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2병원 : 11
w. Shelter
일교차가 심해졌다. 밤낮 할 것 없이 차가운 공기중 시린 바람이 타고 흐르는 10월의 오늘, 루한은 한국 땅을 밟은지 어느덧 3주째에 다다랐고 그동안 적응기와 거주문제등 개인적인 문제로 시간을 보낸 그는 며칠 전 오늘부터 정식으로 현업에 들어갈것을 통보 받았다.
회의를 마친 그는 개인 사무실로 돌아갔다. 루한은 지금껏 평범하게만 보였던 사무실이 달리 보였다. 그간 이 작은 공간에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타인과는 다른 루한 그만의 일상으로 돌아온게 실감이 나는지 어느새 그의 어깨에는 보이지 않는 책임감이라는 짐들이 빼곡히 줄을 서는듯 했다. 치워도 치워도 끝이 없는 먼지처럼.
루한은 본래 항상 마음 한쪽이 무거웠다. 그가 선택한 길 위에서 지금까지 해온 무수히 많은 타인을 위한 일들이 저가 감당해야 할 일임을 알기에 강한 책임감을 늘 충전하는 반면에, 사실은 괴로운 마음도 함께 공존하고 있었다. 최근에 새로운 사람들을 한꺼번에 만나게 되면서 또 다른 일상에서는 잃었던 웃음을 거리낌없이 드러내기도 하고 사적인 일에 시간을 쏟기도 하는 잃어버린 다른 일상을 즐겼지만 한 편으로는 오늘같은 때를 예비하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홍콩을 떠올렸다. 수많은 사람들의 얼굴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갔다. 그 중에서도 눈물로 헤어짐을 감당해야 했던 청양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그의 마음에서 절대적으로 잊혀질수 없는 홍콩에서의 마지막 인연이였던 청양을 말이다. 편지하기로 했는데 먼저 보내지 못한게 마음에 걸렸다. 가만히 앉아서 지나간 옛 일들을 떠올리다가 책상 밑 서랍을 열었다. 그리고 그 안엔 이면지들이 가득했다. 세 장 정도를 뽑아 책상 위로 가지런히 올린 루한이 볼펜을 집어 들어 글을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잘 지내고 있는거죠. 한국은 따뜻해요. 날씨도, 사람들도.'
청양에게 쓰는 루한의 첫번째 편지였다.
* * *
시간이 흐르고 어느덧 11월이 되었다.
종대와 루한은 변함없었고 그들은 시간이 날때마다 함께 병실을 회진했다. 업무 시간 외에도 늘 병실을 들락날락 하는 루한 덕에 종대도 함께 여가시간을 그쪽에서 보내게 된것이다.
이 곳의 업무환경은 간단했다. 그들이 이제야 떠올려보는 일이지만 홍콩에서는 이상하게도 절대적으로 강도 높은 방법으로 환자들을 제어하는데에 의의를 두었다. 안타까운 사연으로 살인을 범하려다 잡혀온 환자들이 어느정도, 타인에게 위협을 가했던 환자들이 태반, 자기 자신에 대한 생각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전부였던 홍콩의 정신병동과는 달리 이 곳은 딱히 눈에 띄게 행동하는 환자들도 없었고 대부분 조용했다.
노인보다 어린 아이들이 많았고, 중년보다 젊은 사람들이 많았다. 큰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들도 매우 드물었고 다들 약수준의 질환이나 어릴적 트라우마로 생긴 일말의 사건으로 조금만 입원하다가 나가는 환자들이 대부분이였다. 오랫동안 지켜봐야 할 사람들은 이미 다 시설로 보내지거나 재활 운동을 하고 있다고 했다.
루한은 종대와 헤어진 후 어느 개인병실로 들어왔다. 20대 남자가 혼자서 쓰는 넓은 병실이였는데 요즘 루한이 집중적으로 돌보고 있는 환자의 호실이였고 루한은 그를 알게 된지 이제 겨우 2주째에 접어들고 있었다.
뭔가 달라진 병실 분위기에 주위를 둘러보던 루한은 문득 천장을 쳐다보았다. 그곳엔 별자리 스티커가 가지런히 붙어있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보이지 않던 것이였는데 하루 사이에 구해와서 직접 붙인듯 했다. 아직 밤이 찾아오지 않아 빛을 뽐내지 않는 그 스티커를 코 끝을 긁적거리며 쳐다보던 루한이 가볍게 웃었다.
"민재씨가 직접 붙였어요? 예쁘네요."
민재라는 환자는 자신의 병실에 들어온 루한을 보고 누운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눈인사를 하는가 싶더니 이내 고개를 돌려 똑같이 천장을 바라보았다. 루한이 소리나지 않는 걸음으로 그의 곁으로 가 앉았다. 그리고 손가락으로 그것들을 가르키며 루한이 물었다. 민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남자의 얼굴은 하얗고, 눈이 크고, 코끝이 동그랬다. 루한은 늘 민재의 얼굴을 볼때마다 잘생겼다며 칭찬해주었다. 그때마다 그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지만.
"할머니랑 같이 했어요."
"같이."
"네."
천장을 빤히 보던 그가 입을 뗐다. 어제 그의 할머니가 들렀는데, 그때 같이 붙였다고 말하는듯 했다. 루한이 그의 옷깃을 잘 여미며 눈을 맞췄다. 여전히 눈이 예쁜 그 남자였다. 그러다 루한과 눈을 마주치며 웃지 않는 얼굴로 대답했다. 예쁘죠.
"예뻐요. 빛이 반짝이면 더 예쁘겠다."
