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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혁 샤이니 온앤오프
달리기 전체글ll조회 339l 2

달리다 00

w.달리기

    

  

나는 늘 불안정했다.

주변사람들의 말로는, 어디 꼭 나사가 하나 빠진 것 마냥 삐그덕댔고, 주위 환경에 쉽사리 적응하지 못했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나에게 있어 가장 크고 중요한 나사 하나가 빠져버렸으니까.

그 나사를 찾으려 난 아직까지도 달리고 있으니까.

  

 

 

나에겐 첫사랑이 있었다, 아니 아직까지 남아있다. 다시 돌아오겠단 그 흔한 말 한마디 없이 훌쩍 앞서가버린 그였지만 난 아직까지도 그를 찾아 달리고 있다. 우리의 사랑은 아주 평범했다. 17, 어린 나이에 만나 서로 첫눈에 반해 사랑을 싹 틔웠고 그 흔한 권태기도 없이 2년을 함께했다. 손잡고 영화도 보고, 밥먹으러도 가고, 모든 것이 평범했던 첫사랑과의 연애였지만 단 한 가지 평범하지 않은 것이 있었다. 그는 대한민국의 평범한 남자였고, 나도 마찬가지로 그와 같은 성을 가지고 있을 뿐이였다. 단지 그거 하나였다. 그래도 우린 행복했고, 또 평생을 함께 할 자신이 있었다. 평범하디 평범한 우리의 사랑에 손가락질하는 사람들은 여럿 있었지만 아무렇지 않았다. 다른 사람의 눈을 의식할 시간에 서로의 눈을 더 쳐다보며 되었으니까, 그 깊은 눈에 서로의 모습만 담으면 되었으니까.

하지만,

그 모든 것을 견뎌냈지만 그는,

내가 사랑하는 그는 나를 두고 저 멀리 앞서나갔다.

다시 돌아오겠단 말도, 헤어지잔 말도 없이 멀어진 우리였기에 난 그에게 닿기 위해서 더 숨 가쁘게 뛰어다닐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오늘도 열심히

  

달리는 중..

  

이었...는데..

  

 

 

야 야 박지민. 좀 일어나 보라고. 무거워 디지겠네.”

......”

뭘 아프긴 아파. 새로운 술주정이냐

  

 

아프다고. 마음 한 쪽 구석이 바늘에 찔린 것 마냥 아프다고 새꺄.

  

술에 취해 떡이 된 나를 질질 끌며 욕을 하는 정국에게 쏘아붙이며 말하고 싶었지만 이미 온 몸의 기능은 내 통제 밖으로 벗어나 있었다. , 그런데 정말로 아프다. 저기 심장 깊은 곳에서 누군가가 나를 괴롭게 하고 있는 것 같은데.. 누구지. 누군데 이렇게 나를

 

 

 

..국아..나 진짜 아파...”

아 어디가 자꾸 아프대!! 어디 아픈데! 어디!!”

  

 

여기 왼쪽 심장이 아프긴 한데 왜 아픈지 모르겠어. 그러니깐 누가 자꾸 나를 아프게 하는데..

  

 

여기..여기가 너무 아파. 내 심장을 누가 자꾸 괴롭혀.”

  

 

그러니깐 나를 괴롭히는 사람이 누구냐면..

  

기억이 날 듯 말 듯 하다. 머릿속에서 자꾸만 고개를 빼꼼히 내미는 사람이 있긴 한데. 누구지. 누군데 자꾸만 나를

  

 

 

.. 헛소리도 다양하다. 니가 나를 괴롭게 한다. 니가 나를.”

  

 

 

, 생각났다.

  

이제는 내 머릿속 가득 얼굴을 들이미는 그의 모습에 난 반사적으로 눈물을 흘렸고 그의 괴롭힘은 점점 심해져만 갔다.

  

.. 나 충분히 아프니깐 그만 해 줘, 제발. 나 좀 그만 괴롭혀.

  

 

 

.. 박지민. 너 우냐? 울어? 진짜 아파서 그래? 야 박지민!!”

  

 

,

김태형 이 개자식아 그만하라고

나 아퍼 많이

  

보고싶어.

보고싶어 미치겠어 태형아.

