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에 취하던 성용은 집에 갈 시간이 다 되고 나서야 눈을 떴다. 수업 새 틈틈히 청용이 찾아 왔다는 말을 친구들에게서 들었다. 청용은 남자애들치고 섬세했지만 여자아이들 만큼은 아니었다. 그렇다 하더래도 모든 면에서 쿨하고 넘어가기 일쑤인 성용과 청용은 주위 인물들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었다. 가끔 성용도 자신이 어떻게 청용과 친해졌는지 곰곰히 되짚어보곤 했다. 하지만 그 둘은 서로에게 없으면 안 될 존재일 것만은 확실하다 성용은 생각했다. 그러고 보니 우리가 어떻게 친해졌더라?
비어있는 자철의 자리를 힐끔 보며 소식을 알려준 친구에게 고맙단 안부를 전했다. 일층에서 기다리겠단 정갈한 문자의 내용 아래 쓰여진 청용의 이름 석 자를 보고 피식 웃었다. 계단을 내려가며 흘끗 본 창문의 밖은 어두웠지만 그 속에서 뚜렷하게 친구 하나 없이 나홀로 걸어가는 자철의 모습을 본 듯한 성용이었다.
길들여 진다는 것은 무서운 일이라 자철은 생각했다. 옆 짝 성용의 조잘대는 목소리도 수업시간 종이 치면 교실로 들어가는 것 마저도 제 의사와는 관계없이 습관이 되어 버려 제 일상 중 하나에 정착하고야 만다. 그런 자철에게 자신을 길들이려 야금야금 속을 긁어 먹는 성용은 협잡꾼이나 다름 없었다. 그리곤 늘상 그렇듯이 쉬는시간마다 성용을 보러 찾아오는 청용은 심심치 않게 묵묵부답인 자철에게 끊길 새 없이 말을 거는 성용을 볼 수가 있었다.
요새 부쩍 성용의 옆자리가 비는 날도 자철이 성용을 무시하는 언사를 내뱉는 일도 적어져 갔다. 어쩌면 성용 특유의 틱틱 거리는 말투에 길들여 지는 것일지도 몰랐다. 늘 자철의 자리를 독점해 성용과 대화하기 일쑤였던 청용에겐 자철은 새로 생긴 눈엣가시였다.
[기구/쌍용] 미도리빛 트라우마 2
"자철아, 그렇게 단추 꼭 채워 잠궈 입으면 안 덥냐?"
"신경 꺼라."
완연했던 봄도 이젠 여름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교내의 청량한 소나무 향도 따사로운 햇빛의 남고생들의 땀냄새에 져가고 있을 때에도 자철의 행새는 흐트러짐 하나 없이 정갈했다. 목을 죌 정도로 단추 하나 빼지 않고 꾹 잠근 와이셔츠는 자철이 청용에게 눈엣가시가 될 수 있듯이 성용에게 눈엣가시였다. 자철은 자신에 대해 일종의 강박증이 있었다. 무엇 하나라도 어긋나거나 더럽다 생각하면 질겁하고 그를 원래대로 돌리려 들었다.
"나 좀 봐봐."
답 없이 다시 잠을 청하려던 자철을 제 쪽으로 돌리곤 성용은 제일 윗 쪽의 단추 하나를 풀었다.
"이러니깐 시원해 보이고 훨 낫네."
그러곤 자철이 인상을 찌푸리곤 무엇을 말하려는 찰나 검지 손가락을 제 입에 가져다 대곤 선생님을 향해 눈짓했다. 차마 큰 소리를 낼 수 없던 자철은 작게 욕을 읊조리곤 책상에 엎드렸다. 물론 성용이 풀은 단추 윗 부분은 채 잠구지 않고. 그 모습을 본 성용은 더 이상의 말 없이 그저 웃었다.
아…, 자철은 성용에게 습관이 되어 가는 것 같았다.
"우리 반에 전학생 있잖아."
"아, 그 한라봉 닮은 애?"
