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h my kook!
03
(브금이 안어울리긴 하지만.... 어울리는 곡을 못찾음요...)
(이 글은 실화를 바탕으로 이루어지며 천천히 연재됩니다.)
동성연애에 대해 반감을 가진 분들이 보시기엔 다소 불편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깐, 지금 둘이 같이 있다는 거지?"
"네, 아까 선배 찾아오는 길에 봤거든요. 둘이 있는 거"
"내 여자친구 확실해? 네가 세리를 어떻게 알아"
"그건 나중에 말하고. 설마 제가 안면인식장애라도 있을까봐요?"
"어디서 봤는데"
나는 전정국이 말한 술집으로 향했다. 정말 눈에 뵈는 것도 없이 오로지 앞만 보고 걸었던 것 같다. 눈 앞이 새하얘지는 기분이었다. 지금까지 바람핀 개새끼들은 많이 만나봤지만 상대가 김태형이라니.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를. 뒤에선 전정국이 급하게 집을 챙기고 뒤를 따라오고 있었다. 한참을 걸었다. 걸음걸이는 점점 빨라져 어느 순간 숨이 턱 막힐 정도로 뛰고 있었다. 선배! 멈춰요! 뒤에서 들려오는 전정국의 외침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김태형. 너 그럴 애 아니잖아. 제발 전정국이 잘못 본 거라고 해줘. 건물에 비친 유리창 안으로 익숙한 두 명의 모습이 보이자 나도 모르게 세차게 움직이던 다리가 굳었다. 안으로 들어가려는 전정국의 팔을 붙잡았다.
"뭐해요. 안들어가요?"
"기다려봐"
나는 떨리는 손으로 전화기를 들어 1번을 꾹 눌렀다. 그때 유리창 안으로 보이던 익숙한 실루엣이 핸드폰을 들었다. 그러곤 다시 핸드폰을 자신의 주머니로 급하게 집어넣었다. 핸드폰의 신호음이 끊기고 기계적인 음성이 들렸다. 나는 다시 1번을 꾹 눌렀다. 김태형은 전화를 다시 끊었다. 또 다시 1번을 꾹 눌렀다. 김태형은 전화를 다시 끊었다. 그 짓을 몇 번을 반복하고 나서야 김태형이 전화를 받았다. 전정국은 옆에서 팔짱을 끼고 유리창 안에 있는 두 사람의 모습과 나를 번갈아 봤다.
[여보세요]
"전화를 왜 이렇게 안받아"
[미안, 못봤어]
"어디야?"
[나 지금 술약속 나왔지]
"누구랑, 내가 아는 애야? 아는 애면 나도 껴줘"
[아냐, 너 모르는 애 있어. 내가 지금 좀 곤란해서 이따가 전화할게]
정말 허무하게 김태형에 의해 전화가 끊어졌다. 선배, 그냥 집에 갈까요? 괜찮아요? 내 팔을 잡고 묻는 전정국에 나는 다시 핸드폰을 들어 세리에게 전화를 걸었다. 세리가 핸드폰을 들었다. 발신인을 확인하고 당황해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러곤 다시 전화가 끊겼다. 조금 뒤에 진동과 함께 세리에게 문자가 왔다. [미안 언니ㅠㅠ 나 지금 아빠랑 밥먹고 있어! 이따가 집 가서 내가 전화할테니깐 언니는 집에서 쉬고 있어! 사랑해 ♡]
사랑해? 사랑해는 시발 개뿔
"선배? 탄소선배! 어디가요!!"
"썅년놈들 잡으러"
무작정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오히려 상황이 닥치니 소름끼칠 정도로 차분해졌다. 아까 흥분했던 내 모습은 기억나지도 않을 정도로 침착했다. 문을 열고 발걸음을 차분히 옮겼다. 멀리서 보이는 김태형의 동그란 뒷통수가 보였다. 그 앞으로는 해맑게 웃고 있는 세리의 모습도 보였다. 볼이 살짝 붉네? 나는 세리의 발그레해진 볼을 보자마자 알 수 있었다. 세리는 김태형을 좋아한다. 이상하게 그 모습을 보면 볼 수록 화가나기 보다는 침착해졌다. 세리의 마음을 이제야 확신해서인가. 그냥 저기 세리 앞에 앉아있는 김태형의 뒷통수가 미웠다. 왜 나한테 거짓말 했니. 김태형.
"안녕 세리야. 여기서 다 만나네? 아버님이 꽤 젊으시다"
"...ㅇ,언니?"
