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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련님





두 걸음

 

 

 

 

 

 

 

 

 

 

 

 

*

*

*

*

*

*

*

*
*
*

 

 

 

 

 

 

 

 

 

 

 

 

"여보세요"

 

[나야, 일은 순조롭게 잘 진행돼가?]

 

"....아마도?"

 

[명심해]

 

"...."

 

[그 장님 도련님을 꼭 네 편으로 만들어]

 

"...."

 

[뭐 워낙에 네가 일을 잘 처리하니깐 걱정은 안되는데]

 

"...."

 

[최대한 빨리 끝내자]

 

"응, 끊어"

 

 

 

 

 

 

 

 

 

 

 

 

 

통화를 마친 뒤 휴대폰을 주머니에 대충 쑤셔넣고 박지민의 방으로 향했다. 박지민의 방문을 세 번 노크하고 문을 열자 방 안쪽에 앉아 있는 박지민이 보였다. 두 명의 시녀가 그의 양 옆에 붙어 한 명은 머리를 박지민의 머리를 말리고 한 명은 박지민의 옷매무새를 고치고 있었다. 시녀의 손길을 받는 박지민의 모습이 너무 익숙해 보였다. 이게 바로 상류층의 삶이라는 건가. 뚜벅뚜벅 박지민을 향해 걸어가자 그가 내 발걸음을 눈치 챘는지 내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화장실에 꽤 오래있다 오네"

 

"죄송합니다. 속이 안좋아서"

 

"오늘 중요한 손님이 오셔"

 

"네"

 

"제이가 말했겠지만 여기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밖으로 누설해선 안돼"

 

"네 알겠습니다"

 

"....이리와"

 

 

 

 

 

 

 

 

 

 

 

 

 

옷을 차려입고 머리를 대충 박지민은 굉장히 기품있어 보였다. 앞만 보였으면 여럿 여자 홀리며 다닐 수 있을 정도의 외모였다. 내가 그의 옆에 서자 박지민은 더듬거리며 내 팔을 잡았고 나는 박지민의 오른손에 지팡이를 쥐어줬다. 박지민은 제자리에서 일어나 지팡이를 움직이며 발걸음을 옮겼고 나는 박지민의 발걸음에 맞춰 그를 따라갔다. 오늘도 역시 박지민에겐 기분 좋은 향이 났다. 박지민을 꼬여내는 것이 생각보다 쉬울 것 같진 않았다. 회장이 꽁꽁 숨겨논 손자에다가 장님이라길래 연약한 도련님일 줄 알았는데 예상과 달리 차분하고 무덤덤했다. 상처 몇 번 보듬어주면 금방 끝날 줄 알았는데 박지민은 나에게 거리를 두며 마음을 쉽게 열 것 같지 않았다. 정말 속을 알 수 없는 사람이었다.

 

 

 

 

 

 

 

 

 

 

 

 

 

"가족은?"

 

"여동생이 한 명 있습니다"

 

"그렇구나"

 

"이세상엔 없지만"

 

"...아, ㅁ,미안"

 

"괜찮습니다"

 

"...."

 

 

 

 

 

 

 

 

 

 

 

 

나의 대답을 들은 박지민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이럴 의도로 말한 건 아니었는데. 가라앉은 분위기 때문에 박지민과 나 사이에는 정적만이 흘렀다. 고개를 푹 숙이며 걷는 박지민이 오늘따라 더 조그맣게 보였다. 박지민이 앞이 안보여서 좋은 점은 내가 마음껏 그를 쳐다볼 수 있다는 점이다. 박지민의 얼굴은 보면 볼 수록 더 묘했다. 웃는데 기뻐보이지 않았고 찡그려도 전혀 화나보이지 않았다. 속을 알 수 없는, 그런 사람이었다. 나는 어떻게든 이 어색한 정적을 깨보려 먼저 입을 열었다.

 

 

 

 

 

 

 

 

 

 

 

 

"도련님"

 

"응"

 

"도련님은 계속 이 넓은 저택에 혼자 사신 거에요?"

 

"그렇지"

 

"부모님이나 형제는..."

 

"...."

