 앉아 창밖을 바라봤어. 썬팅이 잘되서 안에서도 잘 보이지도 않았지만 그래도 어쩌겠어. 시선처리할 곳이 창밖 밖에 없는데. 집에 도착하자 차에서 내렸다. 매니저는 내일 아침 일찍 스케줄 있으니 8시까지 나오라며 신신당부 한다. 나는 대충 고개만 끄덕이고 집으로 들어갔다. 쇼파에 쓰러지듯 풀석 누웠다.
"아.. 진짜 피곤해."
'띵,띵,띵.띵링~."
연속으로 울려대네.. 역시 김태형이겠지.
'집 잘들어갔어요?'
'전화하지 말래서 문자했어요.'
'탄소씨 목소리 듣고 싶은데ㅠㅠ'
'잘자고 내일 봐요~♡'
윽, 징그럽게 하트를... 홀더키를 눌러 픽 꺼버리고 핸드폰을 바닥에 툭 떨어뜨렸다. 그대로 잠에 든것 같다.
'띠리리링, 띠리리링'
-"빨리 나와. 지금 8시 10분이야."
"헉!"
"어,언니. 우리 몇분 늦었어?"
"30분."
아니, 내 얼굴에 주먹날린것만 빼고. 매니저 언니는 뒷좌석에 탄 나를 돌아보며 말했다. 나는 입을 가리고 헉 소릴 냈다. 괜찮냐며 숍에 도착할때 까지 계속 물은 것 같다. 차에서 내려 매니저언니의 얼굴을 계속 짚어보며 괜찮냐고 물었다. 숍에 들어가자 우릴 반기는 원장님, 미용실 언니. 그리고 김태형.. 김태형??
"뭐야. 쟤가 왜 저깃지?"
자기?라고 했습니까? 자..기 라구여? 김태형말론 어제 자기가 나한테 고백하더니 대뜸 내가 받아줬다 더라. 나는 기억이..
'그래! 함 사겨보자. 근데 뭐 하나라도 맘에 안들며는! 그대로 쫑이야! 쫑!'
그래서 아까부터 매니저 언니 표정이 어두웠구나.. 나는 이제야 기억이 난듯 머리를 쥐어뜯었다. 내 앞에 김태형하며 앞으로 일어날 일을 생각하니 앞이 캄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