"...."
"어? 김태형? 세리 아버님이 너였어? 언제 이런 딸을 낳았대? 그럼 네가 내 시아버님인가?"
"....김탄소 네가 생각하는 그런 거 아니야"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 줄 알고 태형아"
"...."
"내가 거짓말 제일 싫어하는 거 알지"
"....탄소야"
"이거 하나는 알겠네. 세리가 너 좋아하는 거"
"언니...! 그게... 다 오해야! 아! 그 상담! 언니랑 태형오빠랑 제일 친하니깐 상담하려고 만난 거야! 나 언니 좋아하는 거 알잖아!"
"세리야"
"응응! 언니 오해한 거 아니지? 나 믿지?"
"아가리 닥쳐"
"....어?"
"쪼잘거리지 말고 닥치라고 시발"
"....언니?"
"내가 잘해주니깐 존나 만만했나본데 나 승질 존나게 더럽거든? 내가 너 못때릴 것같아?"
"언니... 어떻게 나한테"
"미안한데 나 이제 너 보면 안설레"
"...."
"이제 너 안좋아한다고 세리야"
"....흡"
"김태형이랑은 했니?"
"...."
"섹스했냐고"
"...김탄소"
"김태형 넌 가만히 있어. 한세리, 이제 네가 나를 불편해했던 이유를 알겠다. 애초에 너 나 안좋아했네"
"...."
"너 이성애자니? 나랑 역겨워서 어떻게 사겼어"
"...."
"학교에서 알아서 피해다녀라. 면상 보면 존나 좆같으니깐. 이 언니가 또 손이 존나게 매워요"
"....언니 미안해"
"양심은 있네. 둘이 오붓한 시간 보내"
"아, 콘돔은 꼭 하고"
나는 전남친이랑 사귈 때 지갑에 묵혀뒀던 콘돔 하나를 꺼내 세리의 손에 쥐어줬다. 세리는 아무 말도 못한 채 닭똥같은 눈물만 뚝뚝 흘릴 뿐이었다. 거 참 기분 똥같네. 몸을 돌려 밖으로 나가려는 순간 김태형이 내 팔목을 꽉 붙잡았다. 김태형, 이거 놔. 김태형의 손을 뿌리치려고 했지만 힘 때문에 뿌리치지 못했다. 이상시리 차분하다. 김태형의 눈을 보는데 흔들림이 없어서 그런가. 김태형이 붙잡은 내 팔목에 피가 안통해 점점 저려오기 시작했다. 그때 누군가에 의해 김태형의 손이 떼어졌다. 누군가는 아마도 전정국이겠지.
"선배가 놓으라고 하잖아요"
"전정국 넌 끼어들지마"
"정국아 가자"
"김탄소. 거짓말한 건 미안해. 그런데 나 그런 쓰레기 아니다. 나 못믿냐"
"...."
흔들림 없는 눈으로 날 쳐다보는 김태형을 뒤로 하고 전정국의 팔을 잡고 밖으로 나갔다. 너 이제 집가. 전정국의 팔을 놓고 말했다. 미묘한 표정을 짓는 전정국에게 가벼운 인사를 한 뒤 집으로 가기 위해 택시정류장으로 향했다. 그런데, 뒤에 따라오는 익숙한 그림자는 뭐냐. 뒤를 돌아 그림자의 주인을 바라봤다. 갑자기 뒤돌아서인지 전정국의 얼굴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왜 자꾸 따라와. 시큰둥한 얼굴로 묻자 전정국은 머리를 긁적이며 눈치를 봤다. 밤이니깐... 위험해서... 제가 데려다주면 안돼요? 나는 눈동자를 데굴데굴 굴리는 전정국에게 네 마음대로 하라고 말한 뒤 다시 제 갈 길을 갔다. 뒤따라오는 전정국 덕분에 어쩌다보니 전정국과 같은 택시를 타게 되었다. 집 방향이 어디야? 선배는 어디신데요. 나는 학교 근처지. 저도 그 쪽이에요. 나는 흔들리는 택시 안에서 잠깐 눈을 붙였다. 전정국이 우리집과 반대방향이라는 사실을 꿈에도 모른 채.