  

 

 

 

 

 

 

 

 

 

 

 

..”

  

깨질 듯 아파오는 머리를 붙잡고 슬그머니 일어나 핸드폰을 켜니 열 시가 다 되어 가고 있었다. 오늘 수업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풀로 차 있었지만, 에라 모르겠다. 자체 휴강이다. 다시 침대에 벌러덩 누워 두 시간 전 도착한 메시지들을 훑어 보면

  

 

[야 너 오늘 안오냐]

  

[지민아 오늘 김교수님 수업인데, 괜찮겠어?]

  

[너 어제 또 술 처먹었지 전정국이랑. 둘이 쌍으로 수업 제끼기나 하고. 잘 하는 짓이다]

 

 

모두 같은 과 동기, 선배들에게서 온 문자였다. 그런데 마지막 동기 호석의 문자가 심히 거슬렸다. 전정국도 수업 빠졌다고? 설마..

  

설마하는 마음에 다시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밑을 쳐다보니

  

 

 

!!!!!!”

  

 

 

웃통을 훤히 깐 채로 맨 바닥에서 배를 긁으며 자고 있는 정국이 보였다. 나의 큰 목소리에 정국은 배를 긁던 걸 멈추고 눈썹을 꿈틀 움직였다. 녀석을 깨어봤자 좋을 거 하나 없었기에 놀란 마음을 조용히 삭히곤 화장실에 들어와 칫솔을 입에 물었다. 어차피 작은 원룸이라 화장실 안에서도 그의 모습은 잘 보였다. 양치질을 하며 어제의 기억을 되살리려 끙끙댔지만 잘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니깐 어제 혼자 술 먹다가.. 전정국이 와서.. 잔소리를 늘어놓고....... 그 뒤론 생각나지 않는다. 주량을 과하게 넘은 탓에 필름이 아예 끊긴 듯 했다. 미련스런 내 모습에 눈살을 찌푸리며 다시 한 번 정국을 쳐다보았다. 이불은 방구석에다가 처박아 놓은 채 간간히 작은 숨을 내쉬며 곤히 자고 있는 모습이 꽤나 우스웠다. 괜스레 웃음이 나와 정국이 깨지 않게 조용히 웃음을 터뜨리다 세면대로 가 입을 헹궜다. 양치를 마치고 고개를 들어 잠깐 들여다 본 거울 속에는 왠 달덩이 하나가 떠다니고 있었다. 눈이 뻐근하다 했더니 아주 눈동자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땡땡하게 부어있었다. 눈이 왜 이렇게 심하게 부었지.. 어제 술 처먹고 엉엉 울어댄 사람 마냥

  

?

  

불현 듯 머릿속에 스쳐지나가는 어제의 장면들

  

여기..여기가 너무 아파. 내 심장을 누가 자꾸 괴롭혀.’

나 태형이가 너무 보고싶어. 태형이 보고싶어. 우리 태형이 데려와 이 나쁜새끼야

  

 

 

 

오 지져스

세면대를 붙잡고 있던 손이 부들부들 떨리고 얼굴이 삽시간에 확 달아올랐다. 난 이제 죽었다. 이건 한 세 달, 아니 일 년치 놀림감이었다. 고개를 돌려 아직도 태평하게 자고있는 전정국을 보니 머릿속에는 오직 한 가지 생각만이 가득찼다.

  

도망 가야돼.’

  

칫솔을 세면대 위에 내팽겨 치듯 두고는 바닥에 깔린 전정국을 조심스럽게 피해 옷을 갈아입기 시작했다. 대충 옷에 몸을 욱여넣으며 슬금슬금 현관을 향해 가는데

  

아 하늘은 무심하시지

  

전정국이 눈을 떴다.

  

지금 나의 꼴은 누가봐도 도망가는 중이었고

그런 나를 뚫어져라 바라보는 전정국은

짜증나게도

씩 웃고있었다.

  

 

 

.. 정국아.. 내가 지금 일이 있어서 좀 나가봐야 할 것...”

