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갖고싶어, 너의 자리를 민형아."
구름성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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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오랜만이다, 그치?"
도영이 말을 마치자마자 태일은 자리를 박차고 나가 그의 멱살을 잡아 올렸다. 늘 평정심을 유지하던 태일도 그를 보고선 화를 주체할 수 없었다. 도영은 이렇게 나올거란걸 알고 있었는지 그저 웃기만 했다. 유타는 도영을 잡고 있는 태일의 손을 잡으며 말렸고, 나머지는 고개를 돌렸다. 태일을 이해하니까. 저럴 수 밖에 없단걸.
"너가 여길 어디라고 와."
"뭐, 내가 못 올 데라도 왔나?"
"쪽팔리지도 않냐? 악마한테 영혼까지 팔아 사는거."
여주, 그녀가 딱 이 곳에 처음 왔을 때였다. 꿈이란건 오로지 여주의 상상을 기반으로 만들어진다. 그녀가 원하는 상상 속 가장 첫 인물은 왕자님, 가장 완벽한 왕자님이였다. 그렇게 먼저 그녀의 세계 속 나온 인물은, 민형. 총국의 황자. 그녀와 민형은 그렇게 그들의 왕국을 만들어갔다.
'나는 하늘색이 제일 좋아. 그러니까 민형이 나라는 하늘색이야, 알겠지?'
'그래, 하늘색 예쁘다.'
'근데 내가 잠에서 깨면,'
'깨면?'
'민형이 외로울거야. 그치.'
그렇게 말하며 그녀는 민형에게 좋아하는 색이 있냐고 물었다. 당연히 그는 그녀에 의해 만들어져서 선뜻 말할 수가 없었다. 그녀가 좋다면 좋은거고, 싫은게 있다면 덩달아 자신도 싫어하는 것이 되었으니까. 말을 하지 못하고 우물쭈물대니, 여주는 그럼 분홍색! 하며 분홍색 나라를 만들자고 했다.
'친구들이 분홍색을 좋아해. 내 친한 친구 마리라고 있는데, 완전 분홍공주야. 그러니까, 민형이 친한 친구도 분홍색을 좋아하면 좋겠다. 그치.'
'나는 여주가 좋으면 다 좋아.'
좋아! 분홍 나라 만들자.
단지 민형이에게 친구를 만들어주고 싶었다. 황자의 반대편에 분홍색 나라를 만들고, 그 나라의 왕자님을 만들어냈다. 점잖고, 그야말로 왕자님의 표본이 민형이라면, 그와 반대되는 왕자님. 장난끼있고 그렇지만 미워할 수 없는. 그런 왕자님.
"안녕?"
도영이. 그녀가 두번째로 좋아했던, 사랑했던 왕자님. 그녀가 이 곳을 떠나기 전까지도 외쳤던 그 왕자님, 도영이.
'도영아, 제발 그러지마.'
'미안, 미안.'
어쩔 수 없이, 그녀에게 첫키스를 남겼던, 그 왕자님.
과거의 일들을 떠올리며 태일은 손을 떨었다. 용서할 수 없는 일을 했다, 도영은. 그래선 안됐다.
유타는 둘을 억지로 떼어놓고 나서야 숨을 돌렸다. 여전히 나머지는 그 쪽을 바라보지 않았다. 그렇게 잠깐의 정적이 일다, 도영이 옷 매무새를 정리하며 태일에게 말했다.
"후회하지 않아, 전혀."
"......"
"되려 행복해, 지금. 내가 가장 강할 때, 우리 창조주님이 와주셔서."
"무슨 속셈이야."
"속셈이라니, 그 옛날과 다름없는걸."
"갖고싶어, 너의 자리를 민형아."
그의 말에 그를 외면했던 민형의 시선이 도영 쪽으로 맞춰졌다. 아주 오래 전, 그 날 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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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야, 이것 봐! 예쁘지."
"우와, 어디서 났어?"
"저어기. 이걸로 화관 만들어줄게, 내가."
도영은 여주를 좋아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말이다.
그녀를 처음 마주한 순간부터 민형의 친한 친구, 라는 역할보다 여주의 사랑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창조주의 말을 거스를 순 없는 법. 늘 그녀가 하라는 대로 민형의 가장 친한 친구처럼 행동했다. 그렇게하면, 여주도 좋아하니까 덩달아 자신까지 사랑해줄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언제나 거짓말을 할 수는 없는거라, 어느 순간 그의 행동이 그의 말을 안듣기 시작했다.
"그럼 민형이 것도 만들어줘!"
"... 민형이?"
"응! 내 친구 마리도 예쁜 꽃 있으면 나한테 꼭 갖다줘. 도영이도 민형이 친구니까!"
바로 그 때, 그 타이밍이 문제였다.
"..... 내가 왜?"
"....... 어?"
여주는 당황한 듯 보였다. 한번도 그렇게 물어본 적이 없었으니까. 늘 민형이 것도, 민형이도, 민형이랑, 민형이에게, 민형이는- 으로 시작하면 그래, 좋아, 그럴까?, 괜찮은데? 라고 답하던 형식이 아니였다. 어떻게 말하면 좋을까, 한참 고민하던 여주는 늘 말하던대로 대답했다.