"선배 다 왔어요"
"아... 잠들었네"
"집까지 데려다줄게요"
"너 하고싶은 대로 해"
내 말에 방실방실 웃으며 뒤를 따라오는 전정국이었다. 얼굴은 토끼같이 생겨선 하는 짓은 꼭 대형견같다. 그래도 혼자는 아니어서 덜 비참한 것 같다. 이런 일을 몇 번이나 겪었지만 아무렇지 않은 척 해도 상처받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썅년, 내가 이렇게 존나게 잘해주는 것도 드문데. 속으로 욕을 해봤자 달라지는 건 없었다. 이미 떠난 사람은 그냥 보내버리는 것이 더 편하다. 연애는 다른 사람이랑 얼마든지 할 수 있으니깐. 지나간 사람에게 마음 써봤자 시간낭비다. 이것 저것 생각하며 걸으니 어느새 자취방 앞에 거의 다 도착했다.
"다 왔어"
"아, 벌써요? 아쉽다"
"넌 뭐가 그리 좋냐"
"그냥 선배랑 있는 게 좋아서요"
"돌려서 말하지도 않네"
"선배"
"왜"
"태형이형이 정말 바람폈다고 생각해요?"
"...아니, 난 김태형 믿어. 걘 절대 그럴 애 아니야"
"그럼 아까 왜..."
"거짓말한 게 괘씸해서 벌 좀 주려고. 몇 일 동안 혼자 쫄타보라고 해"
"...."
"나랑 김태형이랑 엄마 배에 있을 때부터 친구였어. 난 걔 눈만 봐도 알아. 딱 봐도 세리가 먼저 치댔겠지. 세리 걔 생각보다 더 영악해. 나도 눈치는 있어. 김태형은 나 상처받을까봐 티도 못내고 호구같이 부탁 들어주고 뒤에서 조용히 해결하려고 했겠지. 딱 봐도 답 나와"
"....진짜 나쁜년이네요"
"나랑 사귄 이유도 김태형 그놈 때문일 거야. 지금 생각해보면 세리 걔 나한테 진심인 거 없었거든. 나랑 세리랑 데이트 할 때마다 김태형이 중간에 많이 끼어댔으니 걔한텐 나랑 사귀는 게 손해보단 이득이었을 거야"
"그래도 선배가 그 누나 좋아했던 것 같은데 아무렇지도 않아요?"
"어느 정도 걔가 날 좋아하지 않다는 것을 짐작해서 그런지 의외로 담담하네. 상처받은 건 어쩔 수 없지만. 이미 걔랑 나랑은 끝났어. 지나간 사람을 뭐하러 잡아"
"아, 또 심쿵했어"
"...엥?"
"선배 너무 멋있어서 심쿵했어요"
"참 심장도 가볍다"
"누나 저랑 사귈래요?"
"됐거든"
"그럼 받아줄 때까지 고백해야지"
"내일 다시 고백할게요! 저 가요!"
전정국은 해맑게 손을 흔들며 뒤를 돌아 발걸음을 빠르게 움직였다. 나는 전정국의 실루엣이 희미해질 때까지 전정국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암튼, 단순해서 귀엽네. 집에 들어가 간단히 샤워를 마치고 침대에 쓰러지듯이 누웠다. 정말 피곤한 하루다. 솔로 만세다 만세 시벌. 침대에 벌렁 누워 핸드폰을 켰다. 부재중 18통. 그 중 16통은 김태형, 2통은 한세리였다. 김태형 너는 고생 좀 해라. 한세리 넌 짤이고. 바로 한세리의 번호를 차단했다. 카톡 목록에 들어가 밀린 카톡을 봤다.
[태태 - 김탄소 전화 좀 받아 11:30]
[태태 - 내가 다 설명할게. 만나서 얘기하자 11:32]
[태태 - 너 나 믿잖아. 제발 연락 좀 해줘 11:40]
[태태 - 많이 놀랬지. 미안해 탄소야 11:50]
[태태 - 나 한세리랑 아무 사이도 아니야. 제발 전화 좀 받아줘라... 12:01]
나는 더 이상 김태형의 카톡을 보지 않고 카톡방을 나갔다. 바로 아래에 내새끼♡로 저장되어 있는 한세리의 카톡이 눈에 띄었다.
