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수야. 나 아무리 생각 해도 헤어져야 할 것 같아. 바쁜 일상 탓에 애인 뿐만 아닌 친구 연락 하나 못 받고 있다가 대뜸 전화로 듣게 된 말이 고작 이거라니. 경수는 상사 눈치를 보며 조용히 사무실 밖으로 나와 커피 자판기 앞에 서서 조용히 한숨을 쉬었다. "왜 갑자기." 갑자기가 아니야, 경수야. 얘는 나랑 사랑 하기 싫은 게 분명 하다니까. 휴대폰을 왼쪽 귀로 옮기고 경수가 바지 주머니에서 동전 두 개를 꺼내 자판기에게 먹이를 주듯이 천천히 집어넣었다. 블랙 커피에 불이 들어왔다. "네가 어떻게 알아. 남의 생각을." 그게 있지. 너도 알지만 내가 진지하지 못 한 사람 싫어하는 거 알잖아. 그리고 또 말주변이 없는 거랑 할 말은 해야 하는데 못 하는 거랑은 다르다고 생각 하는데. "그건... 예전부터 그래왔었잖아." 응. 그래서 내가 줄곧 참았었지. 삑, 조심스러운 손길로 경수가 버튼을 눌렀다. 종이컵이 내려오고 로스팅 된 진한 원두의 향기가 서성거렸다. 잠자코 백현의 말을 기다렸다. 계속해서 아무런 말이 없자 경수가 먼저 입을 열었다. "사랑하니까 참았었던 거 아냐?" 맞아. 사랑하니까. 근데 경수야, 얜 나를 안 사랑하니까 고치려는 생각 조차도 안 하는 걸까? 백현의 한 마디, 한 마디가 저의 목을 조르는 것 같았다. 어떤 위로가 네게 필요한 건지 솔직히 모르겠어. "직접 만나서 말 해 보지 그랬어." 경수 너 나랑 얘기 안 한 지 오래 된 거 여기서 티 나는 것 같다. 미소가 섞인 말에 경수가 무슨, 하고 말을 시작하다 다시 다물었다. 백현이 말 할 시점이란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말 해." 우리 밖에서 엄청 싸웠어. 사람들 다 보는데 소리 지르고 욕 하고 있지. 근데 나만 그랬어. 평소와 다를 거 없이 항상 나만 설교하고 나만 말 하고 있더라. 보이는 게 두 눈이 아니더라고, 경수야. "그럼?" 원두의 향기가 점점 더 진해지고 있다, 싶었을 때 전화기 너머로 하늘에 비행기가 지나가는 듯한, 그런 소리가 크게 들렸다. 인상을 찌푸리며 백현의 대답을 기다렸다. "백현아. 미안한데 나 바빠서 오래 통화 못 하거든." -"..." "백현아. 근데 너 지금 어디야? 공항이야?" 경수야. 오랜 침묵 끝에 백현의 목소리가 들렸다. 경수는 결국 눈을 감았다. 이마에 손을 짚고 앞머리를 끌어올렸다. "듣고 있어." 있잖아, 나는 노력 했어. 우리 헤어지면 서로가 힘들 거 아니까, 서로가 아니면 그 어떤 누군가도 서로를 대신 할 수 없단 걸 아니까 노력 했는데. 이게 계속 이어지다간 심각한 감정 소모가 될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 했어. 왜냐하면 나, 나 말이야. 요즘 가만히 있는데 눈물이 나거든. "...괜찮아?" 강한 바람 소리, 숨을 내쉬고 들이마시는 소리. 이 외엔 어떤 것도 자세히 귀 담아 들을 수가 없었다. "백현아. 내가 한 시간 뒤에 다시 전화 할 테니까..." 경수야. 너 요즘에도 가을인데 코트 입고 다녀? 그러지 마, 유행에 뒤떨어진 사람 같아. 그리고 아이스크림 많이 먹어서 배탈 나지도 말고. 종인이 걱정 하잖아. 또... 커피. 그래, 맞다. 커피. 커피 좀 줄여. "너 어디 가?" 커피 배출기에서 종이컵을 꺼내려던 순간에 맞춰 대답 했지만 갑자기 쾅, 하고 둔탁한 소리가 들리더니 아예 전화가 끊긴 모양이었다. 다시 전화를 걸어볼까, 생각도 했지만 이내 고개를 젓고 경수는 블랙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커피는 한약처럼 쓴 맛으로 아예 차갑게 식어있었다. 마치 실재 하던 본연의 그 맛을 잃은 것처럼. -사연 주신 라망 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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