 

"....외로우셨겠네요"

 

"....네 이름이 뭐지?"

 

"전정국입니다"

 

 

 

 

 

 

 

 

 

 

 

 

지팡이를 이리저리 휘두르며 잘 걷던 박지민은 갑자기 발걸음을 멈춘 채 우뚝 섰다. 나는 박지민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당황스럽게 그를 쳐다봤고 그는 내 팔을 잡고 있던 손의 힘을 풀었다. 박지민은 내 팔에서 손을 뗀 채 혼자서 저벅저벅 지팡이를 휘두르며 앞으로 나아갔다. 나는 애써 당황스럽지 않은 척 하며 그의 뒤를 졸졸 쫒았다. 그런데 다시 한 번 박지민의 발걸음이 멈췄다.

 

 

 

 

 

 

 

 

 

 

 

 

"전정국"

 

"네"

 

"앞으로 사적인 질문은 안했으면 좋겠어"

 

"...."

 

"굉장히 불쾌해"

 

"죄송합니다"

 

 

 

 

 

 

 

 

 

 

 

 

꼬였다. 그것도 상당히. 박지민을 내 편으로 만들기는 개뿔. 이러다가 잘리는 게 아닐까 싶었다. 주제넘은 내 말 한마디에 박지민의 심기가 불편해진 것 같았다. 박지민은 마음을 열 듯 안열 듯 알 수 없었다. 다른 시녀들이나 집사들에겐 따뜻한 미소를 지으면서 나에겐 거의 짓지 않는 것을 보면 아직은 나에게 마음을 열지 않은 것 같다. 아니면 이게 그 '제이'라는 사람이 말한 박지민의 낯가림인가. 박지민의 뒤를 졸졸 쫒아다니다가 손님 대접용 같은 고급진 식탁에 도착했다.

 

 

 

 

 

 

 

 

 

 

 

 

"몇시야?"

 

"지금 오후 7시 다 되어갑니다"

 

"거의 도착했겠네"

 

 

 

 

 

 

 

 

 

 

 

 

박지민은 가운데 의자에 앉아 물을 홀짝였다. 손을 꼼지락 거리는 것이 어딘가 긴장을 한 것 같아 보였다. 시간이 흐르고 요란한 소리와 함께 고급스러운 옷을 입은 중년의 여자가 들어왔다. 박지민은 자리에서 일어나 허공에 대고 인사를 했고 여자는 그런 박지민을 비웃듯이 자리에 앉았다. 나는 박지민이 의자에 앉는 것을 도와주고 그의 뒤로 가서 박지민과 여자를 바라보았다. 여자가 자리에 앉자마자 시녀들이 온갖 기름진 음식을 나르기 시작했다. 아까 긴장한 모습과는 달리 박지민은 여유로운 웃음을 지으며 여자에게 말했다.

 

 

 

 

 

 

 

 

 

 

 

 

"오시느라 수고 많았어요. 차린 건 없지만 많이 드세요"

 

"됐어, 우리가 얼굴 보며 밥먹을 사이도 아니고"

 

"...."

 

"아 맞다 너는 내 얼굴 못보는구나 내가 말 실수를 했네"

 

"예나 지금이나 달라진 게 없으시네요"

 

"너도 건방진 것은 똑같구나"

 

"....본론부터 말씀하세요. 의미 없는 기싸움은 그만 두고"

 

"많이 컸네 박지민. 예전에는 내 얼굴만 봐도 비 맞은 강아지처럼 벌벌 떨더니"

 

"덕분에"

 

 

 

 

 

 

 

 

 

 

 

 

여자는 박지민의 여유로운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은 듯 표정이 보기 좋게 구겨졌다. 나는 중년의 여자의 기에 눌리지 않고 또박또박 제 할 말을 다 해내는 박지민의 모습에 꽤 놀랬다. 순딩순딩하게 생겨서 저런 기 쎈 여자한테는 바로 쫄 줄 알았는데 내 생각보다 더 강한 사람이었던 것 같다. 여자는 박지민을 노려보며 입을 열었다. 그녀의 짙은 향수 냄새가 점점 내 코를 찔렀다.