아 형

  

 

 

평소의 전정국은 절대 형이란 호칭을 쓰지 않는다. 호칭에 그닥 신경을 쓰지 않는 내 탓도 있겠지만 정국은 늘 그래왔다. 반말을 찍찍 내뱉으며 형이란 호칭대신 내 이름을 불러왔던 그가 저렇게 깍듯이 나온다는 것은

  

 

 

형 나 여기가 너무 아픈데 어떡하죠? 제 심장을 누가 자꾸 괴롭히는데

  

 

망할 놈의 새끼

  

정국은 여유롭게 바닥에 누운 상태로 자신의 심장을 움켜쥐고 저딴 말을 내뱉었고, 그의 표정과 말투, 그리고 어제의 내 만행을 종합해본 결과 그는 나를 놀리고 있는 중임이 틀림없었다.

  

 

하하.. 그래 정국아. 아프면 우리집에 편히 쉬고있어. 나 좀 나갔다..”

형 나 배고픈데

? .. 그럼 집에서 밥 먹고 있어. 난 좀 나갔다..”

박지민 데이트하러 가자

 

자꾸만 어제 밤 일이 생각나 달아오르려는 얼굴을 부여잡고 몇 번이고 전정국을 피해 나갈 시도를 했지만 전정국이 어떤새끼인지 잠시 망각하고 있었다.

  

전정국은 약았다.

  

머리가 좋았다.

  

눈치는 또 더럽게 빨랐다.

  

그는 알고 있었다.

내가 김태형이라면 껌뻑 죽는것과 자존심이 무척 세다는 것.

그 둘을 합한 어제일이라면 나를 구워먹고 삶아먹고 튀겨먹을 수까지 있다는 것을.

  

하지만 그와 같이 지내온 세월만큼 나또한 정국을 잘 알았기에 내 자존심 세우는 것을 일찌감치 포기할 수 있었다. 몇 년 전만 해도 정국을 이기려 같이 날을 세우고 덤벼 들었지만 이제는, 내가 조금만 참으면, 내가 조금만 굽히면 골치 아픈 상황이 벌어지지 않는 걸 깨달아서, 그래서 포기할 수 있었다.

  

뭐 나를 구워먹겠다면 구워지면 되고 튀겨먹겠다면 튀겨지면 되는 거지 뭘. 내가 언제부터 전정국 앞에서 강자였다고.

  

이런 안일한 생각을 할 수 있게 된 것도 다 정국과 함께 보낸 세월때문이 아닐까

  

 

그래 기지배마냥 데이트 함 해보자. 우리 정국이랑

  

 

나의 대담한 태도에 전정국은 흥미롭다는 듯 나를 빤히 쳐다보았고 나도 지지않겠다는 듯 똑같이 쳐다보았다.

  

그 다짐은 금새 무너졌지만

  

 

 

형 나 어제 김태형이랑 전화했는데

  

 

 

나쁜새끼

  

전정국은 천하에 나쁜새끼였다.

  

내가 자존심을 굽히면 굽힐수록, 그는 꼭 두 살이나 많은 나를 밑에 두어야 직성이 풀렸고 나를 괴롭히지 않으면 가시가 돋는 것 마냥 괴롭혔다.

하지만 내가 그런 전정국에게 휘둘릴 수 밖에 없는 이유는

  

 

“.....”

안 궁금해 지민이?”

  

 

아마 그와 나 사이엔 김태형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태형이가 뭐래?”

“......”

“..밥은 잘 먹고 다닌대?”

“......”

“...감기는 안 걸렸고?”

  

 

태형은 유낙 여름감기에 잘 걸렸다. 한참 사람들은 바다에 놀러가고 짧은 옷을 꺼내입을 때 태형은 집에 틀어박혀 끙끙 앓곤 했다. 그런 그가 생각나 다급히 정국에게 물었지만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아마 그가 원하는 말이 아니었기 때문일 것이다.

  

정국은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그에게 질 때까지. 내가 마음속에 묻어놨던 질문을 해 정국에게 비참한 꼴을 보일 때까지

  

미웠다.

  

어느덧 진지한 표정으로 내가 그 말을 꺼내기를 기다리는 정국의 모습이 눈물겹도록 미웠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전정국과 나 사이에 태형이 있는 한 나는 늘 약자가 될 수밖에 없는데

 

 

“.... 나는....내 얘기는 안 했어?”

“........”

“......안 보고 싶대..?”

“........”