그는 내려놓은 두쪽 팔중 한쪽 팔만 들어 올려 머리 뒤로 두었다. 루한을 슬쩍 쳐다보고는 눈을 굴렸다. 그러다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슬리퍼를 신고 작은 냉장고 앞으로 걸어갔다.
"아, 괜찮아요 민재씨."
"잠시만요."
"저 물 많이 마셨어요."
"이거. 음료수 드세요."
"괜찮은데.. 민재씨 많이 드세요."
"할머니가 선생님 드리라고 했어요. 괜찮으니까 같이 먹어요."
"아..."
그가 오렌지 주스를 꺼내 루한에게 건넸다. 루한이 극구 말리고 또 말렸지만 늘 이런식이였다. 그의 할머니가 루한을 무척이나 믿고 좋아하셨다. 덩달아 민재도 루한을 많이 좋아했고 늘 올때마다 음식 하나씩 건네주는게 민재와 그 가족 나름 친밀한 인사의 단계였다. 말이 없는 편인 민재의 입장에서는 상당히 좋은 방법이였다. 이럴때마다 루한은 음료수를 받아들고 어쩔줄 몰라했다. 그리고 민재는 다시 침대로 돌아가 앉았다.
"잘 마실게요."
"매번 똑같은것만 드리는데 뭘요."
"그래도..맛있어요."
"많이 드세요."
그가 루한을 한 번 쳐다보고는 다시 고개를 돌렸다. 루한은 그런 민재를 보고 웃으며 주스의 뚜껑을 열며 유리로 된 병을 매만졌다.
겉보기에는 무척이나 멀쩡해보이는 그가 이곳에 입원한지도 벌써 2년이 다 되어가고 있다. 이유는 어릴적 사고로 인해 가족을 잃은후 생긴 트라우마로 인한 후천적 정신분열장애, 즉 조현증 때문이였다. 현재 그의 나이 스물 셋, 한창 대학생활을 하며 친구들과 데이트하고 놀러다닐 젊은 나이지만 그는 안타깝게도 그럴수 없었다.
민재는 평소에 사람들과 대화할때는 일상적인 대화가 가능한 평범한 남자였다. 겉보기로는 성인 남자들과 다를것 없는 지능을 가진 사람이였지만, 가끔 그의 마음에서 불쑥 나오는 트라우마가 그를 이 작은 병실에 2년 동안이나 머물게 만들었다. 조용히 앉아있다가도 발작을 일으킨다거나 환각을 보고 두려움에 떤다던지 하는 조현증의 증상들 말이다. 이 전에도 이곳 저곳을 다니며 치료받은걸로 확인됐으나 전혀 치료가 되지 않자 그의 가족들이 병원에 입원을 시킨거라 말했다.
그는 책을 보기도 하고, 옷에 관심이 많은지 패션잡지를 훑어보기도 하고 외식하러 나가기도 좋아하는 남자였다. 루한은 그의 할머니를 뵌 적 있는데, 그녀는 할머니라 부르기도 죄송스러울 정도로 무척이나 젊고 민재와 닮은 외모를 가진 아름다운 여성이였다. 민재와 그녀에게서는 어쩐지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품격이 느껴졌었다. 비록 그가 장애가 있다고 할지언정 루한의 눈에는 일반인과 다르지 않은 사람이였다.
오늘 특별히 그에게 별다른 이상이 없는것 같아 루한은 그만 자리를 비워주려 했다. 잠시 나눈 이야기는 천장에 붙은 야광별과 받아든 음료수에 대한 사담 뿐이였지만, 루한은 그정도로만 만족하기로 했다. 그가 민재의 눈썹에 앉은 작은 먼지를 떼어주며 말했다.
"이제 그만 가볼게요. 머리맡에 있는 책 마저 읽을거죠."
"졸리지만 참고 읽으려구요."
"좋아요."
루한이 그의 이불을 만지작거리다 뒤를 돌았다. 그런데 민재가 뒤에서 입을 열었다.
"저 별자리."
루한이 들려오는 그의 말에 다시 뒤를 돌았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별자리에요."
"......."
루한은 천문학에 큰 관심이 없던터라 천장을 봤을때에 그냥 별자리구나, 라고만 생각했지 딱히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진 않았다. 민재가 그런 루한에게 단정하게 붙어있는 별자리에 대해 말했다. 루한은 다시 민재의 곁으로 와 앉았고 그의 말에 귀 기울였다.
"어떤 별자리에요?"
"........"
"별자리에 대해 잘 몰라서요. 민재씨가 나한테 설명해줄래요?"
"........"
"듣고 싶어요."
"....저건 양 자리에요. 월로는 3월 중순에서 4월 중까지를 뜻하고 모양도 흔하지 않죠."
"3월에서 4월이라."
"네."
"그러게요. 모양이 참 예쁘네요. 원래 별자리를 좋아해요?"
"........"
"언뜻 생각해보면, 제가 볼땐 염소자리도 예뻤던것 같은데. 저 별자리를 좋아하는 이유가 있어요?"
"........"
"생일은 아닐테고..."
민재의 생일은 5월임을 알고 있는 루한은 곰곰히 생각하다 민재를 바라보며 답을 물어보았다.
"다른건 다 기억이 안나요. 정말로 기억이 안나는데."
"........"
"그거 하나만 기억나요. 별자리."
"........"
루한이 가만히 그의 말을 듣고 알겠다는듯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건 기억이 나지 않는다라.. 아마도 지금껏 이 환자가 겪어온 사람들중 가장 머릿속에 남는 사람의 별자리가 아닐까 생각했다. 루한은 팔짱을 끼고 고개를 숙이다가 다시 천장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기억나는게 별자리밖에 없다니, 조금 유감이였다.