 

 

 

 

 

 

 

 

 

 

 

 

"너도 대충 눈치 챘겠지?"

 

"...."

 

"노인네 재산"

 

"...."

 

"네가 다 받는다며?"

 

"이모"

 

"오랜만에 들어보네 그 말"

 

"이모는 다 가졌잖아"

 

"...."

 

"우리 엄마 재산, 우리 엄마 자리, 그리고 내 눈까지"

 

"....조용히 안해?"

 

"다 뺏어갔잖아"

 

"닥쳐"

 

"이젠 할아버지가 나한테 주신 이 집이랑 재산까지 가져가겠다고?"

 

"...."

 

"차라리 내 목숨을 가져가요"

 

"네 목숨을 가져간다면 얼마나 좋을까"

 

"...."

 

"잘들어 꼬맹아.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이 집이랑 노인네 재산 다 가져갈 거야"

 

"...."

 

"어디 한 번 네 힘으로 잘 지켜봐"

 

 

 

 

 

 

 

 

 

 

 

 

여자는 박지민의 앞으로 또각또각 걸어가 물잔에 있는 물을 박지민의 머리 위로 쏟아 버렸다. 갑작스러운 차가움에 놀랄 만도 한데 박지민은 그저 담담하게 물이 흐르는 자신의 얼굴을 닦아낼 뿐이었다. 여자는 그런 박지민을 비웃으며 그대로 그자리를 유유히 벗어났다. 그녀가 자리를 뜨자마자 시녀들은 박지민에게 달려들어 그의 축축한 옷을 닦아내기 시작했다. 나는 소름끼칠 정도로 차분한 박지민을 그저 바라만 볼 뿐이었다.

 

 

 

 

 

 

 

 

 

 

 

 

"전정국"

 

"네"

 

"나 좀 데려다 줘"

 

"알겠습니다"

 

 

 

 

 

 

 

 

 

 

 

 

나는 한 손에는 하얀 지팡이를 든 채 박지민을 부축했다. 박지민은 지팡이 없이 온전히 나에게 기대 한 걸음 한 걸음을 내딛었다. 내 팔을 꼭 잡는 박지민의 작은 두 손에서 미세한 떨림이 느껴지는 건 착각인가. 그의 떨림의 원인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다. 차가운 물로 인해 떨어진 체온 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것 때문인지. 나는 의미 없는 추측을 그만 두고 축축한 박지민을 그의 방까지 데려다줬다. 두 손으로 내 팔을 꼭 잡은 채 나에게 기대는 박지민의 모습이 나쁘지 않았다. 방에 도착하마자 박지민은 주섬주섬 자신의 옷을 벗기 시작했다. 더듬거리며 벗는 모습이 어딘가 불편해 보였다.

 

 

 

 

 

 

 

 

 

 

 

 

"사람 불러 올까요?" 

 

"그래주면 고맙고"

 

"금방 불러 오겠습니다"

 

"이제 옷 갈아입고 잘 거니깐 너도 이제 네 방으로 가. 오늘은 내 방에서 보초 설 필요 없어"

 

 

 

 

 

 

 

 

 

 

 

 

살짝 벗겨진 옷이 흘러내려 박지민의 어깨가 드러났다. 박지민의 앙상한 쇄골이 그가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말랐음을 말해주는 것 같았다. 그의 하얀 속살에 대비되는 자잘한 흉터들은 내 호기심을 자아냈지만 쓸데 없는 호기심을 억누른 채 박지민의 방에 나가 시녀 몇 명을 불렀다. 근데 매일 시녀들이 옷을 갈아입혀주는 것 같은데 부끄럽지도 않나? 심지어 목욕을 할 때도 시녀들이 들어가는 것 같던데. 아무튼 의문투성이인 도련님이다.

