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깊은 나락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을 때, 도경수 너는 닿을 수 없는 곳에서 날고 있었다. 너는 나의 기억을 지운 듯했고. 여전히 나는 너를 추억하고 있다. 네가 그토록 원하던 가수라는 꿈을 이뤄 수많은 별들 중 가장 큰 별이 되려 할 때, 난 가장 낮은 곳으로 내려가고 있었다.
「도경수 씨, 혹시 가장 추억하고 싶으신 분이 있으신가요?」
- 아니요, 없습니다.
티비 속, 단호하게 대답하는 널 보고선 피식하고 헛웃음이 새어 나왔다. 많이 변했구나, 확실히 예전과는 다르구나 경수야. 둥글둥글했던 얼굴은 어느새 많이 사라지고 인상이 조금 차가워졌다. 어떤 환경이 널 그런 얼굴로 만들었는지 모르겠지만, 혹 나만 할까.
「그럼, 질문을 좀 다르게해서. 도경수 씨가 추억이었으면 하는 분이 있으신가요?」
-…….
아까와 다르게 조금 머뭇거리는 너의 모습이 내 시선을 티비로 집중시키기 좋았다.
「없으시면 또 넘어가도록 하ㄱ….」
- 있어요.
굳게 닫힌 입에서 나온 그의 대답은 그곳에 있던 객석들을 술렁이게 하기에 충분했다. 티비 속에서 보여지는 도경수는, 사생활의 대해서 철저하고 또 단호했다. 팬이여도 사생활을 침해할 것 같으면 바로 벽을 쳤고. 또 그의 과거를 들먹이는 것도 그닥 좋아하지 않아보였다. 또 대놓고 사생활 침해는 자제해달라고 인터뷰까지 하던 그였다.
「누군지 묻고 싶은데, 물어도 될까요?」
-그건 안되고, 영상편지 뭐 그런 건 될까요. 혹시 보고 있을 지도 몰라서.
사회자는 그런 도경수에게 그럼 당연하죠. 라며 곧이어 도경수 얼굴이 클로즈업 됐다.
그의 입술은 아주 미세하게 떨렸고, 난 그 미세하게 떨리는 입술을 단박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퇴원 했다는 소식 들었어. 난 보다시피 이렇게 잘 지내, 내가 너에게 이렇게 영상편지를 쓰는 것 보면 나 아직도 널 기억하고 있나 봐.
잊을려고 호구 짓이란 호구 짓은 다 하고 다녔는데 네가 머릿 속에서 지워지지 않아. 이건 억지로해서 잊혀지는, 뭐 그런 종류의 기억이 아닌 거 같아.
난 이렇게 널 지우려고 발악을 하고 있는데 넌 지금 어때? 넌 날 추억하고 있을까, 하고 있었으면 좋겠다. 우리, 엄청 지독했잖아.
도경수의 떨리는 입술과 눈빛에 정신을 놓아버릴 것 같았다. 옆에서 내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찬열이는 티비 전원을 끄려했고, 난 그의 손을 제지했다.
- 사실은 네가 너무 보고 싶어, 어떻게하면 널 볼 수 있을까.
심장이 내려 앉는 것 같았다. 이내 박찬열의 손에 있던 리모콘의 전원 버튼은 눌러지고 그의 모습이 검정색 바탕으로 변해버렸다.
난 초점 잃은 눈으로 찬열이를 봤고, 찬열이는 나에게 안된다는 듯 고개를 흔들었다. 그래, 그만 보자.
“도경수, 너 사고 난 후로 한번도 안 찾아왔어, 알지.”
“응.”
“흔들리지 마, 네가 보고 싶어해도 넌 쟤 못 봐.”
“알아.”
“밥 먹자.”
자신을 밀어내지 말라며 울고 있는 네 모습이 눈 앞에 선했다. 어쩜 3년도 더 된 일이 이렇게 생생하게 꿈에 그려지는 걸까, 가쁜 숨을 몰아쉬며 꿈에서 깼다.
오늘 방송 된 나의 인터뷰가 화제거리가 되서 검색어 1위까지 올랐었다. 그게 그렇게 화제가 될 만한가, 하긴 그동안 난 그만큼 사생활에 예민한 사람이었으니까.
“…4시.”
다행히도 스케줄은 없었다. 젖은 이마를 대충 수건으로 닦아내고 침대 바로 옆에 있는 서랍장을 열었다. 맨 마지막 칸.
3년 전 사고가 나기 전 찍어뒀던 너와 나의 모습. 내 옆에서 활짝 웃고 있는 너의 얼굴을 보니 괜시리 머리가 지끈거려왔다. 지금, 넌, 어떤 모습일까.
잠에서 깬 새벽은 참으로도 고요했다. 오늘 방송으로 인해 파장이 엄청 났을 거다. 무음으로 돌려놓았던 핸드폰으로 시선을 뒀다.
수많은 메세지 중 가장 눈에 띄는 메세지 하나.
[무슨 생각으로 그런 말을 방송에서 했는지 모르겠는데, 괜히 들쑤시지 마. -박찬열]
피식하고 웃음이 새나왔다. 박찬열의 경고 아닌 경고에 쉴새없이 웃음이 새나왔다. 날 여기까지 올려 준 장보인, 박찬열. 그리고 ㅇㅇㅇ을 그리워하게 만든 장본인, 박찬열.
두 개의 성질을 가진 그는 나에게도, 그리고 또 ㅇㅇㅇ에게도 영향력이 있었다.그는 분명 화가 났을 것이다. 그래서 직접 이렇게 문자까지 했겠지.
짧은 신호음과 함께 그의 낮은 목소리가 수화기 넘어로 들려왔다.
-여보세요.
“경고 고마워.”
- 알아 들었으면 됐어.
“같이 봤어?”
-…너 방송에서 너무 무리하더라, 중간에 껐어.
“무리해도 괜찮으니까.”
-내가 너한테 뭐라고 할 거라고 생각하냐.
“…”
- 들쑤시지 마, 그리고 방송에서 그런 거 말도 하지 말고.
“….”
-너도 알잖아, ㅇㅇ이가 티비로 너 모니터하고 있는 거.
“…오늘도 같이 봤어 그거?”
-봤다면, 봤으면 어쩔 건데.
박찬열의 약간 격양된 목소리가 수화기에서 들려왔다. 혹시나해서 녹화한 영상편지가 바로 그녀에게 보여졌다니, 새삼 방송이란 게 놀라웠다.
또 그녀는 아직도 날 추억하고 있다는 점이 놀라웠다. 나만 앓는 줄 알았더니만 또 그런 건 아니였나보다.
이런저런 생각의 빠져있는데 애써 감정을 억누르는 듯한 박찬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허튼 생각하지 마. ㅇㅇㅇ이 널 그리워한다고해서, 또 네가 걔가 그립다고해서 내가 너희 쉽게 만나게 하진 않을 거니까.
“박찬열.”
-그렇게 부르지도 마. 너한테 연락하게 하는 일 없었으면 좋겠ㄷ...어, 깼어?
“…ㅇㅇㅇ?”
어렴풋이 들리는 그녀의 목소리에 몸이 반응했다. 찬열아, 거기서 뭐해? 라는 목소리가 똑똑히 귓가에 박혀들어왔다.
그녀의 목소리가 들리자마자 야속하게도 통화는 끊어졌다. 박찬열이 끊어버렸다. 3년 만에 듣는 그녀의 목소리는 똑같았다.
조금 거칠어진 것 빼면, 3년 전과 다를게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