"다른것도 기억할 수 있을거에요, 곧."
"그럴까요."
"그럴거라고 믿어요. 연관된 한가지를 생각하면 또 다른 사실이 떠오르기 마련이니까. 지금처럼 이렇게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언젠가는 민재씨가 잊고 있었던 다른 중요한것도 생각날거에요."
"........"
"억지로 생각해내지는 말고, 차근차근히."
민재가 루한의 말을 듣고 눈을 감았다. 그리고는 잠긴 목을 열어 말했다.
"밤이 찾아오지 않아도. 예뻐요."
"........"
"그 어떤 모습을 하고 있어도 빛나요."
"........"
"저에게는 그래요."
루한이 민재의 곁으로 한발짝 더 다가가 가지런히 내려온 앞머리를 쓰다듬었다. 그에게 혼자 생각 할 수 있는 시간을 앞으로 더 많이 줘야할 것 같았다.
"꿈에 나타나길 바랄게요."
"......."
"만날수 있어요."
루한이 민재의 손을 한 번 잡고 떨어졌다. 그가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고, 루한 역시 눈으로 인사하며 병실문을 나섰다.
* * *
사무실로 돌아와 책상에 앉아 차트를 둘러보던 루한은 정리를 끝내고 현재 자신이 보고 있는 환자들의 검진기록과 과거를 하나하나 검색해보기 시작했다. 주치의들만 열어볼수 있는 환자들의 개인적 일이 담긴 시크릿차트, 그는 오늘 처음으로 그 파일을 열어보았다. 그렇다고 해봐야 루한이 모르는 일은 없을거라 생각했다. 가장 기본적인 프로필은 이미 꿰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그중 가나다 순으로 정렬된 환자들의 이름을 찬찬히 훑어보다가 방금전 자신이 만나고 온 민재의 이름을 보게 되었다. 루한은 잠시 두 눈의 초점이 흐려지는가 싶더니 다시 돌아오자 곧 그 이름 위로 마우스로 가져다 대었다.
출생연도부터 지금까지 살아온 지역과 학교, 그리고 IQ지수와 체내 건강검진표까지. 모든게 다 정석으로 짜여져 있는 틀 안에 민재에 대한 이야기가 빼곡히 적혀져있었다. 루한은 곁에 있던 안경을 집어 들어 썼다.
"....1997년 6월 19일, 김민재가 여섯 살 되던 해에 세 가족이 함께 차를 몰고 가다가 교통사고를 당함.."
거기까진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그 다음 글을 읽은 루한은 자신의 눈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 * *
드디어 내일, 소아과 병동에서 음악회가 열린다. 찬열은 겁을 잔뜩 먹고 제 눈 앞에 놓여진 의상들을 보더니 옆에서 허리에 손을 두르고 있는 백현을 보며 우는듯 말했다.
"긴장 돼. 어떡해."
"뭘 어떡해? 긴장 하지 말고 연습한대로만 해."
"한 달 동안 연습도 제대로 못했는데 진짜 큰일이다."
"지금 무대가 눈 앞에 있는데 할 소리냐?"
"백현아...."
"왜."
"변백현...."
"왜 그러냐고. 아, 참."
"응..?"
"너 아직 아무한테도 말 안했지? 그러고보니까 그 생각을 못했네. 내일 우리 멤버들 좀 불러야겠다, 몇 시라고 했지?"
"너 미쳤냐!"
"준면이 형이랑 세훈이는 그냥 딸려오는 사람들이잖아. 좋은건 다같이 함께 봐야지. 안그래?"
"어. 안그래. 부르기만 해봐. 너 진짜 죽는다!"
"시간 안알려줄거지? 그럼 준면이 형한테 전화하면 되겠네."
"...하.."
백현이 송곳니를 드러내고 웃으며 핸드폰을 들었다. 찬열이 막지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멍하니 그런 백현의 손만 쳐다보다가 자리에 주저앉았다.
말은 자신있게 준비했다고 여태껏 해왔는데, 사실 그동안 일이 많아서 띄엄띄엄 준비했다는건 비밀이다. 백현은 그런 찬열의 속마음을 빤히 들여다보았지만 모르는척 쿡쿡거렸다. 그러다 찬열의 눈치를 보고는 다시 핸드폰을 책상 위에 아무렇게나 올려놓았다.
"일단 이거 입어봐."
"......."
"너가 키는 커서 다행이다. 근데 뭐때문에 너 혼자 하게 됐냐? 사람도 많으면서."
"준면이 형이랑 세훈이가 다른 팀으로 가버리는 바람에 나만 덜렁 남았어..."
"그럼 너도 같이 가지 그랬어."
"받아줄것 같냐.."
"음. 하긴, 그것도 그렇다."
"........"
"알았어. 째려보지마."
사무실 책상 위에 많은 옷들이 널부러져있다. 그중 가장 만만해보이는 흰색 셔츠와 청바지를 들어올린 백현이 찬열에게 대보았다. 정작 그 옷의 주인이 되어야할 찬열은 다 죽어가는 표정이였지만.
"좀 제대로 서 봐."
"이렇게?"
"응."
"사람들이 비웃는건 아니겠지."
"진짜 비웃도록 웃기게 입히고 싶은데 그럼 컨셉이 영 안맞으니까."
"야 근데 변백현. 너 향수 뭐 쓰냐?"
"나? 왜?"
