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집 아저씨는 각설탕을 좋아해.
*
아씨, 늦었다. 왜 내 몸뚱아리는 아침만 되면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가, 에 대해 침대에 앉아 눈을 감고 고뇌를 하다 날려버린 아침 시간에 부리나케 화장실에 들어갔다.
난 절대 잔 게 아니야...! 말도 안 되는 자기 세뇌를 하며 머리를 급히 감고는 화장실 거울을 쳐다봤다.
아니, 어제랑 달라진 게 하나도 없잖아.
8시간에 기적이라며 자기 전에 바르기만 하라던 그 개떡같은 화장품을 믿는 게 아니었어. 내 얼굴이 절대로 나아질 생각이 없는 게 아니지, 암.
철컥.
급히 머리를 말리고 빗으로 엉킨 머리를 내리 빗으며 문을 여는 순간 내 민감하고 예민한 콧구멍으로 담배 연기가 들어왔다.
... 뭐야, 어떤 싹수바가지 없는 놈이 감히 누구네 집 앞에서 담배를 피는 거시여. 이리와 아주 확, 담배랑 같이 두 동강을 내버릴ㄹ..
와, 아무리 이 외모지상주의에 찌든 세상에 살아서 내가 얼굴만 보고 사랑에 빠진다지만
담배를 제일 싫어하는 내가 저런 사람한테 사랑에 빠질 것만 같은 건, 세상이 미친 거거나, 지구가 미친 거거나 둘 중 하나일 거다.
저렇게 잘생길 순 없어. 주여, 제발, 심장이 멎을 것만 같아...! 진정해, 이 금사빠의 심장년아.
가는 눈을 더 가늘게 뜨고 내 행색을 훑는 시선에 이성의 끈을 놓아버리려는 정신을 붙잡고 담담한 척 나즈막히 내뱉었다.
이러면, 쫄아서 당장에 담배를 끄겠지.
"담배, 피지 마세요. 학교에서 금연 교육 안 받아봤어요?"
나름 영웅스럽게 얘기했다, 좋았어. 난 이제 방탄 아파트 영웅이야. 정작 눈은 마주치지 못해 미친듯이 허공을 떠다녔지만.
괜찮다, 원래 영웅들도 다 하나같이 병신 같은 모습이 있는 거라구.
담배를 끄길 기다리며 괜시리 긴장되는 마음에 애꿎은 입술만 물어뜯는데, 그 남자가 눈을 느릿하게 감았다 뜨며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뭐야, 기분 나쁘게.
'그런 건 모르겠고. 지금 시간이면, 지각이 확실하다는 건 아주 잘 알겠는데.'
하며 손가락으로 가리킨 내 핸드폰 액정에는 자랑스럽게 8시 10분을 나타내고 있었다.
...... 오늘 되는 일이 없지, 아주.
*
"뭐야, 김여주. 밥 먹으러 안 가?"
"어, 안 가. 좀있다가 남준 선배 만나기로 했어."
"와, 이제는 밥보다 사랑이냐. 드디어 밥순이가 밥을 포기하다니."
너 계속 그렇게 꼽태울 거면 꺼져, 이 개좌식아.
평소같았으면 더 옆에 앉아서 신명나게 내 멘탈을 잡고 흔들어줄 정호석이 곧 남준 선배가 온다는 말에 부리나케 엉덩이를 뗐다.
동네 사람들! 저기 달아나는 못생긴 생쥐 꼴 좀 보래요! 혀를 끌끌 차며 핸드폰만 만지작 거리는데 곧 내 앞에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밥도 안 먹고 기다릴 것 같아서, 이것저것 좀 사왔는데."
뭐야, 이 젠틀함. 완전 내 남자스러워.
먹을 걸 보며 반짝이는 눈을 숨기지 못하자 푸하, 하고 웃으며 과자 하나를 까 입에 대주는 선배였다.
"먹을 거 앞에 두고 고사만 지내려고?"
역시, 멘트마저도 멋있어. 몸을 베베 꼬며 받아먹자 그게 또 웃긴 건지 턱을 괴고 볼을 우물대는 나를 쳐다본다. 요정이 음식 먹는 게 그렇게 신기한가?
나름 자아도취에 빠져 온갖 예쁜척을 하면서도 게걸스럽게 과자를 먹는 나에게 선배는 시선을 주다 입을 열었다.
"그래서, 우리 언제 사귀는 건데?"