[내새끼♡ - 언니 전화 좀 받아줘 11:40]
[내새끼♡ - 나 변명할 기회라도 주면 안돼? 11:50]
[내새끼♡ - 처음부터 태형오빠 좋아해서 언니 이용한 거였어 미안해... 내가 계속 태형오빠 협박했었어. 안만나주면 언니 상처주겠다고. 정말 미안해. 태형오빠는 아무런 잘못 도 없어 11:55]
[내새끼♡ - 그래도 언니를 하나도 안좋아한 건 아니야. 많이 존경했어. 여자로서. 내가 언니한테 할 말이 미안하다는 말밖에 없다. 톡 보면 전화나 연락 줘. 마지막으로 제대로 사과하고 싶어 12:00]
지랄한다. 나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바로 차단하기를 꾹 눌렀다. 더 이상 얘와 엮이고 싶지 않았다. 기분이 아주 좆같다. 사과하면 뭐가 달라지는데. 네 죄책감 더는 것밖에 더하냐. 기분이 나빠져 휴대폰을 던지려는데 갑자기 진동이 울렸다. 누구야. 차단했으니 한세리는 아닐 테고. 김태형인가. 휴대폰 액정을 들여보자 전정국이라는 이름이 눈에 띄었다. 전정국의 카톡을 본 뒤 나도 모르게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존나 귀엽네.
[전정국 - 선배 잘 들어갔어요? 전 도착해서 씻었어요. 설마 지금 기분 뭣같다고 이불 뻥뻥 차고 있는 건 아니죠? 12:10]
[전정국 - 어, 바로 확인하네 12:11]
[전정국 - 내가 말했죠? 선배 헤어지게 될 거라고. 그 나쁜년은 잊어버리고 이제 새출발해야죠. 물론 나랑 12:11]
[전정국 - 그런 김에 저랑 사귈래요? 지금 열두시 지났으니깐 내일 맞아요 12:12]
[전정국 - 지금 제 카톡 감상해요? 왜 읽기만 하고 답이 없어. 타자 귀찮으면 전화로 해요. 나야 좋지 12:13]
마지막 카톡을 확인하자마자 전정국에게 전화가 왔다. 받을까 말까. 고민을 하다가 전화가 끊길 것같아서 통화를 눌렀다.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낮은 목소리가 벌써부터 익숙해졌다. 나 얘랑 거리 둬야하는 거 아닌가. 그냥 바보같은 복잡한 생각은 접어두기로 했다. 그냥, 내가 끌리는 대로 해야지
[선배, 안자요?]
"이제 자야지"
[선배 솔직히 말해요. 저 이제 엄청 편하죠?]
"어떻게 알았냐"
[근데 친구는 안돼요]
"왜? 난 너 마음에 드는데"
[애인으로서 마음에 들어야죠]
"야, 너랑 나랑 잘될 확률은 거의 제로야"
[왜요? 저 괜찬다면서요]
"왜냐면 너한테 전혀 설렘이 없거든, 편한 사이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야. 연애는 쌍방이어야지"
[앞으로 쌍방이 될 걸요?]
"뭐래, 됐고 애기는 얼른 자라"
[선배, 힘들면 남한테 좀 기대요. 겉으로 아무렇지 않은 척 하지 말고, 상처 많이 받았잖아]
[나는 상처받는 선배를 볼 때마다 마음이 너무 아파요]
[그러니깐 나한텐 강한 척 안해도 돼요]
전정국과의 짧지만 긴 통화를 마치고 멍하니 천장을 바라봤다. 얘는 날 너무 잘 아네. 사실 그동안 아무렇지도 않은 척 했지만 상처를 많이 받아왔다. 많은 사람들은 내가 상처받는 것에 아무렇지도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겉으로 보기엔 단단하고 강해보이는 사람이니깐. 헤어지고 다른 사람을 아무렇지 않게 사귈 때마다 사람들은 물어본다. 너 전여친, 혹은 전남친을 좋아하긴 했냐? 당연히 내 대답은 예쓰. 누구보다 그 사람을 좋아하고 아꼈다고 확신할 수 있다. 단지, 떠나간 사람을 잡지 않는 것일 뿐. 연애 경험이 많은 만큼 많은 사람에게 상처 받았고 상처의 크기에 상관없이 항상 아파왔다. 이걸 유일하게 아는 사람은 김태형밖에 없었다. 그냥 눈만 봐도 속마음을 아는 사이니깐. 내게 김태형은 그런 존재였다. 말하지 않아도 다 알아주는. 인간적으로 날 가장 아끼고 사랑해주는 유일한 사람.
그런데 그런 나를 안 지 별로 되지도 않은 전정국이 알아챘다.
썩어 문드러진 내 속을.
"참나.... 자기가 뭘 안다고 허"
입 밖에 나온 말과 다르게 눈에서 눈물이 나왔다. 김태형도 고생 많이 했겠지, 나 때문에. 세리는... 왜 이런 선택을 했을까. 내사람이라고 생각해왔던 사람이 떠나는 것은 언제나 외롭고 아프다. 매번 새로운 인연을 맺는 것도 요즘 점점 지쳐간다. 그냥 독신으로 살까. 언젠가 김태형이 내게 했던 말이 생각난다.