"아니. 향기 좋은것 같아서."
"안 알려주지."
"짱 싫어 진짜. 내가 뭐 혹시 따라 살까봐 그러냐? 진짜 망상도 가지가지야."
"어? 따라 사려고 한거 아니였어? 그럼 알려줘야지~"
"이게 진짜."
찬열이 백현의 이마를 툭 밀어내고 거울 앞으로 멀어졌다. 백현은 밀린 이마를 씨익 웃으며 슬슬 만지더니 멀어지는 찬열에게 뛰어가 몸을 잡고 바로 세웠다.
"일단 간단하게 이거 입자."
"이거 괜찮아?"
삐진건지 아니면 바보같은건지, 바로 표정이 풀린 찬열이 입술을 비죽이며 백현에게 물었다. 백현은 그럭저럭 괜찮다는듯한 표정을 짓고 어깨를 툭툭 쳤다.
"뭐 거사 치르는것도 아니고. 그냥 심플하게 입어."
"아, 진짜 걱정돼 죽겠네."
"침착해. 상대는 아이들이야."
"그래.."
"아, 형들도 있지. 민석이 형."
"아 변백현!!!"
백현이 혀를 낼름 하고 메롱을 하자 찬열이 방방 뛰며 저걸 어떻게 죽일까 하고 고민에 고민을 더했다.
한달 가까이 될 동안 시간이 날때마다 백현을 괴롭혔다. 그래서 미안하긴 하지만 형들을 부르겠다니 그건 좀 아니지 않은가. 하지만 시간이 그렇게 널널한 사람들도 아니고, 제발 내일 다들 환자가 많아서 바빴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찬열이였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그들을 보면 일정시간과 당직시간을 제외하고는 늘 약속시간을 정하면 꼭 만날수 있는 사람들이라 백현이 정말 다 불러내면 어쩌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왠지 내일 그 고민은 해소될것 같다.
"내일 민석이형은 콜 했다."
"........"
찬열이 고민하고 있는 사이 민석과 금새 통화를 끝낸 변백현 때문에 말이다.
* * *
루한이 책상 위에서 한동안 머리를 싸매고 앉아있었다. 퇴근할 시간이 다 되어가는데도 그는 자리에서 일어날줄을 몰랐다.
마침 그때 바깥에서 루한의 사무실 문을 작게 노크하는 소리가 들렸다.
- 나야.
"어, 들어와."
종대가 말끔히 옷을 갈아입고 루한의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루한은 마른세수를 하며 종대를 반겼고 그는 루한이 아직도 많이 피곤한지 싶어 그의 뒤로가 어깨를 다독이려 했다. 하지만 그런 종대의 손을 밀어낸 루한이 다리를 휘청이며 자리에서 일어나 쇼파로 가 앉았다.
"무슨 일 있어?"
"...아니."
"그런데 왜 이렇게 기운이 없어? 어디 아픈거 아니야?"
"아니야, 난 괜찮아."
"음, 내가 아는 평소의 루한이 아닌데."
상대방의 기분은 귀신같이 알아내는 종대가 루한의 마음을 매의 눈으로 후비기 시작했다. 그는 티내지 않으려 했지만, 종대를 속일수 없었기에 체념한듯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네 일이 아니라면 환자 일이겠지."
"......."
"무슨 일인데?"
"......."
"말하지 않는다면 내가 맞춰볼게."
"......."
"민재씨 일이야?"
".....아,"
"네 반응을 보니 50%는 맞췄고."
"아니, 그게, 그러니까."
"기본적으로 환자의 사생활은 비밀로 해야되지만, 나도 민재씨 서브로 담당하는 사람이라는거 알지? 같이 공유해."
귀신같다. 진심으로 종대는 귀신같다고 루한은 생각했다. 루한이 고개를 쳐들고 눈을 잠시 감았다 떴다. 순간 천장이 노래지는것 같았다.
"속일수가 없구나 넌."
"속이면 안되지. 힘들어도 같이 힘들어야 되는거 아니야?"
"....첸."
"응."
"어릴때, 너가 어릴때 말이야."
"......."
"만약, 가족이랑 헤어졌다면 어떨것 같아."
"어린나이에 충격이 꽤 크겠지. 아마 죽어서도 잊지 못할 사건이 될거야. 그리고 트라우마로 남을거고. 겉으로는 티나지 않아도, 크면서 골머리를 앓았을거같아. 나는 괜찮다고 생각해도 주변 환경에 의해서 말이지. 결론은 힘들거라고."
"그렇겠지."
"뭐가 문제인데?"
"...민재씨 말이야."
"응."
"어릴때, 부모님 두 분을 다 잃었다는건 알고 있었거든."
"......."
"그런데 내가 모르는게 있었어."
"그게 뭔데?"
"민재씨에게 형제가 있더라."
"...형제?"
"어..."
루한은 아까 저가 읽은 글을 떠올려보았다.
민재에게는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형인지 동생인지 모를 남자 형제 한 명이 있었다. 6월 19일. 민재가 6살 되던 해에 그들의 가족이 부산에서 서울로 올라가는 길이였다. 하지만 그 안에는 민재의 형제되는 사람은 자리하지 않고 있었다고 쓰여있었다.
그날 밤, 새벽까지 늦게 운전을 하던 중 음주운전을 한 트럭과 큰 충돌 사고가 일어나 그의 부모님은 그 자리에서 바로 즉사했다고 적혀있었다. 그 사건으로 민재는 그 자리에서 기억 상실증을 얻음과 동시에 사고 후유증으로 정신분열장애를 갖게 되었다고 기록되어 있었고 그 사건과 민재 개인적인 일에 대한 모든건 다 적혀있었지만 민재의 형제의 신상 관련된 일은 그 어떤것도, 그 아무것도 적혀있지 않았다. 이름도, 나이도, 성별도.