"언제 사귀긴 언제 사ㄱ... 네? 예? 뭐라고요?"
들고 있던 과자를 놓치자 다시 손에 쥐어주고는 언제 사겨줄 거냐고, 하며 짖궃게 물어오는 선배였다.
아니, 그게, 너무 그렇게 훅 치고 들어오면 오예이긴 한데 그래도 이건 너무 빠른 전개잖아요.
그렇게 바라고 바랬던 선배와의 썸을 타왔지만 사귄다는 것까지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는 내 단순한 뇌를 매우 치세요, 선배.
이제 내 날에도 봄날이 오는구나 싶기도 하면서 너무 급작스러운 발언에 쉽게 마음에 갈피를 잡지 못하는 내색을 비추자 선배는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너무 갑작스럽긴 했지. 이번 주까지 시간 줄게."
수행평가도 시간 맞춰서 내는 게 기적인 내가 마치 남준 선배와의 일이 내 인생이 달린 문제인 것 마냥 심각해지기 시작했다.
이번 주까지 못 정하면 선배의 여자가 될 자격에서 점수가 까이는 건가요? 방송에서 보면 마감 날짜 못 지키면 집까지 쫓아오던데, 그건 좀 괜찮을 것 같기도 하고.
이런 쓸데없는 생각까지 해가며 넋을 놓았다.
결국 야자 끝날 시간까지 장난을 거는 정호석에도 나는 아무런 대꾸와 응징도 해줄 수 없었고 그제서야 심각함을 알아차렸는지 눈치를 살피다 어깨를 툭 치며 가는 호석이었다.
"너무 심각하게 고민하지 마, 한 번 사겨본다고 지구가 반쪽이 날아가는 것도 아니고."
개자식... 그렇게 모태솔로인 거 티내지 말라고.
그래도 여간 눈치가 빠른 정호석 덕분에 복잡한 머리를 애써 잠재우며 터덜터덜 아파트 복도로 들어가다 누군가와 부딪혔다.
"... 아, 죄송합니다."
고개를 꾸벅 숙이고 다시 지나치려는 순간 코로 훅 끼쳐오는 담배 냄새에 설마, 하는 생각으로 고개를 들었다.
아, 또 이 아저씨네. 무심하게 내려다 보다 담배를 다시금 입에 무는 남자에 미간을 팍 접었다.
담배를 필 거면 집에서 혼자 피던가 왜 자꾸 밖에서 지랄이야. 안 그래도 복잡한 머리에 담배 냄새까지 풍겨오자 참았던 성질이 결국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저기요, 아침에도 말씀 드렸는데요. 왜 자ㄲ"
"..."
"자꾸 피시면 건강에 안 좋다구요, 하하."
뭐야, 그렇게 쳐다보면 내가 쫄아버릴 걸 너무나 완벽하게 파악하셨네.
자꾸 피우고 지랄이냐며 육두문자를 날리고 영웅스럽게 들아가려고 했던 내 계획을 처참히 짓밟은 그 남자는 아무런 표정 변화 없이 물었던 담배를 난간 벽에 지져끄고 들어가며 한 마디를 던졌다.
"오지랖."
그날 밤, 나는 분에 못 이겨 옆집이 위치한 벽에 대고 소리를 질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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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수능이 99일 남았다는 당일에만 우울해하던 고3입니다. 엄마 저를 매우 치세요. 제가 어쩌자고 글을 썼는지 모르겠지만 대리만족으로 설렘을 느끼고자...! 여러분과 함께 느끼고자...! 고자...! 죄송해요. 그저 전 웃기고 싶었습니다, 판사님. 그나저나 이런 부족한 글에 암호닉을 신청해주시다뇨. 너무 감사해요, 헤헤헤헤. 윤기 글인데 남준이가 초반부터 치고 올라오네요. 그래도 윤기가 남주니까 뭐라도 나오겠죠. (책임감 x) 부족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 아직은 윤기 아자씨가 설레는 포인트는 없지만 제가 원하는 발림 포인트는 이 각설탕 글에 다 쏟아붓고 가겠습니다. 그럼 좋은 목요일 되세요. 그리고 혹시 분량이 많은가요...? 분량이 적다거나 많아서 읽기 지루한 점이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사실 제가 수치에 대한 개념이 없어서... 이런 수치스러웟...! |
BGM. Pillow Talk - Jeff Bernat
암호닉
[소진]
[검은여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