"야, 김탄소. 그냥 나중에 우리 둘이 결혼할래? 물론 연애는 따로 하다가"
"징그럽다 징그러"
"어차피 평생 같이 살아야 하는 거 맘 편한 너랑 살란다~"
"난 사랑 없는 결혼은 안해. 비참하잖아"
"...."
"그래서 결혼은 안하려고"
"왜? 성별 때문에?"
"아니, 영원한 사랑을 안믿거든"
솔직히 사랑 같은 게 있는 지 잘 모르겠어.
전정국 넌 어떻게 생각해?
좆같은 아침이다. 아니 시간을 보면 아점시간인가. 숙취 때문인지 머리가 지끈거리게 아파왔다. 어제 울면서 잠들어서 그런지 눈가가 퉁퉁 부었다. 1교시가 아닌 게 다행이네. 어차피 오후 수업이라 시간이 넉넉했다. 여유롭게 씻고 옷을 입으려고 옷장을 여는데 세리와 커플로 맞춘 옷들이 눈에 띄었다. 그 중엔 세리가 선물해준 치마도 몇 개 눈에 띄었다. 생각보다 더 비참하네. 세리가 생각나는 옷들을 모두 쇼핑백에 꾸겨 넣었다. 다 꾸겨 넣고 나니 큰 쇼핑백이 두개나 되었다. 책상에 있던 사진과 세리와 함께 맞춘 팔찌 모두 가방에 넣었다. 세리의 동글동글한 글씨체가 담겨 있는 편지도 모두 다 담았다. 마지막으로 내가 세리에게 선물하려고 산 목걸이를 챙겼다. 오랫동안 사귄 것도 아닌데 이렇게 챙기고 보니 꽤 많았다. 오늘 다 정리 해야지.
무릎이 다 찢어진 스키니를 입고 조금은 짧은 길이의 라이더자켓을 걸쳤다. 습관적으로 운동화를 신으려다가 신발장에 박혀있는 스틸레토 힐을 꺼냈다. 물론 가장 즐겨 신는 건 조던과 컨버스였지만 가끔씩 스틸레토 힐도 많이 즐겨 신었었다. 세리의 한 마디에 거의 안신었지만.
"오~ 김탄소 오늘 뾰족구두 신었네? 이 오빠는 키 큰 여자가 좋더라"
"뭐래, 김태형 너 보여주려고 신은 거 아니거든"
"난 너 그거 신은게 그렇게 좋다. 평소엔 못생겼는데 오늘은 좀 예쁜 것 같기도?"
"태형오빠 언니랑 떨어져요! 왜 우리 언니랑 붙고 그래요!!"
"오구오구 우리 세리 알겠어. 야, 김태형 빨리 꺼지시지"
"난 언니 운동화 신은 게 좋아"
"그래?"
"응 언니가 맨날맨날 운동화만 신었으면 좋겠어"
바보같이, 그때는 호구처럼 그 한마디에 매일 운동화를 신었었지. 지금 생각해보면 김태형이 예쁘다고 한 걸 질투해서 그런 것 같다. 돌이켜보면 많이 티 났었네. 이제 막 나가려는데 전정국에게 전화가 왔다. [선배 오늘 학교 언제 가요?] 나 지금 집 나가려고 하는데. [버스타고 올 거죠?] 응. [저 지금 학굔데 그럼 학교 정류장에서 선배 기다릴게요] 야, 뭘 기다려. 여보세요? 전정국? 아 끊었네. 찝찝한 전화를 뒤로 하고 쇼핑백을 들어 밖으로 나갔다. 나도 모르게 발걸음이 조금 빨랐다. 혹시 전정국이 기다릴까봐. 학교로 가는 버스를 타려다가 손에 들린 짐이 너무 많아서 그냥 택시를 탔다. 얼마 안되는 거리라 돈낭비일 수도 있지만 뭐 핑계를 대자면 오랜만에 신은 힐과 무거운 짐 때문이고 실상은 전정국 때문이겠지.
"야! 전정국!"
"어? 탄소선배! 택시타고 오셨네요?"
"그래 임마. 짐 보면 모르냐"
"왠 짐이에요?"