 

 

 

 

 

 

 

 

 

 

 

 

 

"하 생각보다 일이 어렵게 됐네"

 

"순진무구한 도련님이 아니었어"

 

 

 

 

 

 

 

 

 

 

 

 

내가 쓰기에는 과분한 침대에 풀썩 누워 천장을 바라봤다. 평소와는 다르게 까마득하게 먼 천장이 익숙하지 않았다. 앞길이 막막해서 한숨만 푹 내쉬고 있을 때 바닥에 뒹굴고 다니는 박지민의 하얀 지팡이가 눈에 띄었다. 아마 아까 박지민을 데려다 준 후에 그대로 내 방까지 가지고 온 것 같았다. 가져다주기 귀찮은데. 안가져두면 잘릴 수도 있겠지? 시각 장애인한테는 분신 같은 존재이려나. 나는 무거운 몸을 이끌고 하얀 지팡이를 주워 바로 옆방인 박지민의 방으로 향했다. 내가 그의 방문을 노크하려는 순간 안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손짓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흐으... 흡"

 

"흡...끅..흐엉"

 

"날 좀 내버려둬...."

 

 

 

 

 

 

 

 

 

 

 

 

누군가의 흐느낌. 아마도 이 소리는 박지민의 것 같았다. 서럽게 우는 소리가 들리자 나는 그대로 문에 기대어 앉았다. 차마 이대로 내 방에 들어갈 수도, 박지민의 방에 노크를 하고 들어갈 수도 없었다. 아까 그 소름끼치게 침착하던 도련님이 맞긴 한가. 겉으론 강한 척하지만 속은 이토록 여린 사람인가보다. 무엇이 그를 이렇게 힘들게 만든 것일까. 왜 그는 강한 척을 해야만 했을까. 나는 박지민의 방문에 기대 그의 서러운 흐느낌이 끝날 때까지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단지 그의 흐느낌을 담담하게 듣고 있을 뿐이었다.

 

 

 

 

도대체 무엇이 그렇게 고통스러운 걸까.

 

우습지만 네가 갖고 있는 상처가 더욱 컸으면 좋겠다.

 

 

 

 

네 상처가 너무 커서, 그 상처를 달래줄 유일한 사람이 나여서, 네가 나 없이 못살았으면 좋겠다.

 

그래야 네 상처를 이용하여 내가 원하는 것을 얻고

 

 

 

 

 

 

 

 

그 때가 되서야 너를 버릴 수 있으니깐.

 

 

 

 

 

 

 

 

 

 

 

 

 

 

 

 

 

 

 

 

암호닉

이졔, 뜌, 리셉션, 슙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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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뜌입니다ㅠㅠ 정국이 나쁘다ㅠㅠ 엉엉ㅠㅠㅠㅠㅠㅠ 그리고 지미나 아프지마라라ㅠㅠㅠ 작가님 이번편도 잘 읽고가요!!! 글 감사합니다❤❤❤❤
7년 전
독자2
아... 분위기봐 진짜ㅠㅠㅠㅠㅠㅠㅠㅠ 전정국이 나쁘다는 생각이 들지만 , 이렇게라도 지민이의 상처를 보듬어줬으면 합니다ㅠㅠㅠㅠㅠㅠ 다음편도 기대할게요!
7년 전
비회원18.7
슙슙이에요....으어.......어.....센척하는 지민이 마음이 아파요.....어엉엉엉ㅇ
7년 전
독자3
[빰빠]로 암호닉 신청합니다! 재밌어요!! 짐니 과거 너무 궁금하구욤..
7년 전
독자4
헐 분위기가 너무대박이에요 ㅠㅠ 지민아 ㅜㅠ힘들어하지마ㅠㅠ 다음ㄱ꺼 얼른 보고싶네요ㅠㅠㅠ
7년 전
독자5
와ㅠㅜㅜㅜ 정주행하고 왔는데 진짜 재밋고 분위기가짱이에요ㅜㅜㅜ 다음편이 너무 기대됩니다ㅜㅜ 암호닉 [태형이랑]으로 신청합니다!
7년 전
독자6
와.. 거의1년전 글인데 이제라도 볼 수 있어서 다행이에요 혹시 돌아오실 생각은 없으시죠??ㅜㅜㅜㅠㅠㅠㅠ 다음장면이 너무너무 보고싶어요 쓸쓸하고 고독한 감성에 차분하고 분위기 있는 느낌이 정말 마음에 들어요!!! 최고에요 홀리는 듯한 느낌!!
6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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