"그야,"
"... 친구니까!"
늘, 늘.
돌아오는 대답은 똑같았다.
아마 도영이 마법사가 되기로 결심하게 된 날도 여주의 그 대답 이후였을 것이다. 그 날 이후로 그 둘을 대하는 태도가 평소와 완전히 상반되었기 때문에. 한 나라, 한 나라가 새로 생길 때마다 도영은 그들 앞에 나타나는 횟수를 줄였다. 사람이 많아지면, 그녀는 그 수많은 사람 중 황자와 있을 뿐, 그들에게 묻힌 자신은 보지 않을거라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늘 여주는 도영을 찾았다. 어딜 가던간에, 새로운 친구를 만들던간에, 늘 그를 찾았다. 이미 엇갈려버린 그 마음들은 그렇게 비극을 불러일으켰다.
"왕자님, 창조주님으로부터 편지가 도착했습니다."
"...... 두고 가세요."
자꾸 자신을 피하는 도영에게 그녀는 급한대로 편지를 보냈다. 다급하게, 도와달라며. 도영은 짤막한 그 편지지를 붙잡고 씁쓸하게 웃었다. 어딜가던, 언제던.
[민형이가 하자드에 갔어. 너가 필요해, 도영아. 부탁해, 제발. 부탁해. 도와줘.]
"또, 또."
민형이로 시작하는구나, 너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 어떻게 하면, 그녀를 내게 데려올 수 있을까. 수많은 생각들을 하며 고민하던 도영이 내린 결론은 단 한가지 뿐이였다. 내가 강해지는 것, 그렇게해서 민형이를 제치고 황국의 왕이 되는 것. 그런다면, 그녀는 날 사랑해주겠지.
"반드시, 그러겠지."
그 말을 남기고 도영은 방을 나갔다. 그녀가 그에게 마지막으로 남긴 편지를 구겨 바닥에 내팽겨친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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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영? 누구지, 쟨 또..."
'안녕?'
'.... 누구..'
'..... 아, 날 기억 못하겠구나. 도영이야, 도영이.'
그럼 이따 또 보자! 하며 그는 천진난만하게 집무실 안으로 들어갔다. 다시 또 복도에 덩그러니 남겨진 난 쟨 또 누구지, 하며 머리를 굴리고 있는 중이다. 복잡해, 너무 복잡해. 꼬맹이 시절 도대체 난 뭘 한거람. 아무리 생각해도 기억나지 않는 것들이 너무 많아 이제는 내가 살아있긴 한건지 의문이 들 정도다. 살아있는거겠지? 그러니까 여기, 이 꿈에 살아있는거겠지.
"꿈이라 ..."
마치 또 다른 지구별이 있다면 그 곳에 온 것만 같다. 바람이 불고, 신선한 공기가 있고, 심지어는 옆의 꽃에서 향기까지 맡아진다. 이렇게 살아있는 기분이 드는데, 다 꿈이라니. 너무 허무한걸.
"선물 같아."
얼마 남지 않은 시간, 여기서나마 남들이 경험하지 못한 것들을 느끼라고 신이 내려준 선물. 만약 그렇다면, 난 즐기고 싶다. 조금이라도 더 오래오래. 슬며시 눈을 감고선 복도 벽에 머리를 대었다. 여기서 또 꿈을 꾸면 어떻게 될까, 하는 흥미로운 상상을 하다 천천히 어둠 속에서 엄마의 얼굴이 그려졌다. 아, 엄마가 웃는다. 날 보고 웃는다. 우리 엄마 진짜 예쁜데, 웃는 모습. 그 모습 오래오래 갔으면 좋겠는데.
"... 엄마..."
엄마, 엄마-.
어둠 속에서 울려퍼지는 메아리에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요즘 엄마만 떠올려도 이렇게 눈물이 난다. 미안해서 그런가, 내가 너무 불효녀라서. 눈을 뜰 수가 없다. 엄마가 여전히 날 보며 웃고 있는데 차마 뜨기가 힘들다. 계속, 계속 그렇게 보고싶다.
".. 흐, 엄마, ... 엄마."
결국엔 감정이 격해져버렸다. 주체하기가 힘들다. 온몸이 떨리고, 숨쉬기가 벅차다. 어떡하지, 누가 날 좀 달래주라. 누가 나 좀 안아주라.
"..... 뚝, 그만."
"착하다, 착하다."
"... 괜찮아, 여기 있어."
다정한 목소리와 함께 누군가 날 안아왔다. 그의 어깨에 기대는 느낌과 함께 목 뒤에서 은은한 기분 좋은 향이 났다. 아, 맞아. 이 향기. 어렸을 때 엄마한테 안기면 났던 기분 좋은 향기.
"괜찮아, 괜찮아."
점점 감정은 수그러들고, 그의 말에 따라 숨고르기를 하며 진정이 되어갔다. 누굴까, 누구지. 그런 향을 가진 이 사람은.
"천천히 눈 떠봐,"
"..........."
".. 미안. 일부러 모른체 하려했는데 그게 안됐어."
그는, 그는.
"보고싶었어, 김여주."
민형이구나, 이민형.
너의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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