청용의 순수한 대답에 성용은 그저 웃었다. 걔 재밌더라, 운동도 좀 한 것 같아. 그 말에 청용은 답 없이 잠자코 성용을 주시했다. 답 없는 청용을 성용은 재촉하지 않았다. 솔직히 파고 들자면 안중에 두지 않았다. 그저 실실 웃기만 했다. 기분 나빠. 청용은 생각했다. 하지만 생각이 말로 나오는 일은 없었다. 그저 청용이 매점에서 산 우유를 마시는 소리만 났다.
"그래서 말인데 우리 축구할 때 걔도 꼬드겨 끼는 건…"
"싫어."
청용은 늘 성용의 말에 긍정적이었다. 딱 잘라 거절하는 청용의 대답에 성용도 당황하긴 마찬가지였다. 너 뭐 나한테 화난 거 있냐?
요즘들어 자철이 제 말에 답을 하지 않는 일이 적어져 간다고 안심을 했더니 청용이 그 못된 버릇을 닮으려는 듯 했다. 청용은 메말라 갈라진 입술을 다셨다.
"지금까지 우리가 해온 팀워크가 걔 하나로 흐트러질 수도 있잖아."
청용의 날카로운 말투에 성용은 입을 다물었다. 그래, 알았어.
청용은 제가 내뱉은 말이 성용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후회는 했으나 정정하고 싶진 않았다. 그렇지 않으면 성용은 생판 모르는 전학생을 저희 무리와 묻지도 상의도 없이 자철을 넣을 기세였다. 지금 성용이 자철에게 대하는 태도를 봐도 그것은 뻔했다.
둘은 서로 아무 말이 없었다. 그렇게 수업 시간 5분전을 알리는 종이 쳤다. 청용은 눈을 흘깃 돌려 여즉 답 없는 성용을 바라 보았다. 그러자 그것을 기다렸다는 듯 성용은 청용의 머리를 흐틀어 헤집어 놓았다. 물론 손길은 늘 그랬듯이 부드러웠다. 청용의 마음 역시도 부드러워지는 느낌이었다. 성용이 자신에게 화가 나지 않았다는 것을 알아서 였을까.
그래도 마냥 좋다는 티를 낼 순 없어서 청용은 툴툴댔다. 하지만 그런 청용에도 불구하고 성용은 피식 웃곤 청용에게 잘 가라 손짓 했다. 그제서야 청용은 마음 편히 제 교실로 돌아갈 수 있었다.
어느새 내일이면 주말의 시작이었다. 잠과 잠 그리고 잠으로 이뤄진 수업 시간은 비교적 빨리 지나갔다. 점심 시간 밥 먹는 것도 거른 채 벌떡 일어나 체육복 바지를 손에 쥐곤 반 문에서 자신을 기다리는 청용과 바지를 갈아입으려던 찰나 묵묵히 밥을 먹고 있는 자철을 응시했다. 그리고 성용의 시선을 따라간 청용도 자철을 응시했다. 자철에게 향해 움직이지 않는 성용의 복잡한 시선은 청용은 갸우뚱했다.
"성용아, 주영이 형이 빨리 나오랬어."
"어, 잠시만. 너 먼저 운동장 나가 있어봐."
…그래.
청용은 아랫 입술을 깨물곤 돌아갔다. 낌새가 심상찮았다. 고개를 돌려 계단으로 향하는 사이 자철을 향해 축구 같이 하면 어떻겠냐는 말을 거는 성용의 목소리가 들린 것만도 같았다. 내려가며 만나는 흥민도 가람의 인사도 대충 얼버무린채 청용은 운동장으로 나갔다. 벌써 몇 주일 째 답 없는 자철을 향해 여러 질문을 하는 성용의 모습은 굉장히 낯설었다. 그건 명백히 도가 지나친 관심이었다. 그리고 청용은 그 모든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각계 |
초반에는 기구 스멜 물씬에 질투하는 청용이로 나갈 예정입니다 미리 스포를 하자면 기구에서 쌍용으로 넘어가며 과거편이 끝날 것 같아요. 오늘은 긴 분량으로 오려 했건만 잠시 정지를 먹는 바람에^^; 인스티즈 글잡담에 글을 임시 저장 해 두었던 터라 내용을 튼튼히 길게 쓰지 못했네요 죄송해요T.T 암호닉 설정해주신 담님 기구쨔응님 궤변님 시든나메코님 냉면님 감사드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