"...버리긴 뭐해서 다시 한세리한테 갖다주려고"
"아... 아, 맞다 태형이형 아까 학교 왔어요. 얼굴 보니깐 어제 잠도 못잔 것 같던데"
"그새끼 얘긴 왜 해 더 고생하라고 해 괘씸한 새끼"
"솔직히 지금 태형이형 힘들어봤자 선배만 더 힘들잖아요"
"...."
"자기 자신 괴롭히는 짓 그만하고 빨리 풀어요. 질질 끌어봤자 선배만 더 고생해요"
"...."
"솔직히 지금 제일 기대고 싶은 사람이 태형이형인 거 다 알아요"
소름끼치는 새끼. 왜 이렇게 나를 잘 아는 거야. 아무런 대답도 못하고 우뚝 서있자. 전정국이 내 손에 들린 짐을 낚아챘다. 얼른 가요. 먼저 가는 전정국의 뒷모습을 따라갔다. 또각 또각. 내 발 밑에서 들리는 소리가 듣기 좋았다. 선배, 이건 언제 주려고요? 전정국이 쇼핑백을 흔들며 물었다. 아, 수업까지 시간 좀 있어서 지금 가져다 주려고. 아까 걔한테 만나자고 미리 연락해놨어. 넌 수업 없어? 내 물음에 전정국이 입꼬리를 씨익 올렸다. 저 수업 끝난지 오랜데요. 선배 보려고 기다렸어요. 이건 또 뭔 개소리야. 아무튼 속을 알 수 없는 애였다. 그래도 좀 든든했다. 덩치가 커서 그런가.
하룻밤 사이에 세리는 많이 수척해있었다. 하긴, 얼굴에 생기가 가득했으면 죽빵 한 대 갈겼겠지. 뼛 속까지 나쁜 애는 아닌가보다. 찰거머리처럼 옆에 붙어있는 전정국을 보내고 세리와 단 둘이 교내에 있는 까페에 들어갔다. 일부러 사람이 없는 구석진 곳으로 갔다. 얘기가 새어나가면 큰 일이니깐. 세리는 고개를 숙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긴 정적이 계속 되었다. 나는 말 없이 세리를 빤히 쳐다봤다. 이렇게 보는 것도 지금이 마지막이겠지. 숨막히는 정적을 깬 건 세리였다.
"태형오빠 입학했을 때부터 좋아했어. 태형오빠가 군대 갔을 때도 기다리면서 줄곧 좋아했었어"
"...."
"오랫동안 봐왔어. 그래서 태형오빠랑 언니랑 친한 것도 알고 있었고. 태형오빠가 워낙에 여자들을 밀어내니깐 아예 못다가가겠더라"
"....계속 해봐"
"정말 욕심 없었어. 그냥 바라보는 것만 해도 좋았으니깐. 처음엔 단지 나를 기억해주면 좋겠다 싶어서 시작한 거였어"
"...."
"언니가 단 거 싫어하는 거 알아. 대신 태형오빠는 단 거에 환장하는 거 알고 있었고. 그런데 태형오빠는 내가 주면 거절할 게 뻔하니깐 일부러 언니한테 줬어. 언니한테 주면 태형오빠가 뺏어먹는 거 알아서 일부러 언니한테 준 거야"
세리의 얘기를 들어보면 그랬다. 처음엔 단순히 나를 통해서 태형이 자신이 준 음료수를 먹는 게 좋아서 시작했다가, 점점 욕심이 생겼다고 한다. 나랑 김태형이랑 매일 붙어있으니 나랑 친해지면 김태형이랑 붙어있을 수 있겠구나 라는 생각으로 나한테 들이댔다고. 처음엔 단순히 나랑 친해지려고 하다가 별로 진전이 없는 것같아서 내가 여자를 사귄 적이 있다는 것을 알고 고백했다고 한다. 바보같은 나는 또 거기에 설레서 받아주고. 나랑 사귀고 초반엔 김태형과 같이 있는 시간이 많아져서 좋았다고 했다.
"그런데 언니가 생각했던 것보다 너무 좋은 사람이어서 어느 순간 미안한 마음이 들기 시작했어. 그래서 요새 피했던 거고"
"...."
"근데 들켰어. 박지민오빠한테"
"....박지민?"
"지민오빠가 나한테 헤어지라고 했는데 내가 싫다고 했어. 그러니깐 지민오빠가 태형오빠한테 말해버렸고"
"그래서 태형이한테 협박했니?"
