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련님
한 걸음
Matryoshka - Sacred play secret pl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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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오신 경호원?"
"...아, 네"
"그 전에 일하던 경호원이 갑자기 그만두게 되어서 걱정 됐는데 이렇게 바로 구해서 다행이네요"
"...."
"여기서는 단순하게 사람 지키는 경호만 하는 게 아니에요"
"...."
"아시다시피 저희 도련님이 눈이 안보여서 24시간 옆에 붙어 있으면서 생활해야 해요"
"...24시간이요?"
"네, 잠자리도 도련님 옆방에서 자야 하는데 거의 자는 시간이 없다고 보시면 될 거에요"
"...."
"그리고 도련님이 낯을 많이 가리세요. 살갑게 대해주시고요. 가끔씩 밤에 악몽을 꾸니깐 곁에 있어줘야 해요. 도련님 장애에 대한 발언은 일체 금지입니다"
"네"
"마지막으로, 이 집안에 있는 모든 보고 들은 것들은 절대 밖으로 새어나가서는 안돼요"
"....명심하겠습니다"
"그럼, 잘 부탁드립니다"
"저야말로"
호화스러운 저택 안, 마치 외국 영화에 나오는 귀족들의 집 같았다. 대한민국에 이런 곳이 있다니. 나는 아름다운 저택에 감탄할 수 밖에 없었다. 아니 근데 24시간 옆에 붙어 있어야 한다니. 그게 말이 돼? 참 까다로운 도련님이야. 나는 저택 여기저기를 구경하며 왠지 모르게 느껴지는 빈부격차 때문에 괜시리 짜증이 났다. 천장에 달린 크리스탈 조명과 차가운 대리석 바닥, 그리고 중간 중간에 있는 다양한 조각상들. 집은 또 얼마나 큰 지 아무리 돌아다녀도 끝이 보이지 않았다. 결국 저택 안 구경을 포기하고 밖에 있는 정원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아니 무슨 정원이 우리집의 몇 배야"
"아휴 아주 운동장을 만들었네"
정원은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크고 아름다웠다. 내가 마치 숲에 있는 것 같은 착각을 하게 만들 정도로 다채로운 꽃들과 다양한 식물들이 자리잡고 있었다. 꽤 값이 나가보이는 희귀한 식물들도 여기저기 있었다. 어차피 돈도 안되는 거 이런 것들 모아서 뭐 하는지. 나는 괜히 궁시렁 거리며 정원을 천천히 걸었다. 고급진 정원을 걷다보니 잔잔하게 풍기는 수풀냄새에 기분이 편안해졌다. 잔디를 밟는 그 푹신한 느낌도 좋았다. 신비로운 정원을 저벅저벅 정처 없이 돌아다니다가 눈 앞에 나무에 매달린 그네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무 그네를 보자마자 고민 없이 그네에 앉아 몸을 천천히 앞뒤로 흔들었다. 한참을 그네에서 삐걱거리다가 잔디에 풀썩 앉아 나무에 기댔다. 나른한 분위기 때문에 나도 모르게 눈커풀이 점점 무거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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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잔하게 들려오는 피아노 선율에 눈을 떴다. 어디서 들리는 거지. 꽤 우아한 피아노 곡 소리에 감탄할 새도 없이 나는 반사적으로 피아노 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발걸음을 옮기면 옮길 수록 피아노 소리가 커지는 것이 이 방향이 맞는 것 같았다. 피아노 소리를 찾아 한참을 걸었을까. 거의 다 도착한 것인지 바로 앞에서 피아노 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소리의 근원지를 찾아 여기저기를 살피던 중 나비 한 마리가 내 앞을 스쳐 지나갔다. 하얀 나비의 날갯짓이 마치 따라오라고 하는 것 같아서 홀린 듯이 나비를 쫓아 점점 깊숙한 곳으로 들어갔다. 나비는 커텐처럼 축 쳐져있는 넝쿨 앞에서 제 모습을 감췄고 나는 커텐처럼 찰랑거리는 넝쿨을 옆으로 넘겨 안으로 들어갔다.
"어...? 찾았...다...?"
