멍멍 02
따뜻한 물도, 갈아입을 옷도 대충 준비됬지만 당장 씻자고 말할수가 없었다. 텔레비전 앞에서 입을 헤 벌리고 시선을 고정한 지훈이때문에. 뭐가 그리 신기한지, 왔다갔다 하는화면을 멍하니 보다가도 큰소리에 움찔 어깨를 떠는 모습이 집에서 일어날수 없는 생소한 모습이라 더욱 눈이 갔다. 어느새 텔레비전 코 앞까지 기어가 엉덩이를 씰룩임에 따라 흔들리는 꼬리에 지훈이 새삼 일반사람이 아니라는게 와닿는다. 이러다가, 저녁 10시는 넘을 것 같은 예감에 뒤로 슬쩍 다가가 녀석의 발목을 덥석 잡았다.
"으왁!"
"이제 그만 보고, 씻자 응?"
"이거 보고! 이거! 우왁! 싫어어!!"
귀여운 여자 목소리도, 애기 목소리도 아니고 오히려 동굴같이 낮은 목소리인데 귀엽다. 발목을 꽉 잡아 결국 질질 끌어와 허리를 덥석 잡으니 버둥거리는 힘이 장난이 아니다. 하얀니트가 위로 들춰지며 하얀 속살까지 보이는데 순간적으로 깜짝 놀라 손을 놓았고 그 틈을 놓치지않고 파닥거리며 텔레비전 앞으로 도망간 녀석에 넋이 나갔다.
".......우지호 미쳤다"
버둥거리느라 머리도 옷도 잔뜩 흐트러진채로 헤헤 웃는 지훈이를 보다가 결국 욕실 물은 다시 버렸다. 그나저나 내 옷도 있지만, 옷이라곤 죄다 정장이나 셔츠뿐이니..그리고 지훈이에게 어울려보이지도 않고. 그리고 저녁은 먹었을려나. 아, 그러고보니 저녁..
"....지훈아, 저녁은 먹었어?"
"응? 저녁?"
"어어, 밥. 밥 먹었어?"
"으응, 아니이.."
시간이 벌써 10시인데, 밥도 안 먹였다. 다급해진 마음에 냉장고를 열고보니 다행히 어젯 밤 퇴근 길에 사왔던 샌드위치가 남아있다. 컵에 우유를 따라 샌드위치를 들고 거실로 나가니 어느새 끝난 프로에 실증내며 바닥을 구른다. 너 그러다가 우리 집 거실 다 닦겠다.
"지훈아, 이것 좀 먹자"
"응?"
배가 고프긴 했는지 금새 관심을 가진다. 샌드위치를 손에 쥐어주니, 나를 힐끔보다가 덥석 깨물어먹는데, 아 귀엽다 진짜. 부슬한 머리를 쓰다듬으니 흥흥거린다. 체한다, 우유도 마셔. 얌전히 우유도 마시더니 컵을 떼고 하얀자국을 가득 묻힌 채 헤 웃는데, 자꾸 손이 간다. 그리고, 사실 나는 지금 내가 무척 낯설다. 견인이라는 비현실적인 존재에 지나치게 빠르게 적응하고 있고, 더군다나 동거라니. 외계인이나, 귀신같은 것도 믿지않았던 나는 견인이라는 녀석을 쉽게 받아들였다. 지금 당장 묻지는 못하겠고, 차차 시간이 지나면 얘기를 해봐야겠다. 그나저나, 진짜 잘먹네. 식비걱정도 해야하나.
*
왁왁오가
언제 완결이나든 완결하면
철저히 메일링으로, 이 병시ㄴ같은 글을 넓은 인내심으로 봐준 몇몇의 호빵맨들에게..
아...흗흐긓가