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초에 이과로 오는 게 아니었다. 여중을 다닐 때 수학 성적 우수는 놓쳐본 적이 없는 나였기에 그때부터 쭉 나는 이과로 가야 한다! 를 외쳤다. 물론 내 장래희망도 이과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지만... 하여튼 이과에 오는 게 아니었다. 내 빌어먹을 머리는 왜 선택 과목을 로 골랐는지... 내가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느냐면, 우리 반은 역대 최악의 남초 학급이 되었다. 올해 초, 학교 홈페이지에 올라온 반배정을 떨리는 마음으로 확인하는데, 결과는... 여자가 둘? 오, 주님. 이게 뭐죠. 저 안 그래도 친화력 쓰레기인데. 그리고 밑으로 이름을 찬찬히 훑어보니, 우리 학교에서 모르면 간첩인 애들도 있고. 첫 등교는 더욱 가관이었다. 그나마 한 명 있는 여자애가, 있지... 예체능이래... (이마 짚) 여초든, 남초든 성비가 한쪽으로 쏠려서 좋은 건 없다고 하던데. 그리고 첫날 뽑은 자리, 내 빌어먹을 손은 뒤에서 첫 번째 줄을 골랐고, 나를 완전히 둘러싼 우리 학교 유명인사들... 차례로 김민규, 전원우, 이석민, 최한솔 되시겠다. 자, 그래. 내가 누구야. 마이 웨이를 걸으면 되지. 하며 다짐랬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더 생겼다. 갑자기 누군가 야, 너 작년 수학 1등 아니야? 라고 물었고 그대로 공부 잘하는 애가 반장이 되어야 한다는 논리 하에 나는 반장이 되었다. 그래, 내 고등학교 2학년 생활은 망한 게 맞지요?너봉의 신세한탄
이해를 위한 자리배치 |
최한솔 성이름 김민규 이석민 전원우 |
1. 자칭 네 오른팔, 부반장 김민규.
When. 학년 첫 날
Where. 네 옆자리
Why.
1학년 동안 맨 뒷자리를 누구에게 내 준 적 없는 김민규. 올해도 맨 구석 뒷자리에 앉고 싶었지만 이석민이 자기랑 가까이 있자며 앞으로 밀어서 뒤에서 두 번째 자리에 앉게 됐어. 그 자리에 앉아야 함을 알고 나서 자기도 모르게 별 새끼를 다 찾고 있었는데 고개를 돌리고, 바로 옆에 보이는 너를 보고는 속으로 아주 NICE! 를 외쳤지.
맞아, 김민규는 심각한 얼빠고 너에게 첫눈에 반했어. 사실 네가 반장이 된 배후에도 다 김민규가 있어. 김민규가 어딘가에서 네가 작년 수학 1등이란 소릴 듣고 와서 야, 얘 뽑아라? 를 반 친구들에게 주입식 교육하고, 부반장으로 자신을 추천했지. 후보 연설에서 엄청난 카리스마를 보여 주며 당선!
너는 처음에 김민규가 부반장이라니... 하며 이마를 짚었지만 생각보다 네 말도 잘 듣고, 특히 네가 시키는 일이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아. 아침 자습 시간에 네 옆에 앉아서 우리 반장, 힘들지 말라고 초콜릿 하나씩 슥 밀어 주는 거 보면 좀 귀엽기도 하고. 너 때문에 부반장 하면서 수업도 나름 열심히 듣는 우리 부반장, 민규 어때?
How.
"반장, 시킬 거 있어? 오늘 석식 같이 먹을래, 이런 것도 괜찮은데."
"나 물리 존, 아니, 정말 싫어하는데 반장한테 잘 보이려고 엄청 집중했어. 알면 석식 좀 같이 먹자, 어?
2. 첫인상 대반전남, 전원우.
When. 5월 초반
Where. 체육관 뒤 벤치
Why.
흔히 말하는 양아치들의 아지트, 체육관 뒤 벤치에서 평소처럼 담배를 피우고 있던 전원우. 마침 그 옆을 지나가던 네가 전원우를 발견해. 평소 전원우는 말도 없고 눈빛이 서늘한 느낌이라 네가 제일 무서워 하는 상대인데 그래도 반 친구가 그러는 걸 반장된 도리로 지나칠 수 없으니 다가갔어.
당당하게 가서 말투는 정작 어... 그니까, 이거... 피우면 안 되는 거 알잖아... 찌질 열매 먹은 너. 여기서 전원우는 1차 심쿵 당하고 조끼 안쪽에서 웬 접혀진 쪽지를 펼치는 꼬물거리는 손에 2차 심쿵. 마지막으로 반장으로서 해야 할 일, 이라 적혀있는 종이 한 부분에 반 친구가 잘못된 길로 가고 있으면 선도해주기. 라는 부분을 보며 난 반장으로써 할 일을 하는 거야! 라고 열심히 변명하는 모습에 게임 셋.
원래 명찰을 안 하고 오거나 넥타이가 없거나 그러면 아, 학주 존'나 귀찮은데. 하면서 인상 구기는데 어느샌가 방싯방싯 웃으면 학교에 와. (선도부 최승철: 뭐야, 저 새끼 안 어울리게 왜 저래.) 그리고 교실에 와서는 너를 툭툭 치며 반장, 나 오늘 명찰 안 하고 왔어. 이러는데 어떻게 몰라... 냉미남인 줄 알았지만 알고 보면 귀여운, 원우 어때?