“..언제 돌아올꺼래..? 나 보러 안 온대..?”

  

그토록 물어보고싶은 말들을 가득 꺼내놓은 뒤 쳐다본 정국은 슬쩍 웃고있었다. 그리 개운해 보이지 않는 웃음이었지만 비참했다. 결국 졌다. 나는 또 정국앞에서 한없이 작아져만 갔고 그런 나의 모습을 그는 즐기는 듯 했다. 내 약점을 알고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기에, 태형과 나의 아슬아슬한 사이를 이어주는 유일한 사람이었기에 나는 또 자존심을 굽혀가며 정국의 밑에 섰다.

  

일단 나랑 나가요. 나 기분 안좋으니까 조금있다 말해줄 거야

“.....”

그 반바지 갈아입고. 아직 완전한 여름아니에요

  

그의 말투는 어딘지 모르게 처져있었고 나 또한 기분이 확 가라앉았다. 태형과 관련된 정국과 나의 신경전 후에는 언제나 지침만이 남아있었고, 정국 또한 그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멈추지 않았다. 잊을 만 하면 자꾸만 그 이름을 내게 꺼냈다. 나에겐 아프기만 한 그 세 자. 김태형을

  

 

 

 

 

 

 

 

 

 

 

 

 

 

김태형 여자 만나고 잘 살고 있대요

“....김태형 아니고 형.”

  

결국 정국의 뜻대로 바지를 갈아입고 자주 가던 해장국집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얼큰한 해장국에 쓰린 속을 부여잡으며 겨우 한 술 뜨려던 때 정국은 또 모진 말을 해왔다.

  

참 형도 웃겨. 내가 너한테 반말하면 다 넘어가면서 김태형한테 반말하면 죽일 듯 쳐다보고

“.....”

태형이 형 여자만나면서 잘 살고 있으니까 너나 잘살래요 박지민아

  

말없이 해장국을 떠서 입 안에 넣었다. 거짓말이다. 전정국은 거짓말을 하고 있다. 태형이와 나 사이를 끊어놓지 못해 안달난 전정국이니까 거짓말이다. 언제나 나를 괴롭히기위해 모진 말을 해왔던 정국이었기에 아무렇지 않게 해장국에 밥을 말았다. 빨간 국물이 보기만 해도 얼큰했다. 눈이 시려워져 눈가를 잠시 찌푸려야 했지만 아무렇지 않은 척 밥을 입 안에 넣었다. 깍두기도 집어 입 안에 넣었다. 볼이 금새 빵빵해졌다. 목구멍으로 올라오는 그 무언가를 막아야했기에 또다시 밥 한 술을 떠 입안에 넣었다.

  

천천히 먹어

“.....”

아진짜 뭐 김태형 얘기만 나오면 표정이 그러냐

“.....”

잘못했어요. 거짓말 한거야. 그러니까 그 눈에 물 좀 치워봐

  

정국은 내 입가에 묻은 밥풀을 떼어가며 결국 사실을 토해냈다. 거짓말인 줄 알았으면서, 사실이 아니라는 정국의 말도 들었으면서 나의 숟가락질은 멈추지 않았고 정국의 말대로 내 눈에서 물기가 묻어나왔다. 이렇게 김태형은 나를 울린다. 아주 쉽게 나를 울려버린다. 이내 볼 위로 물들이 흘러내렸고 정국은 그 물들을 방금 밥풀을 떼어가듯 손으로 닦아내렸다.

  

애도 아니고. 김태형 얘기만 꺼내면 울기부터 하고

“.....”

형은 안 본지 몇 년이나 지난 그새끼가 뭐가 좋다고

“..그새끼 아니야

“....박지민 진짜. 끝까지 김태형 편들죠

  

김태형으로 시작한 우리의 대화는 끝이 좋지 못하였다. 나는 김태형 생각에 눈물지었고 전정국은 한심한 내 모습에 짜증을 내었다. 나는 꾸역꾸역 해장국을 입에 밀어넣었고 전정국은 숟가락에 손도 대지 않았다. 그저 추하게 울며 밥을 삼키는 날 빤히 바라보고 있을뿐이었다. 아주 애매한 표정으로.