루한은 그 점이 상당히 의아했다. 어째서 아무것도 적히지 않은건지에 대해서 말이다. 호기심, 궁금함을 떠나서 그건 도저히 말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가족의 일부인데 왜 아무것도 기록되어있지 않은걸까. 형제를 제외한 모든 가족의 출생부터 사망날짜까지 세세히 적혀있었다. 하지만 민재의 형제 관계에 대해선, 그 어떤것도 알려진게 없었다.
그 모든것을 종대에게 차분히 설명하자 종대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다가 대답했다.
"그건...민재씨에게 해가 되는 인물이여서 그런게 아니였을까."
"형제라는데.. 그게 어떻게 하면, 어쩌면 민재씨한테 해가 되는 인물이 될 수 있는거지?"
"꼭 친 형제가 아닐수도 있잖아."
"......."
"배 다른 자식이라던가, 아니면 둘 중 한명이 입양 되었던가. 뭐, 경우는 많아."
"......."
"민재씨의 보호자로 할머니가 계시지. 그 분은 우리가 모르는 사실들을 알고 계실지도 모르겠어. 하지만 그럼에도 병원 기록에 또 다른 가족 이야기를 남기지 않는 이유는 따로 있는게 아닐까 싶은데..."
"......."
"상당히 복잡한 상황이였는지도 몰라. 원래 한 사람의 가족사는 한 번 파면 끝도 없는거니까."
루한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종대의 말대로 그때 당시 상황이 복잡했다면, 충분히 그럴수도 있을거라고 한편으로는 납득이 가는듯 했다.
"그냥 궁금한거 뿐이지? 나서서 물어보진 않을거란거 알아. 그러니까 일단 그 문제는 잠시 접어두는게 좋을것 같은데."
"........"
"2년이 넘었지? 민재씨가 입원한지가."
"..그랬지."
"필요하다면 벌써 찾았을거야. 아마도."
어쩌면. 마지막 종대의 말이 맞는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그래. 그럴수도 있겠구나."
"그런 문제일수록 냉정하게 생각해야 돼. 민재씨가 이렇게 된 이유가 중요하니까."
"......."
"아마, 그 이유가 될만한 사람이였는지도."
"아무것도 드러나있지 않은게..."
"응."
"..그런 이유라.."
루한의 머리가 더 복잡해졌다. 드러나면 안되는 이유라 하면.. 그렇다면, 더 머리가 아파질텐데.
"걱정마. 잘 될거야."
루한이 마지막으로 민재에게 한 말이였다. 종대에게 우회로 들으니 뭔가 기분이 묘해진 루한은 고개를 들어 종대를 바로 주시했다.
"자꾸 남일 같지 않은거 있지."
"......."
"내가 다 답답하고, 내가 다 궁금하고."
"......."
"재미없는 오지랖인거 아는데. 그래도...난 그렇다. 내가 해결해주지 못할거란거 알아. 하지만.."
"하지만, 문제가 되는 일이라면 어느정도 해소는 해주고 싶다- 이거지?"
"...거기까지는 내 능력이 안닿으니까 더 갈망스럽기도 하고, 그래. 하지만 해결해주고는 싶어. 안될거지만..."
"너무 가면, 루한. 너만 힘들어져."
"......."
"일단 오늘은 정리해. 내일부터는 민재씨랑 같이 재활치료 먼저 하자. 일단 치료하는게 더 중요하니까."
"......."
"정 해결하고 싶으면, 나랑 같이 뒷조사라도 하던지."
"....첸."
"농담."
종대가 묘하게 웃으며 루한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루한이 종대를 밉살스레 노려보며 힘없이 쇼파에서 일어나 가운을 벗어 옷걸이에 걸었다. 그리고 겉옷을 걸치며 가방을 챙겼다. 영혼이 없는 손놀림에 종대는 피식 웃었다.
하지만, 종대 역시 농담을 할 기분은 아니였다.
사실, 종대는 루한보다 더 빠르게 모든걸 캐치하고 있었다. 민재의 가족사와, 이미 지워진 형제가 있었다는것까지. 루한은 아직 모르는듯 했지만 종대 입장에서는 어느정도 알고 있던 사실이였다. 루한이 한발 느리다고 생각이 들었지만서도 벌써부터 환자에 대한 걱정을 저만큼이나 하고 있으니 안타까워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종대 역시 민재의 형제에 대한 정보는 조금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어느정도 그런 사연이 있었다는것만 얼마 전 듣고 알게된것 뿐. 그가 해줄수 있는건 루한과 함께 걱정을 하는정도 뿐이였다.
그도 처음에는 의아했다. 왜 지워진걸까. 왜 남아있는 정보가 없는걸까.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기에 그랬겠거니 하고 넘긴 종대는 루한의 안절부절한 모습 덕분에 다시금 관심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했다.
"차 빼고 있을게. 주차장으로 와."
"응."
종대가 루한에게 먼저 주차장에 가 있겠다고 말한 뒤 그보다 먼저 사무실을 나섰다.
종대의 차는 바깥 바람이 추운 탓에 창문을 내리지 못하고 오히려 히터까지 켜놓은 상태로 루한의 집 근처까지 달렸다. 두 사람 다 추위를 잘 타는 덕분에 창문을 내릴 생각은 추호도 하지 못했다. 루한은 종대에게 매번 신세를 져서 미안하다고 했지만 종대는 그런거 걱정할 겨를이나 있냐며 루한을 타박했다.