How.
"야, 반장. 너 그 종이 한 번만 다시 보여 주면 안 되냐. 넌 글씨도 귀엽더라."
"방금 귀엽다고 했냐. 말도 안 되네, 나보단 네가 더 귀엽지. 귀엽고, 예쁘고. 씨발, 사람인가?"
3. 흔한 남초딩st, 이석민.
When. (자기가 깨달은 건) 7월 초반
Where. 운동장
Why.
처음엔 정말 사심 1도 없고 그냥 남자애들 사이에 끼인 여자애가 신기해서, 괜한 장난을 치기 시작한 네 뒷자리 이석민. 장난 수위가 그렇게 높진 않고, 정말 초딩처럼 뒤에서 쿡쿡 찌르고 모른 척하거나 종이 뭉쳐서 책상 위로 던지거나, 그런 거 뿐이야. 교실 밖에서는 괜히 다른 애들 괴롭히는 척하면서 네 관심을 끌지만 결과는...
하여튼 이런 장난들을 치면서 어느 순간 네가 좋아지긴 했는데, 이석민은 몰랐어. 이 눈치 없는 이석민이 깨닫게 된 건 체육 시간. 시험이 끝나고 남자애들이 많으니까 축구를 하겠다는 선생님 말씀에 너도 나름 열심히 뛰어다니는데 결국 운동장에 무릎을 갈아. 그걸 보고 자기도 모르게 바로 달려나가 양호실로 데려간 이석민은 그제야 아, 내가 반장 좋아하는구나. 를 깨달아.
사실 방탕하게 놀면서 이상하게 여자 경험은 없는 이석민이야. 만나도 그냥 고백 받고 대충 사귀다 헤어졌지. 그래서 누굴 좋아하는 것도 처음이라 어찌 해야 할지 잘 몰라해. 너한테는 예전과 별다른 거 없이 계속 장난 치고 그러지만 아는 누나들이 석미나~ 누나랑 언제 함 만나서 놀까? 응? 해도 아뇨, 저 요즘 좋아하는 사람 있어요. ㅋㅋ 하면서 직진하는 우리 석민이... 유치하지만 엄청난 순정남인, 석민이 어때?
How.
"반장, 우리 반장. 왜 점심 안 먹어? 설마 내가 전에 돼지라고 한 마디 했다고 그래? 반장이 내 말 잘 기억해 주는 건 좋은데, 너 말랐어. 빨리 점심 먹으러 가자."
"이 오빠가 말이야, 얼마나 인기가 좋냐면 이번 주말에도 누나들이 술... 아니 밥 사 주겠다고 그렇게 연락이 왔어... 야, 아니야. 오빠 주위에 그렇게 여자 안 많다?"
4. 내 성적을 도와 줘, 최한솔.
When. 5월 초
Where. 교실
Why.
아마 넷 중에 제일 공부에 관심 없는 사람을 고르라면 최한솔일 거야. 아예 수업을 들으려는 노력을 하지 않아. 늘 네가 수업을 듣다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책상에 엎드려 자는 최한솔의 모습이 보여. 최한솔은 점심시간이 다가올 때 귀신같이 깨는데, 그때 수업 마지막까지 하나하나 놓치지 않는 널 보면서 되게 멋지다고 생각해. 자기는 그래 본 적이 없거든.
그리고 중간고사를 치는데 네가 생각보다 훨씬 점수가 잘 나오자 함박웃음을 지어. 그걸 보고 최한솔은 점수 잘 나오면 좋아? 라고 묻고, 네가 그렇다고 대답하자 그럼 다음 시험엔 나도 공부 가르쳐 달라고 말하는 최한솔. 너는 갑자기 그러는 최한솔에 당황했지만 이내 밝게 웃으며 좋다고 대답해 줘. 최한솔은 그 순간 지금까지 느낀 공부 잘하는 애들에 대한 이미지, 예민하고 재수 없고 남 무시하고, 가 깨지면서 네게 반해.
기말고사 기간이 다가오고 같이 도서관에서 공부하면서 최한솔은 네게 점점 더 반해가. 웃는 모습이 제일 예쁘다고 생각했는데 뭔가에 집중하는 옆모습도 엄청 예뻐 보여서. 어쩌면 최한솔은 사랑이란 감정에 동경의 감정도 조금 섞여있을지 몰라. 그리고 기말고사가 끝나고 둘만 교실에 남아 같이 가채점을 한 후 눈에 띄게 오른 최한솔의 성적을 보고 네가 꼭 안아 주자 엄청 심쿵했단 건 비밀. 너 때문에 평생 놓았던 걸 다시 시작하게 된, 한솔이 어때?
How.
"반장, 그래도 영어는 내가 반장보다 잘할걸? 어때, 멋있지. 우리 반장, 내가 영어 가르쳐 줄까?"
"맨날 엎드려 자면서 너 올려다 보는 거보다 같이 공부하면서 너 똑바로 보는 게 훨씬 예쁘다. 예쁜 모습 볼 수 있게 해 줘서 고맙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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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과 ver 이번 주 내로 가져올 겁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