새하안 그랜드피아노 앞에 앉아 아름다운 선율을 만들어 내고 있는 남자가 눈 앞에 보였다. 푸른 잔디 위에 하얀 그랜드 피아노, 그리고 그 선율에 맞춰 날갯짓을 하는 하얀 나비들. 모든 것이 슬로우 모션처럼 천천히 느껴졌다. 그리고 그 속에는 미소를 지으며 건반을 부드럽게 두드리는 남자가 있었다. 찰랑이는 그의 머리카락이, 부드럽게 움직이는 그의 작은 손가락이, 그의 입가에 희미하게 있는 미소가, 잔잔하게 풍기는 풀내음이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냈다. 한참을 그 앞에 서서 넋을 놓고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데 갑자기 피아노 건반을 움직이던 그의 손가락이 멈추었다.
"언제까지 거기서 몰래 훔쳐 보려고?"
"...ㅇ,예?"
"새로 왔다더니 당신인가 보네"
"아, 잘 부탁드립니다"
"내 지팡이 좀 가져다 줘. 하얀 지팡이 보이지? 거기 나무 옆에 올려 놓은"
언제부터 눈치채고 있었던 것일까. 시각 장애인들은 청력이 좋다더니, 그 말이 사실이었나 보다. 나는 나무에 있는 고급진 흰 지팡이를 집어들어 그에게 건넸다. 지팡이를 잡아든 박지민은 피아노를 더듬거리며 일어났다. 자리에서 일어난 박지민은 그대로 가만히 서서 뭔가를 기다리듯이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멈춰있었다. 나는 알 수 없는 행동을 하는 박지민을 보며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경호원"
"네"
"아무런 말도 못듣고 온거야?"
"네?"
"어디 이동할 때마다 옆에 붙어 있어야 한다는 말 제이가 말 안했나?"
"아..! 죄송합니다"
나는 그제서야 박지민의 행동을 이해하고 바로 그의 옆으로 달려갔다. 내 인기척을 느꼈는지 박지민은 손을 내밀어 허공을 더듬거리다 이내 내 팔을 붙잡고 지팡이를 움직이며 앞으로 걷기 시작했다. 얼굴은 귀엽게 생겼는데 성격은 꽤 까칠한 듯 싶었다. 박지민이 옆으로 붙자 그에게서 좋은 향이 훅 끼쳤다. 포근하고 편안한 기분 좋은 향이었다. 지팡이를 움직이는 박지민을 따라서 한참을 걷다 보니 벌써 웅장한 건물 안에 도착했다. 도착한 건물 안에 있는 사람들은 박지민을 보자마자 일제히 그를 향해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했다. 박지민은 익숙하게 고개를 까닥이며 인사를 받았고 사람들은 인사를 받고 나서야 제 허리를 들었다. 앞도 안보이는데 완전 엄격하네... 나는 뻘줌하게 그 사이를 지나쳐 박지민과 2층으로 향했다.
"계단에서는 더 조심해줘"
"네?"
"내가 계단에서 자주 넘어져서 네가 날 잘 봐줘야 해"
"아.. 알겠습니다"
나는 계단을 오르는 박지민을 더 유심히 살피며 함께 계단을 올랐다. 박지민은 조심스럽게 발을 하나하나 움직였고 내 팔을 잡는 그의 손에는 더욱 힘이 들어갔다. 꽤 혼자서도 척척 잘 오르는 박지민을 보며 안심한 나머지 그를 살피지도 않은 채 앞만 보며 계단을 올랐고 순간 내 팔을 잡고 있던 박지민의 손이 미끄러지며 박지민의 몸이 뒤로 기울었다. 박지민은 발을 헏디디며 몸이 뒤로 심하게 기울었고 나는 그런 박지민을 향해 몸을 날려 그를 받쳤다.
"어..!! 괜찮으세요?"
"아... 괜찮아. 너는?"
"죄송합니다... 제가 한 눈을 팔아서..."
"아니야, 안 다쳤으면 됐어"
"...."
"아 그리고"
"네?"
"구해줘서 고맙다고"
"....."
허공을 보며 짓는 너의 미소에 세상이 멈추는 느낌을 받았다.
이상하게 가슴이 콩콩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이 기분은 뭘까
너의 미소를 처음 봤던 그 순간을 잊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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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몽쓰입니다 :)
1화라 두근두근 거리네요
제가 보고싶어서 올리는 국민 글잡입니다.
암호닉
이졔, 뜌, 리셉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