"병원이랑 가까운데로 잘 샀다니까."
"내 집인데 너가 맘에 든다는거야?"
"나도 네 옆집에서 살려고."
"주인 있거든."
"없나본데? 옆집은 불이 아직 안켜있어."
루한의 집 근처에 다다랐다. 종대가 루한의 옆 집에 사는 민석의 집을 칭하는듯 말했다. 루한도 그의 말을 듣고 자신의 집 옆을 쳐다보았는데 아직 퇴근을 하지 않은건지 불이 꺼져있었다.
"아직 병원인가봐."
"당직인가?"
"글쎄..."
루한은 요 며칠 사이에 옆집 주인인 민석을 통 보지 못했다. 얼마전에 아침에 출근하면서 아주 잠시 만난적이 있는데 뭐가 많이 힘든지 볼살이 쏙 빠져있었다. 오랜만에 하는 대화에 처음부터 루한은 그에게 요즘 자주 보이지 않는다고 하니 인원이 많이 빠지는 바람에 당직을 서는 시간이 많아졌다고 했다. 오늘도 그 날중 하나인지,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 핸드폰의 홈버튼을 눌러 시간을 확인했는데 벌써 오후 9시가 다 되가는 시간이였다.
"근데 이 주변에 너랑 그 사람만 산다고 하지 않았어?"
"맞아."
"근데 저 사람은 누구야?"
종대가 운전대를 잡고 말했다. 루한이 그 소리에 고개를 들어 정면을 바라보았는데, 까만 옷을 입은 남자가 헬멧을 쓰고 자신의 집앞을 기웃거리고 있었다. 아니. 자세히 말하면 자신의 집과 민석의 집 사이였다. 그 남자는 누군가를 찾는듯 했다. 얼굴이 보이지 않아 혹시 민석이 아닌가 싶었지만 덩치가 몹시 큰 체구를 보니 민석은 절대로 아닌것 같았다.
"......."
"옆에 오토바이도 있네."
온통 까만 옷에 머리에는 까만 헬멧이라니. 종대의 눈에는 음식을 배달하러 온 단순한 식당 배달원으로 보였다. 종대의 차가 그 근처를 스쳐 지나가려 하자 까만 헬멧을 쓴 남자가 차를 쳐다보았다.
창 하나를 두고 루한과 종대는 그 남자를 보았고 그 사람 역시 종대의 차를 빠르게 주시했다. 그러자 문득, 루한의 뇌리에 한가지 사건이 스치듯 떠올랐다. 지금부터 한달 전 주차장에서 본 까만 옷의 남자와 오토바이가 민석을 치려고 했던 그 일이 말이다.
루한이 급하게 몸을 돌려 후방을 살피다가 차가 꺾여 잘 보이지 않았는지 다시 고개를 돌리고 백미러로 유심히 지나온 방향을 쳐다보자 종대가 그의 팔을 툭 치며 물었다.
"아는 사람이야?"
"아니, 그건 아닌데."
"그런데 뭘 그렇게 쳐다봐?"
"......"
"저 사람은 왜 내 차를 보고 있는거지?"
"첸."
"어?"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루한이 핸드폰을 꺼내들어 민석의 번호를 찾았다. 저번에 뭐라고 저장했었지, 한 번도 연락을 한 적이 없어서 번호를 찾는게 쉬운일이 아니였다. 고양이, 저장한 이름이 생각나자 루한은 급히 통화버튼을 눌렀고 그리고 그것을 귀에 가져다 대며 종대에게 말했다.
"미안한데 나 여기서 잠깐만 세워줘."
"세워달라고? 왜그러는데?"
"나중에 얘기해줄게."
"세워주면 돼? 여기서?"
"어. 넌 바로 가, 첸."
루한이 첸에게 양해를 구하고 바로 차에서 내렸다. 내 예상이라면, 지금 당장 민석과 연락이 되어야 한다. 아직 병원이여야 하는데. 아직 집 근처로 오면 안되는데. 설마 운전중인건 아니겠지. 신호는 가는데 민석이 전화를 받지 않는다.
"왜 안받는거야..."
루한이 그 남자가 있는 방향에서 조금 멀찍이 거리를 두고 온 신경을 귀에 쏟아부었다. 그 남자 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신경을 곤두세우고 주위를 둘러보는데 그때 마침 하이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여보세요?
"민석씨. 민석씨에요?"
- 아, 네 루한씨! 저 민석이에요. 지금 이 시간에 왠일이에요?
"나중에 설명할게요. 민석씨 지금 어디에요. 네?"
- 어...저 지금 집 앞에 가고 있는 중인데요. 왜요?
"지금 집 앞이라구요?"
루한이 급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민석의 차로 추정되는건 아무데도 보이지 않았다. 샛길로 오는건가, 여기서는 보이지 않는데 대체 어디라는거지. 이곳에는 길이 너무나도 많은데. 그 남자가 민석을 먼저 보게 할 수는 없었다.
"지금 운전중이죠."
- 네... 저 이제 1분이면 도착하는데.
"안돼요. 오지 마요."
- 뭐, 뭐라구요?
"지금 혹시 후진 할 수 있어요?"
- 후, 후진이요? 갑자기 왜..
"민석씨. 놀라지 말고 내 말 잘들어요. 지금 내가 민석씨 있는 곳으로 갈테니까, 최대한 차 뒤로 빼요."
- 루한씨 그게 지금 무슨 말....