"....응, 갑자기 욕심이 나더라. 그래서 나랑 안만나면 언니 상처주겠다고. 대신에 만나주면 좋게 헤어지겠다고 그랬어"
"내가 널 왜 좋아했을까"
"미안해. 언니 진짜 좋은 사람이야. 더 미안한 건 아직도 태형이오빠가 좋다는 거야"
나도 모르게 손이 위로 올라갔다. 세리가 순간적으로 눈을 꼭 감았다. 나는 차마 내려치지 못하고 손을 다시 내렸다.
"아직 마음이 덜 정리돼서 때리진 못하겠고"
"...."
"우리 커플 옷이랑 네가 나한테 준 선물이랑 편지야. 아, 그리고 이거"
"...."
"어제 너 주려고 산 건데. 네가 버리든지 맘대로 해"
나는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그래도 정리를 하고 나니 마음이 홀가분해졌다. 박지민은 도대체 언제부터 알았던 거야. 그래서 그때 나한테 헤어지라고 한 건가. 미리 말이라도 해주던가. 아마 나에게 말하고 싶어도 김태형이 말하지 말라고 했을 것이다. 내가 상처받는 걸 끔찍이도 싫어하는 놈이니깐. 그대로 수업을 들으러 가려는데 갑자기 뒤에서 전정국이 튀어나왔다. 뭐야, 너 계속 기다렸어? 참 너도 대단하다. 내가 지를 비꼬는 것도 뭐가 그리 좋은지 해맑게 웃으며 강의실까지 데려다주겠다고 난리다. 보면 볼 수록 토끼멍뭉이같단 말이지.
"선배, 수업 열심히 들어요"
"넌 제발 집이나 가라"
"태형이형이랑 해결하고 나면"
"뭐"
"나랑 사귈래요?"
"미친놈 귀에 딱지 생기겠다"
"그만큼 진짜 많이 좋아한다는 건데. 선배가 남자였으면 전 게이됐을 걸요?"
"그게 뭔 말이야 방구야..."
"탄소선배는 내가 이렇게 매달릴 만큼 멋진 사람이니깐"
"주눅들지 말고 자신감 가지라고요"
"선배 내가 본 사람 중에 제일 예쁘고 멋있는 사람이에요"
ㅡㅡㅡㅡ
아 걍 오마꾹 빨리 끝내버릴까!!!!
우선 시간 있을 때 빨리 달려야겠어여
크흡 여우신부도 쓰다 말았는디
ㅋㅋㅋㅋㅋㅋ근뎈ㅋㅋㅋㅋㅋㅋ
저번화 여러분들 반응 넘나뤼 재밌어섴ㅋㅋㅋㅋ
하루종일 댓글 구경함..ㅎ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시 생각해도 웃겨욬ㅋㅋㅋ
울 독자님들 넘 귀여워서 어쩌지
어쩌긴 어째, 워더해가야징
+) 오마꾹 2화를 본 독자님들의 반응
...?
뭐?
지금..
그니깐...
(스크롤을 내리다가 멈춘다)
이게 시방 뭐하는 짓이여!!!!
태태랑!!! 세리랑!!! 같이 있다니!!!!
태태 너 이자식 부랄친구라믄서 그러면 되는 거시여?
어떻게 감히!!!
아냐... 우리 태태는 그럴 애 아니야!!!
아니라고 말해여ㅠㅠㅠ
에이 설마 그랬다고 해도 여자친구인 거 모르고 그런 거 아니냐아ㅠㅠㅠㅠ
태태는 여자 뺏을 애가 아니라구ㅜㅜㅜㅜ
세리 저년은 뭐야
시방 뭐하는 년이여
확 뒤집어엎어벌라
여기서!!!
끊으면!!!
어쩌자는 거야!!!!
빨리 다음화를 내놔라!!!