  

결국 밥 한그릇 깨끗하게 비운 나는 코를 훌쩍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 나를 따라 정국의 시선도 위로 올라왔고 나는 울음이 그친 빨간 눈으로 정국의 시선을 받아쳤다. 약간은 미안함 감정이 없지않아 있었다. 오로지 나를 걱정해 하는 말임을 앎에도 불구하고 또 정국의 앞에서 태형의 편을 들었다. 불필요하게도. 태형이 내 곁을 떠난 뒤 그 빈자리를 꽉꽉 채워준 정국이었다. 평생 달고다녀야 할 것만 같던 김태형 그 석자를 잠시나마 떼어준 고마운 녀석이었다. 그런 그와 불필요한 감정소모는 필요하지 않았다. 내가 져주면 되었다. 항상 그래왔던것처럼

  

 

정국아 우리 아이스크림 먹으러 갈까? 형이 쏠께!”

  

 

정국의 눈을 마주한채로 바보같이 웃으며 말했다.

반복되는 일상이었다. 그 뒤의 상황을 수학공식 외우듯 읊조릴 수 있는, 수없이 반복해왔던 일상이었다. 그래서 더 이상의 신경전은 무의미하다는 것을 우리 둘 모두 잘 알았고, 그 중 좀 더 성숙한 내가 화해의 손을 내밀었다. 정국은 아무리 내게 반말을 하고 어른인 척 해도 나보다 두 살이나 어린애였고 나는 그런 그를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아이스크림 먹고 영화도 봐요. 요즘 형 좋아하는 거 나왔던데

  

우린 늘 이런식이었다. 싸움의 원인은 늘 태형이었으며 화해의 손을 먼저 내미는 것은 나였다. 그조차도 오래가지 못하고 바로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돌아섰다. 이게 내가 그에게 해줄 수 있는 최선의 방식이었다. 태형으로 가득차 불안정한 내 곁에 머물러 주는 정국에게 내가 해 줄 수 있는 최선의 방식이었다.

 

 

 

 

 

 

 

 

 

 

아 덥다 더워

  

나는 유난히 더위를 많이 탔다. 5월의 중순임에도 불구하고 나에겐 덥게만 느껴지는 날씨였고 그로인해 긴바지를 입으라던 정국이 괜스레 미워지는 순간이었다.

  

다 왔어. 조금만 참아

  

우리의 짧은 싸움이 끝나자 정국은 언제그랬냐는 듯 다시 자연스레 반말을 해왔지만 더위에 넋이 나간 나는 말투를 고치라고 하는 것도 잊어버린 채 축 늘어졌다. 아침에 나와 밥을 먹고 번화가로 걸어가는 길. 시간은 12. 해가 내 머리 꼭대기에 있을 시간이었다.

  

많이 더워? 좀 쉬다 갈까? 그러게 내 차 타고 가자니까

  

정국에겐 차가 있다. 스물 한 살의 나이에 무슨 차냐고 묻는다면 나는 대답해 줄 수 있는 것이 없다. 늘 정국은 그래왔으니까. 남들보다는 조금 돈 쓰는 것에 헤펐고, 그 나이 또래에 맞지 않는 것들을 가지고 있었다.

  

아 됐어. 기름값 아까워

  

반면 가난한 대학생인 나는, 등록금 낼 돈이 없어 4년째 아등바등 장학금으로 버티고 있는 나는 그런 정국의 모습이 익숙치 않다. 그래서 뱉은 나의 말에 정국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나를 쳐다보았고 더워서 헥헥거리는 내 모습에 잠시 한숨을 쉬기도 했다. 이렇게나 우리는 달랐다. 이상한 관계에 얽매인 우리는 많이 달랐다.

  

 

 

 

 

 

 

 

 

정국아

  

탈진 직전의 나를 이끌고 정국이 도착한 곳은 아이스크림 집이었다. 그곳에 자리를 잡고 앉은 나는 에어컨의 서늘한 냉기에 더위를 식히며 정국에게 말을 걸었다.

  

그러고보니 너 왜 우리집에서 잤어?”

“...”