"위험해요."
- ..네?
"그때 우리가 봤던 남자."
민석이 전화를 받으며 눈을 깜빡였다. 우리가 봤던 남자라니...이미 백지상태가 되어버린 민석의 머릿속에서는 방금 전 만나고 온 병원 사람들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갑자기 뜬금없이 걸려온 이 전화는 무엇이며, 후진은 제 전문이 아닌데 갑자기 몰고 있는 차를 뒤로 빼라니. 모든것이 이해가 가지 않는 민석이였지만 뭔가 상당히 다급해보이는 루한의 목소리를 듣고 일단은 하라는대로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위험을 감지한 루한은 민석의 집 앞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조금 더 걸어가니 민석의 차로 추정되는 검은 승용차가 뒤로 천천히 빠지고 있는게 보였다. 까만 헬멧의 그 남자는 뒤로 빠지는 민석의 차를 보고 오토바이를 한 번 주먹으로 쾅 쳤다. 그리고 그 위로 올라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젠장."
- 루..루한씨.
"..움직이지 마요. 내가 그리로 갈게요. 말했어요, 더이상 움직이지 마요."
마지막으로 말을 남긴 루한이 전화를 끊고 미친속도로 달리기 시작했다. 헬멧을 쓴 남자가 서있는 곳의 반대 방향을 빠르게 뛰어간 루한이 남자의 눈에 보이지 않게 민석의 차 쪽으로 향해 달려갔다. 민석은 루한의 말을 듣고 차를 움직이지 않고 있었고 루한은 점점 가까워지는 민석에 차에 대고 크게 몸짓했다.
민석이 백미러를 통해 자신에게 뛰어오는 루한을 발견하고 조수석 문을 열려 했으나 루한은 민석의 예상과 반대로 운전석으로 돌아가 문을 열라고 손짓했다.
"내려요!"
"네?!"
"당장 내리라구요..!"
민석이 문을 열고 눈만 꿈뻑이고 있자 루한이 민석의 안전벨트를 직접 풀어버리고 팔을 세게 끌어 밖으로 빼내었다. 그리고 제 안에 민석을 담아두고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경찰서죠."
그리고 그 때, 민석의 집 앞에서 대기하던 큰 오토바이가 검은 굉음을 내며 루한과 민석의 곁을 스쳐지나갔다. 이번이 두번째다. 저 오토바이를 만나는것도, 그리고 저 헬멧을 쓴 남자가 다시 한 번 민석과 루한을 돌아보는것도.
루한은 그 남자가 다가오자 '경찰서'라는 단어를 더 크게 외쳤다. 헬멧을 쓴 남자는 정확히 그 말을 들었다. 폭주하며 동네를 빠져나가는게 보였다. 루한이 끝까지 민석을 품에 안고 경찰서에 신고를 했다.
"행방은 알 수 없어요. 그런데 무슨 이유로 자꾸 나타나는지 모르겠습니다."
"루한씨...지금 무슨..."
"확인 좀 부탁드릴게요. 네."
루한이 대충 경찰에 신고를 하고 난 뒤 전화를 끊고서 이마에 맺힌 땀을 손등으로 닦아냈다. 분명 바람은 차게 불었으나 더위가 급속도로 몰려와 그는 겉옷을 풀어내렸다. 그리고 남자의 행방이 확실하게 사라지자 그제서야 루한이 팔을 풀고 민석의 몸과 얼굴을 이리저리 살폈다.
"조심성이 없어요? 왜 내리라는데 가만히 있어요?"
"루한.."
"아무것도 기억 안나는거에요?"
"......."
"저번에 주차장에서. 당신한테."
"......."
민석이 다다다 쏘아붙이는 루한에게 겁을 먹은 눈동자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다는 표정을 하고서 거의 울듯한 눈을 지으며 루한을 쳐다보았다. 루한은 그만 그 눈길에 미안해졌다. 자기도 모르게 민석에게 화를 내고 있었다. 이미 민석의 눈가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매달려있었다. 이런 상황에 많이 놀란 모양이였다.
"미안해요."
"....난..난....아무것도...."
"미안해요. 민석씨. 미안해요."
"나 아무것도...."
"잘못한거 없어요. 민석씨..잘못한거 없어요. 내가 미안해요."
그 눈빛을 보기가 힘들어졌다. 루한이 저도 모르게 민석을 강하게 끌어안았다. 그러자 민석이 손을 떨며 루한의 가슴팍에 푹 고개를 묻었다. 맞닿은 심장이 무척이나 쿵쿵거렸다. 민석은 어깨를 들썩이며 그 작은 손으로 루한의 허리춤을 감고 놔주지 않았다.
"왜...갑자기..나, 나한테..."
"내가 미안해요. 갑자기 그래서 놀랐죠. 미안해. 미안해요."
"그 사람 간거에요..?"
"..네. 갔어요."
고개를 빼꼼히 든 민석이 루한 대신 주위를 살폈다. 그리고 이내 루한의 품에서 벗어나 울듯 말듯한 빨개진 눈을 슥슥 문질렀다. 루한이 민석의 어깨를 잡고 시선을 맞추며 말했다. 민석이 조금 창피한지 루한의 눈을 마주치지 않고 고개를 돌렸다.
* * *
민석의 차를 루한이 대신 몰고 집 앞까지 주차했다. 민석은 조수석에 앉아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고 옆에서 운전하는 루한의 눈치를 보았다. 알다가도 모를 사람이였다. 다정하기만 한 사람인줄 알았는데, 버럭 화를 내는게 너무 무서웠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그렇다고 크게 화낸것도 아니였다. 그냥 꾸지람 정도....