+) 댓글을 읽는 자까의 반응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암호닉 (가나다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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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수문자
#새벽세시 #침쁘# @침침@ ■■■ ●달걀말이● ♡율♡ ♡틸다♡ ♥민군주♥ ♥심슨♥ ♥여지♥ ♥옥수수수염차♥
숫자
0320 0801 0815 10041230 1122 1220 1234 1쟉하2 616 627 74 777 92X 990419 eeggg
ㄱ
가온음자리 가위바위보 강변호사 강여우 개구락지 계피사탕 고려대학교18학번 고룡 고작보내준게김밥두세줄 골드빈 골뱅 과잉정국 굥기놀이 굥기윤기 구름 금붕어 긍응이 기디 김러브 김태태 까망이 꽃님 꽃밭 꽃오징어 꾸기 꾸기꺼 꾸기밥 꾸기봄 꾸깃꾸깃 꾸꾸 꾸꾸야꾸꾸해 꾸꾹까까 꾸우까 꾸잉 꾸쮸뿌쮸 꾹꾹 꾹꾹이 꾹냥꾸가냥 꾹왁 꾹이만세 꿍디 낑깡
ㄴ
나의 그대 난나누우 내 기억 속의 빈칸 내눈이침침해 내마음의전정쿠키 냉채족발 냥 너라는정국 너만볼래♡ 노랑 녹차잎 누가보면 누삐 눈꽃ss 눈누난나 뉸뉴냔냐냔 늘봄 늘품 니뿡깝민
ㄷ
다름 단미 달꾸 달리기 달보드레 도손 돌고돌아서 돌파리 동상이몽 동휘 됴종이 됼됼 두동치미 두부두부 뒷방마님 듀크 딘시 딸기꾸기 딸기맛님 딸기빙수 또룩 또이 뚱이 뜌 뜡기
ㄹ
라슈라네 라온하제 라일락 라임슈가 랄라 랩런볼 레인보우샤벳 레티 로로 루이빅 룬 룰루랄라
ㅁ
마망고 마쩡 망개 망개떠억 망개똥 망개침침 망무망무 매직레인 매직핸드 메리뮤 멜랑꼴리 명탐정코코 모닝쿨피스 모래 모래성 모찌새색시 모찌섹시 모찌한찌민 모카 몰랑이 몽마 몽쉘 몽자몽 무네큥 무지티 물불 므앙고 미늉기 미니꾸기 미랑아 미송 미스터 미호 민슈프림 민투구 민트 민피디 밍 밍도 밍뿌
ㅂ
바냐냐냐 바순희 박력꾹 박여사 박지민 초커 박침침 방소 방탄이들 백열 버거킹 벨베뿌야 복숭아 복숭아츄 봄 봄플 봉봉 봉봉 불화자 붐바스틱 붕어 뷔글뷔글 뷔밀병기 뷔요미 뷔타민V 뷩꾹 블라블라왕 블루베리 비비빅 빙그레 빛나무 빠밤 빨주노초파남보라 뽀야뽀야 뾰로롱♥ 뿌까 삐삐걸즈
ㅅ
ㅅr랑둥이 사과꽃 사랑둥이 사랑사랑사랑 사실 맞아 사이다 산들코랄 삼월 새벽 샤랄라 세젤예세젤귀 솔랑이 솜구 수수태태 순별 슈놀 슙비둡비 슙쿵 스노우볼 실웨 썩은촉수 쎕쎕 쑥
ㅇ
ㅇㅅㅇ 아꾹 아도라 아몬드 아이스망고 안녕엔젤 안돼 압솔뤼 야끙 야하 어린이운동화 엘런 여단 여름겨울 여우별 여우비 여우영 연애학 연이 연화 열원소 예쁜이 오늘내일 오레오 오마이갓 오큑 오타 온새미로 올옵 옮 우리사랑방탄 우유 우찌 운전 웃음망개짐니 원형 위잉위잉 유뇽뇽 유비 유은 유자 유자 유자청 윤기네설탕 윤기랑짝짝꿍 윤기자몽 윤민기 율예 융기뿡기 융기의흉기 융기태태쀼 이나라는물의나라 이연 이월십일일 이졔 인연 일일구1 입틀막 있잖아요..? 잉크펜
ㅈ
자몽석류 자몽선키스트 자몽쥬스 자몽현 쟈가워 쟌디 저장소666 전아장 전정꾹 젓가락 정꾸기냥 종구부인 지민아 지민이바보 지민이배개 지민이어디있니 진진 짜몽이 짝짝 쩌이쩌이 쩔지내 찜빵
ㅊ
차차 참기름 천하태태평 청보리청 청포도 체리마루 체셔리어 초코망개 초코생크림 초코아이스크림 추억 침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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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서린 커몬요 커튼 컨디션 콩콩 쿠우쿠우 쿠우쿠우 쿠쿠 쿠키 쿠키오 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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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태 태형됴♥ㅏ 텅스텐 테형이 토깽이 트리 트리플엑스 특별한너
ㅍ
파란 팝콘 포카칩 푸른달 풀네임이즈정국오빠 풀림 플럼 피글렛
ㅎ
하누월 하늘고래 하트태태하트 학생 햄버거 햄찌 허공이 헤융 헹구리 현 호로록 호비 호빗 호어니 호에에 홉스 화산송이 화양연화 회전초밥 흥흥 흩어지게해 히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