너 원래 우리집 잘 안오잖아

  

아이스크림을 주문하고 받은 번호표를 만지작거리며 정국은 대충 대답했고 난 오늘 아침부터 물어보고 싶었던 질문을 입밖으로 꺼냈다. 정국이 우리집에 오는 것을 내가 꺼려하는 이유도 있었지만 정국도 굳이 오려고 하지 않았기에 어젯밤처럼 우리집에서 같이 잔 일은 정말 드물었기 때문이었다.

  

그냥 뭐..”

너 우리집 싫어하잖아. 근데 어젠 왜 그랬어?”

  

그래.

따지고 보면 정국은 우리집을 싫어하는 축에 속했다. 내가 나서서 물어보기도 뭐해 그냥 혼자 추측하자면, 아마 우리집엔 온통 김태형의 흔적으로 가득 차서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무슨 일 있었어?”

아 그만 좀 물어

  

계속되는 내 질문에 정국은 한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짜증을 내었고 큰 손 사이로 보이는 그의 얼굴은 살짝 붉게 물들어 있었다.

  

너 왜 얼굴 빨개져? 너 나한테 숨기는 거 있지? 빨리 말해라. 안 말하면 확..”

“......”

아무튼 빨리 말해봐

  

이제는 귀까지 달아오른 그의 모습에 직감적으로 어제 무언가 일이 있었다는 것을 깨달은 나는 계속해서 정국을 재촉했다. 나의 끈질긴 보챔에 자신의 얼굴을 뒤덮은 손을 내릴 생각이 없어 보이는 정국은 체념한 듯 한숨을 내쉬었다.

  

갈까봐

“..?”

형이 저번처럼 갈까봐

  

.

저절로 탄식이 흘러나왔다.

그러니까 몇 년 전이더라.. 꼬박 4년 전, 정국과 내가 하늘색 교복을 입던 때, 아마 그쯤이었던 것 같다. 4년 전 그날, 사건이 터진 날, 수능도 만족스럽게 치루고 앞으로의 행복한 나날들만을 상상하던 태형이와 나에게 불행이 다가온 날. 하늘색 교복을 입던, 아직 어리기만 하던 태형이는 아무런 말도 없이 내 곁을 떠났고 나는 당연하게도 그를 찾아 달렸다. 슬퍼할 새도 그리워할 새도 없이 태형이를 쫓아 달리기만 했다. 그렇게 정신없이 한 달을 보내고 난 후, 태형이가 내 곁을 떠난지 꼭 한 달이 되던 날. 나는 끔찍한 선택을 했다. 아무리 달려도 어두운 길 위에 태형의 그림자는 보이지 않았기에 끔찍한 선택을 했다. 내 반쪽과도 같은 그가 곁에 없기에 숨이 쉬어지질 않아 이 세상에서 떠나려 했다. 그때 내 곁에 있었던 건, 나를 죽음의 구렁텅이에서 끌어올려 준 건 정국이었다. 예쁜 하늘색 교복을 입은 채 엉엉 울며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앳된 얼굴을 가지고 애써 눈물을 삼키며 나를 구했다.

  

도망갈까봐

  

그런 그에게 어떻게 모질게 대할 수 있을까. 태형을 볼 수 없는 이 세상에서 어디로든 도망가고 싶어서 그랬었다고 변명하고 싶었지만 그러기엔 정국의 표정이 너무 시큰해서. 4년 전 그 날처럼 툭치면 와르르 쏟아질 것만 같은 얼굴을 하고선 나를 빤히 바라봐서. 그 말들을 다시 안으로 꾹꾹 눌러담았다.

  

그때 그 표정으로 형이 김태형만 부르잖아

“......”

그때랑 똑같이 엉엉 울면서 김태형만 부르는데 내가 어떻게 집에 가서 편하게 자

  

정국은 내가 마음에 들지 않을 때면 형이라 불러왔다. 그의 깨끗한 버릇이었다. 자신의 마음을 훤히 비추는 못난 버릇이었다.

  

“.....”

또 또 그 미안한 표정

“.....”

그런 표정 보려고 말한 거 아니야

“.....”

일어나. 영화 보러 가자

  

그와 마찬가지로 나에게도 아주 못난 버릇이 있나보다. 표정에 많은 것이 드러나는. 그런 못된 버릇

  

 

 

 

 

 

 

 

 

 

“........”

  

하품이 절로 나왔다.