"내리세요."
"네? 네...."
딴생각을 하던 민석이 루한의 눈길을 고스란히 받자 놀란듯 벨트를 급하게 풀어헤치며 차에서 내렸다. 루한이 잠시 민석의 가슴쪽에 팔을 올리고 '잠시', 하며 후방을 살폈다. 꼼꼼히 살피고 아무도 없음을 확인한 그는 다시 팔을 치우고 민석 대신 조수석 문을 안쪽에서 열어주었다. 민석이 버둥대며 문을 열고 나가자 루한도 같이 벨트를 풀고 운전석에서 빠져나왔다.
"여기, 차키."
"네..."
"그 사람. 진짜 누군지 모른다는거죠."
"...네. 저는 정말 몰라요. 그때가 처음이였고 오늘이 두번째에요."
"경찰에 신고해놨으니 당분간은 조심해서 다녀요."
말은 조심하라고 하는 루한이지만, 속으로는 무척이나 불안한 그였다. 사실 민석에게 조심성이 없냐고 잔소리했지만 이건 민석이 조심해서 될 문제가 아니였다. 루한은 그 사실을 알기에 또 언제 어디서 나타날지 모르는 그남자가 하루종일 거슬릴 지경이였다.
처음엔 몰랐다. 주차장에서 봤을땐 단순한 소매치기 정도로만 생각했다. 하지만 두번째로 민석의 집 앞까지 친히 찾아와 그를 기다리는 꼴이 루한은 무척이나 불안했다. 단순히 지키고 싶어서 그렇다기보다, 그냥 그래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지킨것이다.
루한은 민석의 집 앞까지 데려다주기로 생각했고, 민석은 그런 루한에게 괜히 미안해졌다.
".....저한테 위험한 사람이라는건 어떻게 알았어요?"
"느낌이 안좋았어요."
"그랬..구나."
"나 없으면 어쩌려고 그래요."
또 다시 차가워지는 루한의 말투에 다시금 풀이 죽은 민석은 괜히 바지춤을 한 번 잡았다가 놨다. 그리고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루한에게 꾸벅 인사했다.
"들어가볼게요. 오늘, 정말 고마웠어요...루한씨."
"........"
"다음부턴...조심할게요."
"....그래요."
"조심히 들어가세요.."
민석이 루한에게 다시 한 번 고개숙여 인사하고 주택 안으로 들어갔다. 발소리가 멀어지는게 들린다. 루한은 닫힌 문을 하염없이 바라보다가, 주택 안의 불이 환하게 켜지는걸 보고서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루한은 한동안 민석의 집 앞을 떠나지 않았다. 혹시나 또 그 남자가 찾아올새라, 그렇게 지키기를 꼬박 세 시간. 오랫동안 그의 집 앞을 서성이던 루한은 자정이 다 되서야 자신의 집에 들어갈 수 있었다.
루한은 금새 얼굴을 굳히고, 다시 한 번 그 남자의 존재에 대해 떠올렸다. 아무래도 위험한 사람같다. 아침 저녁으로 경찰서에 신고를 해야 직성이 풀릴것 같다.
그리고 집에 들어가 씻고 누운 루한은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다 생애 처음으로 민석에게 문자를 남겼다.
- 생각나서 하는 말인데, 민석씨 고양이 닮았어요. 그런데 아까처럼 불쌍한 눈빛으로 나 쳐다보면 내가 무슨 못된 주인이라도 되는거 같은 기분인거 알아요?
자신도 뭐라고 하는지도 모를 말들 투성이였다. 그럼에도 마지막은 이렇게 장식했다.
- 내가 데리고 살고 싶게 하지 마요. 한 번만 더 위험해지면, 그땐 민석씨 우리집에 데리고 올지도 모르니까.
루한이 전송버튼을 누르고 살풋 웃었다. 메세지톡이 아닌 전형적인 메세지로 보낸바람에 민석이 읽었는지는 모르는 여부였다. 그리고 올곧게 누우니 천장이 눈에 보였다. 민재의 병실이 수면위로 떠올랐다.
"....양자리.."
루한이 한쪽 팔을 들어올려 머리 뒤로 가져다 대었다. 그리고 민재의 꿈속에 그가 염원하는 사람이 나타나기를 바라며 루한도 마침내 눈을 감았다.
* * *
암호닉 :
낫닝겐 / 너구리 / 핫바 / 치즈스틱 / 조무래기 / 노란색연필 / 변골반 / 모카 / 이든 / 낑깡 / 연 / 두부 / 텐더 / 초코푸딩 / 히융융 / 홍홍아직도랩을한다 님♡
늦게 온 자는 말이 없는 법이죠 ...
야심한 시간에 오랜만에 글 올리고 이만 사라지겠습니다.. ㅇ<-<
사실, 글 쓰는 도중에 임시저장이 된줄 알았는데 글이 날아가버린게 두 번.
쓰기차단을 먹은게 이틀.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여러분 보고싶었어요 ㅠㅠㅠㅠ 중간에 여러번 멘붕이 있었지만 저는 꿋꿋히 다시 쓰고 다시 써서 11편을 올리고야 말았습니다 T_T 힝
아마도 전편보다 짧은거같은건 기분탓일거에요. (시선을 피한다)
6일이나 늦게 왔네요. 할 말이 없습니다.
ㅠ_ㅠ 사랑해요.
+) 메인 커플링은 루민, 서브는 카디입니다.^^ 찬백은 귀여운 배틀라인이라고 할까요~ 흐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