영화 시간대가 맞지 않아 보고 싶었던 영화는 보지 못하고 어쩔 수 없이 선택하게 된 영화는 말 그대로 정말 최악이었다. 진부한 로맨스 영화가 늘 그렇듯, 남자와 여자는 어쩔 수 없이 헤어진다. 눈물콧물 질질짜며 관객의 눈물샘을 자극하려는 듯 보였지만 나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이미 내가 겪은 일이기에 그저 우스워 보였다. 진짜 저 상황이 된다면, 정말로 서로 사랑했다면 서로를 찾아 달려야 했다. 이 영화처럼 서로 울기만 하고 무기력하게 있을 게 아니라 서로에게로 달려가야 했다. 정말로 사랑했다면, 서로를 아꼈다면

  

“.....

  

문득 헛웃음이 나왔다. 그런 나를 보고 정국은 조용히 왜냐고 물었지만 대답할 수 없었다. 영화에서조차도 태형을 생각하는 내가 우스웠고 무엇보다 내 주제에 뭐라도 되는 냥 사랑에 대해서 논하는 모습이 우스웠다.

내가 저들과 다를 게 뭔가

태형을 잃어버린 채 빌빌거리고 있는 내가 그들을 욕할 자격이 있을까

  

“..그냥

  

그냥

한심해서

이러고 있는 우리가 한심해서

  

우리랑 똑같아서

  

우리가 누굴까

지금 내 옆에 있는 정국과 나일까

내 곁을 떠난 태형과 나일까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것을 감흥없이 바라보고 있으면 정국은 내 팔을 당겨왔다.

  

아까부터 왜그래

  

하루에도 몇 번씩 오락가락 하는 게 어느새 내 성격이 되어버렸다. 4년 전의 나는 이렇지 않았는데. 마냥 밝기만 했었는데

  

아무것도 아니야

  

불안하다

영화는 해피엔딩이었지만 나의 사랑은 그렇지 못할 것 같아 미칠 듯 불안해졌다. 태형이를 찾아야 하는데. 진심으로 사랑했다면, 정말로 사랑했다면

  

지민아

“........”

박지민

  

지민아-

이름 끝을 길게 늘어뜨리며 환하게 웃던 태형이 생각나 그만 울컥. 터뜨리고 말았다. 어젯밤 미처 터뜨리지 못한 눈물샘이, 그를 향한 그리움이, 왈칵하고 터져버렸다. 영화가 끝난 깜깜한 영화관 안에는 정국과 나 둘 뿐이었다. 태형은 없었다. 깜깜한 세상 속 정국과 나만 두고 태형은 사라졌다. 이게 현실이다. 지민아 이게 현실이야. 하고 저 멀리서 누군가 외치는 듯 했다.

  

박지민

“......”

내가 있잖아

  

한 번 터진 눈물샘은, 그리움은 그칠 줄 몰랐다. 어깨까지 부들부들 떨며 온 몸으로 불안을 토해내고 있으면 눈 앞에 그가 어른어른 거렸다. 나를 괴롭혔다. 하늘색 교복과 함께 활짝 웃으며 나에게 말했다. 이게 현실이야. 4년이나 지났으면 알 법도 하잖아? 이게 현실이라고.

  

“.....

 

하지마. 그런 말 하지마. 나 기다릴 수 있어. 너의 뒤를 쫓는 것이 그렇게 싫다면 나 그냥 이 자리에서 기다릴 수 있어. 그러니까 그러니까 제발

 

박지민 정신차려 제발

  

 

그를 잊을 수 있을까.

진심으로 사랑했다면

정말로 사랑했다면

  

 

 

 

 

 

  

/

안녕하세요

처음뵙네요

모쪼록 기분 좋게 읽을 수 있는 글이 되었으면 좋겠네요 :)

앞으로 긴 시간을 함께하게 될 것 같은데 우리 재밌게 지내봐요

그럼 곧 다시 좋은 글로 뵙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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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회원18.77
태형이 어디갔어요ㅠㅠㅠㅠㅠㅠㅠㅠ태형이 찾아와요ㅠㅠㅠㅠㅠㅠ왜 우리 지민이 힘들게해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8년 전
비회원도 댓글을 달 수 있어요 (You can write a com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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